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9649 노인의 기억 집안 고문서 가운데 어느 땅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1767(영조43)년 5칸 짜리 초가와 3칸 짜리 마굿간, 3칸 짜리 초가집이 있는 200평쯤 되는 집터와 집 주위 800평쯤 되는 대밭과 그 주변에 산까지 있는 땅을 15냥에 구입한 문서였다. 가친께 여쭈니 모르겠다고 하시더니, 밤새 기억이 났는지 새벽에 전화를 주셨다. 하남정사 아래 성재 기삼연 선생 생가 땅이라고 하신다. 8대조부 아우가 분가할 때 그 땅을 주었다고 하신다. 의병 독립운동을 하면서 그 집터와 대밭과 산은 모두 남의 땅이 되었다. 최근 문서들을 정리하는 건 구순 노인 총기가 어제 오늘 다르기 때문이다. 김태식 단장이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백과사전 한 질이 사라진다고 했던 말을 실감 중이다. 2020. 9. 23. 현대의 욕망을 투여한 스키타이 여전사 2천500년 전 스키타이 여전사는 중무장하고 싸웠다 2020-09-23 05:10 고대 스키타이 전사 부부 무덤 시베리아서 발견 여성 전사 이례적으로 칼, 도끼 등으로 중무장 전염병으로 사망한 뒤 아기·하인과 함께 매장된 듯 https://m.yna.co.kr/view/AKR20200922167100009?section=search 2천500년 전 스키타이 여전사는 중무장하고 싸웠다 | 연합뉴스 2천500년 전 스키타이 여전사는 중무장하고 싸웠다, 이승민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09-23 05:10) www.yna.co.kr 스키타이라는 유목민족 역시 언제나 영감 혹은 호기심을 유발하는 대표 문화라 그들을 둘러싼 고고학 발굴소식이 심심찮거니와 특히 그 가공할 파괴력으로 각인한 때문인지 서구문화.. 2020. 9. 23. 고래떼, 독살에 걸리다? 호주 해안 고래 90마리 모래톱에 갇혀 떼죽음 2020-09-22 16:11 따라 먹이 사냥하다 방향 잃었을 가능성 180마리도 좌초 상태서 구조 기다려 환경 당국, 동물보호단체 60명 구조 진행 https://m.yna.co.kr/view/AKR20200922121700009?section=international/index&site=hot_news호주 해안 고래 90마리 모래톱에 갇혀 떼죽음 | 연합뉴스호주 해안 고래 90마리 모래톱에 갇혀 떼죽음, 이승민기자, 사회뉴스 (송고시간 2020-09-22 16:11)www.yna.co.kr 고래가 지능이 얼마네 하는 소리 많긴 하다만 이 늇스 보면 천상 물고기 사촌 포유동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함을 보거니와 모래톱 걸렸다는 걸로 보아 밀물 썰물 때를 못 맞.. 2020. 9. 23. 공산성 목곽고(2014) Underground Wooden Storage Facilility Excavated in Gonsanseong Fortress, Gongju from the Baekje dynasty period 공산성 목곽고 발굴현장 남이사 뭘 하건 말건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2014. 9. 23) 2020. 9. 23. 학술대회는 청중이 왕이다 나는 학술대회나 강연회를 가면 언제나 청중을 보며, 청중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파악한다. 내 발표는 언제나 이 청중 기준에서 준비하고 말한다. 그것이 교감이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학부모라면 학부모에 맞은 얘기, 그네들과 주고받을 주제를 이야기한다. 지자체 학술대회를 가면, 항상 그 지역민 시각에서 강연과 발표를 생각하고 준비한다. 그래야 말이 통하는 까닭이다. 한데 내가 본 학술대회 거의 모든 발표가 청중은 아랑곳없이 지가 준비한 얘기만 하더라. 그 강연 발표는 누구나 똑같아서 지가 가르치는 대학 전공 학생들, 혹은 동학 기준으로 하더라. 지 혼자만 지 좋아서 하는 마스터베이션에 지나지 않는다. (2019. 9. 23) *** related article *** 학술대회는 청중이 왕이다 학술대회는 청중이 .. 2020. 9. 23. 광안리에서 광안리다.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은 벌써 30년 전에도 무색했으니 그땐 서면과 더불어 부산의 유흥가를 대표햐는 무대였다. 서면이건 광안리건 해운대가 뜨면서 죽어버렸다. 그나마 나로선 다행인 점은 천지개벽해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지조차 하지 못하게 변해버린 해운대에 견주어선 그나마 광안리는 내가 기억하는 그 편린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민락동 회센터는 자릴 지키되 모습은 변했다. . 전면을 광안대교가 관통하는데 내가 부산 땅을 뜬 1995년 6월엔 설계 중이었다. 이 광안리는 나로선 참말로 상흔으로 점철한 곳이라 내가 다시는 부산 땅은 밟지 않겠노라 맹서한 그곳이다. 그 상흔은 흉터도 없이 사라졌을까? 여전히 맘 한 구석이 쏴 한 걸 보면 덧나지 않았나 한다. 2020. 9. 23. 이전 1 ··· 2230 2231 2232 2233 2234 2235 2236 ··· 327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