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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1767

하염없는 부러움 원님 따라 나발도 부는 법. 하지만 가끔은 내가 원님이 되어 나발을 앞세웠음 하는 때가 없지는 않다. 오늘 우리 공장 출판 혹은 문학 혹은 학술 담당하는 친구들 밥상을 흘끗흘끗 살피니 다음주에 소개해 줬음 해서 출판사에서 배달한 신간이 두툼한 무더기를 이루거니와, 개중 보니 움베르토 에코가 있다. 얼마전 타계한 이 친구는 소위 전공 분류가 쉽지 않아, 소설가이기도 하다가 역사학자이기도 하고, 문화평론가인 듯도 하니, 아무튼 천태만상이라, 그러면서 그들에서 각기 일가를 이루었으니, 그래서 나는 편의상 잡탕주의, 잡식주의 문필가라 해둔다. 국내에서는 에코 열풍이라 할 만한 현상이 있고, 그에 편승해 그의 주저라 할 만한 것은 얼추 다 번역된 줄 알았더니, 그렇지는 아니한 듯, 이 신간이 혹 번역 재판 혹은 .. 2018. 10. 19.
김지수 헤롱헤롱 vs 나영석 사건 어제 문화부 연예가 화제는 배우 김지수 술 쳐묵고 횡설수설 기자회견이었다. 이 사건 우리 기자는 현장을 놓쳤다. 몰라서가 아니요 워낙 일정이 많은 까닭에 거기 투입할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김지수가 저런 짓을 일삼았단 소식이 들어왔다. 어찌 보면 해프닝인데 고민하다 첨엔 안쓰기로 했다. 한데 사정이 변했으니 그 소속사에서 부랴부랴 그 사태에 대한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그래서 나중엔 결국 처리했다. 오늘 연예곈 이른바 악성루머로 난리였다. 나영석 피디와 배우 정유미가 어떻다나 하는 찌라시가 난리였으니 실검 수위를 다투었다. 쓰나마나 또 고민했다. 그러다 어제 일을 참고 삼아 혹 소속사서 입장을 내놓으면 쓰자 했는데 이내 양쪽에서 가짜 뉴스 엄중 대응이란 격앙어린 반응이 나와서 이걸로 썼다. 한데.. 2018. 10. 18.
가을은 어우동이다 화단은 꽃이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정감이 가지 아니한다. 너가 예쁜 줄 모르지 아니하되 찍어 바른 분 같고 끼워넣은 플라스틱 가슴만 같고, 보톡스 맞은 얼굴만 같아 볼 때뿐이로다. 그래서 미안하다. 그보단 차라리 담장 부여잡고 오른 담쟁이가 역광에 빚어내는 같은 붉음이 드글드글 내 속만 같아 괜시리 눈길이 더 간다. 가을은 어우동이다. 2018. 10. 17.
이모저모한 가을 꼭 들녘으로 나가야겠는가? 공장 주변을 돌아보니 오뉴월 소불알처럼 늘어지고 자줏빛 두툼한 목도리 둘렀는가 하면 수류탄 영글어 곧 터질 듯만 하며 조는 영글어 금방이라도 밥상에 오를 자세며 물건는듯 이 대빵 완두콩인지 뭔지는 소여물로 구유통 향하려 하고 희끗한 하늘 보기 부끄러워 목디스크 환자 마냥 고갤 수그리는데 언뜻 보니 아키시안 듯한데 자세히 보니 종자 다른 듯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벌개벗고 어셔옵셔 외치는 일밖에 없더라. 내 인생 삐끼도 아니요 기도도 아닐진댄 그댄 왜 벗었고 왜 몸뚱인 람보요 함에도 고추는 왜놈의 그것 같은고? 오늘 광화문은 이러구로 가을에 익어간다. 2018. 10. 17.
고래심줄 김정배 살다보면 절친한 사이가 멀어지기도 한다. 지금은 역사평론가, 혹은 강단사학에 맞서는 재야사학 선두로 이름을 날리는 이덕일씨와 나는 초창기에 죽이 아주 잘 맞아 그가 저리된 데는 나도 조금은 일조했다고 본다. 이랬던 사이는 십여년전쯤 그가 기획한 중국 현지 한국고대사 탐방을 계기로 갈라섰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이덕일과 원수로 지낸다는 뜻은 아니다. 연락을 끊은 채 사니, 나는 이런 식으로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이런 무덤덤한 관계가 나중엔 이런저런 관계로 어떤 식으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있다는 사실을 적기해 둔다. 반면 만남부터 줄곧 악연인 사람이 있다. 고대사학도 김정배 씨가 그렇다. 내가 김정배라는 사람을 직면 대면하기 시작하기는 이른바 중국에 의한 정부차원 역사공작이라는.. 2018. 10. 16.
국화 만발한 조계사의 밤 간절하진 않으나 이래저래 요샌 타력他力에 기댈 일이 좀 있어 퇴근길에 부러 조계사를 관통했다. 보니 매년 이맘쯤이면 으레 하는 국화 축제가 올해도 어김이 없다. 처음 이 축제를 시작할 적만 해도 좀 서투르지 아니한가 하는 느낌 짙었으나 해를 거듭하니 이젠 그런대로 세련미를 더해 제법 소위 스토리를 구축하기도 한다. 낮엔 부끄러움과 회한, 그에 따른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적지 않아 남들 볼까 두렵기도 하지만, 밤은 역시나 이 때묻은 육신 안심스레 숨겨준다. 수오지심은 義의 출발이라 했지만, 그와는 전연 거리가 멀어, 밤으로, 밤으로만 나는 달린다. 무엇을 구도하며, 그를 위해 무엇을 떨쳐내야 했을까? 저 역시 갈구 아닌가? 집착 아닌가? 하는 생각도 퍼뜩 들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다. 싯타르타한테 묻고 싶었다... 2018.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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