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2900

[잡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개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계우 그 끄터머리에 한 다리 걸친 내 고민? 그게 무에 대수겠냐마는 이를 나로서는 조금은 고민했다는 말을 남겨두고 싶다. 언제인가 이야기한 듯한데, 국립한글박물관이 따로 있고, 먼저 개관을 해서 한창 운영 중인 상황에서, 저 박물관 등단에 표기수단으로서는 한글, 곧 훈민정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한글의 지나친 침투를 막아야 했으니 그리 되면 자칫 국립한글박물관 아류에 지나지 아니하게 되며, 무엇보다 그리 되면 한글박물관과 차별이 없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와 궤를 같이해서 나로서는 그렇다면 그 자리에 무엇인가를 대타로 밀어넣었어야 했으니, 나 개인으로서는 철저히 한글을 객관화해야 한다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 이에서 하나 문제.. 2024. 10. 7.
[도토리 심판론] (4) 탄닌, 가까이 있다 도토리는 탄닌이라 일컫는 특유한 떫은 성분이 있다. 이걸 그대로 사람이 먹을 수는 없으니 다른 짐승과는 다른 점이다. 이 떫은 성분을 다량으로 함유한 대표 과실은 실은 도토리가 아니라 감이다. 이 감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홍시를 떠올리겠지만, 이 홍시도 저 익은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곶감이라는 게 요물이라, 이건 탄닌 성분 잔뜩 머금은 땡감 상태에서 깎아서 겨울내내 말려 그 성분을 제거한 곶감이 된다. 이 곶감이 언제 등장했는지는 나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땅에 감이 등장한 이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리 조상님들이 그 방식을 알았다고 막연히 본다. 감 사촌 고염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토리를 채집해서 그 특유한 탄닌 성분을 빼내는 시설이 한반도에서 출현했다 해서 김해 비봉리 신석기시대 유적 발굴 .. 2024. 10. 7.
죽었다 깨나도 읽을 만한 논문이 없는 이유 뛰어난 글 발군하는 논문이 발주에서 나올 수는 없다.대한민국 직업적 학문종사자가 쏟아내는 논문 백편 중 99편은 발주에서 비롯한다.노벨상에 버금하는 인문학 업적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딴 거 없다.누가누가 후원 주최하는 무슨무슨 학술대회 발표 치고 새길 만한 글이 있던가?들을 만한 글이 있던가?열정이 아니라 배당에서 나온 글인 까닭이다.그리 쓴 글들을 나중에 묶어 단행본이라 내고는 나 작가요 한다.그 딴 책이 무슨 단행본이겠는가? 2024. 10. 6.
구한말의 가축: 있는 그대로 보고 이유를 찾아라 앞에서도 썼지만, 구한말 가축을 보면, 소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외국인이 찬상한다. 유순하고 힘이 좋고 말도 잘 듣는다. 몸도 크다. 농사소로는 최고다. 말은 이구동성으로 조랑말이라 한다. 성격은 좋지 않다. 놔두면 마굿간에서 자기들끼리도 싸우고 수틀리면 마부 말도 안듣는다. 그런데 적게 먹어도 멀리간다. 여물도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는 경우가 있다. 놔 주면 알아서 주변에서 먹고 온다. 힘도 좋다. 돼지는 작다. 먹을 것도 없다. 까맣다. 성장도 느리다. 왜 키우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숫자도 많지 않아 한 집에 한두 마리 정도다. 돼지는 일제에 의해 무쓸모의 열등 종자로 공격받은 대표적 토종 가축이다. 닭은 알을 많이 낳지 못한다. 그래도 키운다. 들에는 꿩이 많아 닭고기 대신 꿩고기를 더 많이 먹고 .. 2024. 10. 6.
식용이 되어버린 개 개는 모든 가축 중 가장 오래전에 인간에게 길들여진 역사가 있어 농사가 시작되기전 이미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농경사회로 진입하기 이전부터 사람들과 함께 살기 시작한 동물은 개가 유일하다. 그리고 수렵사회의 시기에는 개는 대개 죽은 후에 따로 매장하였고 사냥개로 같이 활동하는 시간도 길어 사람들과 일종의 감정적 유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개를 먹지 않고 죽은 후 매장하는 것인데,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서도 보이고, 한국도 신석기시대에는 개를 먹지 않고 매장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던 것이 농경이 시작되면서 개를 잡아 먹기 시작하는데, 이는 개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이전처럼 감정적 연대를 형성할 기회가 많이 줄어든 탓일 것이라 본다. 일본도 조몬시대에는 개를 매장하다.. 2024. 10. 6.
왕립호텔 혜음원의 탄생 이 혜음원지는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작품이라, 이 발굴을 시작할 무렵만 해도 저 연구소가 경기도 일대 주요한 유적은 거의 독식하며 발굴하던 시절이었으니 마침내 저 혜음원지가 발굴에 들어가며 화려하게 등단하기 시작할 무렵 저를 어찌 규정할지가 나로서도 무척이나 고민이었다. 이를 위해 동문선이 전재한 김부식 혜음원기를 참말로 숙독 숙독하곤 했으니 저 동문선東文選 권 제64 기記에는 고려왕실이 혜음원을 세우면서 그에 즈음해 김부식이 쓴 그 창건 내력을 정리한 혜음사신창기惠陰寺新創記라는 글이 있으니, 이는 고려 산문을 대표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라 나로서는 이 글을 숙독을 거듭하기도 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저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는 박경식 형이 한창 현역으로 활동할 무렵이라 저 혜음원을 하나 상품으로 만들.. 2024. 10. 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