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306 일제시대 조선의 교육제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일제시대 조선의 교육제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것이다. "조선이 1910년 당시 가진것이 너무 없었기 때문에 빈약한 교육제도를 만드는 데도 36년이 걸렸다." 과연 그럴까? 없었기는 해방이후 한국이나 일제시대 조선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수립후 36이 지난 시점의 84년의 한국 교육제도와 식민지를 경과한 일제시대의 교육제도의 변화를 비교해 보자.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경우 아래에 첨부한 그림은 1872-1880년 연간의 교육제도이다. 뭔가 굉장한 것이 있는것 같지만, 당시 일본에 소학교와 중학교는 이제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였고 대학, 고등학교는 없었다. 각종학교가 이제 막 생겨 응시자에게 간단한 시험을 보고 학교 입학을 허가하는 상황이었다. 쉽게 말해 일본도 1872-1880년 사이에는 아무.. 2023. 6. 10. 교육제도의 완성 우리는 오늘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 진학을 당연히 생각하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 대학교에 순차적으로 진학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보는 시대에 산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 특히 근대화가 외부에서 이식된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교육제도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여러 종류의 학교가 세워지지만 서로 아무 상관도 없이 존재하는 그런 시대가 처음에 있었고, 그런 시대가 가면 비로소 초등교육에서 중등, 고등교육이 연결되어 십 수년간을 연속적으로 교육 받는 시스템이 완성된다. 일본의 경우에 이런 교육제도가 완성된 시기가 언제였을 것 같은지? 일본의 교육제도가 완성된 시기는 1897-1908년 연간이다. 이 시기에 일본은 초등교육에서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기관이 연결되어 초등교육에서 대학까지 끊김없이 공부하는 .. 2023. 6. 9. 개관 앞둔 인천 송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이달 28일 개관을 앞두고 오늘 그 건립추진위원회 마지막 회의를 했다. 공동위원장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과 김종규 박물관협회 고문 이하 건립위원들이 수고했다 덕담하고 전시실을 둘러봤으며 인근 식당에서 해단식을 겸한 오찬을 했다. 나는 그 건립위 2기 위원으로 들어가 그것이 개관하기까지 중하반기를 지켜봤으며 나로서는 무척이나 애정을 쏟은 데라는 말을 두어 번 한 적 있으니 그에서 더 보탤 건 없다. 2기에서 그렇게 서둘지 않았더래면 그 진전이 어디에 와 있을지 모르겠다. 혹 그래서 부족한 점이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예까지 왔노라 적어둔다. 개관 특별전도 당연히 준비 중인데 외람하게도 그 자문에 내 이름이 올랐으니, 기획전 주제 제안과 중간 진행 과정 점검 등등에 조금은 .. 2023. 6. 9. 용인 보라산 백제고분 발굴조사 현장공개 엊그제 문화재청의 보도자료로 인해 언론보도 된 용인 보라산(보라동 산62-2번지) 백제고분 유적 발굴조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발굴조사 성과는 아래 참조. 해발 155미터 야산 등산로에서 찾아낸 4세기 백제무덤들용인 보라동에 보라산 이라 일컫는 야산이 있다. 산이라 하지만 해발 215m라, moutain이라기 보다는 hill에 가까운 작은 산이다. 그 기슭으로 근자 단독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한 모양이라, 그에 맞추historylibrary.net 용인 보라산 백제고분 발굴성과(추보)앞서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이 실시한 용인 보라동 산 62-2번지 백제고분 발굴성과 소식을 전했으니 해발 155미터 야산 등산로에서 찾아낸 4세기 백제무덤들 해발 155미터 야산 등산로에서 찾아낸 4historylibrary.net.. 2023. 6. 9. 풍질로 주저앉은 총사령관 김유신 감국監國이란 글자 그대로는 나라를 돌본다는 뜻이니, 이는 비상시에 군주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그것을 대리하는 일을 말한다. 보통은 다음 보위를 이을 세자나 태자가 하지만, 그가 어리거나 병들거나 했을 적에는 중신(重臣) 중에서 명망이 높인 이를 골라 맡기기도 한다. 명망이 높아야 하는 까닭은 그래야 비상사태에 반란을 억누를 수 있는 권위와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 이런 감국이 흔했을 것이나, 역사에서 확인하는 실례는 거의 없으니, 이는 기록의 소략함에서 기인한다. 그런 가운데서 역시나 김유신이 감국을 한 일을 발견할 수 있으니, 668년 고구려 정벌 전쟁에서 그가 수도 계림(혹은 금성이라도 했다)에 남아 감국을 했음이 확실하다. 문무왕 김법민은 아들을 늦게 본 듯하다. 삼국사기 문무왕본기 5.. 2023. 6. 9. 나라를 비운 왕과 태자, 감국監國하는 김유신 문무왕본기엔 대 고구려 정벌 전쟁에 김유신이 풍질로 직접 참가치는 못했다 하지만 같은 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3 김유신 하에는 그와는 언뜻 다른 듯한 사정이 거론됐으니, 병이 아니라 문무왕의 뜻에 따라 수도에 머물렀다 한다. 간단히 추리자면 나까지 수도를 비웠다가 수도에 무슨 일이 생기는 비상사태에 대처할 인물로는 김유신 밖에 없으니 그래서 문무왕이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감국의 역할을 김유신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이는 해당 열전에 보이는 다음 기술, 그러니깐 출정에 앞서 김유신을 대신하여 총사령관 역할을 대신할 장군 김흠순과 김인문을 불러 문무왕이 하는 다음 언급에서 명확하다. “공들 세 신하는 나라의 보배이니, 만약 한꺼번에 적의 땅으로 갔다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겨 돌아오지 못한다면.. 2023. 6. 9. 이전 1 ···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 388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