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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서 5,500년 된 신석기 '폴란드 피라미드' 발견 폴란드 고고학자들이 5,500년 이상 된 두 개의 거석 무덤을 발견했다.이 무덤은 유럽 초기 농경 사회 중 하나의 매장 관습과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삼각형 기념비적인 형태 때문에 "폴란드 피라미드Polish pyramids" 또는 "거인의 무덤giants’ graves"이라고도 불리는 이 구조물은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 주 데지데리 흐와포프스키 국립공원General Dezydery Chłapowski Landscape Park 내 비스코치Wyskoć 마을에서 발견되었다. 이 발견은 포즈난Poznań에 있는 아담 미츠키에비츠 대학교Adam Mickiewicz University 고고학자들이 원격 탐사 기술을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실시한 현장 조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발굴을 통해 존재가 확인된 이.. 2025. 7. 12.
을축년 대홍수 사망자 647명과 인구센서스 사망자 647명 쓸려간 집 6천 363채 무너진 집 1만 7천 45채 물에 잠긴 집 4만 6천 813채. 이재민 수만 명 피해금액 1억300만 원(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 58%) 이것이 조선총독부 공식 통계에 잡힌 1925년 을축년 대홍수 피해현황이다.무시무시했다.그해 홍수는 집중 타격지점을 달리하며 한반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문젠 저 통계가 누락한 실상이다.당시 인구센서스가 있기는 했지만 누락이 너무 많았다.희생된 사람들은 주로 최하층이었고 그네 상당수는 공식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다.이른바 부랑인 비렁뱅이 등등 최최하층은 아예 이른바 호적도 없어 잡히지 않았다.왜 인구센서스가 저 모양인가?당시 조선은 선거가 없어서였다.정확한 인구센스스 절대 기반은 선거의 성립이었다.정확한 인구센서스는 .. 2025. 7. 12.
벨리즈에서 1,600년 전 마야 도시 초대 통치자 무덤 발굴 고고학자들은 현재 벨리즈에 위치한 카라콜 시를 세운 마야 왕 무덤을 발견했다. 멕시코 벨리즈Belize에서 고고학도들이 서기 6세기 내지 7세기 마야 저지대Maya Lowlands 주요 중심지였던 고대 마야 도시 카라콜Caracol의 초대 통치자 무덤을 발굴했다. 테 카브 차크Te K'ab Chaak(마야어로 "나무가지 비의 신Tree Branch Rain God")라고 불리는 이 카라콜 왕의 무덤은 서기 35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331년에 카라콜에서 왕위에 올랐다. 휴스턴 대학교 고고학자 다이앤 체이스Diane Chase와 알렌 체이스Arlen Chase가 40여 년 전 카라콜에서 발굴을 시작한 이후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왕릉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목요일(7월 10일) 발표된 성.. 2025. 7. 12.
네안데르탈인, 13만년 전에 동굴사자 뼈로 다기능 도구 활용 벨기에 스클라디나 동굴Scladina Cave에서 최근 발견된 동굴사자 뼈로 만든 가장 오래된 다목적 도구가 발견됨으로써 네안데르탈인의 수완과 지능을 재입증했다고 Scientific Reports 최신호에 탑재된 연구성과를 인용한 아키올로지 뉴스 온라인 매거진이 12일(한국시간) 보도했다. 이 연구는 약 13만 년 전 살리아 빙하기Saalian glaciation 말기를 산 네안데르탈인이 지금은 멸종된 동굴사자cave lion 판테라 스펠레아(Panthera spelaea) 정강이뼈tibia를 선사 시대 스위스 군용 칼Swiss Army knife과 유사한 다용도 도구로 변형시킨 과정을 설명한다. 연구진은 동굴 사자 한쪽 다리 뼈에서 네 가지 도구를 발견했는데, 모두 의도적인 형태 변형, 순차적인 재사용.. 2025. 7. 12.
용도불명의 목활자본: 열성수교 (6) 조선후기는 지금까지 쓴 대로 군역을 빠지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무지막지하게 분출된 시대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최근의 병역기피하고 연결시켜 설명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현대의 병역기피와 군역기피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측면이 있다고 본다. 사실 조선시대 신분은 호적에 기록된 직역이 가장 정확하다고 보는데이 직역에 기록된 방식은 그 사람의 신분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직역이란 결국 국가의 관리로 등용되면 그 관직명이 직역이 되고, 관직을 갖지 못한 양반은 "유학"이 되며, 양반이 아닌 사람들은 결국 평민들의 직역을 받게 되는 셈인데 그 평민들 직역 안에 군역이 있는 것이다 (노비는 직역이 없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군역기피"는 그 의미의 방점이 "병역기피"에 찍히는 것보다"신분상.. 2025. 7. 11.
처가로 가서 살던 시대 그리고 씨족의 전국적 확산 이건 필자의 추정에 불과하지만, 남편이 처가로 가서 살던 시대와 그렇지 않은 시대. 어느 쪽이 더 그 씨족의 전국적 확산이 빠를까? 필자가 보기엔 남편이 처가로 가서 정착하는 시대가그렇지 않은 시대보다 전국적 확산이 빨라지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조선 전기-중기까지도남편이 처가로 가 살다가 돌아오거나 혹은 아예 현지에 정착해 살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조선 후기 유교적 종법이 정착되고 친영례가 권장되면서이러한 관행은 사라진 것으로 안다. 우리의 성이라는 것은 부계를 반영하므로 남편이 처가 쪽으로 가 살다가 그곳에 정착해 버리면 다른 지역으로 그 성의 확산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남편이 움직이지 않고 전적으로 아내가 남편 쪽으로 "시집만 가는" 형태의 혼인만 남으면여자 쪽이 동일 거.. 2025.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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