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943 조선후기..향촌 중인을 주목하라 우리나라 조선시대 건국 시점, 소위 여말선초 사족들은 그 조상들을 따라 올라가면고려시대 호장 집안이 많다. 물론 고려시대 호장은 조선시대와 달라 지방의 실제적 지배자라하기는 하지만, 고려시대 역시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권력의 정점은 개성을 중심으로 그 인근에 몰려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호장 집안은 향촌의 지배세력으로 고려사회에서는 중앙 귀족보다는 떨어지는 존재라 하겠다. 이들이 조선건국과 함께 일제히 부상하여 호장 집안이었던 이들이 중앙 사족으로 변신하면서, 남아 있는 호장의 잔여 세력을 점차 향리로 퇴락시키는 것이다. 조선후기를 보면, 그 시대까지도 스스로 향촌의 주인을 자임한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틀을 뚫고 스스로의 힘으로 신분을 상승한 이들이 있으니이들이 바로 향촌 중인, 서자, 모칭 유학冒稱.. 2026. 5. 27. [대원군은 마무리한 한 서원철폐] (4) "문중은 망했다" 서자들 집단 시위에 결국 굴복한 노상추 집안 우리나라 족보는 조선시대 후기 뒤쪽으로 갈수록처음에는 이름도 안 올리던 서자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그 이름 앞에 붙어 있던 '서庶'라는 글자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집안 족보가 17세기부터 18, 19, 20세기에 대략 출간되었다고 본다면, 각 족보를 비교해 보면 상당히 재미 있는 구석이 많다. 17세기 족보에는 서자는 전혀 없지만, 18세기부터 서자가 등장, 이름 꼭지에는 서자를 붙이되, 19세기가 되면 서자라는 표식이 날라가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범상하게 봐서는 안 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리고 김단장께서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주류 양반사회는 이들 서자에 대해 절대로 호의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왠만하면 얘들은.. 2026. 5. 27. [대원군은 마무리만 한 서원철폐] (3) 피장파장이었던 "글자도 못 읽는 학생들" 임란 이후 향교가 서자들의 소굴이 되자(서얼이라고 쓰지 않는 이유는 노비로 편제된 얼자들이 향교에 교생이 되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서자라고 좀 더 좁혀 쓰는 것이 옳다)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조 대 이후 정기적으로 시험을 봐서떨어지는 이들은 향교 교생직을 박탈하고 군적에 편입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나오는 이야기가 당시"향교 교생들은 글자 못 읽는 이들도 있었다"하는 양반 측 프로파갠다에 한국학계가 무심히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바, 솔직히 글자 못 읽고 구두도 못 떼는 이들이야 서자들만 있었겠는가? 양반 자제들은 이 고과에서 빼 놔서 그렇지 이들도 시험 보면 떨어질 놈이 수두룩 했으리라. 일단 무과 급제로 방향을 튼 양반 자제들 같은 경우, 제대로 구두 떼고 사서 삼경을 줄줄 외었을 이가.. 2026. 5. 27. "혈통이 가족 기반?" 천만에, 고대 DNA가 폭로한 5천년 전 신석기 시대 '혼합 가족' 5천 년도 더 전에, 중앙 유럽 거대한 석조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모두 한 혈연 가족의 구성원이 아니었다.어떤 이들은 혈연으로 얽힌 가족이었고, 또 어떤 이들은 단순히 혈연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연결고리로 얽혀 있었다.킬 대학교Kiel University 연구진이 주도한 새로운 고대 DNA 연구는 중앙 유럽의 신석기 시대 공동체가 예상치 못한 유연한 가족 구조를 지니고 살았음을 밝혀냈다.서로 다른 혈연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자랐을 가능성이 있다.유전적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 유대감 또한 한 가구, 공동체, 심지어 공동 매장지의 구성원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Science에 발표된 이번 연구 결과는 선사 시대 거석 무덤에 대한 오랜 통념에 도전한다.이 기념물들은 종종 혈연 가족.. 2026. 5. 27. [대원군은 마무리만 한 서원철폐] (2) 서자들이 싫어 차린 딴집 살림 흔히 서원이 난립하게 된 이유로, 사족들이 향교의 교육에 불만이 있고, 훌륭한 스승 밑에서 성리학을 도야 할 만한 공간을 원해서 성립하고 어쩌고 이렇게 알듯모를 듯한 이유를 대지만, 집에서 공부를 안하는 애가 독서실 간다고 하겠는가?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원군이 서원 철폐 때 통렬히 비판한 바 있으니, 서원 철폐를 도로 물려 달라는 향촌 사족들 요청에 대원군은,너네는 향교에서는 공부 못하는가? 라고 공박한 바, 통렬한 비판이라 하겠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향교에서 양반들이 박차고 나가 서원으로 모인 것은향교에 모여든 서자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바로 17세기 초반, 각종 문헌에 "교생"이라고만 직역이 적히는 이들로, 양반들이 "놀고 먹으며 향교에 등록해서 군역 빠질려는 놈들"이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이들을 지.. 2026. 5. 27. DNA 분석이 새로 쓰는 17세기 핀란드 사미족 남자 이야기, 십대 시절엔 아이슬란드 거주한 듯 투르쿠 대학교University of Turku 제공 투르쿠Turku 대학교와 그 협력자들이 진행한 새로운 연구는 17세기 초 핀란드 쿠사모Kuusamo의 키트카 호수Lake Kitka 근처에 묻힌 한 인물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DNA 및 동위원소 분석 결과, 사미족 문화유산과 연관된 이 무덤 주인공은 현대 사미족과 유전적으로 연결되며, 핀란드 밖에서 삶의 일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투르쿠 대학교 연구진은 1970년대 핀란드 쿠사모의 키트카 호수 근처에서 발견된 무덤 주인공을 대상으로 DNA 및 동위원소 분석을 실시했다.이 인물은 17세기 초를 산 것으로 추정되며, BMC Genomics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그의 생애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약 40세 남성 치아에서 추출한 DN.. 2026. 5. 27. 이전 1 ··· 134 135 136 137 138 139 140 ··· 415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