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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하물며 사람임에랴? 아무리 등신이라도 특장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을 쓰는 쪽에서는 그런 특장을 발휘토록 해야지, 모두가 척척박사와 같은 인재가 되라 요구할 수는 없다. 이는 이미 관자인가 한비자가 설파했으니, 뛰어난 인재 발탁도 중요하지만 각기 재능에 맞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토록 하는 일이 인재등용술의 관건이라 설파했다. 이런 특장을 살리지 못하고 스스로 망해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네 꼬라지는? 하고 묻는 사람도 있겠거니와, 혹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나는 현재 주어진 여건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므로 크게 후회는 없다는 말을 해두고 싶다. 특히 요새와 같은 관종의 시대에 본인이 어떤 특장을 지녔는지를 스스로가 파악하고 그걸로 시장에 나가 파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현재 내가 무슨 일.. 2023. 12. 12.
기마 이전의 말이 끄는 수레 우리나라 말의 역사와 관련하여, 소위 등자를 쓰는 기마는 도입 시기가 명확한 것으로 안다. 선비족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고구려를 거쳐서 한국, 일본으로 빠져 나간 것으로 알고, 그 증거품도 확연하다. 문제는, 한국사에서 말의 이용과 관련하여 기마 이전 시기에 말이 수레를 끌던 시기가 있었다는 생각인데, 요즘 생각해 보면, 이 수레가 정말 말이 끌었던 것이 맞는지 어떤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재갈이 나오는 유적이 있는 것을 보면 기마 이전에 말을 짐을 수송했건 뭐를 했건 사육했던 것은 확실한데, 그 사육된 말이 정말로 아래와 같은 수레를 끌었을 것인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평양에 저런 말이 끄는 수레가 달렸을 것 같지가 않다. 만약 저런 수레가 있었다면 고구려 시대에도 뭔가 비슷한 물.. 2023. 12. 12.
망우리의 어제와 오늘(2), 서울역사박물관 망우동 특별전 - 망우리 공동묘지 망우리 공동묘지는 1933년 개장하고 딱 40년 만이 1973년 4만7천754위가 되면서 만땅이 되어 새로운 무덤을 쓰는 묘지로서는 기능이 끝난다. 이 기능 정지는 대규모 탈출을 불렀으니 무덤을 뽑아 옮겨가거나 파묘한 것이다. 그리하여 2023년 10월 현재는 6천579위만 남았다. 망우리 혹은 망우동 역사에서 무덤은 뺄 수 없다. 그 등장 자체가 앞서 본대로 이성계 건원릉 점지에서 시작하는 까닭이다. 지금도 동구릉을 가보면 철조망 너머가 망우동 묘지다. 사대문 안에는 무덤을 못 쓰게 했으니 다른 양반 가문도 이곳에다 무덤을 많이 썼다. 앞서 소개한 1760년 망우동지에도 벌써 "땅이 있으면 명칭과 경관이 있고, 그 후에 무덤이 있고 사람이 있고 풍속과 문헌이 있다"라 쓸 만큼 망우동 일대는 조선후기에 .. 2023. 12. 12.
고조선 고유의 마차 고조선 및 낙랑 유적에서는 소위 마차 부속이 나온다. 이 부속은 명기화하여 한반도 남부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안다. 이 청동 부속을 가지고 일본의 누군가가 마차 복원도를 그렸고 지금도 그 그림이 많이 회자되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이 마차 그림이 나올 때마다 항상 따라 오는 이야기로, 이런 마차는 중원에도 없는 고조선 고유 형식의 마차이다.. 라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 이게 우차 아닌가? 당장 몇 백 년 후에 고구려 시대에는 소가 끄는 수레가 바글바글한데 고조선 때라고 수레를 말이 끌었겠는가? 특히 귀인이 타는 수레는 고구려도 그렇지만 한국의 고대 문화를 받아간 일본도 말은 기마, 수레는 소였다. 마차부속과 재갈이 어느 정도로 같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둘이 같이 나왔다면 그 부속은 마차용이라 해도 이.. 2023. 12. 12.
망우리의 어제와 오늘(1), 서울역사박물관 망우동 특별전 망우리 혹은 망우동 뿌리가 되는 망우는 저에서 보듯이 잊을 忘에 근심 우憂라 근심을 잊는다는 뜻이다. 이를 딴 고객 망우고개가 있어 이에서 지명이 유래한다. 이 고개는 서울과 경기도 구리가 닿은 지점이다. 그 위치를 보면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쪽 변두리라 강남 강북으로 보면 한강 북쪽인 강북이다. 서울시 권역은 조선시대 이래 팽창 일변도였으니 탈취 대상은 언제나 경기도라, 경기도가 서울에서 탈취한 땅은 없고 일방적으로 뺏기기만 했다. 변두리라 함은 본래는 서울이 아니었다가 나중에 그리됐단 뜻이니 망우동 역시 그랬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로 있다가 1963년 1월 1일부터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속했지만 중랑구가 신설하면서 호적을 다시 옮긴다. 동아시아 군주는 임금 되고 나서 맨먼저 죽어 지가 살.. 2023. 12. 12.
고조선 수레는 소가 끌지 않았을까 일본 헤이안시대에 귀족들은 수레를 타고 다녔는데 이 수레는 모두 소가 끌고 다녔다. 고구려 남아 있는 벽화를 보면 수레는 모두 소가 끌고 있다. 고조선은 고구려하고 겨우 몇 백 년 차이인데 이 수레를 말이 끌었을까? 평양에서 수레 부속과 재갈이 같이 나온 경우가 있었는가? 간단한 의문이다.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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