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815 조선 서학은 순교사관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조선서학사를 순교사관에 따라 해석하니 실체가 제대로 안 보이는 것이다. 조선 서학자들이 어제까지 성리학을 믿다가 오늘 서학서를 읽고 하루 아침에 정통 기독교신자로 홀라당 바뀌었으리라 보는가? 실상은 그와 달랐을 것이다. 조선서학사를 천주교 순교사에서 해방하여 한국철학사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 특히 서학을 유교사의 입장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서학을 순교사관에 묶어두니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종교의 영역에 역사가 머물고, 그 안에 존재했을 다양한 유학과 서학의 대화와 갈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서학은 종교사가 아니다. 천주교의 전유물로 놔둬서도 안된다. 인간사를 종교사의 영역으로 절대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 우리는 그것을 왜곡이라 부른다. 선교사가 전도하지도 않았는데 책을 읽고 감화.. 2023. 7. 23. 조선후기, 서학은 "이단 유학"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의 선비들은 모두 바보였다는 말인가?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그 시대 선비들의 고도의 사유에 공감하는 바 많아진다. 조선 후기의 선비들도 바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조선에서는 일본 고학파 같은 "이단유학"이 나오지 않았을까? 왜 "성리학"을 묵수하는 모습으로 나라가 망할 때까지 간 것일까? 유심히 당시의 사상의 흐름을 보면 눈에 띄는부분이 있다. 바로 "서학"이다. 고도의 성리학 교육을 받은 유학자들이 어느 아침에 홀라당 서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선교사도 없이, 전해진 책만 읽고, 교황은 이 "선교사도 없이 교회가 일어난 것을 듣고" 기적이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조선의 유학자들에 있어 서학이란 "근대성을 갖춘 이단 유학"이었던 셈이다. 성리학의 .. 2023. 7. 23. 조선유학의 전성기는 16세기 말 조선이 건국된 후 발전한 유학의 성장은 눈부신 바가 있다. 조선의 16세기 말, 임란 이전의 유학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 이미 이 당시 중국유학, 중국성리학이 가지고 있던 상당수의 문제의식과 현실참여는 조선에서 구현되었다고 본다. 임란이후의 조선유학은 쇠퇴의 역사다. 예학은 좋게 보면 근대적 논리학의 편린을 볼 수 있고 조선유학의 독특한 부문을 형성한 것이 사실이지만, 유학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성리철학 자체도 16세기 보다 더 깊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런 철학적 논쟁이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사실 16세기 말 조선유학이 발전하여 이룩해야 될 다음 단계는 엉뚱하게도 조선땅이 아니라 일본땅에서 17-18세기에 벌어졌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성리학 극성기의 다음 단계는 내부.. 2023. 7. 23. 정약용의 논어고금주 정약용은 저작의 양이 많기 때문에 필자도 전부 다 읽지는 못했다. 그래서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한계는 인정하고 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다만 그의 "논어고금주"에 대해서는 필자도 할 말은 있다. 논어고금주는 예전에 논어 사서집주 윤독 때 필자는 이를 매장 윤독때마다 정약용의 해당 기술을 대조하며 읽었다. 그래서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에 대해서는 나름 할 말이 있고 또 크게 실상과 다르지 않으리라 자부한다. 나무위키에는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써 있다. 정약용은 유학자 중에서도 주자의 사서집주를 주체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여 보통 실학자로 분류된다. 그러나 성리학을 근본으로 부정한 인물은 아니다. 다산의 저서의 내용 자체가 성리학의 기본적인 전제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참고로 다산이 가장 .. 2023. 7. 23. 늑대도 짖는가? https://youtube.com/shorts/X0kmBzglplU?feature=share 물론이다. 늑대도 짖는다. 그러면 개는 늑대처럼 howling 하는가? https://youtube.com/shorts/SCHhLtNFQq4?feature=share 물론이다. 개도 howling한다. 개와 늑대는 아직도 같은 종이다. 수만 년 전에 분기했는데도 그렇다. 아직도 둘 사이에는 생식능력이 있는 후손이 난다. 늑대는 생각보다 훨씬 "개"다. 2023. 7. 23. 인정하기 힘든 다산에 대한 찬상 김단장께서 쓰신 다산에 대한 글에 대해 덧붙이자면-. 다산에 대한 글은 대부분 찬상 일변도인데 대부분의 이러한 다산에 대한 고평가는 쉽게 인정하기 힘들다. 태반은 다산이 이전의 유학자들과 어떤 부분에서 다른지 정확히 모르면서 다산의 글 내용만 정리하여 쓴 내용이거나 아니면 주변국가의 동시기 동향에도 눈을 질끈 감고 오로지 다산만 보고 쓴 글이 대부분이어서 인정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다산의 근대성인데, 다산의 어떤 부분이 근대적이라는 것인지 참 동의하기 힘들다. 다산경학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다산의 논어고금주 하나만 읽어봤다만, 이전에 조선땅에서는 보기 힘든 주를 폭넓게 인용해 책을 지은것 하나는 높게 평가하겠다만, 다산경학은 어디까지나 성리학, 그것도 정통성리학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 2023. 7. 23. 이전 1 ··· 192 193 194 195 196 197 198 ··· 30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