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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연구1947

역사인물의 초상화 복원 이번에 이극용 얼굴을 복원하였다 하여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 역사적 인물 복원을 인골을 기반으로 얼굴을 복원한 다음, 그 시대의 의복 장신구까지 자문을 구하여 당시의 초상화 기법까지 동원하여 작업하여야 한다고 처음 주장한 논문이 지금 국과수에 있는 이원준 박사와 우리 연구진의 공동연구 결과였다. 2014년에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출판되었고, 이번에 복원한 이극용 얼굴 초상화도 사실 이원준 박사의 이 연구에 덕을 입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지금부터 12년 전에 쓴 논문이니, 그래도 당시 우리 보고가 이 분야 논문으로는 가장 앞선 논문 중의 하나로, 발굴로 확보된 인골을 기반으로 초상화까지 복원하는 작업 중가장 앞선 논문 중의 하나였다 할 수 있다. 당나라.. 2026. 5. 7.
두고두고 음미하는 연려실기술 서문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연려실기술 서문이다. 필자 연구실의 당호 아닌 당호 삼아 한 켠에 둔 사진 편액에 부쳐 둔다. 내가 열세 살 때에 선군先君을 모시고 자면서 꿈을 꾸었다. 꿈에 임금이 거둥하시는 것을 여러 아이와 길가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임금께서 갑자기 연輦을 머물게 하시고, 특별히 나를 불러 앞에 오라 하시더니, “시를 지을 줄 아는냐.” 하고 물으셨다.“지을 줄 압니다.” 하고 답했더니 임금께서, “지어 올리라.”고 하셨다.내가 “운韻을 내어 주소서.” 했더니, 임금께서 친히, “사斜ㆍ과過ㆍ화花 석 자를 넣어 지으라.” 하셨다.잠깐동안 시를 생각하는데, 임금께서 “시가 되었느냐.” 물으셨다.대답하기를, “시를 겨우 얽기는 했습니다마는 그 중에 두 자가 미정이어서 감히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하.. 2026. 5. 7.
응도당凝道堂과 연려실燃藜室 방에 원래 걸어둔 현판은 돈암서원의 응도당 편액 사진이다. 지인이 크게 사진을 찍어 뽑아 준 것을 출력하여 방 한 편에 걸어 두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송시열이 썼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력은 모르겠다. 필자는 호나 자 같은 복고 취향은 없는 사람으로, 이름 석자 남기기도 빠듯한데 호나 자는 필요 없다고 본다. 위의 편액사진도 당호는 아니다. 다만 논문을 쓸 때 내용을 마지막에 결정화하는 작업이 응도당이라는 당호와 왠지 상통하는 듯 해서 걸어두었다. 연구실에 하나 더 오늘 걸어 두었는데 이번에는 이광사가 썼다고 알려진 연려실 편액이다. 국박에 있는 것으로 위키에 크게 뽑은 사진이 올라있길래 하나 출력해서 뽑아 방 한 켠에 두었다. 이긍익의 연려실 기술 서문에 보면초년에는 뭐 좀 큰 업적을 남길 줄 알았는데 늘.. 2026. 5. 7.
네안데르탈인의 뇌크기에 대해 일반적으로 여러 종의 지적 능력을 반영하는 것으로는, 뇌의 무게나 용량보다도, 뇌 무게와 몸무게의 비율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써 둔다. 아래는 유명한 각 동물별로 뇌 무게와 몸무게의 비율을 표시한 유명한 연구 결과이다. 이 표를 어찌 보냐 하면, 아래 왼쪽에서 위 오른쪽으로 45도 사선을 그어서 그 사선에서 위쪽으로 많이 떨어져 있을수록 소위 말하는 머리가 좀 돌아가는 녀석에 해당한다. 당연히 사람이 가장 뇌무게와 몸무게 비율이 높고, 사람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돌고래와 코끼리가 있다. 새 중에서는 까마귀가 높다. 금붕어, 악어 뱀장어 등은 당연히 뭐 신통치 않고..네안데르탈인과 사람이 뇌 용량이 비슷하더라도 만약 어느 한 쪽의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간다면해석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다... 2026. 5. 2.
So far we are equal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소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제56장에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있다.엘리자베스 베넷이 자신과 다아시의 결혼을 반대하는 캐서린 드 버그 부인(Lady Catherine de Bourgh)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캐서린 부인이 엘리자베스의 집안 배경을 무시하며 다아시와 동등하지 않다고 무시하며 비난하자 엘리자베스는"그는 신사이고, 나는 신사의 딸이니, 지금까지는 우리가 평등하다(He is a gentleman; I am a gentleman's daughter; so far we are equal)"라고 응수한다. 바로 이 구절이 오만과 편견 소설 전체를 꿰뚫는 명대사라 할 수 있다. 소설에 의하면 다아시 집안의 계보는 이렇다. 한 눈에도 .. 2026. 5. 1.
민중은 없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사 기술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20세기 한국사와 연결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후기사를 마지막까지 사림의 눈으로 조망하여 기술하는 한 편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서 역사를 보는 쪽은 이번에는 이 시기의 주역을 "민중"이라 한다. 필자가 보기엔 19세기까지도 사림의 시각으로 조선사를 보는 것만큼이나 문제가 많은 것이19세기의 변혁의 주체를 설명하면서 민중, 내지는 농민이라고 뭉뚱그려 설명하는 것이다. 이 민중이라는 개념은 20세기 이후 성립한 시민사회에서나 적용가능한 개념으로18-19세기의 조선사회에는 적용할 수 없다. 민중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 도대체 조선시대 후기의 호적에 기록된 사람들 중 누구에게 민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 민중은 20세기에나 쓸 수 있는 개념이지이 .. 2026.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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