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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묘]란 무엇인가? 다른 무덤과는 어디에서 만나 어떻게 갈라지는가? 墓란 무엇인가? 그 유사상품으로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어 그 차이를 예리하게 지적한 이가 이미 2천년 전에 있었다. cf. 墳[분]·冢[塚, 총]·壟[롱]·丘[邱, 구]·培[배]·堬[유]·采[채]·埌[랑]·塿[랑랑]·墲[모] 양웅揚雄의 방언方言이 말하는 ‘冢[총]’(괄호안 푸른색은 곽박주郭璞注)에 대한 해설은 아래와 같다. 秦晉之間謂之墳(取名於大防也), 或謂之培(音部), 或謂之堬(音臾), 或謂之采(古者卿大夫有采地, 死葬之, 因名也), 或謂之埌(波浪), 或謂之壟(有界埒似耕壟, 因名之), 自關而東謂之丘, 小者謂之塿(培塿, 亦堆高之貌.洛口反), 大者謂之丘(又呼冢爲墳也), 凡葬而無墳謂之墓(言不封也. 墓猶慕也), 所以墓謂之墲(墲謂規度墓地也. 漢書曰:初陵之모, 是也.) 이로써 보면 墓가 무덤이기는 하되,.. 2024. 6. 16.
콩농사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을 것 필자가 이런 억측에 가까운 이야기를 과감하게 하는 이유는 뭐 콩농사가 한국에서 세계최초로 시작된 자랑스러운 역사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콩농사가 한국과 만주일대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 때문이다. 콩농사는 단백질원이고 중요한 잡곡이긴 한데 옛날이라고 콩을 깡콩밥을 지어 퍼먹었을 리가 없다. 그건 조, 기장, 수수 등과는 달리 콩은 절대로 주곡식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깡 조밥, 깡기장밥은 먹어도 깡콩밥은 절대로 못 먹는다. 깡콩밥을 찌건 삶건 해 먹어 보면 알 일이겠다.  그러면 콩농사는 왜 짓는가? 조, 기장, 수수 등과 함께 지어 영양학적으로도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보완적 의미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필자가 보기엔, 콩농사가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콩농사는 .. 2024. 6. 16.
텔 아스와드 Tell Aswad, 질그릇 발명 이전 신석기시대 초기 농업 공동체 마을 텔 아스와드 Tell Aswad 는 기원전 8천500년~7천500년 무렵 질그릇 발명 이전 근동 초기 신석기 시대 참고 유적으로 간주된다. 텔 아스왈드란 "검은 언덕 Hill Black"이라는 뜻으로 수욱수 Su-uk-su 혹은 슉사 Shuksa 라 일컫기도 한다. 면적은 대략 5헥타르 정도인 이 초기 농촌 마을은 위협을 받고 있는 시리아 고고학 유산의 중요한 부분이다.이곳은 시리아 다마스쿠스(33°24'14” N; 36°33'00” E)에서 동쪽으로 30km, 600마스에 위치하며 2001년에서 2007년 사이에 D. Stordeur 박사(프랑스 명예 CNRS, 명예)가 발굴했다.   질그릇 등장 이전 신석기 B시대 Pre-Pottery Neolithic B에 인간이 점령한 텔 아스와드는 근동 지역 초.. 2024. 6. 16.
신석기시대라고, 청동기시대라고 단군 자손들을 거지로 만든 고고학 저 도판은 출처가 현대환이다. [松菊里遺蹟 54地區 住居址에 關한 檢討] 이른바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확인했다는 집터 평면 형태를 분류한 것인데, 이런 것들이 도대체 상부 구조가 어떤 모습이었을까는 얼마나 학술적 판단에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나 모조리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뭐 평면이 방형이건 원형이건 관계없이 이런 청동기시대 집터도 그렇고 시대를 좀 올라가 암사동 신석기시대 집터 양상도 본다. 이런 거지 같은 집으로 복원해 놨다. 실은 이게 이 유적을 발굴했다는 고고학도들이 그린 것이다. 내부는? 저런 데서 어찌 생활한단 말인가? 신석기시대는 저리 생활해도 되나? 그래? 저 딴 거지 같은 그림은 저런 데서는 단 한 번도 생활체험을 해보지 않는 자들이나 그려낼 수 있는 모습이다. 맨바닥에서 짚 깔고 혹은 .. 2024. 6. 16.
[독설고고학] 官에서의 독립은 지상명령이다 내가 오래 지켜본 바로는 가장 관 주도적인 학문으로 고고학 만한 데가 없으니 문화재 분파학 중에서 유독 고고학이 징징거리는 이유가 딴 게 없다. 관에서 뜯어먹을 게 많아서 뜯어먹겠다는 발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유독 고고학만 이거 내놔라 저거 달라 징징거리지 않겠는가? 저 친구들은 관과 붙어먹지 않은 내일 곧 그 학문이 망하는 줄로 안다. 그 관과는 각종 위원이니 프로젝트니 해서 얼키설키한데 여기다 지역토호성까지 결합해서 지역으로 내려가면 아예 지자체에 빌붙어 무슨 위원 감투 하나 쓰지 않은 친구가 없다시피 하다. 저 관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서는 고고학은 이 땅에서 영영 학문으로 정립할 수 없다. 관과 얽힌 학문, 그게 어용이지 어용이 아니라 강변하겠는가? 발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야 솔까.. 2024. 6. 16.
거지 같은 단군의 자손, 휘황찬란한 아시리아 문명 물론 상상도이기는 하지만, 기원전 800년 무렵 아시리아Assyria 수도 니네베Nineveh 라는 데가 한창 번성할 무렵 모습이라 저 모습이 꼭 실상이었다 할 순 없겠지만 고고학이 폭로한 니네베 아시리아 수도 위상은 저 상상도 못지 않게 휘황찬란하다. 저때 이땅 한반도 단군의 자손들은 돌맹이 갈며 송국리형 주거지라 해서 거지도 살지 못할 움집생활을 하고 계셨다. 어케? 거지도 살지 못할 움집이시다. 저걸 홀라당 태워먹거나 치워버리면 다음과 같은 바닥이 드러난다. 2002년 영남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한 淸道 陳羅里遺蹟 發掘調査 청도 진라리유적 청동기시대 송국리형 집자리랜다. 이러니 신경질이 안 나겠는가? 짜증만 밀려든다. 넘들은 저런 휘황찬란한 궁전 지어 탱자탱자 부어라마셔라 질펀하게 놀 때 이땅에선 거지들.. 2024.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