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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도랑 메꾸고 무덤 추가했다는 완주 원상운 고분군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올들어 전북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산 10-3 일대에 소재하는 원상운 고분군 이라는 데를 작년에 이어 2차 발굴조사를 벌였다고 하면서, 그 성과를 오늘 공개했다. 먼저 발굴현장 지리 정보를 봐야 한다. 네이버지도에서 위성으로 찍어 본다. 원경에서 가까이 순차로 들어가 본다. 네이버 지도 - 주소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산10-3map.naver.com 이번에 연구소로서는 2차 발굴조사라 했거니와, 이미 작년 1차 발굴성과 개요는 이 블로그에서도 따로 아래로 정리한 적이 있다. 20년 만에 다시 헤집었다는 완주 원상운 고분 20년 만에 다시 헤집었다는 완주 원상운 고분완주 원상운 고분군 내일 현장 설명회…1차 발굴조사 성과 공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국립문화재연구원 .. 2023. 6. 19.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 답을 찾아서 (1) 평소 존경하는 블로그 주인장께서 이 내용을 한 번 정리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 권하셨다. 예전에 발표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쉽게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알아주는 성씨 중 하나인 "안동권씨安東權氏"에 얽힌 이야기이다. (미리 밝히자면, 난 안동권씨 친척이 없다. 지인은 몇 분 계시지만.) 1. 인터넷에서 흔히들 찾아보는 나ㅁ위키에선 "안동권씨"를 이렇게 설명한다. "안동 권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당시 고창古昌에서 별장을 지낸 태사공太師公 권행이다. 본래 신라의 왕성王姓인 경주 김씨였으며, 본명이 김행이다. 신라 추존 국왕인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이고, 김알지 계열 성씨이다." 이것이 오늘날 공인된 안동권씨의 출자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일.. 2023. 6. 19.
한국은 왜 학자와 시인이 정치판을 기웃거리게 되는가 조선시대부터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이들이 정계에서 물러나 있을 때 학자라든가, 문인이라든가 하는 이름을 허여해 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보자. 조선시대 후기. 잘나가는 산림들은 중앙정계에서 잘 안풀리면 항상 돌아와 제자를 키운다는 미명하에 학자인양, 문인인양, 명필인양했지만, 정치판 기웃거리다 시간 날 때 하는 공부와 시와 글씨가 그게 제대로 되어 있었을 리가 있는가? 조선후기 학자라는 이들 치고 제대로 된 이 하나 없는것도, 시라고 쓴 거 치고 하나 가슴을 치는 구절 하나 없는 것도, 소위 명필이라는 글씨들 치고 좌우정렬, 크기도 하나 못맞추고 있는것도 다른 거 아니다. 전부 정치판 기웃거리다 남는 시간에 공부하는 둥, 시쓰는 둥, 글씨쓰는 둥 했기 때문이다. 정치판 기웃거렸으면 학자, 시인, 서예가.. 2023. 6. 19.
시를 쓰려면 시를 쓰고 정치를 하려면 정치를 해라 태정대신이 되고 싶다면 정치가가 되고 시를 쓰고 싶다면 시인이 되면 된다. 간단하지 않은가? 이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문단은 노벨문학상을 낳고 그렇지 못하고 정치판이나 기웃거리는 문단은 파리를 날리게 되는것이다. 2023. 6. 19.
1930년, 양의洋醫의 한의漢醫 인식 하라는 일,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엉뚱한 데 관심을 뻗치는 것도 참 병은 병이다. 하지만 이러한 호기심이 없었던들 인류가 인류로 살아남았을까?각설하고, 요즘도 무슨 열매나 풀뿌리 같은 걸 홍보할 때 "허준 선생의 에 이르기를 이거는...."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많이 본다. 그렇게 뭐든지간에 을 끌어들여 근거를 삼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예컨대 어떤 신문기사에 인용되었다면, 기사 작성자가 을 인용함으로써 자기 주장의 사실성을 증명하고 그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아가 이란 이러이러한 책이라는 걸 (적어도 그 기사의 작성자와 예상 독자는) 대강이나마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그런데 의외로, 미장원 잡지만큼이나 엄청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던 일제강점기 잡지에서 을 언급하는 경우.. 2023. 6. 19.
[Discover Korea] Kong-guksu (콩국수) Kong-guksu (콩국수) or noodles in cold soybean soup is a seasonal Korean noodle dish served in a cold soy milk broth. In the Korean language, kong means soybean and guksu means noodles. It comprises noodles made with wheat flour and soup made from ground soybeans. It is unknown when Korean people started eating kongguksu; however, in accordance with the mention of the dish along with kkaeguksu (깨국수.. 2023. 6. 19.
앵삼鶯衫과 어사화御史花 과거 수석 합격자가 입는 옷 Aengsam 鶯衫 and Eosahwa 御史花 (Costume of the Candidate Passed the Exam with the Highest Score) 과거 시험 합격자들은 합격증을 받은 후 유가遊街를 하였다. 유가란 과거 합격자가 사흘 동안 풍악을 올리며 시가를 행진하는 일이다. 유가를 할 때 합격자는 어사화가 꽂힌 복두幞頭를 쓰고 앵삼을 차려입고 말에 올랐다. 조우현·박민재 제작. 성균관대박물관 소장. 2023. 6. 19.
[요지경] 심심찮은 부활 소식 "관에서 똑똑 소리가"…에콰도르 70대, 1주일새 2차례 사망판정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남미 에콰도르에서 70대 여성이 사망판정 후 장례 도중 깨어났다가 1주일 만에 '다시'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고 AP 통신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에콰도르 보건부에 따르면 76세의 은퇴한 간호사 벨라 몬토야는 지난 9일 뇌졸중으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에콰도르 남서부 바바오요에 있는 병원에 실려 왔고, 심폐소생술에도 반응이 없자 의사가 사망 판정을 내렸다. "관에서 똑똑 소리가"…에콰도르 70대, 1주일새 2차례 사망판정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남미 에콰도르에서 70대 여성이 사망판정 후 장례 도중 깨어났다가 1주일 만에 '다시'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고...www.yna.co.k.. 2023. 6. 19.
삼천년전 유럽 청동검은 요로케 남부 독일에서 발굴된 삼천년전 청동검을 죽은 남자가 지팡이맹키로 왼쪽 겨드랑이에 꼈을 거라 말했는데 그보다는 이 방식이었을 듯 하다.이리 봐야 뼈다구 출토 양상이랑 청동검 위치가 부합한다.첨부사진은 신동훈 선생 제공이며 아울러 저 방식 매장일 듯하다는 교시 역시 마찬가지다.지금 보니 여송씨 그림도 저렇다.*** relared articles ***왼쪽 겨드랑이 안쪽에 청동칼을 지팡이처럼 찡군 전사의 시체 왼쪽 겨드랑이 안쪽에 청동칼을 지팡이처럼 찡군 전사의 시체독일 남부지방에서 삼천사백년 전, 구체로는 기원전 14세기 말 무렵에 만든 중기 청동기시대 무덤에서 단면 팔각 구조인 자루 갖춤 청동검 발굴소식이 타전된 일을 앞서 정리했거니와 성인 남녀historylibrary.net지금도 반짝반짝 푸른빛 띠는 .. 2023. 6. 19.
거울인가 안내판인가? 문화재 안내판 문제는 전임 정권 시절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 문재인 당시 대통령까정 나서서 역정을 내시기에 이르렀으며 이를 고비로 그 역정이 발발한 그해만 해도 문화재청이 없는 돈 박박 긁어 59억원인가를 급조해 개선이랍시며 이래선 안대겠다 해서 손을 대기 시작했으니 그래서 괄목할 만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곤 할 수 없으나 피장파장 새로 썼다는 문구는 구습을 답습할 뿐이요 아 이거다 하는 사례는 눈 씻고 찾기도 힘들뿐더러 구조 재질만 해도 명경인지 안내판인지 그 기능을 종잡기 힘든 저런 사례가 여전히 부지기라 이곳 봉은사는 현직 대통령도 한두 번 간 곳으로 알고는 있는데 이 안내판은 못 보신듯. 2023. 6. 19.
심순애를 걷어찬 이수일은 고등중학생 고등학교라는 것은 일제시대에 일본에만 있었고 조선에는 없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조선에는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이 경성제대 예과였고, 원래 구제학제에서는 대학예과와 고등학교가 동급으로 대학 진학시 최우선권을 받고 여석이 있을 경우 봐 가면서 전문학교를 고등학교 학력인정으로 받는 것이 통례였다. 대학 선수과에 입학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조선인들은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면 대개 이런 방식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일본에서는 고등학교라고 하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했기 때문에 (해방이후 대학입시가 이에 해당한다) 고등학교, 혹은 대학예과 재학생에게 대학입학은 전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학 예과생은 본과로 거의 그대로 들어갔으며 고등학교 졸업.. 2023. 6. 19.
꽈배기 부인이 된 라일락 아무리 봐도 라일락이다. 강남 봉은사 경내라 라일락이 몇살을 드시면 저런 꽈배기가 되는가? 광화문 연가 부를 땐 라일락 꽃 향기를 맡는다는데 늙은 라일락에선 늙은 라일락 꽃 향기가 나지 않는가? 저런 라일락이 메마른 대지를 뚫고 오르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점찍은 시인도 있었다. 그나저나 라일락 맞어? 2023. 6. 19.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6) 블루칩을 투자하는 수망택주水望宅主 염장廉長은 같은 가야 혈통이기는 하지만 금관가야 계통인 김유신-김흠순 형제와는 달리 지금의 경북 고령에 기반을 둔 대가야 계통이다. 그럼에도 묘하게도 가야라는 동질 의식을 공유했으니, 이 점이 실로 묘하다. 김유신만 해도 훗날 일통삼한을 달성한 뒤에는 대가야 혈통인 문노文弩를 추앙해 그의 화상을 포석사에 모시기도 했으니, 군사 분야에서 혁혁한 전과를 냈다는 그것 말고도 짙은 가야 동질 혈통 의식이 작동했다. 염장은 595년생인 김유신보다 아홉살이나 많은 586년생이라, 그럼에도 모든 면에서 유신에 밀렸다. 그가 뛰어넘기에는 유신은 너무나도 백그라운드가 막강했다. 그래서 화랑도 유신이 먼저 했다. 하지만 유신한테 뒤졌지 당대 신라를 통털어 염장 역시 막강한 후광을 등에 엎은 금수저 출신이었다. 또 다른 여.. 2023. 6. 19.
왼쪽 겨드랑이 안쪽에 청동칼을 지팡이처럼 찡군 전사의 시체 독일 남부지방에서 삼천사백년 전, 구체로는 기원전 14세기 말 무렵에 만든 중기 청동기시대 무덤에서 단면 팔각 구조인 자루 갖춤 청동검 발굴소식이 타전된 일을 앞서 정리했거니와 성인 남녀 각 한 명과 아이 한 명까지 총 셋을 동시기에 묻은 이 무덤 발굴 정보가 빈약하기 짝이 없는데 이를 발굴하고 이를 허가한 데서 이걸로 계속 장사를 해먹을 요량인지 모르겠으니 무엇보다 유구 전체 양상을 보여주는 사진 한 장도 없고 그 전체 양상에 대해선 셋을 묻었다는 그 달랑한 기술 말고는 전연 없어 그 꼴을 보면 북한 당국 고고학 성과 공개와 진배 없다. 하다 못해 그 칼 규모가 어떤지 길이 하나 공개하지도 않았으니 그렇다고 그런 간단한 보도자료를 접한 기자들도 보니 현장을 가 본 놈은 없고 모조리 보도자료 베끼느라 정.. 2023. 6. 18.
이른바 식민지의료, 일제시대 연구 무엇이 문제인가? 현행 일제시대 연구의 구조에 대해 조금 써보겠다. 지금까지 일제시대 연구는 일단 결론을 내고 시작한다. 일제시대는 무조건 문제다. 조선은 무조건 선이다 라고. 이렇게 설정하고 그러면 왜 문제인가를 바닥부터 규명하면 좋은데 그건 또 많이 미흡하다. 이러다 보니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논문이 나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억지도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일제시대 의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시대 의료를 "식민지의료"라고 정의하고 서술하는 경우를 본다. 필자도 일제시대 의료가 정상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제시대 교육이 정상이 아니었듯이. 그런데 문제는 이 "식민지의료"가 왜 "식민지의료"인지 정확히 규명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 전통의료, 국치 때까지 주류를 차지하.. 2023. 6. 18.
일제시대의 지식인: 스핀오프 (1):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제 일제시대의 교육제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으니 노벨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かわばた やすなり, 1899~1972)의 프로필을 보자. 三島郡豊川尋常高等小学校(1906-1912) -- 茨木中学校 (1912-1917) -- 第一高等学校文科第一部乙類 (1917-1920) -- 東京帝国大学文学部 (1920-1924) 아주 심플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필자가 리뷰한 조선인들보다 시기가 약간 빨리 교육받은 사람인데도 소학교 (6년) - 중학교 (5년) - 고등학교 (3년) - 제국대학 (4년)의 기간이 잘 맞는 시계처럼 이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조선의 송몽규 같은 이가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프로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연전을 거쳐 쿄토제대.. 2023. 6. 18.
일제시대의 지식인: [32] 유치진 극작가 유치진 선생의 프로필이다. 통영공립보통학교 (1914-1918)--- 도쿄 토요야마(豊山)중학교에 편입 (1921-1925)--- 릿쿄대 예과 (1926-1927) ---- 릿쿄대 영문과 (1927-1931) 프로필을 보면, 선생의 보통학교가 4년인것은 이때까지도 조선의 보통학교가 4년제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보통학교가 6년제가 되는 것은 1922년 부터이다. 중학교때 이미 일본 유학을 했는데 당시로서는 드문 프로필이다. 선생의 집안이 여유가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 같다. 중학은 4년만에 졸업했는데 이 당시 중학은 5년제였다. 단, 학생이 우수한 경우 4년만에 졸업이 가능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릿쿄대 예과를 1년 다닌것으로 되어 있는데 중학을 졸업했으니 고등학교 과.. 2023. 6. 18.
고려의 교육열을 증언하는 고려도경의 구절들 백성[民庶] 신(臣)이 듣기에, 고려는 영토[地封]가 넓지 않으나 백성은 매우 많다. 사민(四民)의 업(業) 중에 선비[儒者]를 귀하게 여기므로, 고려에서는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산림은 매우 많고 땅은 평탄한 데가 적기 때문에, 경작하는 농민은 장인[工技]에 미치지 못한다. 주군(州郡)의 토산물[土産]은 모두 관아[公上]에 들어가므로, 상인[商賈]들은 멀리 돌아다니지 않는다. 다만 대낮에 시장[都市]에 가서 각각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써 없는 것을 서로 바꾸는 정도에 만족한다. 그러나 고려 사람들은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고 여색[色]을 좋아하며, 쉽게 사랑하고[泛愛] 재물을 중히 여긴다. 남녀간의 혼인에서도도 가볍게 합치고 쉽게 헤어져註 001 전례(典禮)를 본받지 않으니 참으로 웃을 .. 2023. 6. 18.
지금도 반짝반짝 푸른빛 띠는 3천년 전 유럽 청동검(보도자료 원문 첨부) 앞 첨부문건이 이번 발견을 정리한 보도자료다. 구글 번역기 돌리면 된다. 영어는 독일어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라 자동번역 정확성은 99%다. 관련 동영상은 아래 유툽을 보라. 언어? 신경 쓸 거 없다. 그림만 보면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o-SKenZY4 유럽 대륙에서 3천년 전 청동기시대 청동칼 1점이 발굴됐다 해서 이 업계에서는 인구에 회자하는 모양이라, 무엇보다 이 친구 상태가 지금 만든 듯이 반짝반짝 윤기가 나서다. 한데 어째 청동검 길이가 얼마인지 도대체 안 보이는가? 기자들이 질문도 안 했는가? 하긴 장강 남쪽 오월吳越 시대 춘추시대 말기 칼들을 보면 대개 이 상태인데, 그에 비견할 만한 상태인가 보다. 실제 배포한 사진들을 보니 반짝반짝 기름칠한 듯.. 2023. 6. 18.
못 배운 한에 대하여 한국은 과거제가 천년을 간 나라다. 이 부분이 갖는 의미를 간과하기 쉬운데, 고려사절요만 봐도, 고려시대부터 이미 식년시는 정례화해 있었다. 3년에 한번씩 고려시대에는 34명 (조선시대와 달리 33명이 아니다) 꼬박 꼬박 급제자가 나왔다. 이것은 대단한 것이다. 3년에 한번씩 34명씩 뽑아 올려도 3년 후에 다시 뽑아 올릴 인재풀이 있다는 소리니까. 고려도경을 봐도 고려시대는 과거제에 기반한 사대부 사회로 이러한 전통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갔다. 일제시대, 식민지조선이 다른 식민지와 달랐던 점은 배워야 한다는 점을 식민지 조선인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공부하면 출세한다는 것을 조선인들은 다 알았다. 돈이 없고 학교가 없어 못 갔을 뿐이다. 돈이 없어 학교를 못갔으니 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2023. 6. 18.
민립대 설립운동을 다시 본다 우리나라 일제 식민지사에서 민립대 설립운동의 의의는 대단히 크다. 그 중요성에 비해 현재까지 이 운동의 시작과 실패는 조선인이 대학을 만들려고 했는데 일제가 방해해서 실패했다. 끝. 이 정도 설명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 대학의 문제가 조선과 일본의 30년대 이후 차별화의 모든 근간이나 다름없다. 차별은 개인의 편견에 의해 주어 질때는 그다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차별이 구조화해서 재생산 되게 되어 있을 때가 무서운 것이다. 일제시대 후반부의 조선인 차별은 그런 식으로 구조화했기 때문에 무서운것 인데 그 구조화의 바닥에는 조선땅의 고등교육의 부재가 있었다. 이 부분을 재검토하여 전모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설하고, 전술한 바와 같이 연희전문의 대학승격이 이루어졌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 202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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