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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曖昧를 위한 변명, 하안何晏의 경복전부景福殿賦를 중심으로 위진남북조시대 지식인 사회 사상계를 풍미한 이른바 현학玄學 열풍을 논할 적에 왕필王弼과 더불어 늘 그 쌍괴雙魁로 거론되는 이가 하안何晏이니, 그가 남긴 장대한 서사 문학의 금자탑으로 경복전부景福殿賦라 제題하는 것이 있어, 이는 제목 그대로 경복전景福殿이라는 궁궐 완성을 기념해 그 건물의 장대함과 당시 황제의 위대함을 칭송한 산문과 운문의 중간적 존재라. 그 첫 대목을 볼짝시면, 大哉惟魏, 世有哲聖. 武創元基, 文集大命. 皆體天作制, 順時立政. 至於帝皇, 遂重熙而累盛. 이라 했으니 이를 굳이 옮긴다면, 위대하구나 魏나라여, 세상에 현철한 성인이 계셨으니, 무제武帝께서는 큰 터를 세우시고, 문제文帝께서는 하늘의 명을 모으셨으니, 모두가 하늘을 본받아 제도를 정하시고, 때에 맞춰 다스림을 세우시니라. 지금의 .. 2018. 2. 22.
표준영정·동상 심의, 이대로는 좋지 않다 이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 12월17일(월) 오후 2시부터 약 3시간가량 국립고궁박물관 1층 강당에서 개최한 ‘표준영정ㆍ동상 심의, 이대로 좋은가? - 제도 운영 개선방안 마련 토론회 -’의 김태식 토론문이다. 토론집에 실린 문장은 이곳에 전재하면서 오자와 비문 등을 일부 손질했지만 논지는 그대로다.(2012.12.18)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함이 진정한 앎이다”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조선 세종시대 이른바 6진을 개척했다는 김종서(金宗瑞)는 기실 文班과 武班의 兩班 지식 테크노크랏이 지배계급을 형성한 조선사회에서는 철저히 文班이다. 이런 그가 주연, 혹은 조연으로 등장하는 사극이 국내에서는 끊임없이 생산되거니와, 그런 드라마 중에서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인물이 얼마 전에 타계한 탤.. 2018. 2. 22.
반구대, 왜 실패하는가? 2013.05.04 18:46:15 페이스북 게재글이다. 당시 문화재청에서는 변영섭 당시 청장 주도로, 반구대 암각화를 수중에서 구출하자며, 대책도 없는 전쟁에 돌입한 시기였다. 나는 저런 식으로는 문화재청이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계속 경고했다. 실제로 문화재청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굴욕문서에 조인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는 결국 변영섭 조기강판을 부르고 말았다. 강판 뒤 변영섭이 하는 행태는 또 어땠는가? 본인이, 본인 손으로 항복문서에 조인해 놓고는 그 부당성을 주창하고 다녔다. 그 항복문서에 조인하기 전에 그 자신은 옥쇄했어야 한다. 독도 영유권 문제, 이거 새삼 정리할 필요조차 없다. 일본의 끊임없는 영유권 주장에 국내에서 내놓는 대책은 항용 같았다. 영유권 강화를 위해 독도 교육을 강화하고, 그 .. 2018. 2. 22.
사투리와 표준어 *** 아래는 2013.12.15 00:15:29 글이다. 내 고장은 김천 시내도 아니요 거기서 주구장창 소백산맥 중턱으로 들어가서 거창으로 넘어가는 대덕이다. 이제 고향에는 어머니 세대가 주축이다. 70~80대가 주민의 80~90프로다. 나도 이제 고장말 다 잊어버렸다. ‘사투리’라는 말, 나는 증오하고 경멸한다. 말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 서울말을 ‘표준말’이라고 설정하고 그 외 여타 지역말은 삿된 말이라 해서 ‘사투리’라는 딱지를 부여하니, 이는 언어 말살이다. 그 어떤 지역어건 그 자체로 존재 가치를 발한다. 물론 이 분야 종사자들, 예컨대 국립국어원이 대표하는 기관이나 그에 종사하거나 이른바 국어학에 종사하는 분들의 업적은 다대하다. 사전에 올릴 단어를 색출함에, 그리고 관련 연구에서 필드워크는.. 2018. 2. 22.
“역사학자가 한 명도 없다?” 경계의 학문, 그 허물기를 위하여 아래는 2011.12.22 내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taeshik.kim.5)에 게재한 글이다. 나는 기자로서의 본분에 기반한 활동 외의 기타 여가 활동을 하면서 내내 갑갑했다. 역사학이니 고고학이니 구분하는 자체가 경멸스러웠으니, 그리하여 예컨대 근현대사 논란이 터졌을 적에도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이 그 교과서라는 걸 출간했을 적에도 그것을 반대하는 목소리 중 하나로 “역사학자는 한 명도 없다”는 말을 나는 경멸했다. 내가 뉴라이트 계열에 기울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역사학자가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갑갑함은 이른바 고대사로 무대를 옮겨도 마찬가지였으니 나는 근본이 신라사 고구려사 백제사 가야사 일본사 중국사를 구분하는 자체를.. 2018. 2. 22.
한글전용론, 특히 한글 위기론에 부친다 아래는 김태식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taeshik.kim.5) 2012.12.28 게재한 글이다. 한자를 억압하고 숨통을 끊어버린대서 그것이 한글사랑은 아니다. ‘네티즌’을 ‘누리꾼’으로 바꾼 데서 그것이 한글살리기도 아니다.‘러미제라블’을 ‘불쌍한 사람들’이라 옮긴다 해서 그것이 한글사랑인 것도 더더욱 아니다. 자칫하면 한글이 질식할 것 같다는 패배주의 버려라. 저것을 말살해야 내가 산다는 망상도 씻어라. 한글이 그리 간단한 줄 아는가? 육백년을 살아남았고 앞으로 육천년을 갈 것이다. 지석영이, 최현배가 한글을 지켰다는 말, 거짓말이다.그것을 지킨 자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2018. 2. 22.
역사의 기록과 선택적 기억 아래는 내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taeshik.kim.5) 2012.12.21 글이다. 이른바 쇠고기 파동과 촛불집회, 그리고 명박산성으로 시끄러운 서울광장 주변을 내가 부러 살핀 적 있다. 한쪽에서 광기의 파티를 벌일 적에 그 인근 맥줏집은 태연히 미어터졌다. 87년,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시위대가 길거리로 나섰다. 물경 백만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거기엔 나도 있었고, 이른바 넥타이 부대도 있었다. 우리는 이것이 전부인 줄 안다. 그때 대한민국 전부가 그랬을 줄로 안다. 두 사건에 나로서 차이가 있다면 한번은 관찰자요 한번은 참가자였다는 점이다. 내가 요즘 와서 절감하는 건 이 요란한 잔치에도 그것과는 전연 아랑곳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요,.. 2018. 2. 22.
외국정상 관람없는 국립박물관 : 투탕카멘묘를 찾은 노무현 *** 방한 중인 버락 오바마 미 합중국 대통령이 그제 경복궁을 관람했다. 아래 기사는 그에 즈음해 과거에 이와 관련한 사안을 긁적거려 본 것이다. 당시를 회상하면 투탕카멘 묘를 관람하는 노무현 대통령에 격발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펼쳐졌다.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에 중국을 방문했을 적에 서안을 일부러 찾아 그곳 진시황 병마용갱을 관람했다. 외국정상 관람없는 국립박물관송고 2006.03.10 15:52:53(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0일자 각 언론에는 이집트를 순방 중인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카이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투탕카멘 왕묘에서 발견된 황금가면을 관람하는 사진을 일제히 실었다.이 장면을 보면서 기자는 씁쓸함을 지울 길이 없었다. 그런 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국립.. 2018. 2. 22.
문고본 시대의 재림을 꿈꾸며 문고본 시대의 재림을 꿈꾸며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이는 아래에 게재됐다. http://www.nl.go.kr/upload/nl/publish/201306/book-data/4.pdf 출판 경향이라는 점에서 볼 때, 60~70년대 한국 출판계는 문고본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내 세대 사람들에게도 그런 문고 전성시대의 향취랄까, 여진은 남아 있다. 삼중당문고로 문학을 접했고, 을유문고로 지적 호기심을 충족했으며, 그 외 무수한 문고가 있었다. 문고본은 주머니가 얄팍했던 가난한 학생에게 저렴한 가격에다 휴대의 편리함까지 주었으니 그 혜택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문고본 중 상당수가 여전히 서재 한 켠을 채우거니와, 나 같이 책이 많으면서도 더러 이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2018. 2. 22.
기쁨엔 밤이 짧고, 슬픔엔 밤이 길더라 중국사에서 서진西晉시대 정계와 문학의 거물 장화張華에게 ‘정시’情詩라는 제목이 붙은 오언五言 연작시가 있으니,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다섯 편 중에서도 세 번째 작품이다. 원앙금침 둘렀으나, 적막할 뿐이다. 독수공방을 이처럼 절절하게 표현한 작품 드물다. 아래 텍스트는 《문선文選》을 따른다. 《옥대신영玉臺新詠》 本은 조금 다르다. 清風動帷簾 맑은 바람 휘장발 흔들고 晨月照幽房 새벽달은 깊은 방 비추네 佳人處遐遠 고운님 멀고먼곳 계시는데 蘭室無容光 난초방엔 멋진 자태 없네襟懷擁虛景 품속에선 헛된 그림자 안고輕衾覆空床 얇은 이불 휑한 침대 덮었네居歡惜夜促 즐거울 땐 짧은 밤 아쉽더니在戚怨宵長 시름일 땐 긴 밤 원망스럽네 拊枕獨嘯歎 베개 안고 혼자서 한탄하니 感慨心內傷 슬픔 겨워 가슴속 아려오네 2018. 2. 21.
사자도(獅子図/狮子图/Lions) 사자도․獅子図․狮子图․Lions(Partial) 周全 筆, 日本東京國立博物館藏周全は明英宗天順年間(1457~64)から憲宗成化年間(1465~87)に活躍した画院画家で、鞍馬人物をよくしたといいます。親子の獅子が奔流を背に遊ぶ様子を、一枚の画絹に気宇壮大に描いています。獅子は「官位栄達」を意味する吉祥画でもあったといわれています。 Lions By Zhou QuanChina Color on silk Ming Dynasty, 16th century Housed at the Tokyo National Museum of Japan 2018. 2. 20.
Units of Bronze Chariot and Horses No. 2"(二號銅車馬) Units of Bronze Chariot and Horses No. 2"(二號銅車馬), excavated in 1980 at the Qin Shi Huang mausoleum, housed at the Museum of the Terracotta Warriors and Horses of Qin Shi Huang (秦始皇兵馬俑博物館), Lintong District 临潼区, Xi'an, Shaanxi Province, China Two-pieces of Qin dynasty bronze chariots were unearthed at the same wooden storage; Chariot No 1 consists of a driver with two seats in the chariot with a .. 2018. 2. 20.
Units of Bronze Chariot and Horses No. 1(一號銅車馬) Units of Bronze Chariot and Horses No. 1"(一號銅車馬), excavated in 1980 at the Qin Shi Huang mausoleum, housed at the Museum of the Terracotta Warriors and Horses of Qin Shi Huang (秦始皇兵馬俑博物館), Lintong District 临潼区, Xi'an, Shaanxi Province, China Two-pieces of Qin dynasty bronze chariots were unearthed at the same wooden storage; Chariot No 1 consists of a driver with two seats in the chariot with a .. 2018. 2. 20.
국지모(國智牟) 삼국사기 권 제20(고구려본기 제8) 영양왕본기 : 23년(612) 6월 기미(己未)[11일]…처음 (수나라) 9군이 요하를 건넜을 때는 무릇 30만 5천 명이었는데, 요동성으로 돌아가 다달았을 때는 겨우 2천7백 명이었으며, 쌓아둔 기계가 억만을 헤아렸으나 모두 잃어버려 없어졌다. 황제가 크게 노하여 [우문]술 등을 쇠사슬로 묶고 계묘일[25일]에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이전에 백제왕 장(璋)이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칠 것을 청하니, 황제가 시켜 우리 나라 동정을 엿보게 했으나, 장은 안으로 우리나라와 몰래 통하였다. 수나라 군대가 장차 출동하려 하자, 장은 그 신하 국지모(國智牟)를 수나라에 들여보내 출병할 시기를 알려달라 청하니, 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후하게 상을 주고, 상서기부랑(尙書起部郞).. 2018. 2. 20.
고승(高勝) 삼국사기 권 제20(고구려본기 제8) 영양왕본기 : 14년(603) [가을 8월에] 왕이 장군 고승(高勝)을 보내 신라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쳤다. 신라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한수(漢水)를 건너오니, 성안에서는 북치고 소리 지르며 서로 호응했다. [고]승은 저들이 수가 많고 우리는 적으므로, 이기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물러났다. 2018. 2. 20.
대원(大元) 삼국사기 권 제20(고구려본기 제8) 영양왕본기 : 영양왕(嬰陽王) 은 이름이 원(元)이고 평원왕 맏아들이다.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6대 영양왕(嬰陽王)은 평양(平陽)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원(元)인데 대원(大元)이라고도 한다. 경술년(590)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영양왕(嬰陽王) 2018. 2. 20.
평양(平陽) 삼국사기 권 제20(고구려본기 제8) 영양왕본기 : 영양왕(嬰陽王) 은 이름이 원(元)이고 평원왕 맏아들이다.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6대 영양왕(嬰陽王)은 평양(平陽)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원(元)인데 대원(大元)이라고도 한다. 경술년(590)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영양왕(嬰陽王) 2018. 2. 20.
원(元) 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평원왕본기 : 7년(565) 봄 정월에 왕자 원(元)을 태자로 삼았다. 삼국사기 권 제20(고구려본기 제8) 영양왕본기 : 영양왕(嬰陽王) 은 이름이 원(元)이고 평원왕 맏아들이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6대 영양왕(嬰陽王)은 평양(平陽)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원(元)인데 대원(大元)이라고도 한다. 경술년(590)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삼국사기 권 제27(백제본기 제5) 위덕왕본기 : 45년(598) 가을 9월에 왕은 장사(長史) 왕변나(王辯那)로 하여금 수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게 하였다. 왕은 수나라가 요동(遼東)에서 전쟁[遼東之役]을 일으킨다는 것을 듣고, 사신을 보내표를 올려 군(軍)의 길잡이[軍道]가 되기를 청하였다.황제가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 2018. 2. 20.
주리(朱理) 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양원왕본기 : 13년(557) 겨울 10월에 환도성 간(干) 주리(朱理)가 반역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2018. 2. 20.
양성(陽成) 고구려 25대 평원왕(재위 559∼590) 이름이다. 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양원왕본기 : 13년(557) 여름 4월에 왕자 양성(陽成)을 태자로 삼고, 마침내 내전(內殿)에서 군신(群臣)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5대 평원왕(平原王)은 평강(平岡)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양성(陽城)이다. 남사(南史)에 이르기를 고양(高陽)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기묘년에 즉위해 31년을 다스렸다. ☞평원왕(平原王) 2018. 2. 20.
고흘(高紇) 고구려 양원왕 때 장군으로 돌궐과의 백암성 전투에서 대승했다. 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양원왕본기 : 7년(551) 가을 9월에 돌궐(突厥)이 신성에 와 에워쌌으나 이기지 못하자 백암성으로 옮겨 쳤다. 왕이 장군 고흘(高紇)을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막아 싸워 이기고, 1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2018.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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