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184 영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인구 유전체학이 밝혀낸 비밀 앵글로색슨과 켈트, 그리고 바이킹을 넘어: DNA가 밝혀낸 영국 이주 역사의 역동성 by 제이 실버스타인Jay Silverstein,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우리 각자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며, 종종 상상 속 조상 계보를 통해 정체성을 추적한다.정체성은 근본적으로 문화적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생물학적, 즉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안정적인 유전적 유산이라는 개념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있다.인구 유전체학은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서로 얽혀 있는 역사를 드러냈다.깊고 끊임없는 유산의 섬으로 오랫동안 간주된 영국과 같은 곳에서조차 유전 데이터는 활발한 이주, 혼합, 그리고 문화적 재창조로 점철된 역사를 시사한다.두 가지 새로운 연구는 로마.. 2026. 5. 27. 첨단기법으로 다시 분석한 25만 년 전 초기 네안데르탈인 치아, 기후변화 따른 역동적 진화 모습 드러내 by 스페인 국립 인류 진화 연구 센터Spanish National Research Centre for Human Evolution 스페인 국립 인류 진화 연구 센터Spanish National Research Centre for Human Evolution (CENIEH)가 주도한 이번 연구는 유럽 네안데르탈인의 복잡한 진화를 탐구하는 새로운 탐구로, 고고인류과학(Archaeological and Anthropological Sciences)에 발표되었다. 프랑스 남동부 파이르Payre 유적에서 발견된 화석 치아 분석을 바탕으로, 이번 연구는 약 25만 년 전 중기 플라이스토세 네안데르탈인 집단의 다양성과 진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프랑스와 호주 연구 기관도 참여한 이번 연구에서는 첨단 영상.. 2026. 5. 27. [대원군은 마무리만 한 서원철폐] (1) 향교를 박차고 나선 서원 흔히 대원군의 서원철폐는 기세등등한 전통사족의 기세를 꺾은 것으로 평가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사림의 대두 이후 사족들의 힘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원군이 철벽 같았던 금성탕지金城湯池를 공격했던 것은 아니다. 대원군은 다만 이미 백여 년에 걸쳐 꾸준히 힘이 빠진 이들 서원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세력에 대해마지막 한 방만 선사했을 뿐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서원을 중심으로 한 사족, 이라고 이야기하지만이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집권한 경화사족의 적수는 도저히 아니었다. 앞에서 쓴 것처럼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지방의 향촌 사족들은 요즘 이야기하는 것처럼 강력한 힘을 보유한 적이 없었고,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대과는 언감 생심, 소과도 생원이나 간신히 걸리면 되는 정도의 집안.. 2026. 5. 27. 600년 전 명나라 시대 수술 도구에서 독성 약초 마취제 흔적 발견 중국 동부 명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수술 도구에 남아 있는 잔류물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고대 수술 도구에 마취제anesthetic가 사용되었다는 최초의 직접적인 화학적 증거가 밝혀졌다. 이번 연구 결과는 14세기 중국 의사들이 의료 시술 중 통증을 줄이기 위해 독성 식물 화합물을 사용하는 정교한 방법을 개발했음을 시사한다.연구진은 장쑤성 장인Jiangyin에 있는 의사 하취안Xia Quan 무덤에서 출토된 철제 가위와 족집게를 조사했다. 이 무덤은 명나라 초기인 1348년에서 1411년 사이에 조성되었다. 분석 결과, 멍크후드monkshood 또는 울프스베인wolfsbane이라고도 하는 투구꽃 속Aconitum genus 식물에서 생성되는 독성 알칼로이드toxic alkaloid인 아코니틴aconi.. 2026. 5. 27. 만만하지 않은 서자들-노상추 일기의 백미 사실 노상추 일기 외에도 부북일기 등 조선시대 당시 출신군관의 일기는 처음이 아닌지라, 노상추 일기는 그 일기에 써 있는바, 영남사족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불만, 이것 때문에 뜬 듯 하다. 부북일기가 그 사료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여성과의 염문에 대한 기록으로 졸지에 유명해 진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사실 부북일기의 저자들이 당시 다른 사족들과 비교해서 그다지 성적으로 분방했던 이들도 아닌듯 한데일기에 그만 덜컥 그 이야기를 남겨 유명해져 버렸던 것처럼, 노상추 일기에서 쓴 것처럼 당시 영남지역이 유독 차별을 받는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서울 근교의 사족이 절대 우위를 점하는 우리 역사에서 볼때 이 지역 사족들이 대거 중앙에서 활동한 16세기가 비정상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노상추.. 2026. 5. 26. 뜯어보면 암것도 아닌 만인소 연명 서명자들 앞에서 만인소 이야기를 한 번 썼는데 좀 더 써 본다. 만인소라는 것이 소두라는 사족 어르신이 있고, 이 사람 발의로 서원과 향교에 통문을 보내 사족들 서명을 받아 완성된다. 흔히 만인소라는 것이 백성의 소리 어쩌고 하지만, 이 만인소가 요즘처럼 무슨 서명 좌판 깔아 놓고 지나가는 사람 서명 받아 제출하거나인터넷 서명받아 국민청원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만인소 서명은 서원과 향교(주로 서원)를 타고 내려갔고, 여기 서명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여기 서명한 사람들은 앞에도 썼지만, 청금록 향안에 이름 올린 사람들과 대개는 겹치는 인물들로, 향촌에서 나름 힘 좀 쓴다는 전통의 호프, 사족들이 되겠다. 이 사람들이 만인소를 쓴 즈음에는 18세기를 넘어 이미 19세기라앞에도 쓴 것처럼.. 2026. 5. 26.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403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