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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는 언제 이름을 바꿨을까 이규보(李奎報, 1168~1241)라는 인물을 몇 년째 파고들었다. 그런데 무심코 넘겼지만 생각보다 중요할 것 같은 사실 하나를 빠뜨려서, 여기 정리해두고자 한다. 바로 ‘이규보李奎報’라는 그의 이름에 관해서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이인저李仁氐’였다. 이십팔수二十八宿의 세 번째 ‘저성氐星’에서 글자를 딴 것 같다. 그렇게 22년을 살다가 1189년(명종 19) 이십팔수의 열다섯 번째 ‘규성奎星’에서 글자를 따 ‘규보奎報’로 이름을 바꾼다. 그런데 그가 이름을 바꾼 시점을 두고 『동국이상국집』과 『고려사』 의 기록이 엇갈린다. 기유년(1189) 사마시(司馬試, 국자감시)에 나아가려고 했을 때, 꿈에 어떤 촌백성인 듯한 노인들이 모두 검은 베옷을 입고 마루 위에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옆 사람이 .. 2024. 1. 8.
1971년 6월 2일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공사 허가 무령왕릉 발견의 신호탄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 허가 1971년 6월 2일 오후 2시, 문화재관리국 회의실에 문화재위원회 제1분과 제7차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 참석자는 문화재위원으로 조명기 손보기 최희순 정인국 임창순 이기백 김원용 김유선이었다. 문화재관리국에서는 전문위원 1명, 정재훈 백동호 김상봉 장경호 사무관, 김선배, 정기영이 참석했다. 사회는 조명기, 간사는 장인기, 서기는 김재겸이었다. 보고사항으로 '문화재 보수 설계검토'가 있었고, 그 두 번째 안건으로 '공주 공산성 고분군 보수공사'가 상정되었다. 그 결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심의 결정: 원안대로 가결함 2) 보수내용 : (1) 5.6호분 봉토 해체 강회 다짐 (2) 5,6호분 배면 암거 (3) 6호분 석축 개축 (4) 6호분 .. 2024. 1. 8.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2) 미륵사발 혁명의 불꽃 2009년 1월 14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정비하는 과정에서 그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에서 사리공舍利孔을 개봉한 결과 이 석탑을 처음 조성하면서 그 내력을 써서 적은 금제金製 봉영 사리기奉迎舍利記를 포함한 사리장엄 일괄품을 발견했다. 이 봉영사리기는 글자 그대로 석가모니 진신사리탑眞身舍利塔으로 석탑을 세우면서, 석가모니 부처님 사리를 맞아들여 석탑에 봉안한 내력을 기록한 문서다.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인 납작한 방형 금판 앞뒤에다가 글자를 음각하되, 글자는 붉은 칠을 했다. 이를 판독한 결과 미륵사는 백제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는 기해년에 사리를 봉안하면서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세운 사찰이라는 내용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미륵사는 창건 목적과 발.. 2024. 1. 8.
[독설고고학] 황금 너머 황금을 본 사람들 천마총 출토 신라 금관이다. 그래 이런 것들을 근거로 삼아 신라가 황금의 제국이었네 하는 말이 있다. 황금에 혹닉한 문화권이 비단 신라 뿐이겠는가? 물론 이것도 역사를 통괄하면 예외는 없지 아니해서 부족에 따라 황금을 쳐다도 안 본 문화권이 있기는 하다. 저 황금을 두고 우리네 고고학은 무엇을 어찌 다뤘던가? 저 금관만 해도 첫째 그 양태에 미쳐서 그 모양새를 죽죽 그리고는 出자형입네 하는 헛소리들 한참 지껄였고, 그 다음으로 그 전파 양상 혹은 기원이라는 측면에서 저 머나먼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지도 한 장 죽죽 그려놓고는 실크로드입네 하는 개사기를 쳤다. 뭐 암튼 이딴 이야기들로 날을 새웠으니, 반세기 넘도록 이 짓을 했다. 비단 황금이 저것 뿐이랴? 많다. 저 많은 황금을 보면서 내가 보는 한 다.. 2024. 1. 8.
남들 하는 거지 같은 주제에 나까지 뛰어들어야겠는가? 논문 쓸 거리가 없다는 말 나는 믿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나는 본다. 왜 논문 쓸 거리가 없는가? 공부를 안하고 생각을 안하기 때문이지 무슨 딴 이유가 있겠는가? 논문거리? 왜 없어? 천지빼까리다. 각 잡으면 하루 열 편을 쓰는 것이 논문이다. 왜 없는가? 늘린 게 논문 거린데? 엉뚱한 데 뛰어들어 뻘짓하니 쓸 게 없는 것이요 내가 의문하지 아니하니 쓸 거리가 없을 뿐이다. 그러니 매양 신자료 출현만 목 빼고 기다릴 뿐이요, 그러니 남이 A라고 주장한 것을 B라고 결론만 살짝 바꾸어 그것을 논문이라 긁적이는 작태가 될 뿐이다. 생각이 없고 공부를 하지 않으니 매양 굴리는 주제라고는 형식분류밖에 더 있으며 제조기술 타령이요 축조기술 타령밖에 더 있겠는가? 이딴 게 무슨 글이란 .. 2024. 1. 8.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 김유신을 혹평하는 단재 신채호 김춘추가 한창 복수운동에 분주하는 판에, 그 보좌인 一 명물이 있으니 곧 김유신이다. 당시에 연개소문을 고구려의 대표인물이라 하고, 부여 성충을 백제의 대표인물이라 하면, 김유신은 곧 신라의 대표인물이라 할 것이다. 고구려 백제가 망한 뒤에 신라 사가들이 彼 양국 인물의 전기적 자료를 말살하고 오직 김유신만을 가송歌訟하였으므로, 삼국사기 열전에 김유신 一人의 전기가 을지문덕 이하 수십 개 인의 전기보다도 그 매수가 훨씬 많고, 부여성충 같은 이는 그 열전에도 참여도 못하였다(이상 460쪽). 그러면 김유신전이 익미溢美한 말이 많음을 가히 추지推知할 것이다. 이제 그 사리에 合한 자를 추리면 대개 下와 같다.... 그러나 유신이 가야의 김씨인 까닭에 비상한 반연攀緣이 없으면 중용되지(이상 461쪽) 못할 .. 2024.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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