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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69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7) 중앙언론과 지역언론, 그 좁힐 수 없는 간극 한 분야의 소위 전문기자 급으로 오래 일하다 보면 어느 시점엔 전화 한두 통만으로도 각지의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강 파악하기 마련이다. 소위 길목이라는 게 있어 이쪽만 체크하면 대략 어느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있다. 언론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문화재 현장 소식 중에 발굴 소식만큼 따끈따끈하고 잘 먹히는 기사도 드물다. 그 모든 것은 새롭기 때문이며,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news 아니겠는가? 서울 혹은 이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발굴소식이야 어차피 중앙 몫이라 소위 ‘나와바리(영역)’ 다툼 문제가 그다지 발생하지 않지만, 그 외 지방 발굴 소식은 사정이 좀 달라 여러 모로 언론계 내부에서도 충돌을 일으키고 만다. 이는 같은 회사 내부에서도 늘 부닥치는 문제라, 그것.. 2021. 3. 20.
《공주고60년사》에서 찾은 가루베 지온 이거 찾는다고 삼층짜리 서재를 통째로 뒤졌다. 1999년 혹은 2000년 무렵 공주고 앞 어느 헌책방 갔더니 꽂혔더라. 이 서점에서는 이외에도 해방 직후 학산 이인영이 손보기 한우근 등 제자 다섯명인가를 데리고 만든 국사개론인지 하는 책도 구득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 희귀본을 누가 내다 놨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저 공주고 60년사는 나로서는 좀 독특한 인연이 있다.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란 인물이 있다. 식민지시대에 공주고보 한문 국어교사로 재직하며 공주 일대 고분 천여기를 도굴한 자다. 그에 대한 관심은 공주 지역 역사고고학도들이 주목하던 터였다. 당시 공주박물관장 서오선 공주대 교수 윤용혁 이남석 등이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 그에 더해 최석영이 가루베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즈음 .. 2021. 3. 17.
도판 작업을 해준 두 처자를 기억하며 YS 가라사대 머리는 빌릴 수 있다 했다. 내가 만들지 못하면 맹글라 달라면 댄다. 처자들이 이 오빠 책에 쓸 도판이라며 잇쇼껭메이 작업 중이다. 무령왕릉 각종 수치 보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내가 일찍이 16년전에 지적했다. (2016. 3. 12) *** 해직되자마자 할 일도 없고 해서 책이나 쓰자 해서 이내 만들어낸 것이 2016년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에서 낸《직설 무령왕릉》이었으니 그에 소요할 도판은 여러 사람 도움을 받았으니 특히 저 사진은 그네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라 김해경 선생 건대 연구실이었다. 왼편이 해경, 오른쪽이 불교문화재연구소 김선 선생이다. 저네들한테 진 신세를 저 책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적기했다. 건국대 김해경 선생과 불교문화재연구소 김선 선생은 나로서는 전연 문.. 2021. 3. 12.
[오지랖 편력기] 돌궐 한국문화사 애호가라면 굳이 흉노를 들먹이지 않더래도 북방 유목민족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 사진은 돈유쿡 비문이다. 돌궐제국 시대, 그 정치를 주름잡으면서 당에 대한 군사외교를 총괄한 명재상 무덤에 세운 비문이다. 이 비문을 나로서는 90년대 말인지 2000년대 초에 알게 되었다. 튀르크어학 전공자던가 이용성 박사가 돈유쿡 비문을 포함한 이 돌궐제국시대 대표 금석문 4종에 대한 터키 학자 역주를 완역 출간한 책자를 접하고는 그를 통해 나는 돈유쿡 비문의 존재를 알았다. 이후 나는 이 비문 실물 한번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는 막연한 꿈을 품었다. 이런 꿈이 실로 우연찮게 풀렸거니와, 마침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에서 장기간 몽골 조사를 벌이는 중이었다. 나는 개중 두 번인가 그쪽 초청을 받고는 몽골을 다녀왔.. 2021. 3. 10.
[오지랖 편력기] 켈트 나는 오지랍대마왕이라, 하나에 꽂히면 한동안은 그에 헤매곤 한다. 물론 그 관심이 오래 지속한 일은 드문 편이라, 이런 편력을 하도 자주 하다보니, 오늘 포스팅한 논어 한 구절이 말하는 공자와 흡사해 박학하기는 한데 막상 들여다보면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켈트문화 역시 내가 잠시 편력한 대상이었으니, 가뜩이나 그리스 로마문화 중심으로 유럽 문명사를 설명하는 압도적 흐름에서 그에 대한 반발 혹은 저항으로 관심을 잠시간 쏟은 적 있다. 언제였더라? 작금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곤혹을 당하는 모철민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국립중앙도서관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문화부 차관에 발탁되었거니와 그 임명 통보를 받은 장소가 스웨덴 예테보리였고 그 자리에 내가 같이 있었다. 그 전날인가 다음날인가 나는.. 2021. 3. 10.
문화재로 재발견한 신라 문무왕 수중릉 대왕암 수위 조절하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은 기고문이 나왔다. 올해가 문무왕 수중릉 발굴 오십주년이라 해서 신동아 의뢰로 관련 글을 초해봤다. 동아일보에서 일하다가 이 잡지로 파견나간 권재현 기자가 좋은 자리를 주선했다. 1967년 5월 16일 한국일보는 문무왕 수중릉인 대왕암을 발견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그 직후 다른 신문도 같은 보도를 했지만, 엄밀히 이는 발견이 아니라 '재발견'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써의 재발견인가? 지금의 대왕암이 문무왕 수중능이라는 사실은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에 의하는 한, 고려시대 이래 죽 그랬다. 나는 문화재로서의 재발견이라고 본다. 수중릉은 자연히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다. 그에다가 문화재라는 가치를 주입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은 소위 발견 직후인 1967년 7월 국가.. 2021.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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