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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仁問) ☞김인문(金仁問)
흠순(欽純) ☞김흠순(金欽純)
흠춘(欽春) ☞김흠춘(金欽春) ☞김흠순(金欽純)
고장왕(高藏王) 고구려 마지막 제28대 왕인 보장왕(寶臧王·재위 642~668)을 다르게 일컫는 이름. 고구려 왕족 성이 高씨이기 때문에 고장왕이라 칭한 것이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11년(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당] 태종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죽었다. 겨울에 왕이 장차 백제를 쳐서 대야성에서의 싸움을 보복..
김인문(金仁問) 629~694년. 字는 인수(仁壽)이며,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문명왕후 사이에서 난 둘째 아들로, 문무왕 김법민의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 두루 책을 읽었고 글씨를 잘 썼다. 어린시절 당에 보내져 그곳에 눌러앉아 숙위했다. 이런 경력을 발판으로 폭넓은 인망을 활용하고, 중국어에도 능통했을 것이므로, 신라에 의한 일통삼한 전쟁기에는 당과의 외교업무를 전반적으로 관장했다. 당에서 죽어 시신은 신라로 운구해 안장했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진덕왕 : 5년(651) 봄 정월 초하루에 왕이 조원전(朝元殿)에 나아가 백관으로부터 새해 축하인사를 받았다. 새해를 축하하는 예식(禮式)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2월에 품주(稟主)를 집사부(執事部)로 고치고 파진찬 죽지(竹旨)를 집사 중시(執事中侍)..
노종(奴宗) 금관가야 마지막 구형왕의 세 아들 중 맏이로 세종(世宗)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법흥왕 : 19년(532) 금관국(金官國) 왕 김구해(金仇亥)가 왕비와 세 아들 즉 큰 아들 노종(奴宗), 둘째 아들 무덕(武德), 막내 아들 무력(武力)을 데리고 나라 창고에 있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이 예로써 대접하고 상등(上等)의 벼슬을 주었으며 본국을 식읍(食邑)으로 삼게 하였다. 아들 무력은 벼슬하여 각간(角干)에 이르렀다.☞세종(世宗)
세종(世宗) (1) 가야 금관가야 마지막 구형왕 세 아들 중 장남이다. 노종(奴宗)이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분질수이질(分叱水尒叱)의 딸 계화(桂花)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구형왕(仇衡王). 김씨. 정광(正光) 2년 즉위. 치세 42년. 보정(保定) 2년 임오(壬午. 562) 9월에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오니 왕은 친히 군사를 지휘했다. 그러나 적병의 수는 많고 이쪽은 적어서 대전(對戰)할 수가 없었다. 이에 동기(同氣) 탈지이질금(脫知尒叱今)을 보내서 본국에 머물러 있게 하고, 왕자와 장손(長孫) 졸지공(卒支公) 등은 항복하여 신라에 들어갔다. 왕비는 분질수이질(分叱水尒叱)의 딸 계화(桂花)로, 세 아들을 낳으니, 첫째는 세종(世宗) 각간(角干), 둘째는 무도(..
분질수이질(分叱水尒叱) 금관가야 마지막 구형왕의 비인 계화(桂花)의 아버지라는 점 말고는 알려진 바가 없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구형왕(仇衡王). 김씨. 정광(正光) 2년 즉위. 치세 42년. 보정(保定) 2년 임오(壬午. 562) 9월에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오니 왕은 친히 군사를 지휘했다. 그러나 적병의 수는 많고 이쪽은 적어서 대전(對戰)할 수가 없었다. 이에 동기(同氣) 탈지이질금(脫知尒叱今)을 보내서 본국에 머물러 있게 하고, 왕자와 장손(長孫) 졸지공(卒支公) 등은 항복하여 신라에 들어갔다. 왕비는 분질수이질(分叱水尒叱)의 딸 계화(桂花)로, 세 아들을 낳으니, 첫째는 세종(世宗) 각간(角干), 둘째는 무도(茂刀) 각간, 셋째는 무득(茂得) 각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