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영조13 '저 나라'에서 쓰는 모자가 뭐 어쨌다는 거냐 영조가 왕위에 오른 지 43년째 되던 1767년 4월 7일, 청나라에 다녀온 동지사 일행이 귀국해 영조에게 인사를 올리러 왔다. 권108에 실린 한 기사는 그날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그린다. 동지사 정사로 다녀왔던 종친 함계군(선조의 손자 평운군平雲君의 손자)이 영조에게 영 엉뚱한 말만을 늘어놓는다.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썼다는 동파관, 그리고 당나라 때 맹호연孟浩然이 썼다는 호연건이 '저 나라'에도 있더이다 이런 얘기만 늘어놓은 것이다. 청나라를 굳이 '저 나라'라고 한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도대체 사신으로 갔다 왔으면 뭔가 영양가 있는 이야기를 보고 들은 게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영조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황하가 맑아지지 않는다더니, 다만 가소로운 일만 듣는.. 2024. 2. 18. 영조의 죽음, 왕은 자주 죽어야 혼란이 덜하다 영조는 재위 52년 병신(1776) 3월 3일 갑술 술시戌時에 실상 숨을 거두었으니, 그럼에도 공식 발상은 이틀이 지난 5일에야 있었다. 실록에는 이 중차대한 사안 전개에 3월 4일자 기록이 몽땅 누락되었다. 이 점이 나로서는 수상쩍기 짝이 없다. (아래서 말하는 것들은 실록 기준이며, 승정원일기가 다행해 남아있어 이보다는 더 상세하다고 한다. 일기는 내가 미쳐보지 못했다. 기호철 선생 전언에 의한다.) 3일자를 보면 "이때 임금이 잠든 듯하여 오래 가래 소리가 없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문 밖에 물러가 엎드렸다. 조금 뒤에 왕세손이 울며 김상복 등에게 말하여 진찰하게 하였는데, 오도형이 진후診候한 뒤에 물러가 엎드려 말하기를, “맥도脈度가 이미 가망이 없어졌으니 이제는 달리 쓸 약이 없습니다. 한 냥중의.. 2023. 1. 3. 너무 아는 게 많아 신하들이 개고생한 영조 장수한 영조는 상상을 초월하는 방대한 어제시문을 남겼다. 중요한 책의 서문은 거의 다 썼고, 백성에게 포고한 윤음도 거의 모두 직접 지었다. 보통 윤음은 지제교에게 짓게 한다. 정조 《홍재전서》에 친제문으로 실린 글을 《승정원일기》에서 찾아보면 지제교 아무개가 지었다고 되어 있어 거의가 대작이다. 시문을 보면서 일부만 떼어서 각각 책 한권으로 구성할 것들이 적지 않다. 치료차 온양온천을 오가며 남긴 시문은 그대로 하나의 여행기가 되고, 생모 숙빈 최씨를 모신 소령원 제실에서 책을 읽고 직접 농사도 지으면서 남긴 수많은 시문들은 단지 생모에 대한 애뜻함에 그치지 않는다. 영조는 죽을 때까지 책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읽고 쓰고 사유했다. 사실상 지식 수준도 집권 시기 내로라하는 경연관을 능가해서 경연 때마다.. 2022. 7. 24. 춘배는 모르는 영조 현판 '억석憶昔' 이야기 오늘 춘배가 암것도 모르는 지방 처자들 모시고선 조선 궁궐 현판 전시장을 안내하며 한창 야부리를 깠다. 무더위에 그 어중간 감시원들 간이 의자에 앉았다가 잠깐 잠이 들어 그 장면이 몰카 촬영되고 그것이 또 춘배를 포함한 두어 사람한테 공개되는 바람에 개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넘들이 볼 때야 혹 연출이란 말도 나오겠지만 그대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저 깰꼬닥 사건이 있기 직전 춘배가 신나게 아는 체를 했으니 지방 처자들 맞장구에 더 신이 난 것이 분명했다. 신석기시대 사냥도구 공부하던 친구가 어쩌다 전시과장 되니 아주 신났다. 난 박사과정 수료요 석사가 한국고대사 가운데 쩜 찍고 고고학이다. 엄연한 고고학도요 역사학도이며 단군조선 이래 이리 똑똑한 기자 없고 이리 똑똑한 역사학도 고고학도 없다. 누가 감히 .. 2022. 7. 5. workaholic 영조 할배 영조는 workaholic이었다. 잠도 없이 일을 무진장하는 사람이었다. 영조가 왕위에 오르고서 노론계 김동필을 도승지로 삼자, 소론인 영의정 이광좌는 그 꼴을 보지 못하고 어떻게든 몰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조보에 전날 거조擧條를 미처 내지 못한 것을 빌미로 어전에서 매서운 공격을 감행했다. 이광좌 : "요즘 승정원이 게을러 터져 전날 거조擧條를 조보에 내지도 못하는데, 제가 승지를 할 때 이런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추고하소서." 영조 : "도승지 왜 그랬어?" 김동필 : "선왕 때까지 거조擧條는 종이 한 장도 다 채우지 못했는데, 지금은 한아름인디요?" 이광좌 : "그래도 다음날 내야 혀!" 김동필 : "승지, 주서, 한림, 서리까지 죄다 올인해도 벅찬디요?" 이광좌 : "그래도 해야 혀!" 영조 .. 2021. 7. 4. 겨울속 융릉과 건릉 2021. 1. 5. 안녕 친구들! 무지무지 추웠던 어제, 화성이 나와바리리고 하는 지인을 만나 융건릉에 다녀왔어요. 융건릉이라 편히 부르지만 실은 융릉과 건릉인거 다들 알고 계시죠. 부끄럽지만 저는 이곳에 처음 와 봤어요. 사실 2016년인가? 답사로 수원 화성을 왔었는데, 그때도 무지무지 추운 겨울이었죠. 수원 화성 답사을 마치고 다음 코스인 융건릉으로 왔는데, 늦게 도착해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입구에서 돌아갔던 적이 있어요. 다들 아쉬워했지만 저는 정말 좋았어요. 무지 추웠거든요. 그래요, 문화유산 보는 것 보다 따뜻한게 좋은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 곳이었은데, 제가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왔어요. 오늘도 역시 춥지만, 기분은 정말 좋아요!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해야해요? ㅎㅎ 모두들 아시겠지.. 2021. 1. 6.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