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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내내 한반도 밖에 위치한 울릉도 정광태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은 울릉도와 독도가 이사부 정벌 이래, 그러니 신라 지증마립간 이래 두 섬이 죽 한국 땅이라 했지만 웃기는 소리라 놀랍게도 울릉도는 고려시대 내내 고려 땅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리만치 철저히 한반도 밖에 위치한 별도 문명 문화권이었다. 고려사 권58卷 志 권 제12 지리地理3 동계東界 울진현蔚珍縣을 이르기를 본래 고구려 우진야현于珍也縣【고울이군古亐伊郡이라고도 한다.】으로, 신라 경덕왕 때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 군郡으로 삼았다. 고려 때에 현(縣)으로 강등시켜 현령(縣令)을 두었다[置令]. 고 하고는 그에다가 울릉도鬱陵島를 첨부하기를 현縣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이라 불렀고, 무릉武陵 혹은 우릉羽陵이라고도 불렀으며 사방이 백리이다. 지증왕 12년(5.. 2024. 1. 25.
[독설고고학] 내가 정통고고학을 전공했다면 뭐하긴 뭐해? 토기 그림 그리면서, 그 변천 양상을 따지면 이건 경주식 신라토기, 이건 의성식 토기하면서 지만 아는 그림 잔뜩 나열하고서는 이건 5세기4사분기, 이건 6세기 1사분기 초기 하며 그걸 논문이라 쓰고 자빠졌거나 그것이 지겨워지는 순간 성곽으로 눈길 돌려서는 아 이건 신라 초축 고려 보축하면서 이런 기술은 한반도에서 먼저 나타나 일본으로 전래되어 나타나니, 동아시아 문물교류양상을 훌륭히 증명하므로 세계유산 크라이테리아 넘버 1원에 해당하니 세계유산이 될 만하다는 보고서나 쓰고는 연구비나 받아먹고 있겠지? 나한테 가장 큰 축복은 선생이 없고 전공이 없다는 점이다. 선생이 있었더래면, 고고학 전공이었더래면 지금과 같은 이야기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채 저 그림 그리고 축조술 논하는 일을 내 본령.. 2024. 1. 24.
자작나무 껍질에서 뽑아낸 기름 https://www.youtube.com/watch?v=uHpYwZ71jXg 이 동영상은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서 기름을 짜내는 방법을 소개한 것으로 그 방식은 실로 간단해서 깡통 두 개와 장작불로 충분하다. 큰 깡통에다 자작나무 껍질을 잔뜩 채우고, 그 한쪽에다가 구멍을 뚫고서는 작은 깡통을 잇대어 땅을 파고 그 작은 깡통을 아래로 두고, 위로 노출된 큰 깡통 위로 두세 시간 장작불을 피우면 자작나무 껍질에서 흘러내린 기름이 아래 작은 깡통으로 흘러내리는 구조다. 위 큰 깡통 속 자작나무 껍질은 완전히 타서, 기름기를 빼낸 재에 지나지 않아 푸석푸석 바스라지니 버린다. 자작나무는 흔히 그것이 탈 때 자작자작하는 소리를 낸다 해서 그리 일컫는다 하듯이 그만큼 그 이파리에는 기름기가 많다는 뜻이니, 그에다.. 2024. 1. 24.
여진 소굴로서의 울릉도 여진이 약탈경제 기반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그래서 유목민 비스무리한 족속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그네를 둘러싼 가장 큰 착란이 그들이 바다에 약할 것이라는 실로 막연한 생각이 점철하지만, 그들은 해전海戰의 명수였으며 이들보다 바다를 잘 이용한 민족은 동북아시아에서 찾기 힘들다. 그런 면모는 고려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마는, 주로 말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삼국시대 역시 그에 못지 아니해서 동해안을 치는 말갈은 예외없이 바다를 통한 침략이었다. 신라가 북방으로 치고 올라가고 그곳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이 여진 혹은 말갈은 골치였으니, 동해를 주름잡은 그들의 해군력을 약화하고자 단행한 일이 바로 이사부에 의한 우산국 정벌이었다. 신라가 왜 우산국을 쳤는지는 언급이 없다. 하지만, 당시 추세를 .. 2024. 1. 24.
영산강 유역의 벌집형 고분과 토지이용률 나는 앞서 여러 번 경제적인 이유, 특히 토지 이용률 문제로 신라 적석목곽분이 퇴출되었다고 말했으니, 그에서 비롯되어 봉분 하나에 여러 사람, 특히 부부를 살처분하는 석실분이 등장했다는 말을 했거니와, 이런 문제에 봉착하기는 영산강 유역도 마찬가지라. 실로 희한하게도 저 머나먼 경주 땅에서 경제성 제로인 적석목곽분이 퇴출되던 6세기 무렵, 영산강 유역에서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으니, 이들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타개해나가니 그것이 바로 벌집형 고분(아파트형 고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이다. 이 벌집형 고분은 그 자체가 씨족, 혹은 가족공동체라. 봉분 하나에다가 매장주체시설을 많게는 수십 개를 조성한 공동묘지를 말한다. 동시대 다른 곳 공동묘지가 구역으로 중심으로 발달했다면, 이곳은 봉분 하나.. 2024. 1. 24.
[독설고고학 ] 나는 왜 독설고고학 연재를 계속하는가? 나를 아끼는 주변에서는 자꾸 이제 그만하라, 그만하면 됐다고 뜯어말린다. 그럼에도 내가 줄곧 저 [독설고고학] 시리즈를 연장하는 까닭은 그 심각성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보는 까닭이다. 언제까지 껍데기만 매달려 이게 어케 만들어서 어케 변했네 하는 일로 고고학도연하게 구는 일을 더는 구토 나서 참지 못해서다. 진짜로 미안하나, 난 당신들 學으로 보지 않는다. 그게 무슨 고고학이란 말인가? 개돼지도 쳐다보지 않을 글을 논문이랍시고 써 제끼며 학도연하게 구는 꼴을 더는 참을 수 없다. 내가 이쪽 고고학이라는 데 문을 들어선지가 20년이 넘어 30년을 달리는데, 어찌하여 30년 전 문제의식이 눈꼽만큼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이며, 외려 퇴보를 거듭한단 말인가? 지구상 이런 학문이 계속되는 곳은 오직 대한민국과.. 2024. 1. 24.
[독설고고학] 전기밥통 그 유구함을 현창하며 남영동 사저에서 쓰는 전기밥통이다. 전기만 있음 어디서건 쓰는 휴대용이다. 이 휴대용 전기밥통이 얼마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지 아는가? 계속 소개하는 거란 벽화다. 뭐가 다른가? 다른 거 눈꾭만큼도 없다. 연료가 불에서 전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고고학이 옛 문화 복원? 복원해서 뭐하게? 고고학은 이름부터 바꾸어야 한다. 考現學이다. 먹고 자고 싸는 문제를 팽개친 학문이 어찌 인문학이겠는가? 쭉정이 그릇 자체가 중요한가 그것이 내포한 의미가 중요한가? 2024. 1. 24.
1만년 전 구석기인이 씹다 버린 껌을 분석했더니 1만년전 중석기시대 스웨덴 서부지역 수렵채집민 유적에서 발견된 당시 사람이 씹다 버린 껌 잔유물 치아 흔적을 분석한 결과 박테리아를 발견하고 그 분석을 통해 당시 낮은 치아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고 한다. 덤으로 헤이즐넛, 사과, 겨우살이, 여우, 청둥오리, 삿갓조개, 송어 등을 섭취했음이 확인되었다고. Chewed Birch Pitch May Reflect Hunter-Gatherers’ Dental Health Social Bookmark Button Share Friday, January 19, 2024 https://www.archaeology.org/news/12066-240119-mesolithic-birch-pitch?fbclid=IwAR2abjD0SSyY4zBOr0bMMMUyEbH8RH5-L.. 2024. 1. 24.
걸레가 되어 돌아온 불후의 저서 이런 독자도 있다. 반영할 건 하고 그냥 놔두어도 대세 지장없는 건 놔두었다. 《직설 무령왕릉》이 걸레가 되었다. (2017. 1. 24) *** 저 졸저는 내가 해직되고 나서 반년 뒤쯤인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를 통해 출판한 것이라, 그 책을 숙독한 어느 독자가 저와 같이 걸레를 만들어 보내준 것이다. 아마 초판이었을 텐데, 저 지적 사항 중에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본 것들은 놔두고, 명백한 오류나 오타 같은 데는 2쇄에서 바로잡았다고 기억한다. 저런 독자가 당연히 감사하기 짝이 없다. 한데 곰곰 생각하면 예컨대 저런 독자가 내 상관이라면? 아찔해지기도 한다. 돈다. 저런 엄청난 일을 벌인 사람은 임형진 이라고 박아둔다. 동명이인으로 저 호남땅 고고학을 독식하는 그 임형진일 수는.. 2024. 1. 24.
일본 가장 오래된 인골, 알고 보니 곰뼈? 일본 고치현에서 1950년대 발견된 우시가와[牛川]인-당시 일본 최고의 화석인골-의 인골에 대한 분석결과 곰뼈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화석인골은 아니지만 이후 연구에서 화석인골 연구사에 있어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가진다고 합니다. 고고학 자료의 연구는 그 결과가 기대와 다르더라도 이를 통해서 새로운 시각이나 발전을 가져올 수 있기에 이 화석의 정체가 곰이 되더라도 중요한 성과였음은 분명합니다. 2024. 1. 24.
남북문제, 하나를 향한 중앙집권에의 욕망 요새는 조금은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은데,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런 성향이 두드러진 것이 아닌가 하는데, 첫째 한반도가 작금의 남북으로 두 정치체로 갈라진 현상을 두고 왜 그것을 분단으로 보는가? 둘째 그것을 반드시 합쳐야 하는가? 이 두 가지에 대한 근간에서의 의문이 종래보다는 더 강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저 말은 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본래 하나였던 것이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거니와, 그래서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욕망 혹은 당위의 근거가 된다. 이를 간단히 통일운동이라고도 할 만한데, 강제로 분단되었다는 것이 합쳐야 한다는 전제가 되는가? 그런 당위는 윽박이 아닌가? 이런 점들을 이제는 물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저 통일운동을 볼 때마다 한국역사학이 주.. 2024. 1. 24.
거란 벽화에서 푸는 초두의 비밀 사진은 4년 전 꼭 오늘, 2020년 1월 24일 우리 THE HERITAGE TRIBUNE가 소개한 적이 있는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이른바 초두鐎斗 라는 유물이라. (맨아래 첨부 기사 참조)일명 조두刁斗라고도 한다는 이 유물을 내가 볼 때마다 한국고고학이 설명하는 그 초두 맞는지를 매양 의심한다 했거니와 간단히 말해 저 생긴 양태를 보면 누가 봐도 조리도구 요리도구다. 물론 조리도구 요리도구를 임금 거둥이나 군대에서의 행진에서 무엇인가 신호를 보내기 위한 용도로 전용할 수는 있겠지만, 언제나 나는 저것이 과연 무슨 소리를 낼 만큼 악기 기능도 겸했는가를 의심했다. 저건 누가 봐도 휴대용 조리도구다. 그런 점에서 얼마전에 우리가 소개한 적이 있는 거란 벽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이 장면이 그.. 2024. 1. 24.
절풍折風과 에보시烏帽子 일본사를 보다 보면 저건 한반도에서 간 것 같은데? 싶은데도 수백년이 사이가 비어 있는 경우를 꽤 여러 번 본다. 대표적인 것이 절풍과 에보시. 필자가 보기엔 일본의 에보시는 어떤 방식이건 한반도 삼국시대 절풍 영향을 받은 복식이다. 에보시는 전국시대에도 성인식 후 착용했고 무가에서도 매우 폭넓게 이용하던 관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상류층에는 이 에보시와 거의 비슷한 관을 쓰고 있고 이를 고구려에서는 절풍, 신라나 백제에서도 유사한 관을 쓰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양자를 연결시키려 보면 막상 수백 년 공백이라면 공백이 있다는 것이 문제겠다. 또 다른 예. 일본불교에는 전수염불專修念佛, 염불을 죽도록 암기하여 성불하자는 교리의 불교들이 꽤 있다. 그런데 .. 2024. 1. 24.
김은부의 딸 색공色供이 제기하는 의문 앞서 본 고려사 김은부金殷傅 열전에는 그가 수주水州 안산현安山縣 출신이라 했으니, 이곳은 지금의 수원과 화성 정도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는 저런 표현으로는 알 수 없다. 누가 어디 사람이라는 기록이 그가 반드시 거기서 나고 자랐다는 의미가 아닌 까닭이며, 엄밀히는 그 조적祖籍을 말하는 까닭이다. 이 열전에서 우리가 주목할 다른 대목이 있다. 성종成宗 때 견관승甄官丞을 지냈고, 목종穆宗 때에는 여러 차례 전임하여 어주사御廚使가 되었다가, 현종顯宗 초에는 공주절도사公州節度使가 되었다. 왕이 거란契丹을 피하여 남쪽으로 피난하다가 공주公州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김은부가 예를 갖추어 교외에서 마중하면서 (하략) 이를 보면 그는 성종 시대에 중앙 관료 사회에 편입되어 공무원 생활을 하다.. 2024. 1. 23.
정조는 근대적 존재인가 항상 그것이 의문이었다. 정조는 근대적 인물인가. 정조의 주장은 당시 집권 서인의 사유의 대척점에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정조는 같은 이야기를 사대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군왕의 입장에서 한 것 뿐이다. 같은 소리다 결국엔. 근대성을 함유한 정조가 반근대적인 신하들에 의해 살해되어 한국이 결국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공상이다. 둘 다 반동적이다. 다산? 근대성을 인정할 수 없다. 다산의 어디가 근대적이라는 것인가. 18세기 조선사는 바닥부터 다시 써야 한다. 2024. 1. 23.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역사중점연구 2024년 과제 공모 서울역사중점연구 과제 공모 서울역사편찬원은 서울역사의 미개척, 취약 분야의 연구를 중점 지원하여 '서울역사중점연구'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2024 과제 공모에 역사 연구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신청기간 : 2024년 1월 15일 ~ 2월 1일 17:00 📌 제출서류 : 과제공모신청서 및 연구계획서 각 1부 📌 신청방법 : 방문, 우편, 이메일 제출 중 택1 📌 결과발표 : 2024년 2월 중, 홈페이지 공지 및 개별 통보 2024. 1. 23.
거란 침공에 부활의 팡파르를 울린 팔관회 고려 성종은 종교 성향이 좀 묘한 구석이 있어, 정치에서는 철저히 유가 지향을 보인 반면, 그 시대 국교라 할 만한 불교 역시 열심히 신봉했다. 이 둘은 주자성리학이 착근하기 전에는 실상 그닥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유불도儒佛道 중에서는 유독 불교랑 도교가 서로 맞지 아니해서 죽자사자 대판 쌈박질을 벌였지만, 그에서 유교는 한 걸음 비켜 나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를 보면 둘은 지향점, 혹은 착근한 데가 달라서였다고 본다. 물론 이것도 주자성리학 이전이라, 중국에서도 중당 무렵 한유와 이고 시대가 되면, 이 두 사람은 원리주의 유가 신봉자라, 정치는 물론이고 여타 생활 분야에서도 불교가 활개하는 모습을 용납치 아니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것이 결국 북송 남송 시대가 개막하면서 유교가 .. 2024. 1. 23.
루마니아 진출을 선언한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루마니아 국립농민박물관(관장 Nitulescu Virgil)과 문화교류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23일 체결했다고 이날 말했다. 이를 통해 두 기관은 앞으로 5년 동안 양국 문화유산 조사 연구, 심포지엄·세미나 등 공동 개최, 문화유산 관련 전시·교육·보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 활동을 한다고 한다. 양측을 대표해 박문수 관장 직무대리와 니출레스쿠 빌질(Mr. Nitulescu Virgil) 관장이 서명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체자르 마놀레 아르메아누(H.E. Mr.Cezar Armeanu) 주한 루마니아 대사가 동석했다. 루마니아 카운터파트 국립박물관은 올해 설립 150주년이라 한다. 민박의 루마니아 진출은 나로서는 처음 듣는 얘긴데, 현장 떠나니 개털 되는구나. 말 나온 김에 올 하.. 2024. 1. 23.
잘생겼다는 좌복야, 하지만 드라마 속 좌복야 유진은? 작금 방영 중인 고려거란전쟁 고려 조정 주요 인사 중 넘버원 재상에 해당하는 인물로 일반에는 그닥 익숙하지 아니한 유진劉瑨이라는 사람이 주요 장면마다 등장해 정국을 쥐락펴락한다. 바로 아래 장면이 개중 하나인데.... 저 배우가 조희봉이라는 친구라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배우다. 분장을 저리해서 그렇지 나보다도 훨씬? 젊다. 극중에서는 상서좌복야尙書佐僕射 혹은 좌복야라는 칙책으로 일컫는데, 상서성을 이끄는 두 주축을 각각 좌복야와 우복야라, 이쪽에서는 왼쪽이 오른쪽보다 시종 높임을 받았으니 우의정보다 좌의정이 한 끝발 높은 이유가 이에서 말미암는다. 조희봉은 독특한 발성 혹은 톤으로 나름 유진 캐릭터를 살리고자 한 모양인데, 저 정도로 조정에서 잔뼈가 굵은 관료는 능수능란하기가 고건 같은 총리라 보.. 2024. 1. 23.
임정의 시각으로 식민지시대를 재단할 수는 없다 작금 한국근대사, 특히 식민지시대를 보는 시각은 압도적인 임정 중심의 그것이다. 모든 사안을 임정 주체로서 놓고는 재단한다. 이 임정 주체의 사관이 의미가 없을 수는 없지만, 단일하다는 데 심각성이 있고, 무엇보다 이 시각으로는 막상 식민지 조선을 산 2천만 조선인을 객체화하고, 재단의 대상으로 삼는 데서 더 큰 심각성이 도사린다. 임정의 시각에서 보면 조선에서 식민지 통치를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행위가 반역이 된다. 군수가 되고,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경찰이 되고 면서기가 되는 그 자체가 모두 민족의 반역이 되어 친일이라는 이름으로 처단된다. 국선에는 출품조차 해서도 안 되고, 창씨개명을 해도 그 자체가 수치의 대상이며 친일을 형성하는 1 준거가 된다. 조선 내에서 힘을 키우자는 이른바 자치운동.. 2024. 1. 23.
총독부는 일본이 아니다! 식민지시대 연구에서 다른 큰 문제가 바로 저것이다. 조선총독부를 제국 일본 전체를 움직인 내지 일본 정부랑 동일시하는 시각이다. 제국주의가 그렇게 단순할 것 같은가? 조선총독부가 내지 일본 정부에 고군고분했을 것 같은가? 천만에. 입만 열면 일본 정부 욕했다. 저 씨불 것들이 돈도 안 주면서 잔소리만 열라 많고 간섭은 열라 한다고 입만 열면 씹어돌렸다. 총독부한테 내지 일본 정부 혹은 제국의회는 적이었다. 싸워서 투쟁해야 하는 적이었다. 때로는 읍소하고, 때로는 협박하고, 이렇게 하면 우린 못 해먹는다. 이 고전적인 길항이 총독부랑 내지 일본과 시종한 관계였다. 총독부는 독자적인 법률 제정권이 없었다. 법률은 지들끼리 내지에서 행정부랑 의회 지 맘대로 하고서는 총독부에는 고물 하나 던져줬다. 그래서 나온.. 202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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