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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목을 딴 희대의 풍운아 홍종우 홍종우(洪鍾宇, 1850~1913)라는 인물이 있다. 근대 한국의 풍운아風雲兒가 한둘이 아니지마는 이 사람도 '풍운아'라는 이름에 크게 부끄럽지 않은 행적을 남겼다.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시골을 전전하다 프랑스 1호 유학생이 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희대의 '풍운아'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의 목숨을 거뒀으며, 황제의 신임을 받고 한 나라의 국정개혁을 주도하는 자리에까지 오른 사나이. 하지만 그의 전성시대는 너무도 짧았다. 1903년, 그는 이 땅의 남쪽 끝 제주목사로 내려온다. 프랑스 선교사가 엮은 '이재수의 난' 사후처리를 위해 조정에서 프랑스통인 그를 보낸 것이다. 홍종우는 제주에서 약 3년 지냈는데, 국어학자 김윤경(金允經, 1894~1969)은 그 시절의 홍종우를 '제주도의 나폴.. 2023. 5. 5.
김유신이 계백한테 초장에 네 번 당한 이유는 5만이라는 덩치 때문이었다 신라가 백제를 들이칠 때 동원한 군사는 물경 5만이었으니 이런 대규모 군사 동원은 기원전 57년 혁거세에 의한 신라 건국 이래 처음이었다. 그 구성 내력을 보면 어중이떠중이 집합소였다. 그 총사령관 김유신은 백전노장, 신출귀몰했지만 이 어중이떠중이는 골차 아프기 짝이 없었으니 덩치만 큰 코끼리 하마 기린이었지 날렵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어 쪽수는 오천밖에 되지 않으나 해병대 udt 같은 훈련을 받고 상명하복이 철저한 계백이의 치고빠지기에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다. 황산에서 만나 네 번 접전했다가 네 번 내리 패한 김유신은 패인 분석에 골몰했으니 그 문제가 바로 쪽수 덩치에 있음을 절감하고는 계백이의 강점을 그대로 파고들었으니 오천으로 오만을 맞선 그 전술을 뒤집어 희대의 전술을 개발하는데 이는 그 자신이 .. 2023. 5. 5.
수나라 군은 왜 무너졌는가 아래 김단장께서 쓰신 글을 보고 생각나는 바 있어 글을 더한다. 고구려, 신라군이 삼국전쟁기에도 1-3만 정도 동원하는것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며 이것이 최대치였다는 이야기-. 이 부분에 대해 조금 써 보고자 한다. 수나라군이 고구려를 쳐들어갔을 때 호왈 113만인가를 이야기 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당시 수나라 군이 패망한 것은 100만 대군이 아닐지라도 저 군대 규모 때문에 패망했을 것이라는 심증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군대가 움직이면 그 군대 하나 보내고 끝이 아니다. 먹여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먹이기 위해 움직이는 군대는 그 자체 또 그냥 먹지도 않고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다. 식량을 수송하는 군대 자체도 또 먹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통시대의 국가-사회수준에 따라 움직일 수 .. 2023. 5. 5.
신라의 결단, 백제 구원병 1만의 무게감 475년 백제가 실상 고구려에 멸망하고 개로왕까지 사로잡혀 참수된 참혹에서 우리가 또 한 가지 간과한 중차대한 사실이 있으니 이 난국에서 신라가 취한 자세다. 왕도가 포위된 위급한 상황을 알리면서 구원병을 청한 백제 문주한테 신라와 자비마립간은 물경 1만에 이르는 대군을 파견했다. 이 1만이 주는 무게감을 아무도 심각히 보지 않았다. 신라에 의한 일통삼한에 이르기까지 삼국이 총력전 체제에서 동원가능한 군발이 숫자는 3만~5만 명이었다. 일통삼한 전쟁 와중에 신라가 전국에서 징발한 군발이는 5만명에 지나지 않았다. 것도 보급부대까지 합친 규모다. 장수왕이 개로왕 목을 딸 때 동원한 군대도 3만이었다. 저 무렵 삼국 공히 국가 명운을 건 전쟁에 동원 가능한 숫자는 삼만이 최고였다. 광개토 담덕가 5만을 동원.. 2023. 5. 5.
광해 이 쓉쌔, 극락왕생으로 포장한 저주 금광명최승왕경金剛明最勝王經 Transcription of Sovereign Kings of the Golden Light Sutra 1622 동국대학교 박물관 인목대비가 페위된 후 서궁西宮에 감혀있을 때 발원한 것으로 아버지 김제남金悌南, 어머니 노씨, 아들 영창대군의 극락왕생과 딸 정명공주의 장수와 자손 번성을 기원하였다. 사경을 발원한 다음해 인조반정으로 왕대비로 복위되었으며, 몇 해 후 수종사 석탑에 불상을 조성하여 안치하였다. 이상은 서울역사박물관이 한양여성 문밖을 나서다 특별전에 저 유물을 대여 전시하면서 내건 안내판이라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金氏(1584~1632)는 조선 선조宣祖의 두번째 정식부인으로 슬하에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두었으니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그의 비극은 광해가 후궁 소생으로 .. 2023. 5. 5.
학예사 연구원이 빛나야 하는 전시, 서울역사박물관 한양여성 문밖을 나서다 특별전의 경우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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