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58 인더스 문명 라키가리 유적 보고서 탈고 (그리고 관련 근황) 우리 연구실이 2010년대 계속 작업한 인더스 문명 라키가리Rakhigarhi 유적 보고서를 마침내 탈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 연구실은 고고학 전공이 아니므로 발굴 보고서라고 하면 조금 어폐가 있고 정확히 말하면 이 유적에서 나온 생물학-인류학적 연구 보고서입니다. 인도 고고학자 2명과 함께 보고서를 편집했습니다. 지난 1년간 꼬박 작업했어요. 현재 출판 작업 진행 중인데, 최종 출판은 올해 상반기 중 영국의 한 고고학 관련 출판사에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보고서가 출간되면 후속작업으로 인도 박물관에서 라키가리 발굴 사진전을 개최하게 될 것 같은데, 아마 이 사진전을 위한 도록 편집을 바로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라키가리 유적에 대한 우리 작업은 완전히 끝나게 되는데, 향후 인.. 2023. 1. 19. 선우씨鮮于氏 이야기 (3): 《원화성찬元和姓纂》 앞에서 동한東漢 시기 선우씨가 기자의 후손을 자처했다는 기록을 소개하였다. 이번에는 시대가 약간 내려와서 당대唐代 기록이다. 서기 812년 임보林宝는 황제 명을 받아 만성보萬姓譜를 편찬하였는데 그것이 《원화성찬元和姓纂》이다. 元和姓纂 -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zh.wikipedia.org 그 중에 선우씨에 대한 기록이 있다. 元和姓纂 (四庫全書本)/卷05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 zh.wikisource.org 鮮于 箕子封於朝鮮支子仲食采於于子孫因合鮮于為氏 漁陽 後漢有京兆尹鮮于裒魏志有太尉從事鮮于〈案劉虞從事有鮮于輔後事漢為度遼將軍此脱名當即輔也〉後拜度遼將軍北齊有鮮于榮〈案齊書鮮于世榮此避唐諱闕世字〉領軍將軍封夷陽王判右僕射後周懐州刺史鮮于緒生明唐蒲州刺史定㐮公生匡濟匡紹匡濟左騎將軍匡紹閬同何利四州刺史生建業建宗 閬中 京兆尹劔.. 2023. 1. 19. 선우씨鮮于氏 이야기 (2)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선우씨란 원래 중국의 토성으로 전한대부터 계속 내려온, 기자와는 무관한 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중국 후한대에는 선우황鮮于璜 이라는 이가 있다. 서기 125년에 죽은 후한의 관료다. 이 사람의 무덤 빗돌이 중국 하북성, 그 중에서도 하필이면 옛 중산국 자리에서 발견된 바 있다. 그 내용을 보면, 讳璜,字伯谦,其先祖出于殷箕子之苗裔,汉胶东相之醇曜 라 하여 그 선조는 은나라 기자에서 나왔다고 떡 적혀 있는 것이다. 书法聚焦 | 每日经典欣赏——《鲜于璜碑》_悲夫 《鲜于璜碑》书风方整朴厚,笔法方圆结合,在存世汉碑中,与晚于它的《张迁碑》同属方笔一派而有别具特色。 【14】无振柜,亦古晏臧之次矣,当遂功祚,穷爵永年,意乎不造,早世 【17】 www.sohu.com 아래는 그 묘비명의 전문이다... 2023. 1. 18. 선우씨鮮于氏 이야기 (1) 우리나라에는 선우씨가 있다. 기자의 후손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기자를 모신 평양 숭인전의 전감으로 대대 봉사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선우씨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중국에도 있다. 그런데 중국 쪽에서는 자국의 선우씨는 모두 조선에서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周武王灭商纣以后,放出箕子,并向他请教如何才能得到商民的拥护。箕子认为应当施行仁政,用安抚的手段来争取民心。周武王听了很高兴,要封箕子为官,但是箕子不愿做周王朝的臣子,就出走到辽东,建立了朝鲜国,史称“箕子朝鲜”。在朝鲜史籍《朝鲜史略》中记载:“周武王克商,箕子率中国人五千入朝鲜”。在朝鲜史籍《海东绎史》中引《三才图会》也记载:“箕子率五千人入朝鲜”。在朝鲜文献《朝鲜鲜于氏奇氏谱谍》中亦记载:“武王克殷,箕子耻臣周,走之朝鲜,殷民从之者五千人。” 据历史记载,箕子朝.. 2023. 1. 17. 다산 같은 이는 그보다 백년 전에 나왔어야 하는 사람 퇴율退栗 이후 정다산까지 흐른 시간이 250년 정도 된다. 정다산은 원래 활동한 시기(1762~1836)보다 100년은 빨리 나왔어야 하는 사람이다. 영조 연간에 이미 정다산이 활동하고 있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다산 정도의 이야기는 18세기 중엽에 이미 끝내고 그 시기부터 그 다음이 준비되었어야 조선이 희망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정다산은 딱 그 정도 포지션인데 여기에다 근대화의 선구라는 무거운 갑옷까지 입혀 놓고 이를 20세기 한국의 근대화에 억지로 연결시키려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사상사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잘못된 시도이다. 물론 정다산을 이렇게 정의해 버리면 조선후기와 20세기 대한민국 사이에는 심각한 단절이 오겠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아닌 것을 억지로 분칠하여 모실 수는 없는 노릇 .. 2023. 1. 17. 일본의 성리학 도입과 발전: 조선의 유학자와 관련하여 (1) 일본 쪽 주장을 보면 일본의 주자학 도입은 가마쿠라 시대부터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 시대에 이미 중국쪽에서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런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주자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주자학은 주자의 글을 좀 얻어보았다고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자의 글은 어떻게 보면 간단히 얻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원대 이후 사서에는 주자의 주가 붙어 있어 그 것만 봐도 주자학에의 입문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사찰 등지에서 논어 맹자는 읽었기 때문에 당연히 따라 붙어 있는 주자 주를 접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주자의 주를 읽는다고 해서 성리학에의 입문은 쉽지 않다. 주자학이란 그런 것이다. 만약 일본에서 하고자 하는 주장이 주자 주가 붙어 있는 사서가 언제 도입되었냐를 말하는 것이라면 .. 2023. 1. 16. 이전 1 ··· 344 345 346 347 348 349 350 ··· 41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