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5623 동서양 광자狂者의 만남 동서양 광자狂者의 만남 오르세미술관에서 괜히 한번 가주야대는 곳인 듯 해서 가줬다. 미술관은 입장객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하나 순전히 이는 노이즈 마케팅 덕분이다. 콜렉션 수준은 꽝이라, 습작 수준이며 어디서 긁어다 모은 짜투리들만 잔뜩 갖다놓았다. 인상파 대작도 단 한 점이 없다. 역사驛舍를 재활용한 미술관이라는 점 딱 하나다. 이 전략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왜 미술관을 가는가? Vanity다. 첫째도 둘째도 배너티다. (2017. 8. 11) *** 저 미술관에서 귀짜름 고흐를 조우한다. 2023. 8. 11. 막부 학문소와 동경대학 이제 동경대 이야기를 해 보자. 일본 근대교육제도에서 메이지 초년에 원래 일본 전체에서 대학은 동경제국대학 단 한 개였다. 이러한 상황은 제국대학령에 의해 동경대 외에 쿄토대 등 다른 제국대학이 추가로 설치되면서 달라지게 되었지만, 아무튼 메이지시대의 교육제도 초반은 상당기간은 일본에 대학이 단 한 개만 있는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원래 메이지 정부의 방침은 동경대를 막부의 공식적인 최고학부인 昌平坂学問所를 중심으로 만들려고 했었다. 昌平坂学問所는 강항으로 부터 감화받아 일본최초의 본격적인 성리학자가 된 후지와라 세이카의 제자, 하야시 라잔이 막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것으로 에도 막부의 명실상부한 최고학부가 되었다. 이 학문소의 유지가 일본 동경 간다역 근처에 가면 아직 남아 있는데 지금은 "유지마.. 2023. 8. 11. 허망한 이인로의 대답, "이거 제 글씹니다"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을 보면 고려 중기에 있었던 어떤 흥미로운 사건을 하나 기록하고 있다. 옛 어른들의 감정 - 흔히 배관拜觀이라고 하는 - 실력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해보도록 하자. 내가 일찍이 높으신 분의 댁[貴家]의 벽에서 초서(草書)가 적힌 족자 두 점을 보았는데, 연기에 그을리고 집안으로 샌 빗물에 젖어 형색이 자못 기이하고 예스러웠다. 그 시에 이르기를, 시가 적힌 단풍잎이 궁궐[鳳城]에서 나오니 紅葉題詩出鳳城 눈물 자국은 먹과 섞이며 오히려 분명하네 淚痕和墨尙分明 궁궐 도랑에 흐르는 물 흐려서 믿을 수 없네 御溝流水渾無賴 궁녀의 한 조각 마음을 흘려보냈다기에 漏洩宮娥一片情 이라고 하였다. 좌중 손님들이 모두 머리를 모아 보면서 당唐 · 송宋 시절 사람의 필체라 여겼다. 분.. 2023. 8. 11. 아이지현愛知県 제4중학이 된 번교藩校 시습관時習館 1752年(宝暦2年) - 藩校時習館、藩主松平信復により、城内の八丁小路(現在の豊橋市八町通)に設立。 1806年(文化3年) - 「時習館規条」制定。 1872年(明治5年) - 藩校時習館廃止。 1893年(明治26年) - 私立補習学校時習館(愛知県立時習館高等学校の前身)設立。藩校時習館の名を借りて称した。 1900年(明治33年) - 愛知第四中学校(ナンバースクール)へ改名。 1948年(昭和23年)10月 - 豊橋時習館高等学校の校名に改称し、「時習館」の名称が復活する。 1956年(昭和31年) - 愛知県立時習館高等学校に改称。 아이치현에는 미카와요시다 번이 있었는데 이 번의 번교藩校를 논어의 글귀를 따 시습관時習館이라 불렀다. 번교가 설립된 시기는 1752년. 메이지유신후 폐지되었다가 사립학교로 전환되었고, 1900년에 아이치현의 제4중학.. 2023. 8. 11. 대량으로 써제낀 증정용 식민지시대 글씨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제법 이름있는 이의 필적은 일본에 많이 전해진다. 대개는 일본에 망명한 뒤 생활비를 조달하려고 팔았거나, 신세진 이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선사한 것이다. 조선-한국에 있었던 인물이 일본인을 만나도 으레 글씨를 써주거나 그림을 그려주곤 했던 모양으로, 요즘들어 그러한 작품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런 작품들을 보면서 몇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1) 금박종이나 호피선지를 둘러 휘황찬란하게 '표구(장황이 아니다)'한 현현거사玄玄居士의 글씨나 소호小湖의 난초를 흔히 만난다. 그런데 일본에서 일본 재료를 써서 만들어 일본인에게 준,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조선 19세기 말~20세기 초"라고 표기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단순히 만든 이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미술사의 영역 안에.. 2023. 8. 11. 번교의 근대교육기관으로 전환의 사례: 요네자와번 흥양관 일본의 에도시대 번교藩校가 근대교육기관으로 어떻게 전환되었는지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요네자와번米沢藩에는 에도시대, 번사藩士를 교육하는 번교가 있었는데 이름을 흥양관興譲館이라 하였다. 1697년, 공자를 모셔 석전釈奠하는 학문소를 사적으로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1776년부터 요네자와번의 공식적 교육기관이 되었다. 공자 제사와 교육 기능을 겸비하였으니 정확히는 우리나라 향교와 유사하다 할 것이다. 興譲館(こうじょうかん)は、江戸時代の出羽国米沢藩主上杉治憲の命により、上杉綱憲の学問所を再建して成立した藩校である。ここでは主に江戸時代のことについて記載する。 創立・再建 1697年(元禄10年)6月15日に上杉綱憲が以前から孔子を祀る行事である釈奠を行っていた儒臣矢尾板三印の邸宅に学問所を設置、同年11月29日には同じ邸内に釈奠の会場となる聖堂.. 2023. 8. 11. 이전 1 ··· 2275 2276 2277 2278 2279 2280 2281 ··· 427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