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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어 신약성서 및 비평노트와 어휘집[국립세계문자박물관] 17세기 독일 인쇄술, 이렇게나 정교하다고? 시리아어 신약성서 및 비평노트와 어휘집 (신약성서 1664년, 비평노트와 어휘집 1667년) 1455년 구텐베르크가 최초의 활판인쇄를 시작한 이후, 유럽 각지로 퍼져나간 인쇄술.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라틴 알파벳 뿐만이 아니라 시리아어도 책으로 인쇄되어 출판되었는데요. 이 책은 길레스 구트비에르(Giles Gutbier)의 와 , 을 한 권으로 묶은 책입으로, 17세기 독일 인쇄술의 발전된 수준을 보여줍니다. 는 오른쪽 끝에서 시작되고, 과 는 왼쪽 끝에서 시작됩니다. 서체는 세르토체(serto) 활자이며, 이 활자는 함부르크의 활자 제작자, 바르톨로메우스 보스켄스가 제작하였습니다. This book is a compilation of the syriac New.. 2024. 9. 22.
미노아 황소는 검정소? 그 강렬한 눈 같은 황소라도 전면 얼짱 각도 사진이 이쯤 나와야지 않겠는가? 이 분 태어나신 때가 대략이기는 하지만 기원전 1550~1500년 무렵, 서기가 아니다. 대략 3천500살 정도 되시겠다. 이 분 정체가 뭐냐? Minoan bull’s head rhyton (ceremonial vessel), Palace of Knossos, Crete 라 해서 미노아문명 황소 머리 리톤(의례용 그릇)으로 그리스 크레타 섬 크노소스 궁전 출토품 되시겠다. 왜 저런 검은빛이 도는가? 재료가 black steatite, jasper, 그리고 mother-of-pearl[진주]이라 한다. black steatite와 jasper가 한반도에서 산출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구경 못하는 광물 아닌가 하는데 자신은 없다. 높이 26cm.. 2024. 9. 22.
쟁기질로 키운 곡물, 수확과 탈곡은? 앞서 쟁기질 써레질하고 곡물 혹은 작물 씨뿌리는 장면을 봤으니 이젠 그렇게 키운 것들을 수확하는 순간이 기다린다.이건 감숙성이나 신장위구르가 아니라 푸바오 본거지 사천성 성도에서 주루룩 출토하는 후한시대 화상전画像塼 한 장면이라대략 서기 2세기 무렵 이 유물을 보면 논 혹은 밭에서 농부들이 작물을 수확하는 장면을 묘사한다.유감스럽게도 작업 공간이 논인지 밭인지는 분간이 어렵다.벼농사가 활발했던 곳이니 쌀농사일 가능성도 있고 다른 작물일 수도 있다.낫이 자루가 긴 점이 특이하다. 쌀은 아닌 듯하다.왼쪽을 보면 한 농부가 장대를 왼쪽 어깨에 울러맸으니 그 양 끝엔 수확한 곡물 다발이 보인다. 이렇게 수확한 작물은 도정하고 해야 비로소 식재료로 간다.이건 팽산彭山이란 데서 나온 화상전 한 장면이라 우리한테 익.. 2024. 9. 22.
씨뿌리고 써레질하는 감숙성 고대 농법 앞서 감숙성 가욕관嘉峪関 위진魏晉시대 벽화묘 중에서도 5호묘라고 이름한 무덤에서 보이는 소 쟁기질 벽화 장면을 살폈거니와,이건 같은 서기 3~4세기 무렵 무덤떼 중 제1호묘 벽화에서 보이는 비슷한 소재 그림들인데, 그것과는 좀 다른 면이 있으니다름 아닌 파종, 곧 곡물 씨앗을 뿌리는 장면이 보인다는 점이 그것이다. 저들 그림을 보면 하나 같이 쟁기는 소 두 마리가 끈다. 한데 그 쟁기를 끄는 소 앞에는 종재기 같은 것을 든 남자?가 씨앗을 뿌리는 장면을 본다. 아예 경종耕種이라 해서 묵서가 보이기도 한다. 경종이란 밭을 갈며 씨를 뿌린다는 뜻이거나, 그냥 씨앗을 뿌린다는 뜻이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왜 쟁기질을 해서 갈아 엎은 땅을 따라가며 씨앗을 뿌리지 아니하고 그 반대로 먼저 씨앗을 뿌린 다음 쟁기질.. 2024. 9. 21.
왜 키질벽화에? 감숙성에 쟁기질이? 왼쪽은 극목이 천불동克孜爾千佛洞, 곧 키질석굴 제175굴 벽화에 보이는 한 장면으로 두 마리 소리를 끌고서 쟁기질을 하는 장면이며, 오른쪽은 가욕관嘉峪關 5호묘 벽화 속 이른바 두 마리 소를 끌고 쟁기질을 하는 장면이다. 둘은 표현 양식이 다르지만 모티브는 같다.    앞 첫 장면 키질석굴 벽화만 빼내 본다. 그에는 왼쪽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장면도 있다. 결국 농사 짓는 장면 파노라마 장면이다. 왼쪽은 보습으로 땅을 파서 일구는 장면이다.  한데 예술가 표현 양식 때문인가? 왜 사람이 소를 타고서 쟁기질을 하는가? 무슨 쟁기질 경기에 나선 선수 같은 느낌도 준다. 한데 저런 장면이 왜 불동佛洞에 보이는가? 혹 인도나 서역에서 유래했나?   맨 앞 두 번째 장면 무대인 감숙성 가욕관嘉峪关 위진벽화묘魏晋壁画.. 2024. 9. 21.
기련산 기슭 밭을 가는 소 추가 정보 확보가 구글링이나 바이두 서칭으로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듯해서 위선 저런 유물이 있다는 정도로 소화해줬으면 싶고 혹 이와 관련한 저 좋은 정보를 확보한 분은 소개 부탁드린다. 중국 감숙성甘粛省 무위현武威県 마저자磨咀子 한묘漢墓 출토 전한前漢시대 말기 목우木牛 명기明器라 하는데, 틀림없이 감숙성박물관이 소장 중일 것이다. 나는 실견하지 못했다. 소에다가 매달아 놓은 쟁기는 현대에 붙였음에 틀림없을 테고, 이 소를 보면 코뚜레가 완연해서 농경을 위한 소임에는 틀림없다. 중국 기준으로는 이른바 실크로드 관문이라 하는 감숙성 위치를 고려할 때, 저짝에서 쌀농사가 있었을 리는 만무하고 밭농사 잡곡 경영을 위해 저 소를 저리 이용했을 것이다. 중국에서 농경에 소를 쓴 흔적은 이집트나 다른 근동지역에 견주.. 2024. 9. 21.
후삼국, 무신정권, 여말선초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후삼국, 무신정권, 여말선초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한 번 다시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조선후기 이른바 자생적 근대화 담론도 의미 없는 일이다 라고. 후삼국, 무신정권, 여말선초의 동란을 왕조교체기의 혼란 내지는 토지 분배의 모순 극복 등으로 간단히 설명해 버리는데 조선후기 자생적 근대화는 어떻게 설명이 된다는 것인가? 조선후기 이른바 중농파 실학자를 근대화의 선구로 보는 것도 모두 후삼국, 무신정권, 여말선초의 동란을 우리가 현재 해석하는 방법. 이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겠다. 후삼국, 무신정권, 여말선초는 필자가 보기엔 일본사에서 이에 상응하는 시기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후삼국은 헤이안시대 말기의 혼란, 무신정권은 무가정권의 성립, 그리고 여말선초는 일본사에서 수시로 볼 .. 2024. 9. 21.
외발뜨기(흘림뜨기), 족보의 탄생 비결이 된 제지술 한국족보박물관 제2전시장 한가운데 닥나무 껍질(백피)와 분산제(황촉규 뿌리)가 수조에 담기고 발틀 위에 발을 올려 한지를 뜬다 족보를 만드는데 사용된 전통 한지 초지(제지, 제작)기술 전시 한국족보박물관에 소장된 족보의 섬유배양성을 분석하여 초지기술의 개량(근대, 산업)화로 도입된 쌍발뜨기(가둠뜨기) 기술이 아닌 조선시대에 한지를 만들던 외발뜨기(흘림뜨기) 기술로 제작된 종이가 16세기~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족보에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전수 조사를 한 것이 아니니 예외가 나타날 것임. 그래도, 일단은, 전시장 중앙을 차지한 오브제가 전시의 의도를 말해 줄 것. 그런데 왜 철망안에 가두었을까? 팬더도 남방돌고래 제돌이처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할까? 팬더를 보호하고 관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2024. 9. 21.
여말선초의 괴벨스 여말선초 신진사대부들은 이전까지 자연스럽게 발전해 오던 농장을 해체하면서 성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농장은 해체되고 사원은 불벼락을 맞아 재산은 몰수되고 승려들은 사대부들의 종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 과정의 결과로 성립된 것이 바로 과전법 체제이다. 우리 역사학하에서 여말선초에 대한 현재의 기술은 바로 이러한 소위 신진사대부들의 정치 프로파간다를 곧이 곧대로 신뢰하면서 성립된 것으로, 역사의 바른 해석법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국이건 일본이건 이러한 농장이나 장원은 한국처럼 강제로 해체된 바가 없었고,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아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신진사대부들의 프로파간다에 속지말라. 정도전? 그는 새로 만든 조선왕조의 설계자로 부르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는 조선왕조의 괴벨스다. 괴벨스의 .. 2024. 9. 21.
권문세족 겸병농장은 일본으로 가면 무엇이 되는가 고려말 권문세족이 경영했다는 겸병 농장은 일본으로 건너가면 무엇이 되는가? 아래를 보자. 日本の荘園(しょうえん)とは、古代・中世(8世紀から16世紀)に存在し、権門(中央の貴族(公家、武家の棟梁)・大寺社など)が国家から領有支配が認められ収入を得た農地とその周辺の山野を含む土地を指す[1]。その農地は「公領」に対して「私領」と呼ばれ、多くは国家へ納める税の減免が認められ免田となった。 우리의 권문세족의 겸병 농장과 똑같지 않는가? 일본의 장원이 바로 우리의 겸병 농장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본사에서는 이 장원은 "사회악"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 이 장원을 없애는 것을 "정의의 심판"으로 부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장원은 역사의 순리적 발전으로 보고 이를 해체하려 한 공가의 시도를 "반동"이라고 본다. 2024. 9. 21.
여말선초 그들은 왜 땅이 필요했는가 여말선초 조선 건국세력의 프로파간다에 익숙한 우리는, 고려말에는 송곳하나 꽂을 곳이 없이 권문세가의 농장이 백성을 침탈하여 고통받고 있어 사전을 혁파하여 권문세가의 땅을 몰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전법체제를 출범시켰다고 하고, 이것을 일종의 혁명이자 역사적 순리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송곳 하나 꽂을 수 없는 겸병된 농장을 일본에서는 동시기에 장원이라 불렀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말하는 성리학자의 혁명없이도 장원은 잘만 성장하고 발전하여 무가정권을 출범시키고 그것이 에도막부까지 발전하여 조닌문화, 거대한 화폐경제를 출현시키고 메이지유신까지 이어졌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여말선초의 "농장"과 "겸병"은 정말 사회악이었을까? 군역을 도피한다고 공격당하여 절집과 인근의 토지를 몰수당하고 사대부들의 종 아.. 2024. 9. 20.
캐갈까 무쪄워 호남화단의 시조랄 수 있는 소치 허련(1809-1893). 뒷사람들은 흔히 '운림산방 5대'라는 자손의 화맥畵脈만을 이야기하지만, 당대부터 그는 제자를 여럿 길러냈다. 그들은 호남 각지에 뿌리내려 작품활동을 하였는데, 당연하게도 소치풍風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들이 소치 그림을 갖지 못한 이들의 수요를 채워주고, 누군가는 그들의 작품에서 낙관을 교묘히 도려내 스승 소치의 위작으로 둔갑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소치의 제자, 또는 소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여겨지는 화가 중 난원 김환주(1877-?)라는 이가 있다. 해남 출신으로 서화에 이름이 있어 흥선대원군이 호를 지어주었다는 미방 김익로(1845-1915)의 아들인데, 김환주 역시 그림을 잘했다 하나 전해지는 작품은 드물다 한다. 이 사진이 그 .. 2024. 9. 20.
성리학 벽이단론闢異端論의 기원: 맹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리학의 벽이단론 기원은 맹자다. 맹자는 이단을 통렬히 비판하였는데 막상 이단에 대한 처분에 대해서는 생각만큼 가혹하지 않았다. 맹자는 이단을 물리치는데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孟子曰: “逃墨必歸於楊, 逃楊必歸於儒. 歸, 斯受之而已矣. 墨氏務外而不情, 楊氏太簡而近實, 故其反正之漸, 大略如此. 歸斯受之者, 憫其陷溺之久, 而取其悔悟之新也. 今之與楊墨辯者, 如追放豚, 旣入其苙, 又從而招之.” 放豚, 放逸之豕豚也. 苙, 闌也. 招, 罥也, 羈其足也. 言彼旣來歸, 而又追咎其旣往之失也. ○ 此章見聖賢之於異端, 距之甚嚴, 而於其來歸, 待之甚恕. 距之嚴, 故人知彼說之爲邪; 待之恕, 故人知此道之可反, 仁之至, 義之盡也.군자가 이단을 처분하는 방법은 엄하게 대하되 돌아오면 다 받아주고 도망.. 2024. 9. 20.
과격한 척불론은 성리학의 본령이 아니다 물론 척불론은 성리학자들이 계속 이야기한 부분이긴 하다. 당대의 거목 유학자로 성리학의 남상을 이룬다고 평가받는 한유도 그 유명한 (논)불골표에서 척불의 뜻을 남겼고 이 글은 그 후 천여년간 유학자들이 줄곧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의 모든 척불론도 이러한 흐름의 파생이다. 그런데-. 척불론은 성리학의 주장에 분명히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조선처럼 불교의 씨를 말리라고 한 사람은 없다. 벽이단론闢異端論은 이미 맹자에서 나오는 오래된 유교의 주장이지만 이 벽이단론은 불교를 씨를 말려버리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척불론을 포함한 성리학이 국가체제교학이 된 송대 이후의 중국, 에도시대 이후의 일본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살아 남은 것이다. 이 두 나라에서는 중앙정치와 사대부의 정신세계.. 2024. 9. 20.
아는 것보다 더 나간 여말선초의 사대부들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이 사서집주에서 주희가 적어 놓은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16세기이지 싶다. 사서집주가 워낙 유명하고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이를 우습게 보는 경우도 있던데 사실 성리대전이니 하는 성리서를 본다고 해서 사서집주의 수준을 많이 뛰어 넘는 것이 아니다. 조선성리학 16세기의 발전은 성리대전과 각종 성리서를 수입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사서집주에 대한 오랜 침잠의 결과로 그 내용을 마침내 이해하게 된 데서 온다. 사서집주의 성리철학 주가 이해하기 상당히 난해해서 그것을 이해하고자 주자어류니 성리대전이니 하는 것을 보는 것이지 사서집주의 주자 주 자체가 수준이 낮은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말이다. 사서집주의 주자 주를 다 이해하면 다른 성리철학 관련 서적은 볼 필요도 없다. 그 안에.. 2024. 9. 20.
절 재산이 탐나 벌인 척불정책 물론 성리학에는 척불적 기조가 있다. 그런데-. 그 척불적 기조의 정도가 문제겠는데, 당장 성리학자의 원류 중 하나로 척불론의 원조격이 될 한유만 해도 논불골표論佛骨表 등을 보면,부처의 말을 다 믿지 말고 이를 중앙 정치판에 끌고 오지 말라는 이야기지절 집을 뺏고 재산 몰수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의 송-원대 성리학자들 주장 어디에도 절집 재산 빼앗고 박해하라는 소리는 없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네 번의 폐불운동이 있어 불교를 탄압했는데정작 성리학이 흥한 후 북송대 이후에는 제대로 된 폐불운동이 일어난 바 없다. 앞에서도 한 번 쓴 것 같은데 여말선초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이해하는 성리학 수준은 그다지 깊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주자의 사서집주 주석도 완전히 이해 못한 수준이었을 것이라 .. 2024. 9. 20.
의식용 칼들이 말하는 스키타이 황금문화 아래 논문이 인용하는 스키타이 장식용 검 도판들이다. Golden Swords of the Early Nomads of Eurasia: A New Classification and Chronology by Denis TopalORCID History, Archaeology, and Museology Department, National Museum of History of Moldova, MD-2012 Chișinău, Moldova Arts 2024, 13(2), 48; https://doi.org/10.3390/arts13020048Submission received: 11 August 2023 / Revised: 30 January 2024 / Accepted: 2 February 2024 / Pu.. 2024. 9. 20.
조선은 하나라더니 어느날 다른 나라라는 북한 필자 젊은 시절에 북한에서 노상 하는 소리가 조선은 하나다 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UN 동시가입도 영구분단 책동이고올림픽도 분단 영구화의 책동이라 반대하고 그 짓을 하다가 하다가 이제는 자기들이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남한이 발전하니원래 서로 다른 나라란다. 같은 민족이 아니라 국경을 접한 적대국이라네? 그런데-. 나도 북한하고 지금 당장 통일하는 건 싫다. 내 노후가 아깝다고. 미안하지만 나는 애국자가 아니어서 그런지내 노후를 불쌍한 북쪽 동포하고 나눌 만한 마음의 준비가 없다. 그런데 말이다. 통일을 하고 안하고는 니네가 결정하는 게 아냐. 대한민국이 결정하는 거지. 이쪽 사람들이 하겠다고 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미안하지만 니네는 결정권이 없다. 나라를 그 모양을 만들어 놨으면 미안해서.. 2024. 9. 19.
일 시키고 보수를 줘서 신기했던 청계천 준천 영조가 말년에 당신이 했던 일중에 가장 잘 한 일이라 자평했다는 청계천 준천. 이 사업은 신기하게도 사역한 사람들에게 보수를 줬다. 필자가 알기론 이것도 국고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내탕금에서 지급된 것으로 아는데, 아무튼 어쨌건 준천 한 사람들에게 보수를 줬다. 보수를 안주고 일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 가끔 그런 생각 한 적이 없는가? 조선시대에 만들어 놓은 성벽저걸 성벽이라고 쌓았나 싶은 그런 성벽들 말이다. 죄다 공짜로 부려 먹고 시키려다 보니 만들어진 성벽이 그 모양이다. 얼마전 본 유튜브에서 북한에서 나무 심기 할 때 나무를 어떻게 심는가 설명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탈북민 이야기로는 빨리 갈 생각에 뿌리를 다 쳐내고 꽂아 놓고 집에 간다는 것이다.당연히 그 나무는 다음 번에 오면 말라죽고 없다. 요.. 2024. 9. 19.
선의는 디테일에서 열매를 맺는다 누군가 악마는 디테일에서 있다고 했던가 같은 이야기를 뒤집으면 선의는 디테일에서 열매를 본다고도 할 수 있겠다. 말로는 무슨 소리든 다 가능하다. 조선시대에 선비마다 한 번씩은 아마 읊어 봤을 민농시 여름 땡볕에 일하는 농부가 불쌍해 죽겠다고 하면서 권력자들은 저런 농부들의 고생을 외면한다고 질타한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그 농부가 여름 뙤약볕에 들에 나가 일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 때문일 수도 있다. 왜냐 그 동네 지주는 자신이기 때문이지. 물론 그 시를 쓴 사람은 선의에서 썼을 수도 있다. 그럼 뭐 조선시대 나온 그 많은 민농시가 전부 다 위선이겠는가? 그런데-. 국민을 위한다거나 아니면 농부를 위한다거나 디테일이 없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 실컷 농부가 불쌍하다고 해 놓고는 그 해법이 정전제, 균전.. 2024. 9. 19.
파피루스 습지에서 새를 사냥하는 고양이 브리티시 뮤지엄 소장 고대 이집트 벽화 중 한 장면으로, 구체로는 테베, 그리니깐 현재의 나일강 중류 도시 룩소르에서 발견된 기원전 1350년 무렵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네바문Nebamun이라는 사람 묘소 겸 사당에서 출현한 석회판 위 원색화로, 저 그림 조각 전체는 83 x 98 cm다. 사진 출처는 ©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저 장면은 Nebamun이 습지에서 주로 새들을 사냥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저처럼 생생한 회화 자료들이 남았으니 저 시대 문화생활사 미술사를 그렇지 아니한 한반도의 그것에 견주어 얼마나 유리한가? 또 배가 아프고, 또 조상들이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저 장면 구체하는 박물관 안내는 다음과 같다. 네바문 무덤 예배당tomb-chapel에 있는 이 벽.. 2024.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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