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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교육과정 착시의 이유 앞에서 쓴 것처럼 일제시대 학력을 우리가 볼 때, 고등보통 (고보)를 고등학교,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인지하는 일이 많다. 이때문에 일제시대 고보, 전문학교 졸업생들을 고등하교, 대학 졸업생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해방이후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그 하위교육기관은 고등학교 (혹은 중학)으로 재편제하면서 나오는 착각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당시 조선인 학력을 보면, 보통학교--양정고보--보성전문--메이지대 전문부 (법학졸업) 손기정 선생 이런 학력처럼, 양정고보, 보성전문을 각각 고등학교, 대학으로 인지하면 보통학교와 고보 사이에 중학과정이 없는 것을 알게 된다. 때문에 전문학교를 졸업해서는 절대로 "대졸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공부한 사람 대부분이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30년대 이후.. 2023. 3. 26.
경매競賣와 감정鑑定, 백년 전엔 외래어였다 얼마 전 일본어에서 유래한 한국어 단어사전이 나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있다. 10월쯤 되면 꼭 그런 외래어때문에 우리말이 오염되었다고 훈계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오는데, 글쎄, 외려 우리말의 어휘와 문법의 가능성이 보다 풍성해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윤치호가 '내가 영어로 일기를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을 표현할 어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던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한국어가 다채로워졌느냐 이 말이다. 1909년의 를 보면 지금은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어휘들을 '신래성어新來成語'라고 소개하고 있다. 박물관에 있으면서 늘상 보고 쓰는 '경매'나 '감정' 같은 어휘도 일본에서 온 외래어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 편집자注 *** 필자가 주장하는 요지에 무슨 군더더기가 필요하겠는가? 한글수호.. 2023. 3. 26.
일제시대 박정희 대통령의 예 다음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예를 보자. 이 양반 학력은 구미보통학교-대구사범-만주국육군군관학교(예과)-일본육사편입 (본과)이다. 박 대통령의 경우 "대구사범"을 나왔는데, 이 학교는 보통학교 졸업생이 들어갈 수 있는 학교로 "중학교 과정"에 해당했다. 당시 조선 땅에는 "고등사범"이 없었기 때문에 설치된 모든 "사범학교"는 중학교 과정이었다. 따라서 대구사범을 포함한 사범학교를 졸업하면 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할 수 있었는데, 학력으로는 고보 졸업자와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은 바로 진학이 안 되는 학력이라고 할 수 있고, 고등학교나 고등사범, 전문학교 등을 추후 졸업해야 대학 진학이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현실적으로 고등학교와 고등사범은 조선에 없으므로 남은 선택지는 "전문학교" 외에는 없었다고 할 수.. 2023. 3. 26.
양산이 반환 요구하고, 동아대가 거부한 양산 출토 유물 동아대, 올해 말까지 양산 금조총 출토유물 국가 귀속 김재홍 / 2023-03-23 13:15:58 "정당한 발굴 유물…양산시의회 반환 주장은 부당"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57696501148 동아대, 올해 말까지 양산 금조총 출토유물 국가 귀속(부산=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동아대는 23일 입장문을 내고 최근 경남 양산시의회가 교내 석당박물관에 보관 중인 양산시 신기리·북정리 고분군 ′금조총′ 유물을 반환하라는 요구에 대해 "k-odyssey.com 이 보도 골자는 간단해서 양산 쪽에서 우리 지역에서 발굴하고는 부산에 소재하는 너희 대학박물관이 갖고 있는 양산 지역 출토품은 우리한테 내놔라!!! 하니, 동아대 쪽에서는 못한다!!! 배.. 2023. 3. 26.
일제시대 최규하 전 대통령의 예 다음으로 일제시대 최규하崔圭夏(1919~2006) 대통령의 이력을 보자. 이 분 학력을 보면 이렇다. 원주보통학교-경성제일고보-도쿄고등사범-만주국립대동학원 앞에 손기정 선생의 예에서 언급했듯이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최 대통령이 진학한 학교는 경성제일고보로 "중학교"과정이다. 그 다음으로 "고등학교" 과정으로 "도쿄고등사범"을 들어갔는데, 이때 최 대통령은 "경성제대 예과"에 동시 합격되었었다고 한다 (대학 예과와 고등사범, 고등학교는 동급으로 졸업후 대학본과로 진학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레벨이다). 이 "고등사범"이라는 학교는 "고등학교"가 조선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땅에는 없던 고등 교육기관이다. 이는 경성사범, 대구사범 등 사범학교와는 다른 것이다. 조선땅에 있던 사범학교는 "소학교"를 졸업하면.. 2023. 3. 25.
일제시대 손기정 선생의 예 해방 전 식민지시대 교육제도는 해방 이후가 되면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하면 해방 전과 해방 이후에 정체성 변화가 크기 때문에, 해방 전의 고등학교를 "구제 고등학교"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구제중학교"도 있고 "구제전문학교", "구제대학"도 있다. 교육기관 앞에 "구제舊劑"라는 말이 붙으면, 일제시대 일본의 교육제도 아래 편성되어 있던 학교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일제시대 조선인 대상 교육 기관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우리가 착각을 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그 당시 실체보다 매우 부풀려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것을 하나 써보겠다. 우선 "고보高普"는 고등학교가 아니다. 이건 사람들이 가장 착각하는것 중의 하나인데, "고보"라고 하면 일제.. 2023. 3. 25.
사진으로 보는 익산 서동공원 백제시대 지하 석축시설 양상 전북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해 지하 냉장고 같은 백제 석축시설로 추정된다고 발표한 익산 서동공원 유적 발굴성과는 앞에서 소개했으므로 이제 그 발굴양상을 조사단이 문화재청을 통해 배포한 사진들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내가 생각하는 주요한 사항들은 해당 사진 아래 설명에 첨부한다. 이제 지하석축으로 들어가 본다. 먼저 1호다. 다음 2호다. 다음 나머지 석축 내부 출토 유물이다. 2023. 3. 25.
집수정集水井 집수지集水池 집수조集水槽 etc 이런 말들이 고고학에서 빈발하는 모습을 본다. 다 같이 물을 모아 놓는 시설을 말한다. 한데 저 말들 살피면 그 양상이 천상 역전앞을 닮아서 하나마나한 말을 관칭冠稱했음을 본다. 왜인가? 정井이나 지池나 조槽나 다 근간 기능이 집수集水라, 하나마나한 말을 붙인 데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사정이 마찬가지라 아는데, 각종 글쓰기 강좌라든가 기자교육에서 역전驛前앞은 동의의 반복이라 해서 꼭 피해야 할 표현이라고 윽박하곤 한다. 그리하여 역전앞 대신 역전이라 쓰야 제대로 쓴 표현이라는 강박이 작동한다. 나는 역전앞을 동의어 반복이 아니라 강조라 본다. 역전驛前은 역 앞이라는 뜻이지만, 이건 한자어라 선뜻 그 정확한 의미가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 의미를 강조하고자 해서 그에 대응하는 비슷한 말인 앞이라는 말.. 2023. 3. 25.
땅끝마을 탐진만을 조망한 4세기 해양 기반 유력 가문이 남긴 무덤 해남 독수리봉 고분 주인은…"고대 바닷길 마한 수장" 북일문화권 마한시기 유적 첫 확인…현장자문회의 개최 (해남=연합뉴스) 조근영 기자 = 전남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독수리봉 고분군이 철기유물을 품은 4세기대 마한 수장의 무덤으로 밝혀졌다. 해남군은 24일 '해남 방산리 독수리봉고분군(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33호)' 발굴조사 현장자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지난 4개월여간의 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64597193866 해남 독수리봉 고분 주인은…"고대 바닷길 마한 수장" (해남=연합뉴스) 조근영 기자 = 전남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독수리봉 고분군이 철기유물을 품은 4세기대 마한 수장의 무덤으로 밝혀졌다. 해남군은 24일 ′.. 2023. 3. 25.
[보유] 미국의 19-20세기 문맹률 미국의 문맹률은 1870년대에 백인은 이미 10프로 내외였다. 다시 말해서 10명 중 9명은 글을 읽었다는 뜻. 재미있는 것은 흑인도 미국은 1940년대가 되면 문맹률이 10프로 내외가 되었다. 60년대 흑인민권운동이 왜 발생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것이다. 1945년 당시 조선의 문맹률 75프로가 얼마나 높은 숫자였는지 잘 보여주는 지표이다. 2023. 3. 25.
익산 서동공원 백제 지하 냉장고를 의심한다 익산서 돌로 쌓은 백제 저장시설 2기 확인…"냉장고 역할 한 듯" 김예나 / 2023-03-24 10:15:54 공기 배출용 통기구 갖춘 첫 사례…"백제 왕실 관련 시설 가능성 높아" 오늘 발굴 현장 공개…참외·다래 등 열매, 과실 흔적도 검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전북 익산시의 한 공원 조성 부지에서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일종의 '냉장고' 시설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익산시와 함께 추진 중인 금마면 서동역사공원 조성 부지에서 돌로 쌓아 만든 저온 저장시설 2기와 건물지 3동 등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저장시설은 2기가 나란히 있는 형태다.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44194814767 익산서.. 2023. 3. 25.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그의 글씨 대구 전기회사 사장이자 한국문화재 약탈의 주역 중 하나로 기억되는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자기가 가진 유물 목록을 발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히로세廣瀨라는 지인에게 증정했다. 글씨를 꽤 빠르게 썼다. 음, 대구경북 쪽에서 혹 필요하시려나. 2023. 3. 25.
마무리: 50-60년대의 위대함에 대하여 필자가 장황하게 50-60년대와 일제시대 교육을 언급한 것은 의과대학의 50-60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필자는 80년대 중반 의대 본과를 진입했는데 그 당시에 이미 우리나라 의대 교육은 빈틈없이 짜여져 시계처럼 작동하고 있을 때였다. 학교 다닐 때에는 도대체 어떻게 이 시스템이 만들어졌을까 궁금할 틈도 없이 시간을 보냈는데, 문득 어느 순간인가, 80년대 중반에 빈틈 없이 짠 그 의대교육의 기원이 궁금해 졌다. 처음에는 이것이 일제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의대 교육의 전통인지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나라 대학교육에는 해방이후와 이전, 깊은 단절이 있었다. 해방이전 일본에서 이식되어 일본인 학생을 교육하던 시스템이라는 것이 경성의대에 존재했던 것은 분명한데, 그 시스템 작동자들은 해방과 함께 사라져 .. 2023. 3. 24.
이승만정권 관료들은 유능했다 이승만 정권 관료들은 해방 당시 인구 2천만 명 중 전문학교 이상 졸업자가 겨우 3만 명인 나라에서 뽑힌 인재들 치고는, 매우 유능했다는 것이 필자 생각이다. 일단 교육 정책을 보면, 이들은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해방 이전 고등교육 기관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고, 대학 교육은 가용한 재원을 모아 서울대와 지방거점 국립대 중심으로 재편하여 편성하고, 나머지 대졸자는 과감히 사립대 위주 정책으로 50년대 이후의 대졸자를 급격히 늘려갔다. 이 과정에서 토지개혁으로 창출된 자작농이 경제적으로 부담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학등록금을 억제하는 대신 (우골탑) 사립대에는 각종 국가 보조금과 혜택 (토지개혁 지주층의 교육재단 전환 장려) 을 주었다. 대신 국가의 .. 2023. 3. 24.
[보유] 50년대 초등교육의 팽창 금산 지역과 전국 초등교육 취학률이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 초등학교 (국민학교) 취학률은 45퍼센트 대였다. 50년대 중반에는 벌써 90프로를 육박하였고 1961년에는 취학률이 99프로에 육박하게 되었다. 55년에 초등학교에 취학한 사람들이 졸업한 시점이 61년, 이들이 중학교를 졸업한 시점이 6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시점이 67년이 된다. 대학을 만약 진학했다면 대학을 졸업하는 시점이 71년이다. 50년대에 초등학교를 입학한 사람들이 70년가 되면 대졸자로서 급속한 근대화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2023. 3. 24.
1950년대를 우습게 보지 말라 대한민국 50년대를 그럭저럭 돌아가던 것을 다 날려먹고 부정부패에 나라도 아닌 상태였다고 폄하하고 1960년대 이후를 한국 근대화의 기점으로 삼거나 아니면 일제시대까지 그 기점으로 소급하는 경우도 보는데, 1950년대야 말로 한국인 손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첫 시대에 해당한다. 필자가 쓴 것처럼 해방이후 국가 운영이 안될 정도로 식자율과 교육수준이 낮았던 상황을 타파하고, 문맹률을 떨어뜨리고 고등 교육자를 양산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시대로서 이 시대가 없었으면 박정희 시대의 급성장도 없었다. 2023. 3. 24.
해방당시 문맹률 78%의 이유 이유가 뭐가 있겠음? 일제시대에 못 배워서 그렇지.. 결국 산업화가 이루어지려면 저 무학자 80프로 비율을 얼마나 빨리 끌어내리는가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까지 저 상황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그 후의 경제발전이 있는 것임. 2023. 3. 24.
용인 서리고려백자요지는 변신중2 그저께, 용인 서리고려백자요지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했다는 글을 올렸었는데, 2023.03.22 - [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 용인 서리고려백자요지 변신중 용인 서리고려백자요지 변신중용인 서리고려백자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가마터 앞에 지저분한(?) 축사와 낡은 주택을 왜 이리 방치(?)하는지 싶었을 텐데, 드디어,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축사와 주택 철거를 완료함!!!😃😃 historylibrary.net 현장을 드론 촬영한 사진이 있어 추가로 몇 장 더 첨부해서 올립니다!✈️✈️✈️✈️ (드론 사진은 민족문화유산연구원 김귀한 선생님이 도움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주변이 정리된 것이 더 눈에 잘 보임!😁 이번 철거 공사를 담당한 우리팀 직원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문화.. 2023. 3. 24.
위대한 우골탑, 놀고 대학생, 그리고 강의노트 50년대는 무능과 부패로 얼룩했다고 간단히 정의되기도 하지만, 이 시기는 그렇게만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1945년 당시 문맹률이 77.8 퍼센트에 달하는 상황이라 이런 문맹 국민을 이끌고 산업화는 애초에 무리인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산업화가 50년대는 시작되지 못하고, 60년대 중반에나 시작된 책임을 이승만 정권의 무능에만 돌리기에는 무리스러운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1945년 이후, 60년대까지 초-중-고 교육을 정비하여 학교와 학생을 꾸준히 늘려간 결과가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은 문맹률 급감이다. 60년대 중반에 이르면 이미 문맹률은 10프로 내외로 떨어졌다고 보지만, 실제 문맹률은 이것보다는 아직 더 높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60년대 중반부터의.. 2023. 3. 23.
논문 같은 기사 기사 같은 논문 내가 모름지기 그리하지도 않았고 또 이것도 관련 기자질하면서 서서히 체득한 것이라 초반기에는 그리 철저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고학 발굴 소식에서 지번을 꼭 밝혀야 하는 이유를 나는 해당 유적 성격을 가늠하는 데 그것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이 결정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해당 유적이 바다나 강을 연접한 곳이라면 그와 연동하는 마을 혹은 건물일 것이요 그곳이 산상이라면 망루 같은 흔적일 수 있다. 그에 더불어 근자엔 지번 하나로 그 주변 환경을 한 눈에 조망하는 지도 서비스가 이뤄지는 중이라, 그 서비스엔 위성지도까지 포함하니 우리는 현장을 가지 않고서도 지번 하나 클릭함으로써 안방에서 주변 환경을 들여다 보는 시대를 산다. 그래서 반드시 지번을 밝혀야 한다고 본다. 나는 또한 해당 발굴을 시행한 조.. 2023. 3. 23.
농지개혁과 우골탑 앞에서 1960년대까지 대학이 인위적으로 무리스러울 정도로 증설되고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대학을 증설해도, 농민이 소를 팔아 등록금을 낼 수 없다면 아무 소용없지 않겠는가? 당시 한국은 대학까지 무상교육 같은 일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단계였다. 해방이후 한국 교육에는 이승만 정권의 농지개혁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 농지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일제시대 말까지 80퍼센트를 육박한 소작농이 급격히 줄어들고, 비록 영세할망정 자작농 숫자가 급증하였다. 농지개혁은 한국 교육사에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농지개혁으로 영세하나마 자작농이 급증하면서 우골탑을 쌓기 위해 "소를 팔 정도의 역량"이 되는 농민이 다수 생겨났다는 점이다. 이들이 자식들 미래를 위해 기꺼이 소를 내다.. 2023.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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