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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329

조선후기사에서 폐기해야 할 두 가지 개념 필자가 생각컨데 조선후기사에서 폐기되어야 비로소 역사인식에 물꼬가 트일 두가지 개념이 있다. 첫째는 실학, 특히 중농주의 실학을 근대의 선구로 보는 개념이다. 둘째는 동학혁명을 "동학농민전쟁"으로 보는 개념이다. 중농주의 실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을 근대의 선구로 보고, 동학혁명을 "농민전쟁"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덧칠해 놓은 것은 농민들을 혁명의 주체로 보고 토지균분과 공동생산을 근대적 발전 방향으로 모색한동아시아적 혁명론 (마오이즘 등)의 투영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19세기는 이런 시각으로 봐서는 그 전모를 쉽게 드러낼 수 없다. 조선후기를 변혁시킬 주체는 이러한 중농주의 실학자도 아니고, 농민도 아니다. 조선후기 향촌에서 성장해 나오는 가짜 양반들,유학모칭자들. 이들이 바로 서양사, 일본사에서 부르.. 2025. 8. 20.
19세기, 미천한 가문의 등제자들 앞서 19세기가 되면자기 집안에 등제자가 한 명도 없거나 미천한 가문 출신이라는 대과 합격자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 바, 이 사람들이 과연 전부 "잔약해진 양반 집안 출신"들일까? 이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필자가 보기엔 19세기 유학모칭자들이 섞여 있다. 19세기 유학모칭자들은 단순히 군역이나 빠지려고 유학을 모칭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과거에도 응시하여 명실상부한 사족으로 발돋움 하려 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며그 결과가 족보나 호적으로 봐도 집안에 등제자 한 명도 보이지 않는혈혈단신 대과 급제자가 많이 나왔을 것이라는 말이다. 대과 급제자가 이럴진데이보다 더 많이 뽑는 사마시 (소과) 급제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도 아마 유학모칭자들이 바글바글했을 것이다. 학.. 2025. 8. 20.
못배운 한 조선시대 호적이라는 것이 오늘날의 호적 등본 같은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조선시대 호적은호적에 병적기록부 (특기까지 기재), 그리고 심지어는 재산에 사회적 지위까지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당시 호적에는 이름과 자신의 직역, 3대조 벼슬까지 모두 적고 주호(호주)의 이름 아래에는 거느린 노비들 이름까지 죄다 적어 놨기 때문에 농사일이 노비사역으로 주로 이루어지던 시대에는 이는 그 집의 재산상태, 토지 소유 상태까지 엿볼 수 있다고 해도 되겠다. 20세기 한국인 특유의 이른바 "못배운 한"은 조선시대 후기의 이러한 호적기록 방식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호적에서 양반과 평민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구분선은, 결국 내 이름에 "유학"을 달 수 있는가 없는가다. 유학이란 과거를 볼 수 있는 관료예비군 .. 2025. 8. 20.
3대가 벼슬을 못하면 양반이 아니다? 이런 주장이 있는데이는 잘못된 말이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남아 있는 사마방목, 호적, 족보 등을 면밀히 비교하면 분명해진다. 일단 보자. 남아 있는 호적을 보면, 주호(호주)의 이름, 본관이 기재되고, 그 사람의 아버지, 조부, 증조부, 외조부 이름이 나온다. 그리고 배우자의 부, 조부, 증조부가 호적에 같이 적혀 있다. 따라서 총 7명의 조상의 이름이 적히는 셈이다. 이 7명 조상 이름에는 직역이 적히는데, 여기에는 벼슬이 적히면 좋지만 벼슬이 없을 경우, 대개 양반이 죽고 나면 "학생"으로 적힌다. "살아서 유학, 죽어서 학생"이 양반의 최소한의 조건이다. 따라서 호적에 어떤 사람이 적혀 있고 본인은 "유학"그리고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가 "학생"이라고 적혀 있.. 2025. 8. 19.
18세기 노비사역론을 마무리 하며 앞에서도 말했지만필자는 지금 작업 중인 조선시대 검안 서류에 대한 의학적 분석 때문에 19세기 조선사회에 대해 싫든좋든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18세기 노비사역에 대한 검토도 이 때문에 생긴 부산물이다. 필자가 시간이 남고 할 일이 없어 이런 작업을 한 것이 아니다. 필자 역시 역사학의 문외한, 관찰자로서 솔직히 써 보자면, 18세기 초반까지도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노비로 사역시키던이 정황을 무시하고 대충 덮어둔 채 입안하는 연구 작업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처럼 문외한으로서 조선후기사를 읽는 분들, 조선시대 자본주의 맹아론을 애국의 입장에서 바라 보는 분들은 18세기 초반까지 우리나라 향촌사회는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노비였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21세기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절.. 2025. 8. 18.
구한말과 임란 의병은 이름만 같은 의병 우리나라에 일어난 의병 중 가장 유명한 두 차례..임란 의병과 구한말 의병은이름만 같은 의병이지 두 의병이 같은 구조였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 두 시대 사이에는 노비사역이 사라진다는 엄청난 사건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임란 당시 나선 의병들은 양반들이 자기 수하 노비를 이끌고 나가 학맥에 따라 상하 관계를 형성하며 의병부대를 만들었겠지만, 구한말이 되면 이미 그런 노비란 거의 존재하지 않아 구한말 의병에는 노비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아마 독립 소농민들이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유로 일본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은 바, 그 부대의 구조는 사실 그보다 십 수년 전의 동학전쟁 부대와 구조가 많이 닮아 있지 않았겠는가. 동학전쟁도 "농민전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그.. 202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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