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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님들보다 5천년 빨리 황금을 떡칠한 바르나 골드맨 세계 황금 문화사에서 불가리아랑 루미니아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누누이 말했거니와특히 불가리아 동북부 흑해 연안 바르나 네크로폴리스Varna Necropolis에는 출현한 이 "바르나 골드 맨 Varna Gold Man" 무덤은 세상을 경악케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훨씬 듸 오래된 기원전 4500~4200년 전 이 무덤은 금을 가공한 최초의 문명 중 하나인 고대 바르나 문화의 고위층 인물의 무덤이다. 6kg이 넘는 정교하게 세공된 금 장신구와 의례용품으로 장식된 유골은 윤이 나는 석기 도구와 상징적인 유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화려함은 단순한 부의 상징이 아니라, 야금술과 신화가 화려한 장례 의식을 통해 만나는 죽은 자에 대한 영적인 경외심을 보여준다. 오른쪽에 보이는 복원된 그의 모습은 고귀.. 2025. 6. 17.
화산의 역설, 비극과 돈벌이 그 극단 화산은 한반도는 백두산이나 한라산, 울릉도, 그리고 한탄강 지구, 나아가 내륙 중부 지역 곳곳에 폭발 흔적이 남았으나 모조리 화산으로서는 생명이 다한 땅이라, 물론 백두산의 경우 휴화산이라 언제건 폭발 우려가 있다는 말이 있거니와 다만 현재 활동하는 화산이 없어 화산이라 하면 동떨어진 이야기, 나아가 자바섬 므라피나 시칠리아 에트나산처럼 걸핏하면 터지는 외국 화산을 외신을 통해 간접 소비하는 사회이어니와그렇다 해서 먼산 쳐다보기만은 될 수 없다. 내가 언젠가는 이 화산 좀 공부하겠다며 관련 책자 구득해 나름 내 자산으로 삼을까도 했지마는, 아무래도 시급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암튼 이 화산 폭발은 누누이 이야기했듯이 무엇보다 바람이 중요하다. 저 도해 그림을 보면 화면을 바라보.. 2025. 6. 17.
강을 정화하기 위해 강바닥에 묻은 중세의 칼 천 년 된 의식용 검, 네덜란드 강바닥에서 발견 네덜란드 강바닥에서 발굴된 놀라운 중세 시대 칼이 사람들 상상력을 사로잡고 있다.'린스코텐의 검Sword of Linschoten'으로 일컫는 약 1,000년 된 이 무기는 훌륭하게 보존된 군사 기술의 결정체로, 당시의 영적, 문화적 사고를 반영하는 신성한 모티프를 특징으로 한다. 이 칼은 2024년 3월 1일, 위트레흐트Utrecht 바로 서쪽에 위치한 코르테 린스코텐 강Korte Linschoten River을 준설하던 인부들이 점토 덩어리에서 발견했다.철 조각으로 보이는 것은 길이 1미터 중세 검으로, 넓은 크로스 가드cross guard와 11세기와 12세기 전형적인 브라질너트Brazil nut 모양 포멀pommel을 갖추고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2025. 6. 17.
일본 유히가하마 유적에 대해 앞서 쓴 유히가하마 유적에 대해 조금 더 써보겠다. 여기는 필자가 알기로 가마쿠라 시 해수욕장으로 안다. 그런데 가마쿠라 시대는 마냥 좋은 곳은 아니었던 모양으로 전란의 시대라 할 가마쿠라 시대에 이곳은 무사들 사이의 전란 반란이 일어나거나 하면그 처형장으로 쓴 모양으로 이곳에서 발굴한 인골만 현재 4000 개체가 넘는다. 필자가 수십년 동안 걸쳐 모신 조선시대 인골이 200-300분 정도이니 이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인골에서는 앞서 쓴 것처럼 처형의 흔적, 동란의 흔적이 다수 나왔다. 일본사에서는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키는 최후의 전쟁이 벌어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라이벌이라 할 닛타 요시사다가 10만 병사를 이끌고 가마쿠라로 쳐들어가그곳을 지키던 막부군을 전.. 2025. 6. 17.
인골에 보이는 폭력의 증거 김 단장께서 앞서 쓰신 바 고고과학적 측면에서 폭력의 증거에 대해 조금 써본다. 사실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라 과거라고해서 왜 주먹질이 없었겠으며 지나치게 나가면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이 왜 었겠는가.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긴 한데, 이러한 폭력의 증거가 체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가가 어떤 정치적 권력의 출현의 증거로 간주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필자가 조사한 바 있는 인더스 문명도 앞서 한번 쓴것 같지만 이러한 체계적 구조적 폭력의 증거가 많지 않다는 점이 왕릉이라던가 빈부차가 도시 유적안에서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현지의 연구자들을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사실의 하나였다고 기억한다. 필자가 기억하는 바 이러한 구조적 폭력이 가장 처절하게 나타나는 시기의 유적 중 하나가 일본의 중세유적이다.. 2025. 6. 17.
폭력은 인간사회 필연? 1만3천년 전 수단에서 폭력 증거 알려진 가장 초기의 전쟁은 13,400년 전 수단에서 반복된 분쟁이었다. 수단의 선사 시대 묘지 제벨 사하바Jebel Sahaba에 묻힌 사람들은 삶의 여러 시점에서 폭력과 트라우마를 경험한 것 같다. 이 발견은 농업의 기원 이전 폭력의 선사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약 13,400년 된 제벨 사하바는 대규모 분쟁의 징후를 보여주는 가장 초기의 장소 중 하나다. 지역 사회 간 폭력은 사람들이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더 흔해진 것 같다. 이는 약 12,000년 전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벨 사하바가 대표하는 것과 같은 더 많은 이동 커뮤니티 사이에서 조직적인 폭력의 증거는 드물다.묘지에 있는 유해는 1960년대에 발굴되었고, 20구 해골이 부상했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2025.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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