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7972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 고대 일본의 도교사원 도관(道觀) 《일본서기》 제명천황(斉明天皇) 2년 조 말미에는 그 발생 날짜를 특정하기는 힘들어 '시세(是歲)'라는 표지 아래 다음과 같은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 터 확정과 그 궁궐 완성한 사건을 기술했다. 飛鳥岡本更定宮地。時、高麗・百濟・新羅並遣使進調、爲張紺幕於此宮地而饗焉。遂起宮室、天皇乃遷、號曰後飛鳥岡本宮。於田身嶺、冠以周垣(田身山名、此云大務)、復於嶺上兩槻樹邊起觀、號爲兩槻宮、亦曰天宮。 飛鳥의 岡本에다가 궁을 세울 자리를 다시 정했다. 이때 高麗・百濟・新羅가 모두 사신을 보내 調를 받치자 이들을 위해 이 궁 자리에다가 감색紺色 장막을 치고는 그들에게 향연을 베풀었다. 나중에 궁실이 완성되자 天皇이 그곳으로 옮기고는 이름하기를 後飛鳥岡本宮이라 했다。전신령田身嶺에다 그 봉우리를 빙 두른 담을 쳐서 마치 갓처럼 만들고(전신田.. 2018. 8. 13. 김유신론(7) 보안사령관에 수방사령관을 겸한 절대권력자 서기 654년 음력 3월, 신라 제28대 왕 김승만(金勝曼)이 재위 8년 만에 죽으니, 이를 흔히 진덕왕(眞德王)이라 한다. 《삼국사기》 그의 본기에서는 그가 죽자 "시호를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沙梁部)에 장사 지냈다. 당 고종이 이를 듣고는 영광문(永光門)에서 애도를 표하고 태상승 장문수(張文收)를 사신으로 삼아 부절을 가지고 조문케 하고, 진덕왕에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추증하고 부의로 비단 3백 필을 내려주었다"고 하거니와, 이제 문제는 차기 대권이 누구한테 가느냐였다. 그의 죽음이 실로 묘한 까닭은 죽음에 대비한 후사 문제를 전연 정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대목이 수상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곡절을 따지면 그럴 만한 사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니, 승만의 죽음으로 신라에는 이제 신분.. 2018. 8. 12. 이화여대박물관 뿌리는 상허 이태준? 내가 회고록 읽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런 글들을 훑다보면, 이런저런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되거니와, 근자에 한번 훑은 국어학자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1896~1989) 자서전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역시 그런 회로록 중 하나다. 내가 읽은 판본은 도서출판 선영사에서 2001년 11월 25일 1쇄가 나온 2016년 4월 20일 간행 그 재판이어니와, 그 원판은 이 책에 붙은 저자 서문에 의하면, 1975년 11월 8일에 시작해 이듬해 1월 26일까지 '나의 이력서'라는 제목 아래 《한국일보》에 연재한 글을 원바탕으로 삼고, 이후 "약간의 보충과 오기(誤記)가 뚜렷한 개소(個所)를 정정(訂正)하여" 1977년 한국능력개발사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생몰년에서 보듯이 94세로 장수한 일석의 그 .. 2018. 8. 12. 궁주宮主 원주院主 전주殿主 《화랑세기》가 공개되었을 무렵, 저들 용어가 다시금 세간, 엄밀히는 고대사학계에 오르내렸다. 이들 용어는 《화랑세기》 곳곳에 등장하는 까닭이다. 이들은 실은 고려사를 무대로 하는 곳에 빈출한다. 《삼국사기》에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고, 《삼국유사》에는 딱 두 군데만 등장하는 것으로 안다. 나아가 《해동고승전》에도 한군데 보이거니와, 그 등장 맥락이 《삼국유사》의 그것과 같다고 기억한다. 그런 까닭에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는 이것이 고려시대 봉작인데, 시대를 거꾸러 거슬러 올라가 신라시대에 붙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제법 많았다. 그런 의심이 이런 용어로 넘쳐나는 《화랑세기》가 출현하면서, 텍스트 자체가 위작이라는 의심으로 번지기도 했다. 내 기억에 이들이 대표하는 용어 문제로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여 .. 2018. 8. 12. 《텍스트론》 편찬연대 선후가 반드시 계승 관계를 말하지는 않는다 같거나 비슷한 내용 혹은 같거나 비슷한 사건을 전하는 기록물 A와 B가 있을 때, 역사학도를 비롯한 텍스트 연구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가 그 편찬 선후를 배열하고선 그것을 계승 관계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A가 먼저 나온 기록물이라면 덮어놓고 B는 A를 베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안이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A와 B가 그 선대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C와 D를 각각 참조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가 사금갑 이야기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에 의하는 한, 현존 문헌 중에 이 이야기를 수록한 가장 이른 시기 문헌은 《삼국유사》 기이편이다. 이후 이 이야기는 각종 후대 문헌에 빈번히 등장한다. 한데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후 문헌들이 모조리 《삼국유사》를 참조한 것으로 간주한.. 2018. 8. 12. 서원이나 향교엔 왜 은행나무가 많을까? 지금의 서울 성균관대학교는 그 이름을 성균관에서 따왔다. 그런 까닭에 그 역사 전통 또한 조선시대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에서 구하기도 하거니와, 하지만 이는 역사를 늘리기 위한 엿가락 조작의 결과이니, 이런 논리대로라면, 그런 국립대학이 모름지기 조선시대이겠는가? 고려시대에도 그런 학교가 있었고, 신라시대에도 그 원조로써 국학(國學)이 있었으며, 그것을 더욱 거슬러가면 고구려 소수림왕 때 국학으로 역시 뿌리를 구할 수 있거니와, 하지만 뿐이랴? 그 뿌리 역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으로 쳐들어가니, 성균관은 공자를 시조로 삼거니와, 공자학단 그 자체가 곧 성균관인 셈이다. 지금은 삼성그룹으로 재단이 넘어간 성균관대학은 그 직접 뿌리가 해방 직후인 1946년에 있으니, 이때 저명한 유학자 출신 꼬장꼬.. 2018. 8. 11. 이전 1 ··· 2707 2708 2709 2710 2711 2712 2713 ··· 299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