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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1966

네 신선이 쳐다보 안 보고 제껬다는 울진 월송정越松亭 월송정越松亭 Wolsongjeong 동해를 조망하는 누정 울진 월송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 박원종이 연산군 때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고려말 안축의 취운정기 (1331)에 고려 충선앙 4년(1312) 이미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휠씬 이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본래 월송정은 1980년에 새로 세운 지금의 월송정 남서쪽 약 450m 지점에 있었다. 본래의 정자는 없어졌다. 흔히 달과 소나무라 해서 月松이라 알기 쉬우나 이짝은 달을 싫어한듯 소나무를 뛰어넘어 놀기를 좋아한듯 넘을 월 솔 송을 써서 越松이다. 그 이름 유래는 이곡의 동유기. (1349)에 처음으로 나오는데, "소나무 만 그루 가운데에 월송정 이 있는데. 사선四仙이 유람하다가 우연히 이곳을 들리지 않고 지나갔기 때.. 2024. 7. 20.
잘만든 짜가가 초래하는 문제들 이 모습 보고선 예가 불국사로 알고 가시는 분이 의외로 많다. 진짜 불국사를 마주하고선 예도 똑같은 다보탑 석가탑 있네 하는 분도 있다면 믿기는가? 너무 그럴듯하게 만들어도 문제다. 저 모조품 역사도 제대로 정리해야 하는데 경주박물관에서 제대로 정리한 자료가 있는지 모르겠다. 저 분들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직접 자손이다. 그 와중에 등장한 것이며 하도 잘만들어서 진짜가 없어지더라도 저 짜가만 살아남으면 진짜를 복원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24. 7. 19.
[보스니아 내전] (7) 나는 엄마의 자식이다 내 삶은 어머니에게 해를 끼친 사람의 이름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나에게는 내가 전혀 본 적도 없는 악마의 낙인이 새겨졌고, 이제는 그가 누구인지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지만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해야 했습니다. 나는 치욕의 짐을 짊어지고 살았지만, 아직도 내 출생이 왜 그렇게 수치스러운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거울 앞에서 자신들을 비춰볼 용기조차 없는 세상 사람들이 지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누군가의 악마 같은 행위로 인해 나는 ‘누군가의 새끼’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나는 악마의 자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자식입니다. 나는 증오의 자식이 아니라 어머니와 양아버지,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자식입니다. 나는 부끄러움의 자식이 아니라.. 2024. 7. 19.
2천년 지중해 해저를 지킨 스핑크스 지중해로 침몰한 나일삼각주 인근 고대 이집트 도시 헤라클레이온Heracleion은 여러 번 다뤘다.이 장면도 개중 하나라 저 스핑크스 조각 Sphinx statue 은 저 상태로 1999년 발견됐다.한때 고대 도시 헤라클레이온을 증언한 분이렸다. ​저 분은 신이시라 물속에 들어가서 2천 년을 계셔도 익사를 모른다.들어갈 때 그 모습 그대로 계시다가 나오시어 지금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해양박물관 Maritime Museum을 정좌해 계신다. *** related articles *** 바다로 침몰한 나일강 어구 고대도시 헤라클레이온에서 찾은 고대 선박 바다에서 건져올린 토니스-헤라클레이온 Thonis-Heracleion 2024. 7. 19.
[보스니아 내전] (6) 우리집 정원의 보석함 탱크와 장갑차, 트럭이 우리 마을을 처음 지나갔을 때를 기억합니다. 아직 어렸던 우리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그들이 크닌에서 니슈까지 처음 진격하는 세르비아군 부대 중 일부였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호송대는 종종 우리 마을을 지나갔고, 군인들은 때로 손을 흔들며 사탕을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후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두려움이 퍼져 나갔습니다. 호송대가 나타나면 어린 우리는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십 대들은 그들을 향해 돌을 던져 분란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어느 날 돌 세례를 받은 호송대가 멈춰 섰고, 소총을 든 남자들이 쫓아왔습니다. 그들은 범인이 우리 집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우리 집 정원으로 들이닥쳤습니다... 2024. 7. 19.
[보스니아 내전] (5) 전쟁이 키운 바지 전쟁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어머니와 나 그리고 내 형제들은 조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 투즐라로 이사했습니다.우리는 1994년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 당시 나는 예닐곱 살이었고, 몸이 너무 빨리 자라 전쟁 전에 입던 옷이 갑자기 모두 작아졌습니다. 그러자 이웃의 세카 아주머니가 담요 쪼가리를 바지에 덧대어 길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 그 바지를 보면, 그 어려운 시기에 세카 아주머니가 급하게 만든 담요로 내 바지를 멋지게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카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다미르, 1987년생 *** previous article *** [보스니아 내전] (4) 사과 드실래요? 2024.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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