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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랑(失禮郞) 신라 신문왕 때 화랑인데, 판본에 따라 부례랑(夫禮郞)이라고도 하니, 夫와 失이 글자 모양이 비슷한 데 따른 혼동이다. 이 무렵 신라 지배층은 그 자체 의미를 지닌 이름을 사용했으므로 失禮郞이 실상에 더 부합한다고 본다. 자세한 행적은 부례랑을 보라. 삼국유사 제2 기이 2 만파식적 : (신문)왕이 감은사에서 묵고 17일에 기림사(祗林寺)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태자(太子) 리공(理恭·효소대왕孝昭大王)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와서 하례하고는 천천히 살펴보고 아뢰었다. "이 옥대(玉帶)의 여러 쪽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 왕이 말했다.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이 쪽 하나를 떼어 물에 넣어 보십시오." 이에 옥대 왼편 둘째 쪽을 떼어 시냇물에 넣..
민장(敏藏) 신라인. 생몰년 미상. 각간을 역임했으며 그의 이름을 딴 민장사(敏藏寺)라는 절을 창건했다는 사실만 확인된다. 주된 활동시기는 경덕왕 때가 아닌가 하지만 확실치 않다.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민장사(敏藏寺) : 우금리(禺金里)에 사는 가난한 여자 보개(寶開)에게 장춘(長春)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바다의 장사꾼을 따라 나가더니 오래 되어도 소식이 없자 그의 어머니가 민장사(敏藏寺·이 절은 곧 민장각간敏藏角干이 자기 집을 내놓아서 절을 만든 것이다) 관음보살 앞으로 가서 7일 동안 기도했더니 장춘이 금세 돌아왔다.
구제역이 작살 낸 고향 <구제역 방역..연합DB>소 구제역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11년 2월 4일 설날 무렵 고향 풍경 일단을 읊조린 과거 블로그 글인데, 이 시대를 증언하는 한 단면이라 생각해 전재한다. 며느리, 손자와 함께 왔다는 말에 전을 부치던 老母는 반가움과 더불어 떠들지 말고 빨리 방에 들어와 조용히 있으란다. 그만큼 고향은 뒤숭숭했다. 해마다 이맘쯤이면 동네 서원 앞마당에는 외부에서 온 차량이 빼곡해야 하지만, 올해는 김천역에서 우리 가족을 실어온 동생 차밖에 없다.언제부턴가 고향 명절이 명절답지 않다고 여겼거니와, 올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한 까닭은 바로 구제역 때문이었다. 듣자니 소를 키우는 옆집, 뒷집에는 아예 자식들이 오지 않았단다. 동네에서도 제 아무리 이 동네 출신이라도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했다.그..
Tour Eiffel Tour Eiffel or Eiffel Tower, Paris, France
Korean Traditional Shoes
王煜:汉代镶玉漆棺及相关问题讨论 王煜:汉代镶玉漆棺及相关问题讨论2018-03-19 王煜 社科院考古所中国考古网http://mp.weixin.qq.com/s/t2EPPz9xeP2RbpAy0LvIVw
번데기를 먹는 인간들 <낙안읍성에서 어제>우리 집은 어린 시절에 누에를 쳤다. 이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꼭 이맘쯤이라, 뽕에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누에 농사를 시작한다. 누에를 치는 방이라고 그 좁은 산골 마을에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 일상 주거공간이 곧 누에실이라, 우리가 자는 방엔 시렁을 쳐서 칸을 만들고, 그 칸마다 누에를 슨다. 누에 치는 방은 항상 일정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온실이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군불을 때야 한다. 그런 뜨끈한 방에서 누에랑 우리는 기거를 함께 한다. 누에가 자라는 속도는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광년光年이라, 이것들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엄청 쳐먹기 시작한다. 쉴새없이 뽕을 따다 날라야 한다. 젤로 곤혹스러운 때가, 누에가 한창 자라기..
김대문(金大問) 생몰년 미상. 신라인.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에 임명되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화랑 집단 우두머리인 풍월주를 배출했다. 아버지 오기는 27세 풍월주이며, 할아버지 예원은 20세, 증조부 보리는 12세, 고조부 이화랑은 4세, 5대조 위화랑은 초대 풍월주였다.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김대문 열전 : 김대문(金大問)은 본래 신라의 귀문(貴門)의 자제로서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이 되었으며 전기 몇 권을 지었다. 그가 쓴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記), 악본(樂本), 한산기(漢山記)가 아직도 남아 있다.삼국사기 권제1(신라본기 제1) 남해차차웅 : 남해 차차웅(南解次次雄)이 왕위에 올랐다. <차차웅을 자충(慈充)이라고도 한다. 김대문(金大問)이 말했다. (차차웅은)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