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전체 글20109

조, 기장, 수수, 콩이 나오는 "초보적 농경" 필자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조, 기장, 수수, 콩이 나오는 "초보적 농경"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말이다. 한가지 작물도 아니고 조, 기장, 수수, 콩을 매년 경작해야 한다면, 이것이 과연 "초보적 농경"이라는 수준의 작업으로 가능한 것일까? 필자가 보기엔 조, 기장, 수수, 콩을 재배하여 먹고 살았다면 일년 내내 거기 매달려도 빠듯했을 것이라 본다. 멧돼지 쫒아 다니고 도토리 줏으러 다닐 시간이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잡곡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그 농부들이 시간이 남아 돌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여러 작물을 매년 생산하려면 눈 코 뜴해 없이 바빴을 것이라는 것이다. 멧돼지 쫒고 남는 시간에 지은 농사가 아닐 것이라는 뜻이다. 2024. 6. 18.
보그 바디 bog body, 북구 습지 미라 스칸디나비아 수수께끼를 탐험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이탄 습지 미라 들여다 보기다. 이 지역에서 모두 천 구가 넘는 습지 미라 bog mummies가 발굴됐다. 2024. 6. 18.
잡곡농경에도 프로는 있다 최근 신소희 선생이라는 분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필자도 기장 파종을 한 듯하다. 며칠 전 김단장 쓰신 글을 통해 본 신소희 선생 기장 자란 걸 보니 필자가 딴일 하다 가끔 물이나 주는 기장하고 비교를 해 보니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필자 기장은 수확이나 될까 싶은데 저쪽은 확실히 대풍이 들 것 같다.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잡곡농경이건 뭐건 초보적 농경이란 건 없다. 씨 뿌려 놓고 하루 종일 멧돼지 사냥 도토리 줍기나 하다가 어쩌다 돌아보는 기장 농사가 그게 수확이나 될 거 같은가? 도작 이전에 잡곡 농경에 초보적 농경이라던가, 원시적 농경이라는 딱지를 붙이곤 하는 걸 보는데 도대체 원시적, 초보적 농경이 뭔지 한 번 자문해 볼 때가 됐다. 농경이라는 건 새삼 느끼지만, 노력과 관심의 최소한.. 2024. 6. 18.
고도와 낙차를 이용해야 하는 수로 우리네 농촌 수도가 그렇듯 로마 역시 물을 이용하려면 고도가 높은 데서 물을 끌어와야 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까닭이다. 이 낙차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무지막지 수로가 길어지고 무엇보다 표고를 조절해야 했다. 그 낙폭을 이용해 물을 흘러내린 것이다. 이 장면은 로마시대 수로 aqueduct 양상을 생생히 단면으로 보여준다. 파이프라인이다. 사진은 튀르키예에 남은 로마시대 수로 유적이랜다. 펌프는 따라서 저 물에 대한 본성의 배신이다. 거꾸로 솟아오르게 한 까닭이다. 2024. 6. 18.
같은 무덤인데 횡혈식 석실분이라면 산통 깨는 아가멤논 무덤 이른바 아트레우스 보물창고 Treasury of Atreus 니 혹은 아가멤놈 무덤 Tomb of Agamemnon 으로 알려진 기원전 1450년 무렵 이 미케네 대형석실분 측단면도라 뭐 이런 거 보고선 한일 고고학도들이야 와 횡혈식 석실묘네 묘도는 우편재네 좌편재네 와 석실은 아치형이네 궁륭형이네 하며 오도방정 떨겠지만 횡혈식 운운하는 순간 산통 다 깨진다. 그 따위가 무에 중요하단 말인가? 언제까지 껍데기 타령 일삼을 거냐 이거다. 그딴 거 하나도 대수 아니다. 지름 13.5m 무덤방으로 이어지는 저 통로 entrance passage 를 저짝에선 부르는 명칭이 따로 있는 모양이라 드로모스dromos라 한댄다. 저 구조 딱 봐서 한국 횡혈식 석실분이랑 마찬가지로 이른바 추가장을 염두에 둔 것이라 실제.. 2024. 6. 17.
박스형 침대, 유럽의 추위를 피하고자 하는 고육 북유럽 추운 겨울에 가정 난방은 중요한 도전이었다. 이를 위한 기발한 해결책이 나왔다. 박스 침대 box bed. 거의 옷장처럼 이 침대는 특히 불길이 마지막 불씨로 줄어든 후 밤의 매서운 추위로부터 따뜻한 은신처를 제공했다. 이 상자 침대에는 중세 후기에 시작되어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다. 영국, 스코틀랜드,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에서 발견된다. 어떤 곳에서는 20세기까지도 썼다. 2024. 6. 17.
유럽을 뒤흔든 훈족 the Huns 의 출현 모든 야만인 집단 중에서 아마도 가장 두려웠던 것은 훈족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작고 덥수룩한 말을 타고 휘저은 진정한 유목민이었다. 강력한 활을 사용하여 주로 말등에서 싸웠다. 그들은 습격과 약탈에 기반을 둔 매우 거칠고 잔인한 집단이었고 광대한 거리를 여행할 수 있었다. 훈족은 훌륭한 전사였다. 사람들은 그들이 침략하면 너무 두려워 싸우기보다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다. 오랫동안 역사가들은 훈족이 흉노족Xiongnu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이제 큰 논쟁의 문제이지만 그것을 증명할 자료는 없다. 서기 300년대 후반 훈족은 중앙아시아에서 서쪽으로 동유럽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도미노 효과를 낳았다. 훈족이 게르만 오스트로고트족 Germanic Ostrogoths [동고트족] 영토를 침공하자 그들은 .. 2024. 6. 17.
아디스 아바바의 건설자 타이유 왕비 Queen Taytu 타이 베툴 Taytu Betul은 1851년에 태어나 1918년 2월 11일에 사망했다. 그는 1889년부터 1913년까지 에티오피아 황후였고 메넬리크Menelik 2세 황제의 세 번째 부인이었다. 19세기 후반 아프리카 쟁탈전 당시 반식민지 저항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그는 남편과 함께 1886년 현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세웠다. 2024. 6. 17.
침대에 누운 이집트 신왕국시대 여인 침대서 자는지 넷플릭스 시청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암튼침대서 쭉 뻗고는 탱자탱자하는 어떤 여인을 형상화한 라임스톤 부조다.신왕국 New Kingdom, 제18왕조 18th Dynasty, c. 1550-1292 B.C. 때 유물이다.출토지는 El Ashmunein “Hermopolis Magna”. 현재 소장처는 the World Museum - National Museums Liverpool 침대 쓰야 한다.어떤 미친 놈이 맨땅에 덕석 깔고 짚 깔고 잔단 말인가?신라시대도 침대 썼다는 양정석 선생 논고가 있다.파 봐라. 침대 안 쓸 수 없는 구조다.고고학은 유물 유적 너머를 보는 학문이다.유적 유물을 보며 형식분류하는 일이 어찌 학문일 수 있는가?그건 개돼지나 한다.침대는 과학이다.  *** related.. 2024. 6. 17.
시대 변화인지, 경험 차이인지 알쏭달쏭 책 홍보 흐름 한국 출판문화 흐름을 일변하면, 그 홍보에서 갈수록 종래(그 기준으로 어찌 잡아야할지 모르지만)와 달리 저자 혹은 역자 역할이 눈에 띠게 늘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간단히 말해 요새는 책 홍보를 출판사도 한다 하겠지만 전반으로 보아 출판사 비중보다는 저역자 역할이 압도적으로 크다. 이제 저자나 역자는 자기가 책 내고 자기가 팔아야 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이건 분명 시대변화다. 한데 근자 내 지인들 움직임을 볼 때, 또 내 경험과 견주어볼 때 하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요새는 본인이 책을 내고서도 주구장창 이런저런 방식으로 자기책을 홍보한다. 언제까지? 적어도 6개월은 가더라. 내 지인 중에 거의 동시에 첫 단행본을 출간한 정순임과 김선 두 사람이 그랬으니, 6개월 내내 나는 이들의 책 홍보글만 봤다... 2024. 6. 17.
[202405 항저우杭州 풍경] (6) 항저우박물관_새로 전시된 원대 자기교장窖藏 출토품들 by 장남원   서호풍경구에 있는 오산吴山 정상의 박물관이다. 杭州博物馆 www.hzmuseum.com  고대부터 근대기까지 항저우의 역사를 다룬다.남측과 북측 출입구가 있는데 이번에는 북측 입구로 들어갔다.북측입구는 항조우의 유명한 칭허팡淸河坊[청하방]으로 연결된다.  칭허팡은 남송대에 번성한 상업지구였으며 그후 지금까지도 관광상점이 늘어서 있다.굳이 비하자면 서울의 인사동 같은 분위기이다.  清河坊_百度百科清河坊,自古是杭州繁華地段。河坊街新宮橋以東,是南宋時期宋高宗寢宮—德壽宮遺址。南宋時被封為清河郡王的張俊住宅就在當時稱之為御街的太平巷,故這一帶被命名為清河坊。南宋時,baike.baidu.hk 칭허방 모퉁이에는 오래된 건물의 전통시장이 있는데 관상용 물고기, 꽃, 새, 보석 등을 파는 곳이다.4년 전 마지막으로 .. 2024. 6. 17.
스페인 역사가 당당히 주역으로 내세운 서고트왕국 스페인 왕궁 앞에는 우리로 치면 상고시대 왕들의 조각상을 세워놨는데 여기 보면 의외로 서고트왕국 왕들이 서 있다. 이 조각상들은 1750년대 것으로 꽤 연륜이 올라간다. 스페인사에서는 서고트왕국 왕들은 침략자가 아니라 의외로 자신들 역사의 건국 군주로 기리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스페인사를 보면 초기 역사에서 여러 개 지역 왕국이 경합하다가 통일 왕조로 합류하는데 그 중 유력한 초기 왕국 중 하나가 서고트왕국으로 이 왕국은 스페인사에서 무려 200년 가까이 갔다고 한다. 하긴 한국사에서도 주몽이나 온조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건국자도 될 수 있고, 침략자도 될 수 있을 테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 editor's note *** 고트족 한 분파로 東고트족과 대별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서고트족은 서고.. 2024. 6. 17.
세계 와사비 시장을 주름잡는 절대왕자 대왕와사비 농장 大王わさび農場 일본국 나가노현長野県 아즈미노시安曇野市 소재 이 대왕와사비농장, 다이오 와사비 농장 大王わさび農場 은 일전에 소개한 적 있거니와 당시 사진 몇 컷으로써 그 면모를 다시금 소개하고자 한다. 이 와사비농장에서 생산하는 와사비가 일본국을 점령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런 사정이 지금이라 해서 바뀌었겠는가? 와사비계의 절대강자라 해야겠다. 당시에는 와사비 농사를 짓는 방법도 간단히 현지 안내를 통해 접한 적 있지만 다 까먹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었다는 기억만 생생하다. 단순히 맑은 계곡물로 되는 것은 아니라 했으며, 그것이 자라는 데는 꼭 미나리깡 비슷하지만 온통 자발밭이었고, 그 자갈밭은 일일이 불소독을 하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 previous article *** 長野大王わさび農場 나가노 대왕.. 2024. 6. 17.
반달족은 무자비한 약탈 야만인? 그 위대한 생존 여정 앞 지도는 내가 세계사를 배울 적에는 이른바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사건이 펼쳐진 무대를 시각화한 것으로 저들 게르만족 일파 중에서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데가 두 군데가 있으니 하나가 고트족이요 , 다른 하나가 반달족이다. 전자는 서기 475년인가 로마(이 경우는 도시 로마를 말한다)를 무너뜨림으로써 서로마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했다 해서 깊에 각인하거니와, 그에 견주어 저 반달족은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로 남아있다. 오죽하면 문화재 약탈이나 문화재 분풀이를 반달리즘 vandalis 이라 했겠는가? 그만큼 그들이 주는 공포가 더 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저에서 표시한 저 각종 족속은 그 이전 단계, 그러니깐 타키투스 단계에서는 게르만이라 퉁치던 족속들로, 게르만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과연 저들이 한.. 2024. 6. 17.
냉기를 피하려면 침대가 있어야 한다 때는 한여름..연일 낮기온 수은주 30도를 넘는 폭염이 계속되지만침대를 쓰지 않는 나는 나이 탓도 있겠지만 저 방바닥이 차가워 몸을 뒤척인다.그런 까닭에 한 번씩 보일러를 틀어서 습기도 날리고 냉기도 보내야 한다.맨땅도 아니요 베니어합판을 깔았지만 한여름 냉기는 견디기 힘들 만큼 고역이다.요를 깔아도 저 냉기를 방어하지 못한다.그러니 송국리형 주거지니 뭐니 해서 선사시대 집터라고 나오는 것들 그 맨바닥에 사람이 생활했다는 말 새빨간 거짓말이다.생활 못한다.덕석 깔고 짚 깐다 해서 생활 못한다. 하루이틀 극기훈련이야 모르겠지만 일상 나날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맨바닥에 생활할 수는 없다.아열대 혹은 열대지방 가옥이 이른바 고상식이라 해서 땅에서 붕 뜬 이유는 열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냉기 한기 때문이다.저.. 2024. 6. 17.
매머드 인수하러 갔다 조우한 마쓰모토성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을 훑으니 2015년 6월 17일 내가 일본국 나가노 장야현長野県 마쓰모토 송본시松本市에 있었다고 알려준다. 일본의 알프스라는 별칭이 암시하듯 풍광이 끝내주는 곳으로 각인하는데,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라 한여름이었지만 상쾌함을 주는 데였다고 기억한다. 당시 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분들이랑 매머드 뼈를 기증하신다는 재일교포분 박희원 회장님이 계셔서 그 협상을 하러 갔다. 당시 조운연 과장이 인솔단장이었고 임종덕 연구관과 공달영 박사가 동행했다.   이 이야기는 장기에 걸쳐 연재했듯이 나는 그 과정을 취재하기 위함이었으니, 그러다가 어찌 일이 좀 꼬이는 바람에 취재는 온데간데없고 협상단 일원이 되어 혼비백산했거니와 그리하여 애초 예정한 출장도 내가 개인 휴가를 써서 가는 모양새.. 2024. 6. 17.
2015년 메르스 사태의 한 단면 찍은 시점을 보니 2015년 6월 17일이다. 전후 맥락을 보니 내가 아마 저 무렵 일본에 나갔다가 하네다 공항에서 귀국하는 비행기 안 인 듯하다. 저 넓은 비행기에 손님은 몇 명 되지 않았으니 나는 마음대로 활보하며, 누워서 귀국했다. 그에다가 나는 이렇게 썼다. 메르스 땜시 누워서 귀국 일명 와병비행 이렇게 보면 메르스 사태는 코로나19 사태 전조였다. 돌이켜 보면 그때라고 사정이 나았다고는 할 수 없는데, 지금도 궁금한 점이 그렇게 난리를 피워대던 메르스 사태는 그런 대로 비교적 조용하게 수습이 된 편인데, 어찌하여 코로나19는 전 지구적 재앙이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바이러스 무게가 달랐을까? 뭔가 모르게 공포가 엄습하지 않았나 싶다. *** 계속 뒤지니 저때 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랑.. 2024. 6. 17.
시판왕묘, 페루의 투탕카멘 고고학 측면에서 우아카 라하다 Huaca Rajada 혹은 시판Sipán의 무덤은 페루의 투탕카멘 왕묘로 간주된다.  안데스 산맥 전역의 고대 매장 관습은 이곳 원주민 문화가 수천 년 동안 사후 세계를 믿었음을 보여준다.  개인들은 종종 의복, 보석류, 다양한 음식과 물질이 담긴 그릇, 신성한 물건, 희생 제물 등을 포함하여 영적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개인 소지품과 함께 매장되었다.  이 매장 전통은 고고학자들에게 해당 사회의 관습과 신앙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스페인 정복 이후 아메리카 전역의 무덤은 귀중한 내용물이 자주 약탈당했다.   이 약탈은 금을 발견하려는 현지 페루인들의 노력에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온전한 무덤, 특히 초기 사회의 저명한 구성원의 무덤은 드물기 .. 2024. 6. 17.
2천년 전 페루 모체 문화가 남긴 도기 트럼펫 페루고고학을 잔뜩 다루었으므로 그쪽 문화권 유물 하나는 따로 다뤄줘야겠다 해서 고른 분이시다. 이 분 연세는 자그마치 최소 2천100살이시라, 페루 북부 해안 도시 침보테Chimbote 라는 데서 출토한 것으로 이를 보유한 미국 시카고 소재 Art Institute of Chicago 라는 데서는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Coiled Trumpet in the Form of a Snarling Feline FaceDate: 100 BCE–500 CE Artist: Moche Chimbote, Santa Valley, north coast, Peru ABOUT THIS ARTWORK Artist Chimbote Title Coiled Trumpet in the Form of a Snarling Feline .. 2024. 6. 17.
몸통 견주어 머리가 비대하신 김천 광덕리 보살님 김천이라 하지만 그 땅덩어리 하도 넓은 도농복합형 고장이라, 그곳을 고향으로 삼고 자란 내가 보지 못한 곳 디디지 못한 데 천지라 이 김천金泉 광덕리廣德里 석조보살입상石造菩薩立像이라는 분도 난 아직 친견하지 못했다. 어제인가 이쪽으로 일보러 간 오세윤 작가가 간 김에 고화질을 촬영했다. 딱 보니 심형래 펭귄 다리, 전형하는 고려시대 특징을 보인다. 사진을 질감있게 포착한 까닭도 있겠고 전반으로 조각 상태가 아주 좋다. 몸통에 견주어 지나치게 머리 쪽이 비대하다. 뭐 이런 특징을 고려시대 조각 특색으로 꼽지 않는가 하더라만, 디지털김천문화대전이 제공하는 정보를 전재한다. 김천 광덕리 석조보살입상 한자 金泉廣德里石造菩薩立像 영어공식명칭 Standing Stone Bodhisattva Statue in Gwa.. 2024. 6. 16.
[202405 항저우杭州풍경] (5) 장사의 신, 꽌시關係의 대가 호설암胡雪巖 옛집 by 장남원 호설암胡雪巖 (1823-1885)은 청나라 말기의 거상巨商이다.나 같은 사람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안휘에서 태어나 빈한함을 이기고 갖은 고난 끝에 항저우에서 상하이까지 그 영역을 넓혔고상인으로는 드물게 홍정모紅頂帽와 관복을 받았다고 한다. 비단사업과 약국, 무기거래, 부동산 등 다양한 업종으로 뻗어 막대한 부를 일구었으나 유럽상인들과의 알력으로 이탈리아 실크에 밀려 막대한 손실을 보게되면서 몰락하였다. 胡雪巖 -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胡雪巖(1823年9月29日—1885年12月6日),名光墉,字雪巖,以字行,幼名顺官,祖籍安徽绩溪,生于杭州,晚清红顶商人。杭州鼓楼现存胡雪巖故居。 胡雪巖幼年喪父zh.wikipedia.org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2024. 6. 1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