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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404

“역신을 베자 황사가 그쳤다” 미세먼지로 골머리를 앓지만, 역사를 통괄하면 이런 일이 비일하고 비재했다. 연례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런 점에서 과연 요즘 미세먼지 원인이라 지목하는 것들이 타당성을 지녔는지 아닌지는 심각한 성찰을 요한다. 주로 산업화 차원에서 접근하는 듯하니, 이런 진단에 따라 차량 매연이 주범이라 해서 자동차 부제를 실시하기도 한다. 글쎄, 그럴까? 자동차가 없던 그 시절 토우(土雨), 다시 말해 흙비가 내리는 현상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각중에 궁금하다. 2002.03.22 16:36:43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초 김종서 등이 편찬한 「고려사」 제131권에는 조일신(趙日新)이라는 인물의 전기가 실려 있다. ‘반역’이란 딱지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사 편찬자들에게 결코 좋은 인상을 .. 2018. 3. 29.
김춘추의 여인들(2) 그의 세 딸 김춘추는 진덕왕을 이어 655년 즉위하고는 그 이듬해를 기해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주는 인사 조치를 취한다. 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2년(655) 조를 보면 이해 봄 3월에 자식들을 분봉하니, 맏아들 법민(法敏)은 다음 보위를 점지한 태자로 삼는 한편 나머지 여러 아들 중 문왕(文王)은 이찬, 노차(老且)는 해찬(海飡), 인태(仁泰)는 각찬角飡, 그리고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은 각각 이찬으로 삼았다. 둘째아들 인문(仁問)이 빠진 까닭은 아마도 당에 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각각 누구 소생인가? 삼국유사 기이(紀異) 2가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이라는 제하로 수록한 이야기를 보면 "태자 법민(法敏)·각간(角干) 인문(仁問)·각간 문왕(文王)·각간 노차(老且)·.. 2018. 3. 25.
김춘추의 여인들(1) 김유신이 기획한 막장드라마 김춘추(金春秋)는 신라 제29대 임금으로, 진평왕 25년(603)에 태어나, 진덕여왕이 재위 8년 만인 654년 봄 3월에 돌아가자 신하들 추대로 왕위에 올라, 8년을 다스리다가 661년 음력 6월에 돌아가니, 향년 59세였다. 4년 만에 폐위된 진지왕 손자이면서, 아버지는 생부(生父)가 이찬(伊飡) 용수(龍樹)이며, 양부(養父)가 이찬 용춘(龍春)이라, 어머니는 진평왕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다. 천명은 진평과 마야부인(摩耶夫人) 소생이라, 선덕은 그의 동부동모(同父同母) 동생이다. 그의 비는 문명(文明)이라 하거니와, 실제 태종무열왕으로서의 정비(正妃)는 시종일관해서 오직 문명이 있을 뿐이다. 문명이 누구인가? 아버지는 각찬(角飡) 혹은 각간(角干)을 역임한 김서현(金舒玄)이며, 어머니는 진평왕 어.. 2018. 3. 25.
김흠돌을 논한다(1) 초고속 승진 《화랑세기》가 정리한 화랑 제도 흐름을 보면, 진흥왕 즉위 원년(540)에 풍월주(風月主) 임명으로 시작한 화랑은 이후 극성을 구가하다 진흥왕 말년~진지왕 시대에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어, 그 시초가 된 원화(原花)가 부활한 일도 있고, 나아가 그 무렵 그 기풍에도 중대한 변화가 있어, 붕당이 등장했으니 특히 문노(文弩)가 이끄는 일파는 기존 도교 교리 중심을 내세우며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고 산수간을 노닐며 심신을 수양한 교단 성격에 일대 변혁을 불러와, 군사 기풍을 진작하기도 했다. 이때부터가 실은 신라 화랑 혹은 그가 이끄는 소위 화랑도에 대한 우리의 고전적인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많다. 다시 말해 '신라 화랑=가미가제 특공대'라는 측면이 부각하는 시점이다. 군사집단화한 화랑 무리 성격은 김유.. 2018. 3. 24.
度蘿摩 vs. 史, 견훤의 죽음 기억에만 의존하니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혜랑하고 들어주기 바란다. 《태조 왕건》이란 사극에서 최수종이 왕건, 김영철이 궁예, 서인석이 견훤으로 분했다. 아들 신검한테 쫓겨나 금산사에 유폐된 견훤은 결국 필생의 라이벌 왕건에게 기탁한다. 견훤은 자신이 키운 후백제 철기군(?)이 마지막 전투에서 허무하게 왕건 군대에 패몰(敗沒)하는 장면을 보고는 울화통이 터져 죽는 것으로 도라마가 설정했다고 기억한다. 한데 실제의 史, 예컨대 《삼국사기》 견훤 열전이나 《고려사》 왕건 세가를 보면 견훤은 다른 원인으로 울화통이 터져 죽었다. 그에 이르기를 왕건이 최후 전투에서 후백제왕 신검을 사로잡아 그 처벌을 논할 적에 견훤은 자신을 내쫓고 왕이 된 아들 신검을 죽이라고 강력히 요청했지만 왕건이 그를 살려주자 그에 분통.. 2018. 3. 19.
"우리 아버지 시 좀 넣어주라" 문집 로비 미암 유희춘 미암선생 일기와 미암집 목판,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탈 《동문선(東文選)》이며 《속동문선(續東文選)》처럼 국가 주도, 혹은 심지어 개인이 편찬을 주도한 시문집은 로비의 산물이다. 말할 것도 없이 어떻게든 자기 조상 시를 많이 집어 넣으려 한다. 《속동문선》 증보판이 준비될 무렵, 미암 유희춘이 한 일이 이렇다. 그의 방대한 《미암일기(眉巖日記)》 제16권 선조 2년(1569) 윤6월 3일자에 보이는 내용이다. 박 직장(朴直長˙ 박개)이 찾아왔는데, 나는 선친이 지은 〈항우소시(項羽小詩)〉를 베껴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장군이 칼 들고 강동에서 일어나 / 將軍提劍起江東천하를 싸잡아 손아귀에 넣었네 / 囊括乾坤掌握中영포를 강중 밀사로 삼지 않았다면 / 不將英布江中使어찌 팔년 보람.. 2018.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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