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족보 이야기331 18세기 조선의 노비는 어떻게 해서 21세기 한국의 중산층이 되는가 필자가 보기엔 이 주제가 소위 자본주의 맹아론보다도 훨씬 중요하고 무거운 주제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18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전국민의 절반에 육박하던 노비가 21세기에는 최첨단 문명으로 무장한 한국의 중산층으로 탈바꿈하는가 말이다. 농사라는 건 모르고 살던 조몬인이 벼농사로 먹고사는 야요이인으로 바뀌는 건 인종의 교체라는 과정이라도 있었지조선의 노비가 300년만에 한국의 중산층으로 바뀌는 건 사람도 그대로다. 2025. 11. 7. 하재일기의 주인공이 20세기 기적의 조상 조선 말기 분원공소分院貢所 공인貢人인 지규식池圭植, 곧 하재일기荷齋日記의 작자이자 주인공은 유심히 읽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먼저 확실한 생업이 있다. 놀고 먹는 양반들 하고는 다르다. 구워낸 도자기를 왕궁에 바치고 남는 여분은 시장에도 팔았던 것 같다. 요즘으로 치자면 정부 납품을 하는 도매업자였던 셈이다. 그런데 장사만 한 것이 아니고, 배움에 대한 욕구도 커서 한시도 짓고 과거도 틈만 나면 본다. 물론 그럴 때마다 떨어지지만. 이 사람은 아마 호적을 떼보면 확실히 "유학"으로여덟분 조상들이 전부 "학생"으로 되어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본인의 조상은 조선전기에 영달한 조상이 하나 있었다고 하는 정도의 한미한 집으로 본인은 양반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분.. 2025. 11. 7. 서원 철폐, 대원군의 절묘한 복수극 대원군은 서원철폐 때 뭐라고 하냐 하면공부할 생각도 없는 놈들이 서원에 모여서 군역이나 빼먹고 백성들 착취나 하는 놈들이니 서원 싹 없어버리라는 투의 이야기를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사실은 이 주장은 임란 이후 향교에서 서얼-중인-먹고 살 만한 양인들과 함께 등록하여 공부하던 양반들이 향교 교생 때려 치우고 서원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따로 글공부한다고 하면서 청금록까지 만들어 관리하던바로 그 논리였기 때문이다. 당시 양반들이 향교에 등록하여 있던 신분이 낮은 이들을 뭐라고 했냐 하면공부 할 생각도 없는 놈들이 향교에 등록해서 군역이나 빼먹고놀고 먹는 놈들이라 하여 조선시대 기록에 자주 나오는 소위 놀고먹는 이들이란, 바로 이들 향교에 등록해 있던 신분 낮은 교생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면 자기들은.. 2025. 11. 6. 맘 잡고 딱 50년 만 공부 하면 따라 잡는 조선성리학 흔히 일본 전국시대 소설도쿠가와 이에야스 (대망으로 번역됨) 보면읽고 난 분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도대체가 사람 이름이 헷갈려서 볼 수가 없다는 것인데사실 일본 전국시대 무장 이름 보면 유력자나 친족의 이름에서 이름자 하나를 따서 쓰는 편휘가 난무한데다가, 이름으로 쓰는 글자가 몇 가지 안 되어 비슷한 이름이 양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름으로 쓰는 한자가 몇 자 안 되었는고 하면다른 거 따질 필요 없고, 전국시대 무장들이 무식해서 그렇다는 게 정답이다. 밥만 먹으면 싸움질 하기 바쁘니당시 일본에도 물론 승려나 공경들 중에는 식견이 높은 이들이 있었지만 칼들고 일본을 지배한 전국시대 무장. 우슨 시간이 있어 글을 배우겠는가. 밥먹고 일어나면 칼부림에 날을 샜으니 당연히 이름자 쓸 수 있는 한자.. 2025. 11. 6. 향교 교생들은 정말 무식했을까 임란 이후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향교 교생이라는 놈들은 말이 좋아 유생이지 글도 못 읽는 놈들이 군역이나 빠지려고 향교에 이름 넣어 놓은 놈들이 대부분이라 이런 놈들은 전부 색출해서 병역을 지워야 한다, 이것이 소위 양반들의 논리 중 하나였다. 이런 논리는 19세기 소위 모칭 유학들에 대한 비난에도 어김없이 나와서,양반들은 지식 독점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만한 사람들에 대해서는예외없이 이런 식의 딱지를 붙이고 공개적으로 공격했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양반들은 모두 글공부 제대로 한 사람들이고, 반쪽짜리 양반들은 전부 군역이나 빠지려고 향교에 이름 걸어 놓고 놀고 먹는 놈들이었을까. 이런 이야기는 조선시대 문헌 기록에 하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한국 역사학에서는 아무 의심없이 이 주장을 받아.. 2025. 11. 6. 조선시대 - 청백리는 없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청백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청백리가 되어서는 사대부로서 대를 이을 수가 없다는 말이 옳겠다. 조선시대는 어느 정도 재산이 없다면, 토지와 노비가 없다면 사대부로서 대를 이어 존속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었다. 노비 수백 명을 거느린 양반은 퇴계나 몇몇 양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집안에 수백 명 노비를 거느리지 않은 집안은대를 따라 내려가면 거의 잔반화해 버리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내가 청백리를 하는 건 좋은데 우리 아들 손자대로 가면 양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청백리 운운은 전부 거짓말이다. 가난한 청백리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집안은 몇 대 못가 망하고 양반에서 탈락한다. 양반으로 수백 년을 이어.. 2025. 11. 4.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5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