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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스러져가는 상추 우리한테 각인하는 상추는 항상 싱싱 푸릇푸릇이지만 그도 나이 들어 가고 늙으며 종국에는 죽는다. 그때가 되면 당연히 그 이파리는 염소나 소한테 주어야 하며 사람이 먹기엔 너무 억세고 쓴 맛이 많다. 늙어가며 후손을 생각하기 마련이라 죽기전엔 저와 같은 꽃을 뿌린다. 언제나 내가 청춘일 수는 없다. Act your age! 2024. 6. 26.
부여 아니성阿尼城을 어찌 볼 것인가? by 심상육 지난 6월 2일 일요일, 청양 도림사 터를 경유해서 칠갑산을 오르고자 했다. 허나 산허리에 세 단으로(금당, 상단-탑지, 중단-문지, 하단) 이루어진 도림사 터까지 가서, 탑과 초석만 보고 내려왔다. 못내 아쉬워 오늘(6월 9일) 다시 청양 도림리에서 도림사터를 거쳐 한 시간여 올라 칠갑산七甲山 정상에 올랐다.오르는 중 석축성을 보았는데, 찾아보니 청양 두률성이었다.그리고 공교롭게도 아니성阿尼城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부여 부소산 남편 부여여고 부근, 부소산성 내부, 관북리 일대, 그리고 왕흥사지에서 평기와에 아니성阿尼城이라는 글자가 찍힌 문자와가 출토되었다. 아니阿尼는 내[內]의 훈訓인 안을 뜻하는 차음표기借音表記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그래서 아니성阿尼城을 내성內城으로 보아, 백제 후기의 .. 2024. 6. 26.
꽃팔찌 손톱까지 세밀로 표현한 아시리아 조각 고대 근동문화, 특히 아시리아 문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부조 한 장면이다. 살피면 표면이 온통 쐐기문자 설형문자다. 이처럼 메소포타미아 조각가들, 특히 아시리아 시대 조각가들은 높은 장인정신과 조각 정확도, 그리고 가장 작은 세부 사항을 보여주는 것으로 특징짓는다. 우리는 이 사진에서 물통 bucket of water 을 잡고 있는 손의 세부 사항을 본다. 손이 어떻게 조각되었는지 주목하라. 이를 보면 놀라운 세부 사항과 치수로 카모마일chamomile 꽃 팔찌 flower bracelet 를 본다. 그리고 이처럼 세심하게 다듬은 손톱은 아시리아인들의 외모와 손질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물통을 잡은 채 수축하는 손 근육 움직임과 손가락들을 어떻게 밀착하는지 구체화한 방법까지도 말이다.. 2024. 6. 26.
에트루리아 방패와 의자무덤 방패와 의자 무덤 반디타차Banditaccia 네크로폴리스, 체르베테리Cerveteri, 이탈리아 기원전 6세기 에트루리아 Tomb Of The Shields And Chairs Banditaccia necropolis, Cerveteri, Italy 6th century BCE Etruscan 이 무덤은 Banditaccia 묘지에서 가장 정교한 무덤 중 하나로 꼽힌다. 고전시대 에트루리아 Archaic Etruscan 주택의 목재 가구와 목재 건축물을 모방하여 석회암 기반암 tufa bedrock 을 조각해 침대 6개와 발판 footstools 이 있고 등받이가 높은 의자 high-backed chairs 2개, 문틀 door frames 과 천장 들보 ceiling beams 를 조각했다. 다른 에.. 2024. 6. 26.
이집트 농촌에서 갖고 놀던 장난감 말 바퀴에 올라탄 채색 나무 장난감 말. A painted wooden toy horse on wheels. 머리는 당김줄pull-string 때문에 눈을 뚫었다(카라니스Karanis 출토 - 로마 시대 - 서기 1-4세기). 카라니스Karanis는 현재의 콤 오심 Kom Oshim에 위치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Ptolemaic Kingdom 과 로마 이집트 Roman Egypt 시대 농업 마을로, 파이윰 Faiyum 북동쪽 모퉁이에 위치했다. 나무로 만들고 발통이 있으니 장난감 맞을 것이다. 사진 : 켈시 고고학 박물관, 미국 Kelsey Museum of Archaeology - USA) 2024. 6. 25.
젊어선 서울 물 먹어라! 나는 낙향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꼭 고향 김천을 고집하지 않는다. 내심 평균을 산다했을 때 75살 정도까지는 서울을 벗어나거나, 혹은 적어도 년중 절반 이상은 서울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내다가 나중에 다시 서울로 기어올라와서 죽을 준비를 하려 한다. 나는 도저히 대학, 특히 사립대학 다닐 형편이 안 되는 집안이었지만, 내가 그 지역에서 대학생활까지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케든 서울로 올가가서 결판 한 번 내 보겠다 해서 바득바득 서울로 기어올라왔다. 다른 직장 생활 잠시 거쳐 이쪽 업계 기자가 되었을 때, 날더러 부산지사로 내려가지 않으면 합격을 취소한다 했을 때 청천벽력이었던 까닭은 그 꿈이 산산조각날 판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부산에서의 생활 1년이 지옥과도 같은 나날이었던 까닭이 바로 이때.. 2024.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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