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192 한때는 위광을 자랑한 진주 용암사 터를 가다 지금의 절을 본 김에 옛날 절자리를 보러 가자 해서 들르게 된 곳. 또다시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보는데 산중이라곤 하나 제법 넓은 들도 있고 집 몇 채가 모인 마을도 있다. 차를 세우고 슬슬 걸어가는데 길 어귀부터 옛 기왓장이 천지다. 물고기뼈 모양 어골무늬도 있고 격자무늬나 비내리는 것 같은 무늬가 새겨진 것도 있고, 더러 흐릿하게나마 명문이 남은 것도 보였다. 녹유를 바른 전돌이 나오기도 한단다. 한 10분 걸었을까? 대나무밭이 길 옆을 따라 이어진다. 꼬불꼬불한 대나무 뿌리가 어찌나 기운 센지 더러 기와조각을 꽉 움켜쥐기도 하고 또 암반을 깨고 들어가기도 한다. 그 뿌리가 틔운 대밭이 다할 즈음 절 아닌 재실 하나가 나타난다. 이 진주 용암사란 절은 용암이 흘러 생긴 게 아니라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 2023. 12. 23. 얼나는 언제나 경이다 이만한 경이驚異 있던가? 때론 칭얼대서 그렇지 이보다 뛰어난 작품 없다. 워즈워스는 옳다.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2023. 12. 23. 떠나는 과학사가 윤용현 새로운 한장을 열기 전에.. 어제 과학관 동료분들께 30년간 함께한 시간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다녔습니다. 돌아보면 과학관 동료분들과의 여정이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서동료분들이 마련해준 근사한 곳에서의 오찬, 이응노미술관 전시관람, 멋진 케익과 화분 선물까지.., 격하게 감격하여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많은 애를 썼습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 이젠 든든한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자 합니다. 조만간 새로운 기회가 다가올 수도 있고, 여의치 않으면 주어진 1년 동안 조금은 천천히 여유롭게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한 장을 열기 전에, 그동안 격려와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윤용현 드림 *** 애초 전공은 구석.. 2023. 12. 23. 의상 화엄십찰 고성 옥천사를 가다 대학교 답사로도 이 고성이란 곳엔 와본 적이 없다. 공룡 발자국이 많기로 유명하다는 정도밖엔 몰랐던 셈인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존경하는 김충배 선생님 안내로 고성 땅 고찰 옥천사에 구경을 가게 되었다. 차를 타고 산이 품은 들을 가로질러 이리저리 휘돌아 들어가니 어느새 주변 풍경은 산중이다. 길옆 절벽은 켜켜이 쌓인 퇴적암 더미들인데, 동짓날 다음 날이라 그런지 팥시루떡 생각이 문득 든다. 근대 부산 지역의 명필이요 그 자신 스님 출신이었던 청남 오제봉 글씨 일주문 현판 앞에서 사진 하나를 찍는다. 절 옆 암자 청련암에 먼저 들렀다. 성보박물관장 스님이 계시다고 하여 인사를 드리고 차를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절은 670년(신라 문무왕 10)에 의상이 창건한 화엄전교10찰 중 하나라고 한다... 2023. 12. 23. 꼴통 서희徐熙 졸기 고려사절요 제2권 목종 선양대왕穆宗宣讓大王 무술 원년(998), 송 진종眞宗 함평咸平 원년·란 통화 16년에 보이는 서희 죽음을 전하면서 붙인 그의 열전이다. 가을 7월에 태보 내사령太保內史令 서희徐熙가 졸하였다. 서희는 필弼의 아들이다. 성품이 엄하고 성실하였다. 나이 18세에 갑과甲科에 발탁되어 성종 때 왕의 서경 행차를 호송하였는데, 성종이 미행微行으로 영명사永明寺에 가려 하자 서희가 상소하여 간하니, 성종이 이내 중지하고 안장 얹은 말을 내려 주어 그를 포상하였다. 계사년(993)의 전쟁(거란의 침입)에서 국서를 받들고 소손녕蕭遜寧의 진영에 이르러, 통역하는 사람을 시켜 서로 회견할 예절을 물으니, 소손녕이 말하기를, “나는 대조大朝의 귀인貴人이니, 마땅히 뜰에서 절해야 한다." 하였다. 서희가 .. 2023. 12. 23. 서희와 강감찬, 그 공통분모 강동6주 두 사람은 막연히 한 세대 정도 차이나는 줄 알았지만, 실제 생몰년을 비교하면 서희徐熙가 942~998년이고 강감찬姜邯贊은 948~1031년이라 불과 여섯 살 차이라, 실상 같은 시대를 호흡했다. 두 사람 사이가 뜨게 보이는 까닭은 저들이 역사에 두각을 드러낸 고려와 거란간 전쟁에서 주역이 된 시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서희가 그의 이름을 영원히 아로새긴 계기는 익히 알려졌듯이 993년, 요 성종聖宗 통화統和 11년, 고려 성종成宗 12년, 요나라가 소손녕을 총대장으로 하는 고려 정벌군 80만 대군을 일으켰을 때라, 이때 서희는 적진으로 혈혈단신 들어가 소손녕과 담판을 벌려 이른바 강동6주(강동육주)를 획득했다. 같은 문신인 까닭에 둘은 비슷한 관로를 거쳤다. 강감찬은 성종 3년, 983년에 과거 급제해 .. 2023. 12. 23. 이전 1 ··· 1603 1604 1605 1606 1607 1608 1609 ··· 386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