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137

넘쳐나는 sns 정보, 조심해야 하는 고고학 소식들 나 역시 고고학 관련 전문 계정이라 할 만한 데들을 구독하는지라, 이를 통해 적지 않은 관련 정보를 접하거니와, 이들 sns 정보에 조심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어니와, 무엇보다 그것이 구문舊聞인지, 신문新聞인지 언뜻 구별이 쉽지 않은 점이 있으니, sns는 기존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와는 달리 전후맥락 쑥딱 자르고, 무엇보다 자극성 있는 사진 위주로 정보를 탑재하거니와, 무엇보다 시선을 끌고자 그것이 구문인지 신문인지 밝히지 아니한다는 맹점이 있으니 단문 위주 설명이 문제가 되기도 하겠지만, 일부러 시점을 애매하게 처리하는 의도도 개입한다. 그래야 시선을 끌기 때문이지 무슨 우수마발 이유가 있겠는가? 나아가 정보 그 자체 신뢰성도 현격한 문제라, 국내 관련 소식들이야 그런 대로 업데이트가 되니, 이런 식.. 2024. 3. 15.
홍사준이 적은 1963년 정림사지 오층석탑 정림사지 5층석탑의 사리기(홍사준의 1963년 기록) 1963년 12월월 중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세밀하게 실측할 기회를 얻었고, 몇 개 부분에서 의외의 새 사실을 알게 되어 소개한다. 1. 지대석 4면 외곽으로 돌린 석재는 지대석이 물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2. 옥개석 모서리에 우동을 설치하였다. 3. 제4층 탑신 남측면 두께 13㎝ 판석으로 가린 사리공이 있음을 알았다. 당초 탑을 계획할 때 탑신의 높이 23㎝, 길이 60㎝, 폭 43㎝의 단형으로 사리공을 만들고, 그 내부의 네 모서리를 안쪽으로 둥글게 도려낸 모양이다. 유물은 없었다. 제4층 옥개받침이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어 일제강점기에 사리기는 분실된 것이 아닌가 한다. (홍사준) 홍사준, 1965, 부여 .. 2024. 3. 15.
밀물과 썰물이 갈라 놓는 천수만 간월암看月庵에 격발하여 쓴다 저 태안이라는 데는 직업병 비슷해서 나는 그런 지명을 들을 적에는 마도 앞바다로 상징하거니와, 그런 까닭에 흔히 바닷속 경주라 별칭하는 저곳을 취재한답시며 몇 번 오가기는 했고, 또 그것이 아니라 해도 서너번 돌기는 했지마는 나한테는 미답과 같은 데라, 아직 나는 서해를 향해 돌출한 저 당진반도가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저 반도 끝을 가 본 적 없다. 독살이라 해서 돌무더기 어망으로 고기를 잡는 데가 저 일대에 몇 군데 남아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정작 독살이라 할 만 한 데로 내가 본 곳은 제주도였으니, 더구나 그 반도 끝터머리에 고남패총박물관인지 하는 태안 공립박물관이 있는 데라는 말만 들었지 여직 가 본 적이 없다. 언제 날 잡고 각 잡아 한 번은 저 반도를 횡단해 보려 한다. 얼마전에는 그 남쪽 .. 2024. 3. 15.
과거를 보는 시점이 다른 서양과 한국 고고학 관련 발굴소식에서 흔히 나타나는 서구와 한국의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서양에서는 보통 어느 시대 어떤 유적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제목에 내세우는 일이 아주 드물다. 대신 서구 언론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지금으로부터 얼마전 어떤 유적 유물이 발굴되었다는 식으로 전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거의 다 삼국시대 어떤 유물 유적, 구석기시대 어떤 유적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제목을 앞세운다. 둘 중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고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지금으로부터 얼마전 운운하는 제목은 그렇지 아니한 제목에 견주어 철저히 현재의 관점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어느 시대를 앞세우는 제목은 말할 것도 없이 이른바 연구자 관점에서의 시각이다. 왜? 연구자한테는 지금으로부터 얼마전 .. 2024. 3. 14.
파르싸[페르세폴리스]에 나타난 이쉬타르 성문 파르싸(Persepolis)에 나타난 이쉬타르 성문 그림에 보이는 황소와 용 부조는 유명한 바빌리(Babylon)의 이쉬타르 성문 장식이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부조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파르싸(Persepolis)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는 페르시아 제국의 건축자들이 바빌리의 이쉬타르 성문을 본 따 만들었거나, 바빌리 건축자들을 동원하여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한다고 한다. Alireza Askari Chaverdi, Pierfrancesco Callieri, Emad Matin, "The Monumental Gate at Tol-e Ajori, Persepolis (Fars): New Archeological Data," Iranica Antiqua LII (2017): 251. *** 이상 .. 2024. 3. 14.
내치와 외치로 관부官府를 나누어 다스린 거란 국가로서의 거란이 어떤 통치체계를 마련했는가를 살피면, 내치와 외치를 부러 구별하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경찰과 군대라는 현대 국가 관점에서 보면 내치란 말할 것도 없이 경찰 관련 사무요, 외치란 외부를 통제하기 위한 군대를 말한다. 이 두 가지 체계를 일부러 나누어 다스리려 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하겠다. 무엇보다 거란은 그 주축인 거란족과 이런저런 이유로 유입된 한족漢族 중심 외부를 동시에 통제해야 했다. 이에서 두 가지 층위의 통제책을 쓰는데, 거란은 거란 본래의 유습에 기초한 방식을 쓰고, 한족은 한족에 중국식 통제 방식을 구사했다. 태종太宗에 이르러 중국 제도를 겸용하여 관직을 남南[중국]과 北[거란]으로 나누었으니 국제國制로 거란을 다스리고 한제漢制로는 한인漢人을 다스렸다. (요사遼史 권45.. 2024. 3. 1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