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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2268

연합뉴스에 남은 김태식이라는 흔적을 깡그리 지우면서 내일이면 내 퇴직이 확정됐다는 문자가 회사로부터 공식 발송될 것이며, 이로써 나는 진짜로 다른 단계에 접어든다. 그를 앞두고, 말년 휴가 중인 나는 오늘 오후 잠깐 공장에 들렀으니, 저번에 짐을 치울 적에 미쳐 손대지 못한 데가 있었으니, 내가 사용한 컴퓨터에서 혹 문제가 될 만한 소지들을 쏵 밀어버리는 일이었다. 예컨대 각종 sns 계정 사용기록이니, 이건 단순히 내가 로그아웃을 한다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 다시 접속하면 내 비밀번호까지 저장된 까닭에 재접속하면 그대로 내 계정으로 들어가니, 이런 것들을 이런 사정을 아는 젊은 친구한테 부탁해서 쏵 밀어버렸다. 파일도 지우고 했으니, 혹 그에서 누락된 것들이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로써, 나는 퇴직을 앞두고 내 흔적이라 할 만한 것들을 적어도 내.. 2023. 10. 11.
선언에서 실행으로 가는 마지막 시점 지금이 2023년 10월 10일 쌍십절이라, 이 주간이 나로선 의미가 있다고 할 만한 지점은 연합뉴스 기자로 기록되는 마지막 주간이라는 점에 있다. 조금은 고심하다 나는 저 회사를 떠난다는 사실을 공포했으니 질질 끌기도 싫었고 무엇보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저런 말들이 싫은 까닭이었다. 아무리 요식이라 해도 그에는 절차가 있기 마련이라, 더구나 내가 떠나기로 한 방식은 희망퇴직이라는 일종의 비상수단이니 이는 나한테는 신청자격만 주어질뿐 그 선택은 회사 몫이다. 그 회사 몫의 결정이 나오지도 않은 마당에 나는 떠난다 선언하고 나섰으니 이는 난 떠나고야 만다는 시위 성격도 있다. 그 동기야 무엇이건 그 최종 판단은 내일 공장 인사위에서 결판날 테고 무난히 나는 퇴직 신청이 받아들여지리라 본다. 따라서 .. 2023. 10. 10.
닷새만의 보무도 당당한 귀가 아무리 백수 예비자라 해도, 닷새를 전국을 떠돌다 기어들어오는 남편이 기분 좋겠는가? 그래도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큰소리 뻥뻥치며 남영동을 입성했으니, 그 이유는 첫째, 차 트렁크엔 갓 캔 붉은 고구마가 한 박스 그득이요 둘째, 꿀 한 통이 서비스로 첨가돼 있었고 셋째, 오늘 아침에 딴 이상한 호박 서너 개가 더 첨가된 까닭이다. 그래서 막판이 중요하다. 김천 들리기를 참 잘했다고 안도한다. 배 고프지 않냐? 과일이라도 깎아주까 살랑살랑한 마누라 반응이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직접 시어머니한테 전화해서 내가 직접 고구마를 캤느냐 어찌 했느냐 확인하고는 저런 반응이다. 문젠 이게 이틀을 못 간다는 거 아니겠는가? #바가지 #마누라바가지 #바가지피하는법 2023. 10. 10.
문화재에 대한 압제, 고착화 박제화 전통은 변용하기 마련이다. 전통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고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화재를 바라보는 통념이다. 이를 고착화 박제화라 한다. 무형문화재가 늘 원형 훼손 시비에 휘말리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는 윽박이요 폭력이다. 지는 한옥 대님 훌라당 벗어버리고 쭉쭉 째진 청바지에 노팬티 노브라로 활개하면서 유독 문화재에 대해서는 그 자리 있어야 한다고 윽박한다. 종묘제례악도 피아노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아쟁 소리로 만족할 수는 없다. (2016. 10. 10) 2023. 10. 10.
여전히 강고한 농촌사회의 물물교환 전통 순전히 내 고향 기준이기는 하나 나는 거개 한국농촌사회가 같은 과정을 밟았다 보는데 개중 하나가 강고한 물물교환 전통이다. 내가 어린시절까지도 우리 고향에선 돈 구경하기 힘들었고 그 사용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모든 것은 물물교환에 따라 삶을 영위했으니 그러다가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한 시점은 거의 정확히 교육제도 변화와 일치한다. 엄마 아부지야 당연히 까막눈이시라 학교는 문전에도 못가봤고 큰누이는 아마 국민학교도 안나오거나 다니다 말았으며 죽은 형은 국민학교 겨우 나와 중학교인가 다니다가 도망쳤고 가운데 누이는 중학교, 막내누이는 고등학교, 남동생은 훗날 전문대학을 나왔지만 고등학교도 계우 마쳤다. 국민학교는 의무라 했지만 말뿐이었고 문제는 중학교 이후. 등록금을 화폐로 지불해야 했으니 이에서 돈이라는 게 .. 2023. 10. 9.
연근이 희미하게 일깨운 계급의식, 벤또모노가타리 弁当物語 일전에 내가 희미하게나마 계급이란 걸 어떻게 의식하기 시작했는지 잠깐 얘기한 적이 있거니와, 그에서 나는 벤또 또한 그런 의식을 일캐웠노라 한 적 있다. 그런 예고에 제법 깝죽대는 언론계 모 후배가 계란으로 떡칠한 쏘세지 동그랑땡을 언급했지만,벤또가 나에게 안겨준 굴욕감은 동그랑땡이 아닌 연근蓮根이었다. 고교 진학과 동시에 대덕 산골을 나와 김천 시내에 자취를 하게 된 나는 도시락도 내가 밥을 해서 싸다녀야 했지만 그것도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어서는 아예 싸가지 않는 날이 많았으니, 그렇다고 내가 집이 풍족한가 하면 김천고등학교 구내매점에서 파는 라면 하나 사 먹을 돈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고학년이 될수록 점심을 굶는 날이 많았고 벤또를 싸가는 날도 변변한 반찬이 없어 실로 난감하기만 했다. 그렇..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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