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현장2156 아프리칸 무어인, 백제 고구려 왕조보다 긴 시간 스페인의 주인 북아프리카 출신 아프리카 무어인들African Moors 은 서기 711년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고선 1492년까지 물경 781년간이나 지금의 스페인 땅 주인이었다.백제 고구려 왕조 존속 기간 보다 긴 시간이었다.더 놀랍게도 그 시간은 이후 그들이 물러난 시간보다 더 길다!그들이 물러난 자리를 도로 찻은 기독교 문화가 존속한 시간은 고작 오백년 남짓하다.이들은 모로코를 지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로 진격했다.아프리카 무어인들은 스페인에 대학과 모스크를 지었다. 그들은 또한 수학, 의학, 화학, 철학, 천문학, 식물학, 석조 및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알람브라 궁전은 그네들 유산이다. 2024. 6. 3. 폼페이 희생자들은 석고로 재현한 모습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에 희생당한 사람들 아비규환을 증언하는 실물 증거로 흔히 첨부 사진 위쪽 같은 장면이 제출되거니와 저걸 보고서는 많은 이가 인골이 저런 식으로 발견된다 생각하기 십상인데, 여러 번 말했듯이 저건 실은 석고상이며, 그 현장에서도 물론 인골이 출토하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화산재에 거의 다 삭아 없어졌다. 대신 인골은 그 사람이 있던 자리는 화산재 퇴적 더미에 구멍으로 남게 되는데, 바로 이 점을 이용해 사람이 있던 자리에다가 발굴조사자들이 석고를 쏟아부어 버리면 그 빈 속만 꽉 차게 된다. 저 방식이 이미 19세기인가 개발됐다. 간단히 말해 주물 기법을 응용해 석고를 부어서 재현한 것들이 우리가 폼페이 희생자들이라 생각하는 그 모습이다. 첨부 사진 아래는 그 석고 반죽을.. 2024. 6. 2. 대따시 모자이크 바닥 규모가 무엇보다 압도한다. 이 넓은 바닥을 채운 건물이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튀르키예 안타키아 Antakya 라는 데서 발굴조사를 통해 노출됐다는 모자이크 바닥이라 넓이가 836제급미터라 하며 후기 로마 서기 4세기 유산이랜다. 이짝에 하타이 고고학 박물관 Hatay Archaeology Museum 이란 데가 있어 그대로 현장 박물관 아닌가 한다. 2024. 6. 2. 교토 염불사 念仏寺 템플? 1,200 stone sculptures with different facial expressions at the nenbutsu-Ju Buddhist temple in Kyoto이리 설명하는데 교토 주 템플이라면 어디를 말하는가?염불사 念仏寺인 듯하다고 신동훈 선생이 교시함 2024. 6. 2. 왕조 등장 이전 이집트 영양 홍학 장식 항아리 이회암泥灰巖 진흙 marl clay 으로 빚은 이집트 전왕조 시대 장식 항아리 decorated jar 다. 중기 전왕조 시대 Middle Predynastic Period (나카다 2기 시대 Naqada II Period, 대략 기원전 3500-3300년경)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렬로 늘어선 영양과 홍학을 도안했다. 물결 모양 선은 나일강 물을 상징할 수 있고 삼각형 모양 도안은 나일강과 접한 언덕과 산일 것이다. 사진에서는 잘렸지만 양쪽에 곡선형 다노 보트 multi-oared boat 일부가 보인다. 이러한 장식들은 일상생활 장면으로 보이지만, 저와 같은 질그릇이 대부분 무덤에서 출토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특히 배 모티브가 보인다는 점은 고인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실어나르는 도구의 의미.. 2024. 6. 1. 망나니 황제 주원장 무덤의 백년전 모습은? 명明 욍조 망나니 개국 군주 주원장朱元璋과 그의 마누라 마씨를 합장한 효릉孝陵 모습이라는데 지금과는 도대체 매치가 되지 않는다. 황량하기 짝이 없다. 지금? 너무 단장해서 문제다. 수풀도 우거지고. 더구나 세계유산까지 된 마당에. 그땐 저런 석물에다 등도 비비고 불알도 만지고 했는데 가본지 오래다. 2024. 6. 1. 이전 1 ··· 108 109 110 111 112 113 114 ··· 36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