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7659 피류(避流) 해동고승전 권 제1 : 2018. 4. 6. 은조(恩祖) 해동고승전 권 제1 : 2018. 4. 6. 흑호자(黑胡子) 해동고승전 권 제1 : ☞묵호자(墨胡子) 2018. 4. 6. 현창(玄彰) 해동고승전 권 제1 : 2018. 4. 6. 아도(阿道) - 화상(和尙)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했다고 하는 고구려 출신 승려. 하지만 그 활동시기와 내력에는 혼란이 적지 않다. 신라 제21대 비처왕(毗處王) 시대에 시자(侍者) 셋을 데리고 일선군에 들어와 포교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미추왕 시대에 신라에 왔다는 설도 있다. 출생과 관련해서는 서천축(西天竺) 사람이라고도 하고, 오(吳)나라 출신이라는 이설도 있다. 아도비(我道碑)에는 고구려 여인 고도녕(高道寧)이 조위(曹魏) 사람 아굴마(我堀摩)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을 때 관계해 낳은 아들이라 했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법흥왕 : 15년(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 사람 모례(毛禮)가 자기 집 안에 굴.. 2018. 4. 6. 멸구자(滅垢疵) 해동고승전 권 제1 : 2018. 4. 6. 원종왕(原宗王) 신라 제23대 법흥왕 본명이 원종(原宗)이라 이를 따서 붙인 호칭 중 하나다. 해동고승 권1 : ☞법흥왕(法興王) 2018. 4. 6. 공목(工目) 생몰년 미상. 신라인. 제23대 법흥왕 때 주된 활동을 보였다고 생각되는데 불교를 공인 포교하려는 법흥왕에 맞서 그것을 반대하는 신료들을 대표하는 인물인 듯하다. 다른 행적은 자세하지 않다. 삼국유사 제3권 흥법 제3 원종흥법(原宗興法) 염촉멸신(厭髑滅身) : [원종이 불법을 일으킨 것은 눌지왕(訥祗王) 시대부터 100여 년 뒤의 일이다.] 신라본기(新羅本記)에 이르기를 “법흥대왕(法興大王)이 왕위에 오른 지 14년에 하급 신하인 이차돈(異次頓)이 불법을 위하여 자기 몸을 죽였다”고 했으니, 곧 소량(蕭梁) 보통(普通) 8년 정미(527)로 서천축(西天竺) 달마(達摩)가 금릉(金陵)에 온 해다. 이해에 낭지법사(朗智法師)도 처음으로 영취산(靈鷲山)에 머물면서 불법을 열었으니, 원화(元和) 연간(806~8.. 2018. 4. 6. 알공謁恭 생몰년 미상. 신라인. 제23대 법흥왕 때 주된 활동을 보였다고 생각되는데 불교를 공인 포교하려는 법흥왕에 맞서 그것을 반대하는 신료들을 대표하는 인물인 듯하다. 다른 행적은 자세하지 않다. 어떤 기록에는 알공謁恭이라 등장한다. 착간錯簡이 일어난 듯하나, 어느 쪽이 타당한지 판단은 어렵다. 삼국유사 제3권 흥법 제3 원종흥법原宗興法 염촉멸신厭髑滅身 : [원종이 불법을 일으킨 것은 눌지왕訥祗王 시대부터 100여 년 뒤의 일이다.] 신라본기新羅本記에 이르기를 “법흥대왕法興大王이 왕위에 오른 지 14년에 하급 신하인 이차돈異次頓이 불법을 위하여 자기 몸을 죽였다”고 했으니, 곧 소량蕭梁 보통普通 8년 정미(527)로 서천축西天竺 달마達摩가 금릉金陵에 온 해다. 이해에 낭지법사朗智法師도 처음으로 영취산靈鷲山에 .. 2018. 4. 6. 고도녕(高道寧) 고구려 출신 승려로 신라에서 포교활동을 한 아도(화상) 어머니.삼국유사 권 제3 흥법(興法) 제3 아도기라(阿道基羅) : 또 21대 비처왕(毗處王) 때에 이르러 아도화상(我道和尙)이 시자(侍者) 세 사람을 데리고 역시 모례(毛禮)의 집에 왔는데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했다. 그는 여기에서 몇 해를 살다가 아무 병도 없이 죽었고, 그 시자 세 사람은 머물러 살면서 경(經)과 율(律)을 강독하니 간혹 믿는 사람이 생겼다(주에 말하기를 "본비와 모든 전기와는 사실이 다르다"고 했다. 또 《고승전(高僧傳)》에는 서천축 사람이라고 하고, 혹은 오나라에서 왔다고 한다). 아도본비(我道本碑)를 상고해 보면 이렇다. 아도는 고구려 사람이다. 어머니는 고도녕(高道寧)이니, 정시(正始) 연간(240~248)에 조위(曹魏) 사.. 2018. 4. 6. 성국궁주(成國宮主) 해동고승 권1 2018. 4. 6. 시사(侍史) 해동고승 권1 2018. 4. 6. 법공法空 신라 제23대 법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승려가 되어 얻었다는 이름. 다만, 그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의문이 많은데다, 법공의 실체를 둘러싼 의문도 적지 않다. 해동고승 권1 법공(法空) 전 : 법공(法空)은 신라 제23대 법흥왕이다. 이름은 원종(原宗)이며 지증왕의 원자(元子)이니, 어머니는 연제부인(延帝夫人)이다. 왕은 키가 7척이며 너그럽고 덕이 있어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신령스럽고 거룩해서 만백성이 밝게 믿었다. 3년(516)에는 용이 양정(楊井) 안에서 나타났고, 4년(517)에는 처음으로 병부(兵部)를 두었으며, 7년(520)에는 율령을 반시하고 처음으로 백관의 주자지질(朱紫之秩)을 정했다. 즉위한 후 항상 불법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신하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므로 왕은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 2018. 4. 6. 공알恭謁 생몰년 미상. 신라인. 제23대 법흥왕 때 주된 활동을 보였다고 생각되는데 불교를 공인 포교하려는 법흥왕에 맞서 그것을 반대하는 신료들을 대표하는 인물인 듯하다. 다른 행적은 자세하지 않다. 어떤 기록에는 알공謁恭이라 등장한다. 착간錯簡이 일어난 듯하나, 어느 쪽이 타당한지 판단은 어렵다. 해동고승 권1 법공法空 전 : 법공法空은 신라 제23대 법흥왕이다. 이름은 원종原宗이며 지증왕의 원자元子이니, 어머니는 연제부인延帝夫人이다. 왕은 키가 7척이며 너그럽고 덕이 있어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신령스럽고 거룩해서 만백성이 밝게 믿었다. 3년(516)에는 용이 양정楊井 안에서 나타났고, 4년(517)에는 처음으로 병부兵部를 두었고, 7년(520)에는 율령을 반시하고 처음으로 백관의 주자지질朱紫之秩을 정했다. 즉.. 2018. 4. 6. 명관明觀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4 진흥왕본기 : 26년(565) (가을) 9월에…진(陳)나라에서 사신 유사(劉思)와 승려 명관(明觀)을 보내 예방하고, 불교 경론(經論) 1천7백여 권을 보내주었다. 해동고승전 권제1 유통지1지2(海東高僧傳卷第一流通一之一) 법운(法雲) 전 : (진흥왕) 26년(565)에는 진나라에서 사신 유사(劉思)와 승려 명관(明觀)을 보내면서 불교 경론 700여 권을 보내왔다. 해동고승전 권제2 유통지2(海東高僧傳卷第二 流通一之二) : (승려 각덕覺德이 귀국한) 그 뒤 〔진흥왕] 26년(565)에 진(陳)나라에서 사신 유사(劉思)와 입학승 명관(明觀)을 보내면서 불교의 경론도 무려 2천700여 권이나 보내 왔다. 처음에는 즉 신라가 불법의 교화를 처음으로 폈을 때는 경전과 불상이 빠진 것이.. 2018. 4. 6. 지명(智明)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4 진평왕본기 : 7년(585)…가을 7월에 고승 지명(智明)이 불법을 배우러 진(陳)나라에 들어갔다. 24년(602)…9월에 고승 지명이 입조사(入朝使) 상군을 따라 돌아왔다. 왕이 지명의 계행(戒行)을 존경하여 대덕(大德)으로 삼았다. 2018. 4. 6. 각덕(覺德) 법흥왕~진흥왕시대 활약한 신라 고승. 양(梁)으로 유학하고는 진흥왕 10년(549)에 신라에 파견된 양나라 사신을 따라 부처 사리를 지니고 본국으로 귀환했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4 진흥왕본기 : 10년(549) 봄에 양나라에서 사신과 입학승(入學僧) 각덕(覺德)을 파견하여 부처의 사리(舍利)를 보내왔다. 왕이 백관으로 하여금 흥륜사 앞길에서 받들어 맞이하게 하였다. 해동고승전 권 제1 법운(法雲) 전 : (진흥왕) 10년(549)에는 양에서 사신과 입학승 각덕(覺德)을 보내면서 부처님 사리도 함께 보내왔다. 왕은 여러 신하에게 흥륜사 앞 길까지 나아가 받들어 맞이하게 했다. 해동고승전 권제2 유통지2(海東高僧傳卷第二 流通一之二) : 승려 각덕(覺德)은 신라 사람으로 총명하고 박식했으며, 범인인지 .. 2018. 4. 6. 담화(曇和) 해동고승 권2 2018. 4. 5. 고노자(高奴子) 고구려 봉상왕 때 모용외 침입을 봉쇄한 인물. 북부 출신이며 봉상왕 2년(293), 소형(小兄)으로 신성(新城)을 지킨 지방관 중 하나로 생각되는 신성재(新城宰)로 있다가 고구려를 침입해 봉상왕을 압박한 모용외 군대를 물리쳐 그 공으로 대형(大兄)으로 승진하고, 3년 뒤 다시 모용외가 침입해 서천왕 무덤을 도굴하고 물러나자 신성태수가 되어 모용외를 막았다. 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봉상왕 : 2년(293) 가을 8월에 모용외(慕容廆)가 침입해 오자 왕은 신성으로 가서 적을 피하려 했다. 행차가 곡림(鵠林)에 이르러 모용외는 왕이 도망간 사실을 알고는 군사를 이끌고 추격해 거의 따라잡게 되니, 왕이 두려워했다. 그때 신성재(新城宰)인 북부 소형(小兄) 고노자(高奴子)가 500 기병을 거느리고 .. 2018. 4. 5. 표절과 인용, 논문 쪼개기와 돈타령…학계 고질병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사퇴를 불러온 논문 표절 시비라든가 논문 중복게재 논란은 그 진실이 무엇이건 우리 학계의 고질을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케 했다. 학계에서 말하는 표절이란 쉽게 말해 도둑질이다. 한데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을 표절이라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표절은 '인용'과 함수 관계를 이룬다. 누가 언제 발표한 어떤 글을 이용했는지를 밝혀주는 행위가 인용이다. 이런 인용 표시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사실상 표절 여부가 판가름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을 수 있다. 고의가 아닌 실수로 인용을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혹 표절 혐의가 짙다고 해도, "부주의해서 빠뜨렸다"고 변명하면 더 이상 따지기 곤란한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 반면에 우리 학계에는 '쓸데.. 2018. 4. 5. 태종무열왕릉비 Stele for Tomb of King Taejong Muyeol in GyeongjuNational Treasure No. 25경주 태종무열왕릉비 / 慶州太宗武烈王陵碑국보 제25호 / 받침돌 길이 330cm, 너비 249cm, 높이 83cm, 머릿돌 높이 110cm 신라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고자 그의 무덤 앞쪽 좌측에 세웠다. 비 몸돌은 없어지고 거북 모양 받침돌과 용을 새긴 머릿돌만 남았다. 받침돌에 조각된 돌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나아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머릿돌 좌우에는 여섯 마리 용이 서로 세 마리씩 엉켜 여의주를 문 모습을 조각했다. 앞면 중앙에는 무열왕 둘째아들 김인문이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글을 돋을새김해 .. 2018. 4. 4. 이전 1 ··· 775 776 777 778 779 780 781 ··· 84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