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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 채취, 일제 강탈의 만들어진 신화 이 소나무가 수령 130년이라면 70년전 일제시대 송진 송출 당시 나이는 60살...60살 된 소나무 송진을 뺀다? 너무 젊지 않나? 과연 왜놈 시대에 송진을 뺀 상처일까?   바로 앞 두 사진은 선산 도리사 인근 고송古松이다.이들 소나무 공통점이라면 역시 송진 채취 상흔이 완연하다는 점이다. 저런 소나무는 고찰 인근 소나무 숲에선 흔히 본다.   앞 사진 석장은 하동 쌍계사 뒷산 고목인데 역시 같은 상처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런 상처들이 태평양전쟁시대 일제의 강압적 한반도 수탈의 증언자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저리 채취한 송진을 각종 전쟁물자 연료로 썼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가? 그렇다면 아래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 선 안내판은 무슨 개뼉다귀란 말인가?   이 설명문을 보면, 송진 집중 채취가 이뤄진 .. 2019. 4. 29.
푸른 하늘 끝을 묻는데 허공으로 사라지는 새 한시, 계절의 노래(323) 봄날 절구 여섯 수[春日六絶句] 중 둘째 [송(宋)] 양만리(楊萬里, 1127 ~ 1206) / 김영문 選譯評 봄날 취함은술과 관계 없고 교외 거닐며길도 묻지 않네 푸른 하늘은어디서 끝날까 하얀 새가허공으로 사라지네 春醉非關酒, 郊行不問塗. 靑天何處了, 白鳥入空無. 어린 시절 연을 날릴 때 바람이 좀 세게 불면 자주 연줄이 끊기곤 했다. 줄이 끊긴 연은 너풀너풀 땅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더러는 푸른 하늘 저편으로 가뭇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하얀 점이 되어 사라지는 연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게 저 산 너머에 내가 꼭 가야만 할 어떤 곳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무슨 꽃잎이 피어있을까/ 달이 뜨며는 해가 지며는 꽃은 외로워 .. 2019. 4. 29.
[예고]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우리 조상 분 들은 왜 조선시대 무덤 안에서 미라가 되었을까? 주자가례와 미라에 관한 이야기-. 다음주 금요일 (5월 3일) 부터. 기대하시라-. *** following article ***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1)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1)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필자가 조선시대 미라로 초창기 논문을 낼 때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도대체 왜 미라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조선시대 historylibrary.net 2019. 4. 29.
황룡사에선 아픔이(慶州皇龍寺 / Hwangryongsa Temple Site, Gyeongju) 선도산 너머로 해가 질 겨울 무렵 남산 병풍삼은 월성에 벚꽃이 만발할 무렵 유채 너울 대는 4월 중순 무렵 조생종 코스모스 널뛰듯 하는 여름 무렵 이런 무렵들이면 내가 데리고 간 모든 이가 목놓아 울었다. 기뻐서 울었고 버림받은 억울함에 울었고 보낸 사람 애타서 울었다. 딱 한 사람 이런 모든 걸 보여주고팠던 딱 한 사람 그 사람한테만 보여주지 못해 목이 아팠다. 황룡사는 그런 곳이다 언제나 황홀해서 아프고 쓸쓸해서 아프며 기뻐해서 눈물나는 그런 곳이다. 2019. 4. 29.
Namsansinseong Fortress in Gyeongju (경주남산신성 / 慶州南山新城) Located in the north of Mt. Namsan (南山) in Gyeongju, the capital of the Silla Kingdom, also called 'Silla Namsansinseong (新羅南山新城) ', the fortress was built in the 13th year (591 AD) of King Jinpyeong (眞平王) of Silla. Later in the year of 679 when King Munyumu (文武王) reigned, it was repaired or rebuilt. Much of the walls were destroyed, and the relatively well preserved walls are hard to find. At p.. 2019. 4. 28.
남대문 복원 5년 3개월은 기록적인 공사기간이었다 November 28, 2013에 쓴 글이다. 당시 남대문, 곧 숭례문 복원을 두고 말이 많았거니와, 단청 부실로 촉발한 광범위한 숭례문 복원을 둘러싼 사태에 참다참다 싸지른 글이다. 현재도 참고할 만하다 해서 전재한다. 다만 '놈' 등이라고 쓴 대목은 '者' 등으로 바꾼다. ================= 남대문이 불타고 오년삼개월만에 복원한 일을 두고 무리한 공기단축과 이에 따른 졸속복원이라는 말이 근거도 없이 횡행한다.저들이 이르기를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한데 저런 주장하는 그 어떤 者도 옛날엔 어떠했는지 설명하는 者가 단 한 者 없음이 기이하고 신이할 뿐이다. 대규모 공사 실상이 어떠했는지 단 한 者라도 조사를 해보고 저 따위 소리해야 한다. 경주 남산신성, 진평왕때 육개월만에 저 .. 2019.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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