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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2) 미륵사발 혁명의 불꽃 2009년 1월 14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정비하는 과정에서 그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에서 사리공舍利孔을 개봉한 결과 이 석탑을 처음 조성하면서 그 내력을 써서 적은 금제金製 봉영 사리기奉迎舍利記를 포함한 사리장엄 일괄품을 발견했다. 이 봉영사리기는 글자 그대로 석가모니 진신사리탑眞身舍利塔으로 석탑을 세우면서, 석가모니 부처님 사리를 맞아들여 석탑에 봉안한 내력을 기록한 문서다.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인 납작한 방형 금판 앞뒤에다가 글자를 음각하되, 글자는 붉은 칠을 했다. 이를 판독한 결과 미륵사는 백제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는 기해년에 사리를 봉안하면서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세운 사찰이라는 내용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미륵사는 창건 목적과 발.. 2024. 1. 8.
[독설고고학] 황금 너머 황금을 본 사람들 천마총 출토 신라 금관이다. 그래 이런 것들을 근거로 삼아 신라가 황금의 제국이었네 하는 말이 있다. 황금에 혹닉한 문화권이 비단 신라 뿐이겠는가? 물론 이것도 역사를 통괄하면 예외는 없지 아니해서 부족에 따라 황금을 쳐다도 안 본 문화권이 있기는 하다. 저 황금을 두고 우리네 고고학은 무엇을 어찌 다뤘던가? 저 금관만 해도 첫째 그 양태에 미쳐서 그 모양새를 죽죽 그리고는 出자형입네 하는 헛소리들 한참 지껄였고, 그 다음으로 그 전파 양상 혹은 기원이라는 측면에서 저 머나먼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지도 한 장 죽죽 그려놓고는 실크로드입네 하는 개사기를 쳤다. 뭐 암튼 이딴 이야기들로 날을 새웠으니, 반세기 넘도록 이 짓을 했다. 비단 황금이 저것 뿐이랴? 많다. 저 많은 황금을 보면서 내가 보는 한 다.. 2024. 1. 8.
남들 하는 거지 같은 주제에 나까지 뛰어들어야겠는가? 논문 쓸 거리가 없다는 말 나는 믿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나는 본다. 왜 논문 쓸 거리가 없는가? 공부를 안하고 생각을 안하기 때문이지 무슨 딴 이유가 있겠는가? 논문거리? 왜 없어? 천지빼까리다. 각 잡으면 하루 열 편을 쓰는 것이 논문이다. 왜 없는가? 늘린 게 논문 거린데? 엉뚱한 데 뛰어들어 뻘짓하니 쓸 게 없는 것이요 내가 의문하지 아니하니 쓸 거리가 없을 뿐이다. 그러니 매양 신자료 출현만 목 빼고 기다릴 뿐이요, 그러니 남이 A라고 주장한 것을 B라고 결론만 살짝 바꾸어 그것을 논문이라 긁적이는 작태가 될 뿐이다. 생각이 없고 공부를 하지 않으니 매양 굴리는 주제라고는 형식분류밖에 더 있으며 제조기술 타령이요 축조기술 타령밖에 더 있겠는가? 이딴 게 무슨 글이란 .. 2024. 1. 8.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 김유신을 혹평하는 단재 신채호 김춘추가 한창 복수운동에 분주하는 판에, 그 보좌인 一 명물이 있으니 곧 김유신이다. 당시에 연개소문을 고구려의 대표인물이라 하고, 부여 성충을 백제의 대표인물이라 하면, 김유신은 곧 신라의 대표인물이라 할 것이다. 고구려 백제가 망한 뒤에 신라 사가들이 彼 양국 인물의 전기적 자료를 말살하고 오직 김유신만을 가송歌訟하였으므로, 삼국사기 열전에 김유신 一人의 전기가 을지문덕 이하 수십 개 인의 전기보다도 그 매수가 훨씬 많고, 부여성충 같은 이는 그 열전에도 참여도 못하였다(이상 460쪽). 그러면 김유신전이 익미溢美한 말이 많음을 가히 추지推知할 것이다. 이제 그 사리에 合한 자를 추리면 대개 下와 같다.... 그러나 유신이 가야의 김씨인 까닭에 비상한 반연攀緣이 없으면 중용되지(이상 461쪽) 못할 .. 2024. 1. 8.
만주를 상실케 한 김유신을 원망하노라 신라사를 읽으매 김유신을 원망하노라 당병을 끌어들여 구려를 멸하고 압강을 경계로 삼고 동쪽은 신라에 속하게 하고 서쪽은 당에 속하게 했으며 만주가 다시금 우리가 지니지 못했으니 소위 통일삼한이란 그 공이 크기는 하지만 그 수치는 어찌 말하랴 讀新羅史, 歎金庾信 , 引唐兵滅句麗, 以鴨江爲界, 印屬羅, 以西屬唐, 滿洲不復爲我有, 所謂統一三韓, 其功雖大, 其耻可言耶。 심산 김창숙金昌淑(1879~1962)은 이렇게 김유신을 한탄하며 비판했다. 그의 글을 모은 심산유고心山遺稿에 보이는 한 구절이다. 소위 이 민족주의 계열 역사학도 지금 보면 웃기는 게, 발해가 고구려를 정통으로 계승했다면서 신라를 이리 공격해댄다는 점이다. 저 논리에 의하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는 주인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한민족 무대인 까닭.. 2024. 1. 8.
사대주의 병균을 퍼뜨린 김춘추 그러나 “신라가 국소민약하니 무엇으로 백제의 앙殃을 갚으랴. 오직 외원外援을 빌 뿐이다” 김춘추가 기둥 친 끝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구려로 들어갔다(458쪽)... 그래서 김춘추가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 당 태종을 보고 신라의 위급한 정형을 진숧고. 힘 닿는 데까지 한限하여 모든 비사후례卑辭厚禮(459)를 가져 원병을 구할 새, 당조唐朝 군신의 뜻을 맞추기 위하여 자 법민·인문 등을 당에 유질留質하며, 본국의 의관을 버리고 당의 의관을 쓰며, 진흥왕 이래로 自記한 본국의 제왕년호를 버리고 당의 년호를 쓰며, 또 당태종이 편찬한 진서晉書와 그 산증刪增한 사기史記·한서漢書·삼국지三國志 등 - 그 중의 조선에 모멸한 말이 많은 문자를 가져다가 그대로 본국에 유전하여, 사대주의의 병균을 전파하기 시작하니라.. 2024. 1. 8.
튀김이 된 붕어빵 나는 몰캉몰캉 붕어빵이 좋지만 어찌하여 요새 매번 마눌님이 내어놓는 붕어빵은 첫째 붕어가 잘아 새끼 종류이며 둘째 너무 튀겨 아삭아삭 씹힌다. 속내도 보니 팥 종류가 아니라 무슨 양식빵에 들어가는 크림 종류라 그래도 사정이야 어떻건 붕어빵이야마로 시절 별미 아니겠는가? 2024. 1. 7.
괜히 청개구리겠는가? 오늘 유양잡조를 읽다가, 청개구리 이야기를 발견했다. 여기서는 혼자渾子(멍청이)나 흔자佷子(개망나니)같은 실제 사람으로 나오지만 이야기로야 청개구리가 훨씬 정감 간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흔자는 무덤 만들난 뒤 그 다음 어찌했는지가 없지만 청개구리는 떠내려 갈까 걱정해 늘 '개굴개굴' 운다는 거 아닌가? 곤명지昆明池 안에 무덤이 있는데, 민간에서는 '혼자渾子'라고 부른다. 전해지기를, 옛날 이곳에 사는 백성 중에 ‘혼자’라는 아들을 둔 자가 있었다. 혼자가 늘 아버지의 말을 어겨, 동쪽으로 가라 하면 서쪽으로 가고, 물을 가져오라 하면 불을 가져오는 식이었다. 병들어 곧 죽게 된 아버지는 구릉 언덕에 묻히고 싶어서 혼자에게 일부러 속였다. "내가 죽거든 반드시 물속에 묻거라!" 아버지가 죽자 혼자는 .. 2024. 1. 7.
[독설고고학] 술 쳐먹고 골프 치는 대가大家 없다 나는 술을 마시는 일과 쳐먹는 두 가지로 구분한다. 어떤 기준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터이니, 내가 볼 땐 이건 비단 고고학도한테만 유별난 현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외는 아니니 싸잡아서 비판한다. 술 쳐마시고 무슨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쓴단 말인가? 술 쳐마시느라 하루가 가고, 다시 그 다음날은 숙취 깬다고 하루 종일 술 냄새 펄펄 풍기며 비실비실하니, 이것도 나이에 따른 차이가 적지 아니해서 쉰이 넘어가면 하루 쳐마시면 이틀 사흘이 여파가 간다. 그렇게 보내는 놈이 무슨 공부를 하며 무슨 논문을 쓴단 말인가? 술은 공부랑은 상극이다. 반주를 위한 마시기 정도야 모르겠지만, 쳐먹는 일로 그것이 학문 교유라 생각하는 놈이 천지라는 데 심각성이 있지 않겠는가? 술 쳐먹으면서 얻어 듣는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 2024. 1. 7.
창씨하는 백제인 이른바 창씨개명 때문에 일제시대 한국인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사실 이 창씨는 일본이 기원이 아니라 한국이 기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필자는 본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백제인들의 경우 부여씨에서 갈려 나온 성들 (대개는 두 글자 성이다)이 꽤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종래 별개의 성으로 생각한 흑치씨라던가, 동성씨, 고이씨 등 많은 성들은 부여씨에서 갈려나왔다고 보는 주장이 유력한 것으로 안다. 다음으로 아래 일본서기 기록을 보면, (흠명기) 백제 부여창이 고구려인에게 나노리 할 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우리 들판에 손님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맞이하는 예를 행하지 않는가. 우리와 더불어 예로써 문답할 만한 사람의 이름과 나이, 관위를 미리 알고자 한다”고 하였다. 餘昌이 “姓은.. 2024. 1. 7.
[독설고고학] 술로 맺은 덤앤더머 한일고고학 나 역시 일본 지인이 많은 편이기는 하다만 지역적 인접성에서도 일본이 중요함을 인정한다.하지만 고고학에 국한하면 일본에서 배울 건 눈꼽만큼도 없다.그 방법론 그 수준 어디 하나 참고할 만 한 데는 없다.오직 발굴기술이 있을 뿐이었는데 이건 일찌감치 때려잡았으니 이것도 이젠 패대기쳐야 한다.이쪽 분야 사람들 거개 일본어가 능통한 편이라 이런저런 대화가 가능한데 일본어 특성이 한국사람들이 상대로 습득하기 쉬운 점은 고려하고라도 일본어 공부할 시간에 영어 공부해라.한국고고학이 말하는 국제는 언제나 일본이라 일본이 빠지면 앙코 빠진 찐빵 보듯 하지만 일본에서 배울 건 눈꼽만큼도 없다.왜?우리 덤이요 저들은 더머니깐 말이다.언제까지 정종 대포 나누며 그걸 국제교유라 사기 칠 수는 없다.더 넓은 세상으로 가라.고작.. 2024. 1. 7.
말이 통해야 하는 나노리 대체로 일본에서는 나노리의 소멸을 근대적 전술의 발전과 함께 보는 듯하다. 쉽게 말해서 철포=조총의 등장과 철포대의 전술상 나노리고 뭐고 없다. 오다 노부나가가 다케다 군을 전멸시켰을 때 전통적인 전술을 구사하고자 한 다케다군을 오다군은 나노리고 나발이고 없이 철포대의 일제사격으로 묵사발을 내 놓았는데 대체로 이와 같은 근대적 전술의 채택과 나노리의 소멸을 밀접하게 보는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반도에선 그 훨씬 이전에 이미 나노리는 사라진 것 같은데 가장 큰 이유는 삼국통일 이후 한반도의 전쟁은 외침에 대한 전투가 주류로 전투의 맞상대가 아예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로 여몽 연합군이 쳐들어갔을 때 앞에 나와 나노리를 하고자 했는데 고려-몽골.. 2024. 1. 7.
거란-송을 갖고 노는 고려와 서하 거란 요나라 역사 통사로 원나라에서 관찬한 요사遼史는 전체 108권이라, 개중 열전은 권63부터라, 딱 절반이 열전이다. 그 열전 마지막이자 요사 전체의 마지막인 권108 열전 제46은 거란어에 대한 해설인 국어해國語解이고, 그 바로 앞이 이국외기二國外記라, 이는 여타 사서에서는 외국열전을 세운 데 견준 것과 대비하는데, 요사가 말하는 이국二國이란 바로 고려高麗와 서하西夏라, 이는 그만큼 거란 역사에서 두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강한 까닭이다. 이 두 왕조가 거란을 다룬 양상을 보면 아주 비슷해서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실로 절묘하게 갖고 놀았다는 표현이 딱 적당하다. 이 이국열전에는 고려의 경우 그런 양상이 잘 드러나지 않고 주로 두 왕조 사이에 있는 전쟁과 평화 시대 이야기를 추렸지만, 이는 고려.. 2024. 1. 7.
[독설고고학] 투고 자격도 주지 않는 해외 저널들 [독설고고학] 형식분류 제작기법 축조기술은 투고 자체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독설고고학] 형식분류 제작기법 축조기술은 투고 자체를 원천봉쇄해야 한다그렇다면 한국고고학은 당장 어찌해야 하는가? 저거다. 형식분류 제작기법 축조기술 타령 일삼는 그 어떤 논문도 투고 자체를 원천 금지하며 그런 논문이 들어와도 자동으로 퇴짜를 놓아야 한historylibrary.net  망조가 든 한국고고학 구출을 위해서는 저와 같이 해야 한다고 나는 적었거니와, 이게 장난처럼 보이겠지만 천만에. 실제 외국 저명 저널에서는 저런 일이 아주 빈발한다.  클리쉐한 논문은 아예 투고도 못하게 하는 규정이 수시로 발동되고 있다.  실제 외국 어느 저명한 고고공예 관련 관련 저널 중에서 저와 같은 통제를 실시하는 데를 봤다.   왜 그.. 2024. 1. 7.
장례식 조문객과 사찰 낙성 축하객 (1) 빈소와 조문객 고관대작을 지내거나 다른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의 죽음에 이르러 항용 보이는 표현 중 하나가 임금이 부의를 후하게 해서 장례를 치르게 했다는 말이거니와, 이런 점들이 왜 고고학도들한테는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지 나로서는 신통방통할 뿐이다. 조선시대는 기본이 이른바 박장薄藏이라, 일부러 값나가는 물건을 무덤에 넣는 일을 피한 전통이 오래되는 바람에 이걸 잊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나아가 시대별 문화권별로 넒나듦이 있지만, 근간은 후장厚藏이라, 값나가는 물건을 될수록 많이 넣음으로써 부와 권력을 과시하곤 했으니 해당 무덤에 들어가는 껴묻거리 상당수가 이른바 부의賻儀였다는 사실을 하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이 부의를 가능케 하는 절대 근거가 빈殯이라, 빈은 간단히 말하자면 조문을 받는 기간이다. 동아시아.. 2024. 1. 7.
백제와 고려군의 전투: 입표立標란 무엇인가 전술한 일본서기 흠명기欽明紀를 보면 백제 부여창과 고구려 군 전투장면이 나오는데 다시 써보면 아래와 같다. 때마침 날이 밝자 목에 경개頸鎧를 입은 자 1騎, 징을 꼽은 자鐃자는 자세하지 않다 2騎, 표범 꼬리를 끼운 자 2騎 모두 합해 5騎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와서 묻기를 “어린아이들이 ‘우리 들판에 손님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맞이하는 예를 행하지 않는가. 우리와 더불어 예로써 문답할 만한 사람의 이름과 나이, 관위를 미리 알고자 한다”고 하였다. 餘昌이 “姓은 (高麗 왕실과) 同姓이고 관위는 杆率이며 나이는 29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百濟 편에서 반문하니 또한 앞의 법식대로 대답하였다. 드디어 표를 세우고 싸우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줄, "표를 세우고"라는 말. 무슨 뜻일까? 원문에는 .. 2024. 1. 7.
고려군은 나노리名乗り를 했을까? 나노리名乗り라는 것이 있다. 일본사에서 흔히 보는 것으로 무장들이 서로 싸우기 전에 자기 관등성명을 대는 것이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공명을 높일 수 있고, 져도 지는대로 싸우다 죽었다고 알릴 수 있으므로 전장에서 꼭 필요한 의례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일본적인 의례같지만, 일본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역사상의 나노리는 한국과 관련이 있다. 바로 성왕의 아들 부여창이 고구려군과 다툴 때 서로 나노리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겨울 10월 庚寅 초하루 己酉 百濟 왕자 여창餘昌(明王의 아들 威德王註 001이다)이 나라 안 모든 군대를 내어 高麗國을 향했는데,註 002 百合의 들판에 보루를 쌓고 군사들 속에서 함께 먹고 잤다. 이날 저녁 바라보니 커다란 들은 비옥하고 평원은 끝없이 넓은데, 사람 자취는 드물고 개소리.. 2024. 1. 7.
무덤 벽화로 보는 거란 한 장면 어느 무덤인지 특정하지는 못하나 거란 벽화 한 장면이다. 남자들 머리는 다 대머리 독수리머리로 만들었으니, 고려거란전쟁에서 소배압을 필두로 하는 거란 군인들을 저리 처리한 것은 나름 고증에 철저한 면을 보여준다. 인종이 어디에 속하는지 모르겠지만 모조리 매부리코다. 세발 솥으로 죽을 끓여서 먹는 장면인 듯하다. 국자 숟가락 젓가락이 다 보이는데 문제는 젓가락으로 집을 만한 반찬은 그림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엎은 사발을 나르는 남자가 보인다. 개죽통 같은 걸로 국자로 무얼 먹으려는지 하는 남자도 있다. 틀림없이 죽을 해 먹었는데 곡식은 잡곡일 것이다. 잡곡을 죽으로!!! 저들이 양을 많이 키운다고 양고기 주식으로 먹었을 것이다? 위험한 발상이다. 2024. 1. 7.
[독설고고학] 고고학의 오만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한강 유역을 고구려가 확실히 장악한 시기와 그 기간이 어떤지에 천착한 근자 어떤 고고학도 글을 보니, 한강 이북 지역, 혹은 임진강 유역 일대에서 한성백제 유적이 잘 안 나오는 점을 근거로 백제는 이 지역을 475년 전쟁에서 개로왕이 참수됨과 더불어 고구려에 다 빼앗겼다는 주장을 본 적이 있으니 이 대목을 보고는 고고학의 오만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통탄 또 통탄하고 말았으니, 왜 나는 이를 고고학의 오만이라 하는가? 고고학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고고학이 그 시대 모든 것을 증언하지는 못한다. 내가 항용 예를 드는 것이 서울 고려라, 지금의 서울은 고려시대에는 남경南京으로 일컬으면서 지금의 평양인 서경, 그리고 신라 천년 고도 이래 고려시대에 아주 중요한 도시로 동경東京으로 일컬은 경주와 함.. 2024. 1. 7.
일단 시작은 지도부터, 그렇지만 지도는 싫어요. 나는 매번 똑같은 일을 하기 싫어했다. 쥐뿔 아는 것도 없는데 여기서 더 생각해 볼 필요는 없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교수님께 소심하게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게, 저는 대학에서 이런 주입식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아는 것도 없는데 토론이 되겠냐며 교수님에게 까였다. 흑흑) 늘 말하기 주저하는 내 성향을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늘 의심도 많았다. 초등학생 때, 이승복 어린이 일화를 읽으면서 ‘이거 거짓말 아냐? 나 같으면 무서워서 숨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거 쓰면 나이대가 유추되는 것 아닌가요? 하하) 물론 선생님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일하면서 가장 지겨웠었던 것 일하면서 이러한 나의 성질머리가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2024. 1. 7.
[독설고고학] 실력 없는 놈들이 하는 짓이 신자료 소개다 일본 쪽에 견주어 흔히 한국학계를 일러 디테일에 약하다 하지만, 내가 볼 땐 디테일만이 문제가 아니라 거시에서도 마찬가지라, 이건 일본 학계도 마찬가지인데, 조막디 만한 걸로 침소봉대는 잘하는 편이지만, 전체 그림을 그릴 줄을 모른다. 아무튼 디테일이건 거시건 미시건 나발이건 그런 실력없는 놈들이 그나마 새로운 목소리를 낼 만한 데가 신자료 소개밖에 없으니, 새로운 자료 출현에 내가 매양 비유하듯이 썩은 시체 구더기 몰리듯 개떼처럼 달라들어 서로 먼저 글 하나 써보겠다고 환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뭔가 작은 것 하나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 그것을 깊게, 그러면서도 넓게 파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무슨 거창한 역사철학도 만들어낼 능력도 없으니, 뭔가 어디서 새로운 자료 출현했다는 소리만 들리면 우루루 .. 202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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