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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71

때 벗기러 동래온천 가신 이규보 선생 처음엔 쓸쓸하니 찬 샘물 솟나 싶더만 / 瑟瑟初疑瀉泠泉 도리어 자욱하니 저녁 연기 나는 듯 / 濛濛還似起昏煙 산 속에 들어앉아 섣달 보내는 고승은 / 高僧坐度山中臘 나물 삶고 차 달일 제 불 필요 없으리 / 煮菜嘗茶不火煎 물 솟는 곳에 유황 있다는 말 믿지 않고 / 未信硫黃浸水源 되레 양곡에서 아침 해가 목욕하던가 싶었지 / 却疑暘谷浴朝暾 다행히 외진 곳이라 양귀비가 오지 않았으니 / 地偏幸免楊妃汙 지나는 길손 잠깐 씻어본들 뭐 어떠하리 / 過客何妨暫試溫 온천溫泉 밑에 욕탕지(목욕할 수 있게 만든 둠벙)가 있으므로 목욕은 반드시 여기서 하게 된다. - 전집 권12, 고율시, "박인석朴仁碩 공과 동래東萊 욕탕지浴湯池로 떠나려 하면서 입으로 부르다 2수 同朴公將向東萊浴湯池口占 二首" 이규보가 경주 민란을 진.. 2023. 2. 14.
술꾼의 술병 예찬에서 뽑아낸 세 가지 이야기 술병이여 술병이여 / 壺兮壺兮。 술을 채우니 한 말 두 되라 / 盛酒斗二。 따르고는 다시 채우니 / 傾則復盛。 어느 땐들 취하지 않으랴 / 何時不醉。 나의 몸을 높이고 / 兀我之身。 나의 뜻을 활달하게 한다 / 豁予之意。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니 / 或舞或歌。 다 네가 시킨 것이로다 / 皆汝所使。 내가 너를 따르는 것은 / 隨爾者予。 다만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 / 但不竭耳。 - 후집 권11, 찬贊, "술병명酒壺銘" 1) 백운거사가 좀 과하게 술을 마시면 춤추고 노래부르는 것이 버릇이었던가 보다. 다행스럽게도 옷은 안 벗은 모양. 2) 두이斗二를 기존 번역은 '두 말'이라고 풀었다. 고려시대의 한 말[斗]을 지금 식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에서 고려 도량형이 송나라 도량형과 같다고 한 걸 믿고 환산해보.. 2023. 2. 13.
낙방한 친구를 위로하는 이상국 시 한 편 "시험을 망쳤어 / 오 집에 가기 싫었어 / 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 한스밴드, "오락실" 중에서 이 노래도 이젠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이 노랫가사만큼이나 낙방거자落榜擧子의 마음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 앞으로 또 나올 지는 모르겠다. 신라 원성왕 때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가 시행된 이래, 늦추어 보아도 고려 광종 때 과거科擧를 시행한 이래 이 땅엔 수많은 낙방생과 n수생들이 있었다. 우리의 이규보 선생도 물론 시험에 여러 차례 미끄러졌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기 전이었는지 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고씨 성을 가진 그의 벗이 미역국을 먹고 말았다. 이에 이규보 선생은 (아마도 술을 사주면서) 그를 위로하는 시를 한 수 지어주었다. 시험장에서의 득실은 바둑과 같을지니 / 文場得失正如碁 한 번 실.. 2023. 2. 5.
백운거사, 소성거사를 만나다 원효대사元曉大師라고 하면 주무시다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득도했다는 일화(실제일 가능성은 적다고 하지만)나 개울에 발을 헛디뎌 이룩한 요석공주와의 로맨스로 유명할테지만... 원효라는 분을 그렇게만 평가하고 기억한다면 신라의, 나아가 한국 불교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그분의 사상을 논하려면 책 하나로도 모자랄테니 넘어가겠지만 말이다. 그분이 파계한 뒤에는 머리를 기르고 중생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를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였다. 그는 신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왕조가 바뀐 뒤에도 많은 이들의 큰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머리 기른 원효 스님의 초상을 개인적으로 모셨던 스님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의 술꾼 이규보 어른이 그 소성거사의 초상을 보고 글을 하나 올린 것이 있다. 내가 영聆 수좌首座 족.. 2023. 1. 7.
이규보 선생, 까만 토끼 해를 謹賀하다 1. 백운거사 생전의 계묘년은 1183년, 그의 나이 열여섯이다. 한창 오세재, 임춘 같은 선배들 따라다니며 술 얻어마시던 무렵이다. 그러니 이 그림처럼 장년의 나이로 묘사한 건 좀 아니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2023년 계묘년을 축하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못 그릴 일도 아니지 않을까. 2. 술 마시고 흥이 일면 백운거사도 그림을 좀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잘 그리지는 못했던지 속 시문이나 묘지명에서도 그림 솜씨 얘기 하나 없다. 그래서 족자 속 黑兎가 괴상한 건지도 모른다. 3. Cheers! 2022. 12. 30.
거미줄 걸린 매미를 풀어주며 by 이규보 그동안 좀 격조했는데, 모처럼 짬이 난 김에 별밤 들으면서 한 장 그려보았다. --- 저 교활한 거미는 그 종류가 아주 많구나. 누가 너에게 교활한 재주 길러 주어 그물 만들 실로 둥근 배를 채웠는가. 어떤 매미가 거미줄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길래 내가 차마 듣다 못하여 놓아 주어 날아가도록 했더니 옆에 서 있던 어떤 자가 나를 나무라면서, “오직 이 두 미물微物은 다 같이 하찮은 벌레들인데 거미가 자네에게 무슨 손해를 끼쳤으며 매미는 자네에게 무슨 이익을 줬기에 오직 매미만 살리고 거미는 그만 굶겨 죽이려 하느냐? 이 매미는 자네를 고맙게 여길지라도 저 거미는 반드시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다. 매미를 놓아 보낸 것에 대해서 누구든 자네를 지혜롭다 하겠는가?”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이마..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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