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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연구498

조선시대 법령에 대한 일고 조선시대 법령은 필자 전공은 아니지만, 최근 필자가 조선시대 검안 서류에 대한 의학적 분석을 하고 있는 고로, 여기서 얻은 감회를 좀 적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법령을 한데 묶은 데이터베이스 확립은 그 학술적 중요성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다만,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행되었겠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되겠다. 조선시대 법령은 집행과정이 문제이다. 규정은 있지만, 이것을 어떻게 집행했는가가 문제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검안 서류를 보면 초검, 복검, 삼검의 순으로 난해한 재판은 이어지는데초검에는 딱 잡아 떼던 이가 복검 때 느닷없이 모두 자복했다고 쓰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잡아다 팬 것이다. 검안 서류에는 물론 잡아다 팼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지만, 정황을 보면 잡아다 자백할 때까지 팬 것이 분명.. 2026. 4. 14.
연합뉴스 새로 찾은 비문 관련 (2) 혹 호태왕비 신묘년 관련 기사? 사실 광개토왕비에서 신라에 관련된 내용을 추려 쓴다면, 신묘년 기사하고 광개토왕의 신라 쪽 남정 기사 외에는 쓸 말이 없다. 이 부분이 신라하고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발견된 비문 내용이 광개토왕비와 서체만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신묘년과 남정기사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저 비문의 남은 조각을 혹여 더 찾을수 있다면, 광개토왕비문의 내용도 좀 더 논란 없이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길래 써 본다. 2026. 4. 13.
연합뉴스 새로 찾은 비문 관련, 월성 출토 소위 고구려식 비석과 광개토왕비 연합뉴스에 새로 찾은 신라 비 관련 기사가 떴기에 생각나는 바를 써 본다. 1. 광개토왕비문과 서체만 같은 것이 아니라, 사건도 관련이 있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듯한데.. 새로 찾은 비에 보이는 공貢과 도渡자는 광개토왕 비문 아래 문구에 각각 나온다. 百殘新羅舊是屬民 [09] 由來註 086朝貢而倭註 087以辛註 088卯註 089年來註 090渡註 091海註 092破百殘東註 093▨註 094新註 095羅以爲臣民2. 그리고 새로 찾은 비의 도짜 아래에 보이는 이 부분. 이 아래 글자-. 이것 필자가 보기엔 해海자인 듯 하다. 왜냐. 광개토왕비의 탁본을 보자. 渡자 아래의 부분을 비교하면 필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발견된 신라비문에 보이는 "도渡" 그리고 그 아래 불명의 글자는, 광개토왕비.. 2026. 4. 13.
조선후기의 이주갑 인상론을 경계하며 앞에서도 한 번 쓴 것 같지만, 우리나라 조선후기 역사는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이주갑 인상되어 기술된 부분이 있다. 이주갑인상론이란 이른바 일본서기의 초기 기록이 원래 시점보다 이주갑 (120년)이 끌어올려져 기록되어 있다는일본고대사의 유명한 통설에서 나온 이야기로, 이주갑 인상된 개별 사건이 시대가 내려오면서 결국 다른 나라 역사와 맞아 들어가는 부분이 나오기 시작하니, 120년의 역사가 도대체 왜 끌어올려졌는지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이와 비슷한 행태가 조선후기사에서도 행해졌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16, 17세기에 벌어졌다고 기록된 여러 사건, 특히 자본주의 맹아론 시장경제론에 대한 이야기들은이 시대의 이야기를 18, 19세기에 얼렁뚱땅 묶어서 조선후기의 변화로 기.. 2026. 4. 12.
당쟁은 철학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당쟁, 소위 붕당은 설명하기 난처한 부분이 있다. 이것이 일제강점기 동안 소위 말하는 한국인의 당파성을 폄훼하는 부분과 연결되다 보니해방이후에는 이 붕당론을 다르게 보는 시각, 특히 당파성 보다는 견제와 균형, 철학논변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 더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과연 성리철학에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개념을 설정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지만, 이를 차치하고라도, 우리나라 조선 후기 붕당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성리철학, 특히 이기론을 기점으로 그 차이를 설명하고이런 철학적 차이가 붕당의 발생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 입장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물론 성리철학에서 주리론과 주기론의 분기점은 북송대 정호-정이 (정명도와 정이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니, 필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주리론.. 2026. 4. 12.
조선시대 성리철학의 회고 필자가 쓰는 글 중에 조선시대 성리철학 논변을 너무 폄하하는것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을수도 있겠다.필자도 이런 입장을 처음부터 견지한 것은 아니었고, 더우기 성리철학 자체가 대단한 철학체계로 완성도와 수준이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높고, 동양철학이 도달한 최고 정점이라는데는 이의가 없다.다만 이런 성리철학을 향유했다는 것과 학술적으로 성리철학을 개발하고 확립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아니겠나. 필자는 조선시대 성리철학 논변 전반을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한번 훑어 내려온 바 있는데, 소위 이기론에 관해서는 조선 벽두의 입학도설부터 시작해서, 조선후기의 이른바 호락논쟁, 인물성 동이논쟁에 이르기까지논쟁의 시말이 전부 송나라 유학자, 그 중에서도 특히 북송대에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난 이야기들을한국땅에서 재연한.. 2026.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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