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0235 폼페이 유적의 해시계 A Roman Sun dial - Temple of Apollo in Pompeii 곧 폼페이 유적 아폴론 신전 기둥에 설치한 해시계 라는데 나는 놓친 광경이다. 다시 가? 저거 보러? 2024. 5. 28. [문화재를 배회하는 유령] (3) 말벌 사건과 무덤 붕괴 몇 년 전이다. 그날 나는 마침 현장에는 없었지만, 서악마을에 유숙한 내 지인 몇 명이서 하룻밤을 유숙한 다음 새벽 동이 틀 무렵 몰래 서악고분군 담장을 넘고는 들어가 선도산 기슭을 따라 흘러내린 능선을 따라 나란히 자리잡은 저 거대한 서악고분군 무덤들 중에서도 맨 뒤쪽, 그러니깐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하는 그 무덤을 몰래 오르다가 기어이 사고가 났으니 아마 높이 20미터 가까울 저 거대한 봉분을 몰래 오르던 그 지인 중 한 분이 그만 말집을 건드려 병원에 후송하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으니, 진짜로 골로 갈뻔 했다. 각 부위에 고르게 총 7방을 당한 그 지인 진짜로 죽다 살아났다.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는 나는 아 조만간 저 무덤이 무너지겠구나 했다. 그 얼마 뒤 실제로 저들 무덤 중.. 2024. 5. 28. [문화재를 배회하는 유령] (2) 헛다리 짚은 서악고분 붕괴 현장 복구 지금까지 저와 같은 태풍 혹은 집중호우에 따른 문화유산 파괴현장은 중앙부처 기준으로 그 몫은 발굴제도과였으니, 물론이 경우 그 몫이라 함은 발굴을 염두에 둔 수습을 말한다. 구체로 들어가면 해당 문화재 성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버킹검이라 언제나 발굴이 따랐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그 복구를 위해서는 발굴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다.그런가? 왜 저런 현장에 발굴이 모름지기 필요한가? 우리는 이를 단 한 번도 물은 적 없다.실제 그 과정에 어떠했건 그것이 끝난 다음 목표는 오직 하나라 원상태 복구였으며, 실제 모든 현장이 그런 식으로 마무리 되어 오늘에 이른다.간단히 무덤 혹은 산성을 보자. 무슨 이유로 무덤 일부가 붕괴하거나 성벽 일부가 무너졌다. 그에 따른 궁극하는 작업 완료는 본래 상태로의.. 2024. 5. 28. 올멕 Olmec, 큰바위얼굴을 좋아한 메조아메리카 문명 올멕 문명 Olmec civilization 이 오늘날 멕시코에 남긴 거대한 얼굴 기념물 중 하나로 무게만 40톤에 육박한다. 올멕 Olmecs 이란 가장 초기에 알려진 주요 메소아메리카 문명 Mesoamerican civilization 으로 그 번성 시기는 기원전 1200년 이래 약 기원전 400년까지 대략 800년간이며, 주된 지점은 지금의 멕시코 경내 베라크루즈 Veracruz 와 타바스코 Tabasco 주 일대 열대 저지대다. 이 올멕 이전 기원전 2500년 무렵 문명이 있기는 했지만 기원전 1200년 무렵 베라크루즈 남동부 해안 근처 산 로렌초 테노치티틀란 San Lorenzo Tenochtitlán 유적을 중심으로 초기 올멕 문화가 등장한 것으로 간주한다. 흔히 최초의 메소아메리카 문명으로 .. 2024. 5. 28. 현재 집필 중인 단행본 이전에도 소개했지만 현재 집필 중인 영문 단행본-교과서다. 이 책은 자랑하고 싶은 데가 있다. 영문으로 집필해서 미국 시장에서 팔아 볼 계획이지만, 그것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 거론된 내용은 모두 한국에서 벌어진 연구와 사건들을 예로 들었다는 점에서, 동급 법의인류학 교과서 중에서는 그 안에 거론된 사례들이 비 구미권의 사례만으로 집필된 사실상 최초의 책이라는 점이다. 내년 1월에는 아마존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랑삼아 광고해 본다. 2024. 5. 28. 함안 말이산고분과 비슷하게 만든 진주 원당고분 대따시 뚜껑돌 출현한 진주 원당고분군 연전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한 적 있거니와, 오늘은 그 후속이다. 경남 진주시가 매장문화재전문조사기관인 (재)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이곳 일반성면 운천리 일원 ‘진주 원당고분군(M2호분) 시굴 및 발굴조사’를 한 모양이라, 그 중간 조사치가 27일 공개되었다.위선 이 발굴 성과를 살피기에 앞서 저 무덤이 위치하는 데가 일반성면? 면 단위 행정구역 치고는 상당히 이상해 찾아보니 一班城面이라 그 유래를 디지털진주문화대전 기술을 바탕으로 살피니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班城縣이라 했다가 고종 1년(1864)에 반성면이 되고, 이어 반성면이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쪼개지면서 지금의 명칭이 등장했다 한다. 1반, 2반 분반과는 상관없고 종래 이 지역 명칭.. 2024. 5. 28. 이전 1 ··· 777 778 779 780 781 782 783 ··· 337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