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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2156

죽으면 시체는 없어져야 고대 이집트 파라오 세티 Seti 1세 미라 얼굴이다. 고대 이집트 전체 역사를 통털어 얼굴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분 중 한 분이다. 그가 죽은 시점은 3천298년 전. 그가 통치하던 시절 이집트는 잘 나갔다. 그는 잘난 아들도 두었으니 람세스 2세 Ramses II 다. 그가 죽었을 때 이집트 미라는 그 기술이 절정을 구가했다. 저런 미라 볼 때마다 이집트야 시체로 장사해서 좋겠다만 시체는 썩어 없어져야 마땅하다. 2024. 5. 19.
해저 풍경을 담은 미케네 황금 컵 초기 미케네 왕실 무덤이 1926년 아르골리스 Argolis 의 덴드라 Dendra 에서 스웨덴 탐험가들이 발견했다. 껴묻거리 중에는 생생한 해저 풍경이 담긴 화려한 황금 컵이 있었다. 소장처인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에서는 Gold cup decorated with seascape 라는 제목을 달았다. 명세서는 이렇다. Collection of Prehistoric, Egyptian, Cypriot and Near Eastern Antiquities, inv. no. Π 7341 Provenance: Tholos tomb at Dendra near Midea, pit I. Dimensions: Height: 5 cm, Diam. 17.3 cm. D.. 2024. 5. 19.
인더스문명의 아이콘 Priest-King, 결론은 nothing 이에 대한 마뜩한 번역어가 아직 확실히 정착하지는 않은 듯하거니와, 이웃 일본에서는 신관왕神官王이라 하는 모양이다. 영 일본 색채 짙어 나는 피하고 싶거니와 나는 사제왕 정도가 어떨까 한다. 한국에서는 가운데 대시[-]를 좋아하지는 않으니 그냥 빼고 사제왕이 어떤지 모르겠다. 사실 그 명칭이 무엇이건 저 양반을 Priest-King 이라 하지만, 저런 명칭 자체 부여가 애매모호하기만 해서 Priest 이자 King이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Priest or King인지도 아리까리하기만 하다. 저네들도 확실치 않으니 저런 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게 아니겠는가? 저 Priest-King은저 유명한 모헨조다로 Mohenjo-daro 출토라 white, low fired steatite 이며, 규격은 17.. 2024. 5. 19.
잉카 문명의 황금유물들 잉카 골드 컬렉션 워싱턴 D.C. 소재아메리칸 인디언 국립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을 포함한 다양한 박물관 소장품 모음이다. 구체적인 유물은 다양할 수 있지만 미국 여러 박물관에는 잉카 문명의 놀라운 금속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잉카 금 유물 컬렉션이 있다. 보석, 의례용 물건, 피규어를 포함한 이 유물들은 잉카 문화와 장인 정신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그렇다니 믿어줄 수밖에. 한데 왜 맥없이 무너졌을까? 2024. 5. 19.
녹음 한창이었던 청송 주산지, 왕버들보단 유황오리 지나개나 다 간다는 청송 주왕산 주산지를 나는 2015년 5월 17일에야 처음으로 내 눈으로 봤다.9년이 흐른 지금 다시는 보지 못했으니 또 볼 날이 있다 장담은 하지 못하겠다.돌이켜 보면 저 주산지는 이 즈음 그것이 선물할 녹음이라는 경관보다 그 앞짝 유황오리가 언제나 기억에 남는다.녹음이 녹이라면 유황오리는 노랬다.유황 마시면 불로장생한다 하는데 내가 혹 그렇다면 저 주산지 유황오리 덕분이라 말해둔다.저곳 풍광은 시시각각이라 삼십분 만에 없던 물그림자가 생기기도 했다.수변 왕버들이 빚어내는 경관 역시 가히 일품이었다. 앞에 말한 유황오리는 이 댁이었다. 2024. 5. 18.
목욕탕 패션의 완성은 메두사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Diocletianus 목욕탕 바닥을 장식한 메두사 Medusa 모자이크다. 이 목욕탕은 한꺼번에 3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다. 목용탕이 하나가 아니기에 Baths of Diocletian 라 해서 복수로 쓴다. 로마 황제들은 대체로 그들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고자 목욕탕을 웅장하게 지었다. 이 목욕탕은 완공(서기 298-306)까지 8년이 걸렸지만 이 테트라키 Tetrarchy 창시자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는 완성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시작했고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2024.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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