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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절, 재在평양 일본인들의 취미 1910~20년대, 평양 일대에 산재해있던 낙랑樂浪 고분 열에 아홉은 도굴꾼의 곡괭이를 피하지 못했다. 그 시절 도굴의 열기가 얼마나 거셌던지, 평양에 살던 일본인이 “1~2원을 주고 낙랑 청동거울 1점이나 토기 항아리 1점쯤 구입하지 못했다면 남한테 바보 취급을 당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 편집자補 *** 도굴은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근자 중국에서 발견 발굴된 조조 무덤의 경우, 삼국지 그의 본기를 보면 죽으면서 무덤은 봉분을 만들지 말고 편평하게 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하라 유언하는 장면이 있다. 그만큼 도굴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한반도라 해서 사정이 다르지 아니해서 왕릉이 문종 이후인가? 회격묘 일색으로 변하고, 이른바 후장厚葬에서 박장薄葬으로 간 가장 큰 이유도 도굴에.. 2022. 11. 11.
1912년 가을, 금강산에서 온 엽서 일제강점기, 조선의 철도는 기본적으로 조선총독부 철도국 산하에 있었다(개인이 놓은 사철私鐵도 없지 않았으나). 이 시절은 지금 같은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간선도로 자체가 충분치 않아서, 대량 운송에는 철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 만큼 철도국의 수장인 철도국 장관의 위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요즘으로 치면 국토교통부 장관에 맞먹는다고나 할까? 그런 지위였던 조선총독부 철도국 장관 자리에 처음으로 앉은 인물이 오야 곤페이大屋權平(1862~1924)라는 자다. 그는 1883년 도쿄대 공학과를 졸업하고 3년 뒤 철도국 기사가 된 이래 그 분야에서 승승장구했으며 구미 유학도 다녀왔다. 1903년 경부철도 공사 책임자로 부임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승진을 거듭하며 훈장도 타고, 1910년 국망 이후 철도.. 2022. 11. 11.
글자는 제법 많으나 무슨 의미인지 종잡지도 못한 백제목간 백제의 출납 담당자는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목간서 단서 확인 김예나 / 2022-11-10 11:15:48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부여 동남리 유적서 출토된 목간 분석·판독 문자 거꾸로 쓴 부분도…백제의 무게 단위 새로 해석할 단서에 주목 https://www.yna.co.kr/view/AKR20221110068600005?section=search 백제의 출납 담당자는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목간서 단서 확인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백제 시기 곡물을 비롯한 물자의 출납(出納) 상황과 무게 단위를 유추할 수 있는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 www.yna.co.kr 이 소식을 접할 적에 우선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 이에는 적어도 3개 이상하는 층위의 기관 혹은 조직이 간여.. 2022. 11. 10.
[전국학예연구회] 김예지 의원,‘지자체 학예연구직 전문석 강화를 위한 학술토론회’개최(보도) 지자체 학예연구직 전문성 강화는 어떻게…11일 국회서 토론회 김예나 / 2022-11-10 16:55:57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68207317410 지자체 학예연구직 전문성 강화는 어떻게…11일 국회서 토론회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학예 연구직의 업무 전문성을 높이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10일 학계 등에 따르면 국민의힘 김예 k-odyssey.com 김예지 의원,‘지자체 학예연구직 전문석 강화를 위한 학술토론회’개최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오는 11일 오후 2시부터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지자체 학예연구직 전문성 강화 및 제도개선을 위한 학술토론회’를 진행.. 2022. 11. 10.
내 대가리를 희생한 광개토왕비 독법讀法 왜 아무도 광개토왕비에 묻지 않았을까? 왜 저리 큰가? 글자는 또 왜 저리 크게 썼나? 왜 비면을 다듬지 않았는가? 이제는 조금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묻지를 않았으니 답을 구하지 못할 수밖에.... (2011. 11. 10) *** 그래서 내가 시도한 것이 내 대가리를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내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그랬더니 모든 의문이 봄눈 녹 듯 풀렸다. 광개토왕비? 장수왕비? 그 새로운 독법을 위한 한 시도 광개토왕비? 장수왕비? 그 새로운 독법을 위한 한 시도어제 국립중앙박물관이 '문자, 그 후' 특별전 개최와 맞물려 박물관 강당에서 개최한 자리에서 나는 '광개토왕비, 父王의 運柩 앞에서 靑年王이 보낸 경고'라는 題下의 발표문에서 다음 세 가지historylibrary.net 내친 김에 대가리를 .. 2022. 11. 10.
《논어》는 공자 문도門徒 撰이나 《역주 논어》는 김태식 撰이다 撰이라는 말이 흔히 통용하기를 편찬, 창작에 가깝지만 중국에서는 고래로 자기 작품이 아닌 남의 작품을 편집하는 일도 이 말로 표현하곤 했으니, 이런 전통이 지금도 남아있다. 한데 이 말이 대체로 순수한 창작물을 선호해서 사용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 위진남북조 양나라 태자 소통이 자기집을 드나드는 문사들과 함께 묶은 시문 엔솔로지인 《문선文選》을 보면 판본에 따라 소통 撰이라 적은 일이 많거니와 이 대목에 고래로 문선 주석서가 옛날에는 순수 창작이 아닌 자료 편집 정리에도 찬 이라는 말을 썼다는 언급이 보이는 점이 그 한 증거다. 우리 지식인 사회에선 역주나 번역 같은 데다가 저런 식으로 그런 결과물을 찬이라 표현하는 일은 드물다. 나는 이것이 번역 역주에 대한 사회 전반의 아직은 낮은 평가와 ..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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