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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문명 최초의 부부합장묘와 Archaeology Magazine - A Plot of Their Own - Archaeology Magazine - July/August 2019At a 4,500-year-old necropolis in northern India, archaeologists discovered a grave containing the remains of […]archaeology.org 인도 데칸대학 신데Shinde 교수와 함께 우리가 조사한 인더스 문명 무덤인데 Archaeology Magazine에 나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늦긴 했지만 블로그에 스크랩 해둔다. 믿거나 말거나 이 무덤이 지금까지 인더스문명 무덤에서 발견된 최초의 부부합장묘였다. 관련 논문은: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1.. 2024. 7. 4.
요녕성 호로도시 동대장자東大杖子 무덤에서 튀어나온 잠자리 눈깔 7개 이는 4년 전인 2020년 무렵에 신화사 보도를 인용하면서 알려진 것이라, 국내 고고학도들도 비교적 익숙한 유물이다. 당시 보도를 보면요녕성문물고고연구원遼寧省文物考古研究院에서 당시 호로도시葫芦島市 소재 동대장자묘지東大杖子墓地라는 그네들 표현대로는 전국시대, 내 기준으로는 중국 고고학 편년으로는 전국시대에 해당하는 무덤에서 발굴한 7점 청정안蜻蜓眼이라는 약간 요상한 구슬류 유물 분석 결과라는 것을 내어 놓았으니 저 무덤 떼는 호로도시 건창현建昌県 감창향鹸廠郷이라는 고을 동대장자촌東大杖子村に이라는 마을에 위치한다.해당 유물은 저 연구원이 다른 지역 기관과 합동 발굴조사 결과 2003년 수습했다. 그렇담 저 유물을 지칭하는 청정蜻蜓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잠자리다. 그러니 청정안蜻蜓眼이란 그 모습이 흡사 잠자리.. 2024. 7. 4.
초콜릿이 되어 세계를 정복한 신대륙 코코아 고대 올멕인Olmecs, 마야인Mayans, 아즈텍인Aztecs이 코코아cocoa를 신성하고 권위 있는 음료로 소중히 여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20세기 들어 초콜릿chocolate은 Joseph Storrs Fry와 같은 기업가가 재창조되고 특허를 받아 시장성 있는 상품으로 변모시켰다.코코넛이 초콜렛으로 변화하고 그것이 무한급성장한 산업화 과정도 거대한 인류사 드라마다. 2024. 7. 4.
헤르쿨라네움 넵튠 모자이크 집 폼페이 말고도 헤라쿨라네움Herculaneum 마을도 서기 79년 베수비오 산 Mount Vesuvius 폭발로 파괴되어 66피트 화산재 아래에 묻혔다. 헤라쿨라네움에서 가장 유명한 집 중 하나는 넵튠 모자이크 집 House of the Neptune Mosaic이다. 이 집은 꽤 작지만 잘 꾸몄고 부유한 집안의 것처럼 보인다. 2024. 7. 4.
몬테 테스타치오 Monte Testaccio, 로마의 난지도 로마에는 남다른 언덕이 있다. 5천300만 개 올리브 오일 암포라 olive oil amphorae 가 퇴적한 쓰레기 언덕 말이다. 몬테 테스타치오 Monte Testaccio 라는 쓰레기장이 그것이다. 이 인공 언덕은 좋은 샐러드 드레싱과 같은 삶의 더 나은 것들에 대한 로마의 사랑과 일상 쓰레기를 역사적 랜드마크로 바꾸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만하다. 옛날의 쓰레기장이 또 다른 문명의 보물, 즉 관광 명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위치는 아래 https://en.wikipedia.org/wiki/Monte_Testaccio#/map/0 Monte Testaccio - WikipediaWaste mound made from broken Roman pottery Monte Testaccio (I.. 2024. 7. 4.
시체 머리맡 신라 약절구 파는 게 능사가 아니다. 시체 머리맡 약절구를 보고선 이 사람이 생전에 병을 많이 앓아서.. 이 딴 헛소리나 싸지르는 언필칭 고대사 대가가 있었다. (2023. 7. 5) 모르면 모른다 하고 모르는 데는 아예 나서지를 말며 정 나서야거든 이에 대해선 선학의 이런 연구가 있다 소개해야지 않겠는가?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2024. 7. 4.
DNA가 바꾼 혁명, 이집트 미라의 경우 고대 이집트 왕비 티예Tiye 라는 분 미라시다. 이 미라는 파라오 아멘호테프 2세 Amenhotep II 무덤 두 번째 측면 방 side chamber 에서 발견됐다. 발견 시점은 아주 일러 1898년으로 거슬러 간다. 빅터 로레 Victor Loret 라는 이가 발견한 아멘호테프 2세 무덤은 나중에는 고대 이집트 성직자들이 18왕조와 19왕조에 걸쳐 많은 왕실 미라를 보관하는 창고로 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티예의 긴 머리카락은 이 미라의 아주 분명한 특징이다. 아울러 이 미라 정체를 증명해 준 것이 바로 이 머리카락이다. 왕비 이름이 표시된 4개 미니어처 석관 중 하나가 투탕카멘 왕묘에서 발굴됐다. 그 미니어처 관에는 투탕카멘한테는 할머니인 티예의 머리카락 다발이 있었다. 이 머리카락 분석을 통해 .. 2024. 7. 4.
흑요석 거울을 박은 폼페이 저택 이게 뭔가 하겠지만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장렬하게 산화한 폼페이 중에서도 황금 큐피드의 집 House of the Golden Cupids 이라고 명명한 저택 비름빡에 박아 놓은 흑요석이라 그 기능은 거울이었다. 이 흑요석 거울 obsidian mirror은 이 저택만 해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비름빡 중에도 페리스타일 벽 peristyle wall 에서 나왔다. 이 페리스타일이 뭔가 궁금하겠거니와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건물이나 안뜰을 둘러싼 현관을 말한다. 기둥이 죽 둘러친다. 저 비름빡에 박았으니, 지나는 사람들이 얼굴 보며 혹 밥띠끼 얼굴에, 혹은 고춧가루 이빨에 찡기지 않았나 보란 배려다. 흑요석 여러 기능 중 하나에 거울이 있다. 이 점이 한국고고학에서는 거의 고려하지 않는데, 이것도.. 2024. 7. 4.
클럽문화가 없던 조선시대, 출근시간을 당겼다 전기도 없고 드라마도 없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밥만 먹고 잤다 사극을 보면, 퇴청하는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한잔 빨자 하며 기생집 행차해서는 밤새워 퍼마시는 장면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 사실인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렇게 올나이트로 영업하는 기생집이 조선시대엔 없었다. 그렇다고 조선시대 관리라 해서 거나하게 밤새워 한 잔 빨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정도로 조선시대 한양이라는 도시가 향락 문화가 번성했을 것 같은가? 조선시대 문집 같은 데서 등장하는 기생은 모조리 관기라 준 국가공무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강남 클럽들이 아니다. 그런 향락 문화가 없으니 출근시간이 저처럼 빨라도 대과가 없었다. 그 무수한 조선시대 사람들이 남긴 글을 보노라면 단 한 명도 아이고 오늘을 출근을 안 했음 좋겠다거나,.. 2024. 7. 4.
사냥으로 육고기 충당은 조선시대까지도 그랬다 흔히 신석기시대는 초보적 농경(?)으로 잡곡이나 좀 짓다가, 먹거리가 모자라니 산에 들에 멧돼지 잡고 꿩 잡고 돌아다니며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그게 아니다. 육고기 충당을 사냥으로 하고 돌아다닌 건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그랬다. 우리나라는 농가에서 가축을 키워 그것을 잡아 먹으면서 단백질을 보충한 그런 나라가 아니다.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닭보다 꿩을 훨씬 많이 먹었고, 우리나라 발굴 현장에서 사슴뼈가 사라지고 돼지뼈가 더 많아지는 것이 생각보다 무지하게 늦다. 육고기를 사냥으로 충당한다고 해서 그것이 "수렵사회"는 아니라는 말이다. 조선후기가 "수렵사회"여서 될 말인가? 신석기시대도 마찬가지다. *** previous article *** 신석기시대 .. 2024. 7. 4.
투탕카멘 엄마 키는 158센티미터 공식적으로 투탕카멘 왕의 어머니이자 KV55(몇몇 연구자는 아케나톤Akhenaten이라 하지만 공식화하지는 않았다)로 알려진 미라의 완전한 친누이로 확인된 이 “젊은 부인 Younger Lady” 미라는 아멘호테프 3세 왕과 그의 위대한 왕비 티예Tiye 사이에서 난 딸이다. 이 “젊은 부인”에 대한 현대적인 분석에 따르면 그녀가 죽었을 때 나이는 25~35세 사이였고, 키는 158cm였다.최근의 CT 스캔은 또한 아들 투탕카멘과 마찬가지로 이 “젊은 부인”이 사랑니가 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는데, 이 또한 그녀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또 다른 지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식은 다음 참조.  https://egypt-museum.com/tutankhamuns-mother-the-young.. 2024. 7. 4.
신석기시대 농경 어찌 봐야 하나?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농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조, 기장을 비롯한 쌀, 보리, 밀, 콩, 팥 등의 탄화 곡물이 다수 확인되어..."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조, 기장, 쌀, 보리, 밀, 콩, 팥을 키우고 있었다면, 아니 여기서 쌀과 보리는 빼도 좋다. 조, 기장, 밀, 콩, 팥만이라도 한 번 동시에 키워보기를-. 산에 들에 멧돼지 꿩 잡고 도토리 주우러 다닐 시간이 나나 안나나. 저렇게 다양한 곡물을 동시에 재배하고 있었다면 그게 어떻게 초보적 농경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밭에다 씨만 뿌려 놓는다고 가을 되면 그게 다 익어 추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세상에 그런 농사는 없다. 뭔가 쌀 농사를 대대적으로 해야 제대.. 2024. 7. 4.
다리우스가 닦은 아케메네스 고속도로 도로를 정비하지 아니하고서 무슨 국가 통치를 하겠는가? 이 점에서 한반도 전근대는 재앙이다. 도로다운 도로도 없어 수레 하나 제대로 다닐 길이 없었다. 물론 전국토 70%가 산악이라는 특성에서 말미암기는 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간선도로 하나 없었다. 영남대로? 호남대로? 웃기는 소리. 그게 무슨 요즘 기준으로 도로 축에 속하는 줄 아는가? 그런 도로라 해 봐야 포장도 되지 않았다. 포장한 도로 봤는가? 기껏 왕성 혹은 왕궁이라 할 만 한데 흉내만 내다 말았을 뿐이다. 고갯길은 도로라도 있었던 것 같은가? 천만에. 오죽하면 육십령은 육십명이 모여야 비로소 통행을 허락하지 않았겠는가? 왜? 호랑이 산도적 때문이었다. 다리우스 대왕 Darius the Great (Darius I) 시절 기원전 5세기에.. 2024. 7. 3.
닳고 닳았으며 닳고 닳는 피사의 탑 계단을 보며 뭔가 하겠지만 그 유명한 이탈리아 피사의 탑 Tower of Pisa 돌계단이다. 나선형이라 저리 빙빙 돌아 사람들은 오르락내리락 한다. 하도 유명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가겠는가? 저 탑이 들어선 시점이 1373년이니, 물경 800년을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저렇게 홈이 생겼다. 계단은 모두 294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녹록치는 않다. 사지 멀쩡한 젊은 시절에야 저것도 계단이냐 하겠지만, 조금만 아파보고, 조금만 나이들어봐도 저 계단이 얼마나 힘든 줄 알며, 전 세계 몇 십억 사람 중에 저길 걸어서 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라는 사실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각설하고 그 양태로 몇 백년을 저 지속하면 저 홈은 더 깊어질 것이며, 종국에는 아주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2024. 7. 3.
천애절벽 올라 베히스툰 비문 조사하는 서 헨리 롤린슨 Sir Henry Rawlinson 베히스툰 비문 Behistun Rock이 인류사, 특히 고대 근동사는 물론이고 쐐기문자 판독에 결정타를 날렸다는 점에서 그 중대성은 이집트 문자를 읽게 만든 로제타스톤에 비견한다. 그 발판을 마련한 이가 19세기 중반 헨리 롤린슨 Henry Rawlinson 경이라는 영국 동인도 회사 군인이었다. 그는 이 설형 문자를 판독 번역해 냈다. 그의 초인적인 노력이야 뭐라 하겠냐마는 그 발판을 마련한 베히스툰 비문을 조사하고자 그가 저런 험준한 벼랑을 올라 그가 비문을 조사했다 해서 회화로 표현한 한 장면이다. 내가 볼 땐 저리 오를 수도 없고, 더구나 저 상태로 계속 조사한다? 밧줄을 매달고 대롱대롱 매달려 조사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내 막연한 추측이다. 지극히 극화한 상상화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2024. 7. 3.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시신들 2013년 어간에 언론을 통해 공개된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 지역 스타리 타르타스 Staryi Tartas 마을 청동기시대 묘지 발굴성과 한 장면이다. 뼈 크기가 현저히 다른데, 부부보다는 부모 자식으로 봐야지 않을까 싶다. 당시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 고고학민족지연구소 Institute of Archeology and Ethnography of the Siberian Branch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s 고고학도들은 약 600개소에 이르는 무덤을 발굴했다. 발굴 팀장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뱌체슬라프 몰로딘 Vyacheslav Molodin. 시신과 함께 매장된 껴묻거리로 보아 이들 무덤이 안드로노보 문화 Andronovo culture.. 2024. 7. 3.
포겔헤르트 동굴이 토해낸 3만5천 년 전 구석기시대 말 말 조각품인데 길이 4.8센티미터 이 유물은 놀랍게도 연세가 자그마치 ca. 30,000 – 29,000 years old라, 구석시시대다. 구석기시대에 이미 말을 인류가 이용했을까? 야생일까 사육일까? 다리가 부러진 상태지만 목 뒤와 등과 왼쪽 가슴에 십자 표시와 각진 표시 등의 기호가 있다. 이를 출토한 포겔헤르트 동굴 Vogelherd Cave은 어떤 곳인가? 독일어로 Vogelherdhöhle 또는 Vogelherd라 하는 이곳은 독일 남서부 슈바벤 유라 Swabian Jura 동부 니더슈토칭엔Niederstotzingen 일부인 슈테텐 옵 론탈 Stetten ob Lontal 근처 론Lone 강 계곡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후기 구석기 Upper Palaeolithic 석회암 카르스트 동굴 lime.. 2024. 7. 3.
왜 한국의 농경은 일본과 다른가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렇다. 일본은 청동기와 철기가 동시에 유입되는 반면 한국은 청동기와 철기의 도입에 시간차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청동기시대 설정이 가능하다는 설법이다. 농경도 마찬가지이다. 잡곡과 도작이 일본은 거의 동시기에 한반도에서 유입되었다고 본다. 물론 최근 일본에서는 조몽시대 원시적 농경론을 입론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하는 소리고, 결국 잡곡과 도작은 일본에 발달된 농경 형태로 한꺼번에 유입되었다는 말이다. 양자간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잡곡과 도작의 도입에 차이가 없었을까? 도작 도입 이후에나 제대로 된 농경이 이루어졌겠는가 하는 말이다. 도작 이전에는 뭐 내놓을 만한 농경이 없다는 건 일본의 시각이다. 일본 금속문화 시각으로 한국을 그대로 재단.. 2024. 7. 3.
한국의 농경은 일본의 시각으로 봐서는 안된다 한국의 농경은 일본의 시각으로 보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도작에 대한 지나친 강조, 도작 이전 잡곡농경을 원시적 수준으로 보는 시각, 농업사회가 세트로 들어와 한국에 정착했다고 생각하는 시각 등 이런 시각들은 모두 일본의 농경 도입기에 유의미한 시각이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사는 남쪽의 도작부터 북쪽의 잡곡 농경까지 다양한 형태의 문명이 존재했고, 도작에만 일방적 우위를 줄 수 없다. 도작 이전에도 잡곡농경이 상당히 고도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농업사회가 야요이시대처럼 일거에 세트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부분 요소별로 조각 조각 나뉘어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도작, 조, 수수, 기장, 돼지, 소, 말, 닭 등 농업사회를 이루는 제반 요소가 도입 경로도.. 2024. 7. 3.
제주공원지구 발굴현장 매몰사고에 격발해 다시 주문한다! 제주 매장유산 조사 현장 토사 무너져…2명 매몰됐다 구조(종합) 송고시간 2024-07-02 16:58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백나용 기자 = 제주지역 매장유산 표본조사 용역 현장에서 토사가 무너져 작업자 2명이 다쳤다. 제주 매장유산 조사 현장 토사 무너져…2명 매몰됐다 구조(종합) | 연합뉴스(제주=연합뉴스) 고성식 백나용 기자 = 제주지역 매장유산 표본조사 용역 현장에서 토사가 무너져 작업자 2명이 다쳤다.www.yna.co.kr 중대재해법인지 시행으로 공사현장 죽겠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오는데, 꼭 그것이 아니라 해도 이 발굴현장 안전문제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니와 이를 방지하겠다며 문화재청, 아 국가유산청이지 이런 데라든가 한문협이라든가 하는 기관에서 주기발작으로 각종 안정교육이라고 하지만, 그렇.. 2024. 7. 3.
[동부 터키 여행] (12) 아라라트 산과 노아의 방주 구약성서 창세기 Book of Genesis 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 Noah's Ark 는 "아라라트 산 mountains of Ararat"(성경 히브리어: ָרֵי אֲרָרָת, 하레 아라라트 hare ararat)에 착륙했다(창세기 8:4).많은 역사가와 성서 학자들은 "아라라트"가 아르메니아의 지리적 전신인 우라르투 Urartu 의 히브리어 이름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들은 이 단어가 특히 아라라트 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더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이 문구는 벌게이트 Vulgate 에서 "아르메니아 산 montes Armeniae"으로 번역된다. 그럼에도 아라라트는 전통적으로 노아의 방주가 정착한 데로 여겨지며,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산으로 간주된다. 아라라트 산은 11.. 2024.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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