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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287

구동조瞿同祖 《중국법률과중국사회中國法律與中國社會》제가齊家와 치국治國 구동조(瞿同祖), 중국법률과중국사회[中國法律與中國社會] 번역 : 이태희 제1장 2절 부권27 법률은 가장과 족장에게 가족의 주재권을 승인하고 법률상 일종의 권력을 부여하는 한편 해당 집단 내 구성원들이 법적 책임과 국가적 책무를 다하게끔 하는 역할을 기대했다. 그리고 그 역할은 국가에 대한 의무이기도 했다. 기원전 2세기 중국법률은 가장에게 책임을 요구했다. 당시 점조율占租律은 가장을 대상으로 했고 점조가 부실하면 죄를 물었다. 예로부터 호구戶口의 탈루는 가장의 책임이었다. 당・송률에서 호적에 누락된 자가 있으면 가장은 도3년에 처하고 누락된 자가 과역 대상이 아닌 경우에는 2등을 감했다. 명・청률에서는 한 호 전체가 호적에 등재되지 않은 경우, 부역대상자가 있는 가정의 가장은 장100대, 부역 대상자가.. 2020. 2. 17.
구동조瞿同祖 《중국법률과중국사회中國法律與中國社會》 국법과 가법 구동조瞿同祖, 중국법률과중국사회[中國法律與中國社會] 번역 : 이태희 제1장 2절 부권26 법률은 결코 족장의 생사여탈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위의 유빈(劉賓)은 병 때문에 처벌을 피할 수 있었지만, 아래의 서첨영은 천살율(擅殺律: 사람을 함부로 죽인 것에 해당하는 조목)로 판결났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들이 지녔던 전통적 권위이다. 족인은 그의 명령에 복종했다. 집행시에도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는 것을 인정하고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이런 일이 벽지에서는 얼마나 일어났을지조차 알 수 없다. 아마 기록이 있다면 그 수는 어마어마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과 족장이 가족 질서 및 가족내 사법 처리에서 지녔던 중요 지위와 국법과 가법과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사회와 법률은 모두 가장과 족장의 이런 권리.. 2020. 2. 17.
구동조瞿同祖 《중국법률과중국사회中國法律與中國社會》 조카와 간통한 족인을 죽인 족장 구동조瞿同祖, 중국법률과중국사회[中國法律與中國社會] 번역 : 이태희 제1장 2절 부권25 심지어 어떤 경우에 족장은 과오를 저지른 족인을 죽음에 처하기도 하였다. "유채문(劉彩文)은 족장 유빈(劉賓)에게 벌은(罰銀)을 내고 일족에게 사과하라는 처분을 받았다. 유빈은 유채문을 유공윤(劉公允)에게 넘기고 진씨더러 붙잡아두게 하였다. 유채문은 집으로 돌아와 진씨의 텃밭을 팔아 술을 마련하려 하였다. 진씨(陳氏, 유채문의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자 유채문은 분에 못이겨 소리소리 지르며 진씨를 밀쳐 넘어뜨렸다. 다음날 유빈, 유장(劉章), 유대취(劉大嘴, 유장의 아들), 유공윤 등이 진씨의 집으로 찾아와 벌은을 독촉하자 진씨는 어제의 일을 이야기하며 관으로 보내 처벌받게 도와달라 하였다. 그러나 유빈은 “도적질하고.. 2020. 2. 17.
《사기史記》 vs. 《한서漢書》, 그 우위론에 대한 비판 비교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를 견주는 이가 제법이다. 국내 시중에는 일본의 어느 저명한 중국사학사가의 이런 책이 번역돼 있기도 하다. 이 책을 보면 《한서》가 《사기》에 견주어 적어도 당대 이전에는 인기가 있었다 하면서 그 증거로 역대 주석서로 《한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든다. 이 논리 언뜻 보면 그럴듯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으므로 자연 주석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니 주석이 많은 까닭은 실은 원전이 개떡 같은 데서 유래하는 일이 많다. 실제 《사기》와 《한서》의 문장을 비교하면 후자가 지랄이다. 전자는 웬만한 학식만 갖추면 술술 읽힌다. 요는 《사기》에 비해 《한서》가 압도적으로 주석이 많은 까닭은 원전의 결함성에서 기인하지 독자의 숫자에서 기인하.. 2020. 2. 17.
보지 않고 쓴 정창원 가보지도 아니한 현장을 가서 본 듯 글을 쓴다는 건 사기며 고역이라 저번 정창원전은 내가 갈 수도 없었거니와 그럼에도 거절하는 날더러 굳이 쓰야 한다는데 그 발행인 부탁을 차마 세 번은 거절할 수 없어 손을 대기는 했지만 불만이 나 스스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글 쓰는 데 참고하라며 관련 도록을 보내왔는데, 사진 저작권 문제가 있어 내가 옛날에 현장에서 찍어둔 사진들을 꺼내어 재활용하고 현장 댕겨온 어떤 사람한테서 두어장 사진 빌려 그걸로 가늠했으니 정창원전 출품작이라 해 봐야 이젠 다람쥐 쳇바퀴 수준이라 그게 그거라 같은 유물이 뱅글뱅글 돌림질할 뿐이다. 더는 새로움이 없다. 더러 초출진初出陳이니 해서 새로운 유물이 선보이기도 하나 경천동지할 것들은 없다. 할 수 없이 집필을 하기로 했지만 가본 현장이.. 2020. 2. 15.
탁상공론 박제가 수레론 1795년(정조 19), 조선 임금 정조가 지금의 수원 화성에 행차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정리한 華城行幸圖화성행행도 팔폭 병풍 중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이다. 구체로는 현륭원을 참배한 정조가 서울 한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담은 장면이라, 한강을 건너는 모습을 형상화했으니 보다시피 이때 한강에는 변변찮은 다리 하나 없어 각종 목선이라는 목선은 다 동원해 그것을 고기 꾸러미처럼 엮어 다리를 맹글었으니, 한강에 왜 다리가 없었는가? 다리 만들 기술이 없어서였다. 만들면 뭐하는가? 홍수 한번 지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니, 만들 수도 없었고, 만들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이런 다리를 배를 엮어 만들었다 해서 주교舟橋라 했지만, 나는 저런 표현을 거의 본 적 없고 대신 .. 2020.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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