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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233

맘 잡고 딱 50년 만 공부 하면 따라 잡는 조선성리학 흔히 일본 전국시대 소설도쿠가와 이에야스 (대망으로 번역됨) 보면읽고 난 분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도대체가 사람 이름이 헷갈려서 볼 수가 없다는 것인데사실 일본 전국시대 무장 이름 보면 유력자나 친족의 이름에서 이름자 하나를 따서 쓰는 편휘가 난무한데다가, 이름으로 쓰는 글자가 몇 가지 안 되어 비슷한 이름이 양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름으로 쓰는 한자가 몇 자 안 되었는고 하면다른 거 따질 필요 없고, 전국시대 무장들이 무식해서 그렇다는 게 정답이다. 밥만 먹으면 싸움질 하기 바쁘니당시 일본에도 물론 승려나 공경들 중에는 식견이 높은 이들이 있었지만 칼들고 일본을 지배한 전국시대 무장. 우슨 시간이 있어 글을 배우겠는가. 밥먹고 일어나면 칼부림에 날을 샜으니 당연히 이름자 쓸 수 있는 한자.. 2025. 11. 6.
향교 교생들은 정말 무식했을까 임란 이후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향교 교생이라는 놈들은 말이 좋아 유생이지 글도 못 읽는 놈들이 군역이나 빠지려고 향교에 이름 넣어 놓은 놈들이 대부분이라 이런 놈들은 전부 색출해서 병역을 지워야 한다, 이것이 소위 양반들의 논리 중 하나였다. 이런 논리는 19세기 소위 모칭 유학들에 대한 비난에도 어김없이 나와서,양반들은 지식 독점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만한 사람들에 대해서는예외없이 이런 식의 딱지를 붙이고 공개적으로 공격했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양반들은 모두 글공부 제대로 한 사람들이고, 반쪽짜리 양반들은 전부 군역이나 빠지려고 향교에 이름 걸어 놓고 놀고 먹는 놈들이었을까. 이런 이야기는 조선시대 문헌 기록에 하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한국 역사학에서는 아무 의심없이 이 주장을 받아.. 2025. 11. 6.
조선시대 - 청백리는 없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청백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청백리가 되어서는 사대부로서 대를 이을 수가 없다는 말이 옳겠다. 조선시대는 어느 정도 재산이 없다면, 토지와 노비가 없다면 사대부로서 대를 이어 존속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었다. 노비 수백 명을 거느린 양반은 퇴계나 몇몇 양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집안에 수백 명 노비를 거느리지 않은 집안은대를 따라 내려가면 거의 잔반화해 버리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내가 청백리를 하는 건 좋은데 우리 아들 손자대로 가면 양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청백리 운운은 전부 거짓말이다. 가난한 청백리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집안은 몇 대 못가 망하고 양반에서 탈락한다. 양반으로 수백 년을 이어.. 2025. 11. 4.
몰락 양반의 마지막 보루: 향촌의 문중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19세기 초반에 이르면부상하는 소위 모칭冒稱 유학-. 이전에는 자유민과 노비였지만 어찌어찌해서 유학으로 부상하여양반 행세를 시작한 이들과 그 한편에는 또 누가 있는고 하면이전에 양반 끄트머리쯤 있다가 장자상속이 강화하면서 받은 거 하나 없이 자립해야 하는 지손들-. 그리고 조선 후기까지도 강고하게 남은 서얼금고 때문에아무 것도 할 게 없는 이들-. 이들이 말이 양반이지 쪽박차기 일보 직전인 사람들이 동네마다 가득했다. 이렇게 쪽박차기 일보직전이면 이들의 신분이바로 평민으로 격하되었는가 하면 그것이 아니다. 이들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도 유학이라는 호칭을 호적에 유지하면서하루종일 손바닥 만한 땅을 부치거나 아니면 아예 농업노동자로 이리저리 남의 집 땅을 갈아주면서마지막까지 양반 유학.. 2025. 10. 30.
전통 유교사회의 환상: 양천제良賤制 전통유교사회는 환상이 있다. 양천제다. 왕이 있고 그 아래는 양인, 또 그 아래는 천민이 있어 이 세 그룹의 계급제 아래에 천민과 가장 위의 왕을 제외하면 나머지 중간 그룹이 양인을 형성하여 생산과 정치에 종사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유교 경전을 읽어보면 공자 이래 유교사회 기본 틀은 양천제다. 귀족의 존재를 놓고 당연하게 보는 시각은 없다. 사대부라는 것도 양인에서 파생하여 능력있는 자들이 취재를 통해 관직에 올라 사대부가 되는 것이지 이 자리를 대대로 물려받으며 계급으로 존재하라고 한 유교 경전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지 과연 20세기 이전 양천제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했을까. 예를 들어 향촌이 완전히 분해되어 노비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양인이어야 양천제라는 것이 .. 2025. 10. 28.
별의 별 정보가 다 남아 있는 과거의 족보 이전에도 썼지만 만약 우리나라에 조선시대 호적이 그대로 지금 남아 있다고 한다면족보 태반은 폐기되어야 할 것이라 했다. 우리나라 17-18세기 호적을 보면지금 통용되는 족보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 인구의 50-60퍼센트는 노비라는 것을 호적에서 확인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호적의 태반은 다 사라져서 우리나라 사람들 태반은 그런 염려가 없어졌다. 우리나라에 지금 조선시대 호적이 남아있는 동네는 몇 안 된다. 그건 그렇고. 호적은 호적이라고 쳐도 족보만 19, 18, 17세기 족보를 따라 올라가도 상당히 족보가 많이 변개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 이후 우리나라 족보에서 서자의 표기는 더 이상 사라졌지만 19세기 족보만 봐도 서자는 서자라고 그대로 써 놓은 족보들.. 2025.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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