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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시작과 쿄토: 오닌의 난[応仁の乱] 전후 (1467) 쿄토 이야기를 시작하는 김에 좀 더 써 본다. 오닌의 난 (1467)은 우리나라 조선 세조 때 해당하는 사건으로 일본에서 무로마치 막부가 사실상 붕괴하고 전국시대가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때가 되면 쿄토가 어떻게 바뀌는가. 이렇게 바뀐다. 지금도 쿄토에 가면 상경上京과 하경下京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원래 헤이안쿄平安京 시대에는 상경과 하경이라는 지명은 없었다. 이 지명이 나오게 되는 것은 대략 오닌의 난 전후한 시기부터로, 무사들 사이에 싸움이 시작되니 쿄토가 초토화해서 시가지가 전부 사라지고 성채에 둘러싸인 두 개 시가지만 남게 된다. 이 중 북쪽의 상경과 남쪽의 하경인데 북쪽 상경이 바로 덴노가 살던 쿄토고쇼[京都御所]가 포함된 지역으로 지금도 쿄토 가면 볼 수 있는 니조성二条城이 있는, 쇼군 저.. 2024. 1. 20.
일본의 천도: 새로운 땅 찾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 중에 고대 일본의 천도에 대한 기록은 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평가물어]에 좀 나와 있다. 요약하면,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평천성, 1118~1181)가 치세 중에 도읍을 헤이안쿄平安京[평안경]에서 지금의 고베시 인근인 후쿠하라로 옮기려 한다. 여기는 딱 6개월 정도 버티다가 못버티고 다시 헤이안쿄 (쿄토)로 돌아간 것으로 나오는데 후쿠하라로 천도하기 전의 정황을 보면 관리를 보내서 먼저 측량을 하게 한다. 주작대로와 조방을 정하는데, 덴노가 머물 공간에 이미 귀족의 저택이 있는 경우 이를 덴노가 받는 대신 귀족에게는 벼슬을 내리는 장면이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이렇게 했는데도 장소가 좁아 결국 후쿠하라 천도는 실패한다. 조방제가 완비된 도성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지.. 2024. 1. 20.
책을 탈고하며 서문을 쓰다 책 한 권을 탈고했다. 영문으로 쓴 편집본이고 출판사와 계약은 아직 안 한 상태다. 아마존을 통해 영미권으로 출시할 생각이다. 아무도 안 볼 수도 있겠지만, 지난번 미라 책도 생각지도 않게 전 세계적으로 E book이 삼만 부 가까이 읽힌 모양. 이번에도 출간해 봐야 알 것 같다. 얼마나 팔릴지는. 탈고하고 서문을 쓰는데, 김부식의 진삼국사표는 정말 명문이라는 생각을 새삼 한다. 臣某言。古之列國。亦各置史官以記事。故孟子曰。晉之乘,楚之擣扤,魯之春秋。一也。惟此海東三國。歷年長久。宜其事實。著在方策。乃命老臣。俾之編集。自顧缺爾。不知所爲。中謝。 伏惟聖上陛下。性唐堯之文思。體夏禹之勤儉。宵旰餘閒。博覽前古。以謂今之學士大夫。其於五經諸子之書。秦漢歷代之史。或有淹通而詳說之者。至於吾邦之事。却茫然不知其始末。甚可歎也。况惟新羅氏高句麗氏百濟.. 2024. 1. 20.
[러시아] 아나스타샤는 그곳에 있을까, 상트페테르부르크 피터와 폴 대성당 Peter and Paul Cathedral 러시아 제국 마지막 황제(차르) 니콜라이 2세의 막내딸이자 러시아 내전(적백내전) 당시 온 황실 일가가 처형되었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제기되어 온 생존설로 인해 유명해진 아나스타샤(아나스타시아)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Анастасия Николаевна Романова.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무덤이 있는 곳,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안의 '피터와 폴 대성당'. 이곳엔, 정말 그녀가 잠들어 있을까? https://maps.app.goo.gl/CoeAS36PG6ZbKsvz8 상트페테르부르크 · 상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상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www.google.com https://maps.app.goo.gl/ShE3tTva4ZE4STog6 피터와 폴 대성당 · Peter and P.. 2024. 1. 20.
[근간예고] 상나라 정복翦商: 은주 혁명과 역경의 비밀 [근간 예고] 다음주 화요일에 인쇄 들어가는 중요한 책이 있다. 이란 책이다. 중국 고대 하상주 시대 1000년, 특히 상-주 교체기를 집중해서 다룬 고고학 책인데 936쪽 벽돌 규모이고, 내용도 그만큼 알차다. 중국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문학 출판사인 광서사대 출판사에서 나와 1년 동안 40만부가 팔린 대형 베스트셀러이며, 지난해 30대 호서에도 선정된 문제작이자 화제작이다. 우선 이 책은 방대한 분량임에도 놀라운 흡입력과 새롭게 알게 되는 역사적 사실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마 최근 십수 년 사이에 나온 고고학 관련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가장 임팩트 있는 정설定說 폭격기라 할 만하다. 추천 서문을 쓴 원로 고고학자 쉬훙 교수는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다"라고 했으며, 이 책을.. 2024. 1. 20.
충주 누암리고분 忠州樓岩里古墳 충주 누암리 가-50호분 단면 모형으로 최근 개소한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마당에 재현했다. 누암리고분군과 이 고분 설명문은 다음과 같다. 충주 누암리고분군 忠州樓岩里古墳群 충청북도 충부시 중앙탑면 누암리 산1번지 일대 사적 제463 신라 진흥왕 18년(557)에 충주지역에 설치한 국원소경(國原小京)의 운영과 관련된 신라시대 대규모 집단무덤이다. 충주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누암리 일대에 270여 기 고분이 7개 구릉지에 나뉘어 분포한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는 현재 정비복원된 가 구역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주류를 이루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을 비롯하여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분橫口式石室墳], 돌방무덤[石槨墓]이 확인되었다. 그중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 2008년에 조사한 가-.. 2024. 1. 20.
헤이안쿄: 서기 800년 경 - 서기 1000년 경 서기 800년 경, 헤이안쿄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의 모습이다. 바둑판모양으로 구획된 조방제 모습이 확인된다. 이 헤이안쿄가 헤이안 말이 되면 어찌 되느냐. 1000-1200년 경의 헤이안쿄다. 이때가 되면 도성 서쪽 절반이 날라간다. 이 지역은 배수가 잘 안 되어 사람이 살기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왕성도 이 시기에는 원래 있었던 주작대로 북쪽 끝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현재의 쿄토고쇼 지역으로 옮겨간다. 처음 건립되었을 때는 건물이 없던 가모가와 동쪽에 거주지와 절들이 들어선다. 실제로 무가정권 세력자들은 원래는 헤이안쿄 영내가 아닌 가모가와 동쪽에 살았다. 조방제 도시구획?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몇백년만 지나면 다 사라진다. 쿄토는 지금까지도 서기 800년 당시의 조방제가 완연한 쿄토의 모습은 회복하.. 2024. 1. 19.
벌금 높인다고 에코 반달리즘 막을라나? 주로 기후운동가 climate activists 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홍보하고자 유명한 문화유산 현장을 일부러 파괴 혹은 훼손하는 행위인 이른바 에코 반달리즘 eco-vandalism을 막고자 그 주된 공격 대상지인 이탈리아에서 그에 대한 벌금을 대폭 올리는 방향으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한다. 19일 이탈리아 안사 통신을 비롯한 외신들 보도에 의하면, 이태리 정부는 이와 같은 행위로 인한 문화유산 훼손 행위에 대해서 최대 6만유로, 한국돈 현재 대략 8천만원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이태리 하원에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통과되자 이를 추진한 젠나로 산귈랴노 Gennaro Sangiuliano 문화부 장관은 "국가유산 존중 원칙이 제정됐다. 기념물을 훼손 손상하거나 혹은 다른 다른 방식으로 파괴.. 2024. 1. 19.
[대물大物 이야기] 거근巨根의 창시자 노애嫪毐 (3) 김치양의 대선배 이제나저네나 죽기만 기다린 아버지 소양왕이 재위 56년 만에 죽자 그 아들로 다음 보위를 이을 재목으로 점지된 태자 안국군이 즉위했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다 기쁨에 계워 그랬는지, 그는 재위 불과 1년 만에 죽고마니, 이를 효문왕孝文王이라 한다. 다음 보위는 당연히 자초 몫이었다. 안국군 아들로 볼품 없다 해서 조나라에 인질로 던져졌지만, 장사꾼 여불위가 장래를 보고 대투자를 감행한 안국군 아들 그 자초子楚 말이다. 죽은 뒤 그를 높여 장양왕莊襄王이라 하니, 그가 바로 시황제 아버지다. 자초는 왕이 되고 나서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해준 화양왕후를 화양태후로 높이는 한편, 그를 진짜로 낳아준 엄마 하희夏姬는 하태후라 해서 높였다. 다음으로 자초는 기원전 249년, 즉위와 더불어 자신을 이 자리에까지 오게 한.. 2024. 1. 19.
[국내 박물관 현황과 연혁] 드라마 열풍이 만든 서울 강서구립 허준박물관 1. 연혁 1999년 10. 허준(구암)기념관 건립계획 수립 2000년 05.31 건립 부지매입 2001년 12.15 설계경기 공고 2002년 04. 설계경기 작품심사 및 당선작 선정 05.22 설계용역계약 12. 설계용역 납품 및 준공검사 2003년 02. 시공업체 선정 04.10 공사착공 2004년 11.20 건축준공 2005년 03.23 개관 04.29 개관기념 세미나 "한의학으로 본 감기" 05.12 「1종 전문박물관」등록(제13호) 06.30 개관 100일 기념행사 10.08 10만번째 관람객 입장 11.23 서울사랑시민상 '건축상' 수상 2006년 01.17 보물 2점 지정 03.23 개관1주년 행사 특별전 : 지리산 함양 약초전 학술세미나 : 「동의보감」의 역사적 철학적 고찰 07.27~28.. 2024. 1. 19.
영감님들과 젊은이들의 분업 공부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영감님들은 괜히 논문 한 두 편 더 쓴다고 젊은이들 일거리 뺏지 말고, 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데 몰두하시기 바란다. 최신 기술로 프론티어에서 누비는 작업은 영감님들에게는 맞지 않다. 자신의 오랜 경험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작업해야 하는데 필자 생각으로는 이것도 쉽지 않다. 젊었을 때 뭐라도 자기 분야에서 충분한 전문적인 경험을 쌓는 데 게을리한 사람들은 늘그막에 큰 그린 그림그린다고 해봐야 뭐가 나올 리 없다. 차라리 그런 경우에는 놀아라. 이미 큰 그림 그리기도 늦었고 뭐 한다고 돌아다녀봐야 방해만 된다. 반면에 젊은분들의 경우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그림 그린다고 이리 저리 섭렵하고 다니는 건 필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젊었을 때는 한가지를 깊게 파고.. 2024. 1. 19.
조선 막사발은 어디에서 왔는가 흔히 조선 막사발을 두고 무위 무념의 소산, 인위가 극소화된 자연적 미의 소산 등등으로 찬상하는 경우를 보는데, 무위 무념 자연적미, 인공의 극소화 이런 것이 조선중기 한국사에서 나올 수 있는 사상이 맞기는 맞는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우리나라 사상의 어느 구석에 무위 무념 자연, 인공미의 극소화 같은 흐름이 있었다는 건가? 이러한 흐름은 유교적 흐름이라기 보다는 외려 도교나 불교적 사상의 영향에 더 가깝다고 보는데 알다시피 조선은 여말선초에 불교를 이미 작살을 내놔서 이런 사상이 똬리를 틀고 나올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본다. 막사발이 나오던 시기. 흔히 이야기 하는 바 무위 무념 자연, 인공의 극소화 등등 막사발과 관련된 아니. 그 그릇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좋다. 그 그릇의 제작과 직접 관련.. 2024. 1. 19.
당신은 확신할 수 있는가 이 막사발의 미가 16세기 후반 조선의 미에서 나왔다는 것을-. 필자는 이 막사발이 조선의 미가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막사발이 한국의 자랑거리가 됐건 뭐건 이걸 적어도 한국에서 찬상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국보라는 것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한국사 전체 흐름 안에 막사발을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당시의 시대적 흐름 어떤 부분에서 이런 그릇이 나올 수 있는지 이걸 규명해서 이 그릇 배경 설명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이런 주장이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는 한, 물론 필자가 이런 주장한다해서 뭐 하나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필자는 이를 한국미술사의 일부로 인정할 수 없다. 2024. 1. 19.
조선의 사발과 센노 리큐千利休 조선 사발이 일본에서 톱스타가 된 데는 센노 리큐 [千利休, 1522~1591)의 와비차侘び茶 사상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무슨 말인고 하면, 스토리의 완결성 측면에서 본다면, 조선사발은 한국사에서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진 반면 같은 사발을 일본에 가져다 두면 센노리큐의 사상과 연결되어 일본의 후기 도자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조선사발은 한국의 미인가 일본의 미인가. 조선사발은 한국미술에서 다루게 되면 어째서 앞뒤 제대로 연결된 스토리가 없는가. 왜 그런 그릇이 나온 건지 설명할 수 있는 문헌 자료 하나 없는가.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조선사발을 선호한 사상적 배경이 스토리를 가지고 남아 있다. 이렇다면, 조선사발은 한국미술사인가, 일본미술사인가. 필자가 무식해서.. 2024. 1. 19.
대중이 만든 사무라이 정신 일본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의 하나가 사무라이와 그 정신이 아닐까. 그래서 스타워즈에도 사무라이 장수를 벤치마킹한 다스베이더가 뛰어 다니고, 동경국립박물관에는 전시실 좋은 구석에 니뽄도가 줄줄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사무라이 이미지는 사실 많은 부분이 에도시대에 창작되었다. 에도시대 이전, 가마쿠라, 무로마치, 그리고 전국시대 무장은 우리가 아는 사무라이들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헤이케 모노가타리와 태평기, 그리고 전국시대 군담소설류를 보면 그 차이가 많이 나타나는데 우선 겐페이 합전시대나 태평기 시대 무사들은 어느 나라나 있을 것 같은 무장으로 용감하고 신불의 가호를 비는 무장이지만, 일본 무사 특유의 분위기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일본 사무라이 특성의 많은 부분은 오히려 .. 2024. 1. 19.
제주도에서 잡혀 해체당한 100년 전 고래 어떤 누리집에서 본 일제강점기 엽서 사진. 제주 서귀포 '사업장'에서 고래를 해체하는 모습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뭐 제주도가 최근 들어 남방돌고래니 뭐니 해서 유명하지만, 이 사진은 그 전부터도 고래가 제주 바다를 적잖이 지나곤 했음을 보여준다. 저게 무슨 고래인지 모르겠는데, 배에 줄무늬가 있는 걸 보면 흰긴수염고래 뭐 그런 종류이려나? 이건 여담인데, 제주의 바다는 고을, 마을마다 경계가 나뉘어있었다. 여기는 우리 바다 저기는 너네 바다 이런 식이었는데, 재밌는건 서로 바다를 '덜' 가지려고 싸웠단다. 왜냐? 표류민이나 고래가 바닷가에 떠밀려오면 어느 쪽 구역이냐에 따라 그 책임이 그 마을에 떠넘겨졌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간혹 가다 죽은 고래가 떠밀려오면 저렇게 해체쇼를 벌이기는커녕 도로 밀어내버리는.. 2024. 1. 19.
AI가 구현한 추몽 포르쉐는 龍이 아닌 dragon "(왕께서) 세상의 자리(왕위)를 즐기지 않으시니 (하늘이) 黃龍을 보내어 내려와서 왕을 맞이하였다. 왕께서는 홀본忽本 동쪽 언덕에서 용 머리를 발로 딛고 하늘로 올라가셨다[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岡], 履龍首昇天]." - 중에서 *** Editor's Note *** 요새 강군이 AI 그림에 재미를 붙인 듯해서 저 명령어를 넣어 AI에 관련 그림을 주문해 보라 했더니 저리 나온댄다.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는 좀 거리가 멀어 기대를 충족한다 하기는 힘들지만 이에서 우리는 의외의 면을 본다. 저 AI한테 입력된 용은 龍이 아니라 dragon이다. 이는 내가 항용 지적하듯이 龍과 dragon은 전연 별개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동아시아 龍은 이른바 선신善神 계열이고, 가뭄에.. 2024. 1. 18.
저출산 시대, 결혼 자체가 폭파 대상 아닌가? 워낙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니, 올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관련 공약이랍시며 내세우며 이것으로 유권자 표심을 잡겠다 난리인 모양이라, 하긴 뭐 이 문제가 워낙에나 심각한가? 듣자니 여당에서는 아빠 출산휴가 1개월을 준다 하니, 야권에서는 신혼 부부한테 1억원을 대출한다 하고, 더 나아가 육아휴직을 자동으로 발동케 하고 인구부를 신설하겠다 하는가 하면,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150만에서 210만원으로 올린다 하거나, 8∼17세 자녀당 월 20만원을 주겠다 하는 모양이라 비단 총선용이 아니라 해도 나는 이런 모든 저출산 대책이라는 것들이 하나를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 젊은 세대가 출산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다른 더 큰 이유가 도사리는가? 물론 이것이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진부한 논란.. 2024. 1. 18.
에도시대 사무라이의 성誠과 경敬 일본 막말에는 신센구미[新選組, 신선조]라는 무사집단이 있다. 이들의 상징으로 나오는 것 중에 성이라는 글자가 쓰인 깃발이 있다. 일본 우에노 공원에 가면 왠 뚱뚱한 아저씨가 강아지를 한 마리 데리고 있는 동상이 있는데,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다. 일본 메이지유신의 삼걸이라 불리는 인물인데 이 동상을 보면 그 동상에는 위와 같은 사이고 다카모리 글씨가 써 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일본의 사무라이, 부시武士들은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성리학의 윤리철학에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위에 예를 든 "성"과 "경"은 모두 성리학 심성론의 중심적 개념이다. 인격의 수련에 있어 중심에 놓아야하는 행동 규범이고, 또 한시라도 살아가는 데 몸에서 떼어 놓아서는 안되는 신조이기도 하다. "성"과 "경"은 성리학이 없.. 2024. 1. 18.
문화재청장으로 직행한 중앙일보 기자 정재숙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8월 30일, 교육장관에 유은혜, 국방장관에 정경두, 여성장관에 진선미를 내정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하면서 차관급 인사도 같은날 아울러 했으니 방사청장에 왕정홍, 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양향자를 임명하면서 아울러 문화재청장에는 정재숙을 앉혔다. 촛불정국에서 거져먹기로 권력을 가져가면서 개막한 문재인 시대 첫 문화재청장은 문화재관리국 시대 이래 문화재청에서 행정통으로 잔뼈가 굵은 김종진金鍾陳이었으니, 실은 이 초대 문화재청장 인사가 뜻밖이라는 말이 있었다. 저 자리를 두고 친 특정 종교 성향 두 교수가 열심히 경쟁한다는 후문이 있었고, 그에 이럴 때마다 언제나 특정 종단이 개입했으니, 그런 이전투구에 느닷없이 3등으로 추천되었다는 김종진이 청장을 먹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런 김종진 시대.. 2024. 1. 18.
꼴랑 사개월 놀고 취직한 춘배 김충배가 팔자 없는 백수생활 청산하고 서울 강서구립 허준박물관장으로 갔다. 나보다 딱 한 달 먼저 작년 9월에 백수가 되었으니 같은 백수라고 맞먹는 꼴이 구토났지만 참았다. 어디 자발백수에 강요백수가 어깨를 나란히 한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준비된 백수가 아니었기에 맘이 편했겠는가? 아무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 저 자리를 찾아갔으니 잘된 일이다. 기초자치단체 박물관 사정이야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리라 믿거니와 그래도 잘해내리라 믿는다. 왜? 춘배잖아? 다만 몇 가지 신신당부를 했으니 그건 먼 훗날 기회가 닿으면 이야기하려 한다. 이로써 은옥이는 불과 사개월만에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저 온옥은 임의단체라 춘배가 명함용으로 판 페이퍼컴퍼니다. 내가 하도 그 부소장이라 했더니 진짜로 내가 그.. 2024.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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