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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성 태원 한나라 벽돌묘에서 이상한 납 당로当卢 이런 중국 고고학계 발굴 소식이 있는데 저 당로当卢가 대체 무엇인지 언뜻 와 닿지 않는다.암튼 근자 태원시 문물고고연구원이 2022년 7월부터 11월까지 산시성 제2인민병원 신축 건물 부지에 포함된 태원시 소점구小店区 정촌 묘지郑村墓地를 발굴한 결과 왕망시대 혹은 동한 시대 초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M2를 포함한 유적들을 팠다 하거니와 이곳은 주산舟山 능선 앞 충적대지로 각 시기 무덤 23기를 확인했으니 M2는 개중 유일한 전실묘砖室墓 벽돌무덤으로 드러났다. 이 무덤은 경사 묘도斜坡墓道를 갖췄으며 남북 장축이라 먼저 흙을 파내서 구덩이를 만든 다음 벽돌로 묘도 말고도 묘문, 전실[앞방] 그리고 후실[뒷방 안방]로 구성된다. 시신은 당연히 안방에 안치했다. 껴묻거리는 15점이며 개중에는 도기 10점이 ..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30] 남방 초나라의 자연 환경 앞서 서한시대 군현의 인구밀도에 대한 지도를 위와 같이 포스팅 한 바 있거니와 이 지도에서 눈에 띄는 바는 역시 전국시대 초나라가 위치한 남방의 인구밀도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당시 남방의 상황은 어떠했던 것일까? 이 정황을 짐작케 해주는 역사 기록이 있다. 당시 양자강 유역은 거대한 사파리 셀렝게티 공원이나 다름 없었다. 양자강 중류에는 운중대택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여기는 당시 남방 귀족들이 자주 사냥을 나갔던 모양으로 그 모습이 춘추전국시대 기록에 많이 남아 있다. 《墨子·公輸》: 「楚나라에는 雲夢大澤이 있으니 犀, 兕, 麋, 鹿이 가득하다」《戰國策·楚策一》: 「楚王이 雲夢大澤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말 네 필을 묶은 수레 千乘에 깃발은 하늘을 덮었고 들불이 일어나 구름무지개 같은데 兕와 ..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29] 장사長沙 한묘漢墓의 특이한 점 최근 포스팅하는 김 단장님 글을 보니 이전에 게시한 아래 글은 조금 숙고가 필요해졌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필자의 생각을 정리할겸 약간 고쳐 다시 포스팅한다 [필자 주]. ***마왕퇴 미라가 나온 무덤은 한대의 무덤으로 이른바 "목곽묘"다. 우리나라도 낙랑 고분과 관련하여 한대 목곽묘에 대해서는 전공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대동강 유역 목곽묘는 중원과는 그 양상에 있어 차이가 있다던가, 전축묘 대신 소위 귀틀무덤이라는 목곽이 더 오랫동안 최정상급 지배층 묘제로 사용되었다던가, 하는 소위 대동강 목곽묘의 "베리에이션"도 많이 지적된 것으로 들었다. 마왕퇴 한묘도 베리에이션의 측면에서 볼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마왕퇴 한묘도 넓게 봐서야 한대 목곽묘에 당.. 2025. 3. 4.
[무령왕릉] 냉침대를 좋아한 왕과 왕비 어제 새삼 김규동 관장한테 전화로 물어봤다."그렇담 말이오 익산 쌍릉에서도 웬간한 모습으로 관짝이 나왔는데 거긴 바닥 있습디까?내 기억이 확실치 않습니다.""있다마다요. 무령왕릉은 왕도 그렇고 왕비도 모조리 바닥이 없어요."더는 물을 필요도 없다.금송으로 만든 관짝 남은 양태 보면 아주이주 잘 남아서 바닥만 쏙 다 썩어 문드러졌을 가능성 제로다. 그 남은 관짝 상태가 얼마나 좋은가 하면 조유전 선생 증언이 유감없이 증명한다."처음 문을 열고 들어가서 관재를 밟았더니 끄떡 없었다."그랬다.무령왕과 그 왕비는 관짝에 바닥이 없었다.맨땅에 두 분 다 등때기를 대셨다.두 분이 냉침대를 좋아하셨나 보다. *** previous article ***  무령왕릉 발견 50주년의 폭탄 선언 "관짝에 바닥이 없다!"ht.. 2025. 3. 4.
저리 잘라서는 다음해 농사를 못 짓는다! 흔히 반달모양돌칼 반월형석도 쓰임새로 제시하는 이 그림 그만 하려 했더니 도저히 열받쳐서 안 되겠다. 저딴 식으로 나락을 뜯으면 이듬해 나락 농사를 못 짓는다. 나락 농사를 지으려면 거름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갈아엎어야 하는데 그래 저 시절에는 그런 농경법이 없다 치자.나락을 저리 수확한다?그럼 다음해 농사 어찌 짓는단 말인가?불을 싸질러?그리 불싸질러서 붙을 거 같은가?천만에 붙다가 만다. 다시금 말하지만 저와 같은 반월형석도 쓰임새 재구성은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2025. 3. 4.
고고학도들한테 반달형돌칼을 당부한다! 향후 집터 같은 데서 반달모양돌칼 나오는 장면 목도하는 고고학도들은 그 콧등에 무엇인가를 찡군 흔적 예컨대 나무를 찡군 흔적이 없는지 잘 봐 주었으면 한다. 그냥 돌칼 나왔다고 냉큼 사진 촬영하고 수습해서 씻을 생각 말고 그 주변 흙도 잘 봐주길 부탁한다. 내가 이 얘기를 왜 자꾸 하는지 아는가?첫째 유럽 선사고고학을 보니 저와 비슷한 석기류를 나무에 찡가서 사용했고(물론 거기서는 자작나무 기름으로 본드칠을 했더라만) 둘째, 무엇보다 동시대 한반도 선사 저짝 고고학에서 다른 기물 중에 아주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나무를 찡군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저 사용법 다 좋은 데 날 방향 바꿔라!어디 낫질 한 번 안 해 본 놈들이 날 방향을 저리 해서 사용한단 말인가?이건 내가 왜 잘 아는지 아는가?.. 2025. 3. 4.
반달모양돌칼을 다시 묻는다! 현재 알려진 반월형석도, 반달모양돌칼 사용법이 어림반푼어치도 없다는 내 주장(혹은 반론이라 해두자)에 아니나 다를까 내 또 다른 친구 한용이랑 내 동생 광츠리리가 "그냥 영디기를 믿어라""근거 없지는 않다"는 식으로 반론을 가하거니와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했겠는가?국박 선사실에 전시 중인 저 돌칼들 봐라   진짜로 앞과 같이 사용했다면 저 콧등이 닳아 있어야 한다. 한데 단 하나도 그런 마모된 흔적이 없다!그러고 저런 사용법이 맞다고 믿는 사람들은 저걸 제대로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저거 만들어 두어 번 나락 베어 보고 그래 잘 드는구나 하고 만 사람들이다. 저걸로 생업을 한다 하고 계속 사용해 봐라 손 껍띠 다 까진다.  저 구멍은 말할 것도 없이 끄나풀을 찡군 흔적이지만 저리 찡가서 저리 사.. 2025. 3. 4.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반달모양돌칼 사용법 반달모양돌칼, 반월형석도 쓰임을 흔히 이랬다고 재구성한다.저게 내 기억으로는 동남아인가 지금도 저런 방식으로 쓰는 데서 착안한 재구성으로 안다. 설혹 저 방식이 맞다 해도 저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복원안이다. 왜인가?저리 사용했다 해도 저런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저건 낫질이라고는 단 한 번도 안 해 본 놈이 복원한 것이다. 날이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날을 저런 방향으로 선 채 벼를 벤다?저건 뜯는 것이지 베는 게 아니다. 설혹 저리 사용했다 해도 날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야 한다. 저렇게 맨손으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이와 같이 끈을 매달아서 저 끈에 손을 넣어 사용했다 한다. 왜?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저 돌칼에는 구멍이 두 개 뿅 뚫렸기 때문에 그리 가정한 것이다. 그래 머리 많이 굴렸다..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28] 부검을 시행한 이유 앞서 마왕퇴 미라에 대한 부검을 곽말약이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마왕퇴 의학조사는 그 목적이 과학적 연구도 있었겠지만일차적으로는 이 미라의 보존에 있었다. 당초 미라가 발견된 후 이 미라가 문화적 가치가 있는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긴 한 건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던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아니 의견이 엇갈린 것이 아니라 마왕퇴 보존 문제는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여 마왕퇴 한묘를 조사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봉건 지주계급을 옹호하는 주자파라는 주장이 문혁의 바람을 타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따라서 현지 고고학자들이 상부에 이 미라를 보존해야 하는가 라는 문의를 중앙 정부에 했을 때, 이 보고를 먼저 접한 사인방의 일파는 미라는 보존의 가치가 없다. 보존하지 않아도 좋다. 라는 .. 2025. 3. 4.
[만성한묘满城汉墓] 금루옥의金縷玉衣, 고대 중국이 남긴 또 하나의 미라 [1] 거대한 산상 지하궁전 주로 미라에 집중하면서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를 논하매, 우리는 비록 미라가 나오지는 아니했지만, 같은 시대에 만든 비슷한 무덤으로, 마왕퇴 발견 직전에 중국을 경천동지케 한 저 만성한묘满城汉墓를 찾지 않을 수 없다.이 만성한묘는 저 남쪽 한漢 문화 직접 유산은 아니지만 역시 동시대에 적지 않은 한 문화 세례를 받은 비슷한 시대 남월왕묘南越王墓와 더불어 반드시 같이 짚어야 한다. 이 셋은 첫째 만든 시기가 거의 같고 둘째 묻힌 사람 신분이 대략 비슷해서 제후왕 혹은 그에 버금하는 일가부치 무덤이요, 셋째 무엇보다 그 대략하는 양상이 거의 관통하기 때문에 반드시 같이 짚어야 한다.더구나 남월왕묘와 지금 다루는 만성한묘는 비록 시신은 다 썩어문드러졌지만 금루옥의金縷玉衣라 해서 .. 2025. 3. 4.
김치 카트 Kimchi Cart로 이사하던 나날들 편의상 내가 태어난 데를 김천이라 하나, 이는 도농통합에 따라 김천을 감싼 금릉군이 김천과 통합되면서 이르는 이름이요, 물론 통합 이전에도 금릉군과 김천시는 구별이 없어 김천이 상대적으로 도시 느낌이 나는 까닭에 금릉 사람들도 외지에 대해서는 다 김천이라 하기는 했지마는 김천과 금릉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금릉을 통합한 김천은 면적이 1,010.05㎢라, 그 크기로 보면 605.2km²인 서울 딱 두 배다. 인구는 13만 5천 명으로 나오는데, 물론 내가 태어나고 자랄 때는 저보다 훨씬 많았으니 무엇보다 그때는 농촌이라 해도 지금과 같은 빈집투성이가 아니요 사람으로 바글바글하던 시절이다. 그 바글바글한 농촌, 이 시절을 그리워하는 글이 많이 보이는데, 그래 사람으로 넘쳐난 그 시절이 이른바 사람 냄.. 2025. 3. 4.
[연구실 소식] 조선시대 미라 단행본 원고 탈고 영국의 고고학 전문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인 조선시대 미라 단행본 원고를 탈고했다. 현재 공저자 확인 작업 및 교정 작업 중이다. 올해 안에 출판되어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Springer에서 낸 미라 단행본이 전 세계 미라를 아울러 다루었다면이번 단행본은 조선시대 미라에 집중하여 서술하였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필자의 조선시대 미라 연구가 약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분이 이 작업을 도와주었는가를 알았다. 사진을 쓰기 위해 열어보면 도처에서 도와준 분들이 있어이번 작업에는 그분들의 도움을 최대한 갚고자 그 부분을 배려하며 작업하였다. 이 책이 올해 말 출간되면 나는 비로소 20년동안 몸담아 오던 조선시대 미라 작업에서 해방되는 것인데, 이 세상엔 혼자 할 수 있는 아무것도..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27] 곽말약의 실언 (?) 마왕퇴 발굴 조사에 위에서 엄호사격을 한 두 인물, 주은래와 곽말약도 문혁과 사인방 서슬에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는 것은 이미 말했다. 그 중 곽말약은 마왕퇴 때문에 한 번 크게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그 사연은 이렇다.곽말약이 마왕퇴에서 발견된 1호 묘 미라가 도대체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 묻는 일본기자의 질문에 여담 삼아 했다는 이야기가 하나 떠돌았는데, 그 사연인즉슨, 서한 문제 때 황제와 이름 모를 궁녀 사이에 난 사내 아이가 곧 나중에 한 경제가 되었는데 문제의 아들을 낳은 후 질투하는 황후에게 쫒긴 그 후궁은 장사 땅에 몸을 숨겨 자신이 낳은 아들이 나중에 경제가 된 후에도 자신이 모친임을 알렸지만 경제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알려질까 두려워 하여 그녀를 장사땅에 모셔 두고 극진히 .. 2025. 3. 3.
무령왕릉 발견 50주년의 폭탄 선언 "관짝에 바닥이 없다!" 2016년 직설 무령왕릉(메디치미디어)을 내면서 나는 내심 무령왕릉은 향후 10년 간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고 봤다. 그만큼 나로서는 회심작이었고, 그만큼 자신 있었다. 그러면서 그 무렵까지 내가 생각하는 내 미답이기도 하면서 학계 전반하는 미답으로 남겨둔 게 두어 가지 있었으니 개중 하나가 그 묘권墓券 중에서도 매지권買地券이라 일컫는 그 문건이었으니, 이 문건은 글자 그대로 무령왕이 죽어서 지하 세계로 들어가면서 그 묘지로 쓸 땅을 돈을 주고 매입했다는 문건이려니와 계약 당사자로 등단하는 지하세계 귀신들이었으니, 이건 실은 내가 못 푼 것이 아니라 이후 과제로 남겨두었거니와, 이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청귀율女靑鬼律을 필두로 하는 위진남북조시대 도교 의례서를 뒤져야 하는데, 그에 대한 준비.. 2025. 3. 3.
왜 한 놈도 무령왕을 따지지 않는가? 무령왕릉은 누가 봐도 동시대 중국 벽돌무덤을 가져와 디자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감독한 기술자도 중국 사람, 더욱 정확히는 남조 양나라 공장이다.나아가 무령왕은 저 묘권墓券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 양나라가 보증한 제후왕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의문은 이에서 돌발한다.한데 무덤이 왜 저 모양 저 꼬라지란 말인가?저때 중국은 황제만이 아니라 영동대장군쯤 되는 고관대작들로 저 딴 식으로 형편 없는 무덤을 만드는 일이 없다.무덤 주체만 해도 전실前室 후실後室을 두어 후실에다 무덤 주인공을 완치하며 그 앞실에다가는 각종 껴묻거리 잔뜩 넣는다.또 돈과 권력이 더 있음 이실耳室이라 해서 사람 얼굴로 치면 귀때기에 해당하는 부분에 별도 칸을 만들어 잔뜩한 기물을 쑤셔 박는다.한데 무령왕릉은 단.. 2025. 3. 3.
[마왕퇴와 그 이웃-26] 마왕퇴 한묘에 대한 의문 마왕퇴 관련 책을 읽다보 니, 중국에서 대형 목곽 묘실제도가 완성된 것은 전국시대와 서한시대 사이인데이 시기에는 아직 관곽 바깥에 별도의 묘실을 쌓는 전통은 없었다고 한다. 제왕과 고위관료 등 무덤을 중심으로 관곽 바깥에 벽돌 등으로 별도의 묘실을 쌓는 전통은 서한 말에서 동한 초에 생겨난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마왕퇴에서는 묘실 없이 관곽만 보이고, 남월왕묘에서는 관곽 외에 별도의 묘실을 쌓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두 무덤 모두 서한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책에서 본 위 이야기가 정확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건 마왕퇴 한묘가 만들어지던 시대에 이미 고위급 왕공 무덤은 별도의 묘실을 두는 것이 한 흐름이었다면마왕퇴 한묘에서는 그것이 안 보인다는 점은이 무덤이 아무리 화려.. 2025. 3. 3.
[마왕퇴와 그 이웃-25] 팽륭상彭隆祥 (25)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마왕퇴 고시연구라는 책은 당시 중국사회의 전통에 따라 집체창작으로 누가 쓴 것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 기억으로는 이 책에는 호남의학원인가 하는 이름만 적혀 있을뿐팽융상이라는 이름은 따로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가 팽융상이란 이름을 접하게 된 것은 그 후 1980년대에 서구에 투고된 그의 영문 논문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나중에 고시연구 중국어 보고서 원문을 입수하여 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팽융상은 서구의 출판물에 마왕퇴 연구결과를 영문으로 투고했는데 그 내용은 고시연구에 쓴 내용을 간추린 것이었다. 이 논문에는 문물출판사에서 나온 고시연구와는 달리 그의 이름을 저자로 적어 냈다. 이 논문을 보면서 필자는 중국의 고시연구 보고서 자체가 팽융상이 사실상 집필 책임을.. 2025. 3. 3.
[능혜평凌惠平 미라] (1) 산동반도로 북상하는 미라 발견 지점은 Bing 지도여러 위치를 찾고, 환승/도보/운전 방향을 확인하고, 실시간 교통량을 보고, 여행을 계획하고, 위성, 공중 및 거리 이미지를 보세요. Bing 지도를 다양하게 이용하세요.www.bing.com 이 발견 지점에서 유의할 대목은 주로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중국 고대 미라가 나오는데 견주어 이 분은 상당히 북상한 지점을 정좌한다는 사실이다. 산동반도 아래 끝자락이다.바다랑은 비교적 가까운 지점이다. 능혜평凌惠平은 2002년 중국 강소성江蘇省 연운항連雲港에서 드러난 서한 시대 여성 시신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신장위구르를 제외한 곳에서는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 여성 시신과 호북성湖北省 강릉江陵 봉황산鳳凤凰山 한묘漢墓 남성 시신에 이은 세 번째 한나라 시대 습시溼.. 2025. 3. 3.
"미라 이야기"가 앞으로 갈 길 김단장님 블로그 "미라 이야기"에 대해 조금 쓰고자 한다.이 항목에는 필자와 김단장이 서로 각각 올린 글이 혼재해 있다. 각각 다른 필체의 글이 "미라 이야기"에 뒤섞여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 실린 글은 약속 드린 바와 같이 앞으로 한 권일지 몇 권일지 모르겠지만 책으로 묶일 것인데, 이 항목을 따로 분리한 이유는이 항목 자체가 책의 준비 작업 자체를 공개적이며 수시적으로 대중의 평가를 받으며 진행하자는 데 있다. 따라서 이 항목의 원 글은 둘 중 어느 한 명이 써 올린 것이지만각자 더할 부분이 있다면 아래에 다른 편이 각주를 달아 붙이니 이런 것이 결국 공저작업에는 필수적인 의견의 종합-조정 작업이 초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다. 각각 글을 올리고 각주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더라.. 2025. 3. 3.
고대 이집트 심장에 비수를 꽂아야 할 한국학 Egyptian Funerary Boat다시 말해 고대 이집트 장례용 보트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Funerary boats were placed in graves and tombs of the deceased to help transport them in the afterlife. 18th Dynasty.라 하거니와, 이런 장례용 보트가 죽은 이 영혼을 저승 세계로 인도하는 구실을 한다 하면서, 저것은 18왕조 시대 유물이라 한다. 우리가 저 보트를 부릅뜨고 봐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나는 계속 말하듯이 고대 이집트건 나발이건 우리가 저들 심장부로 들어가 비수를 꽂아야 한다는 말을 계속한다. 첫째 저건 명기明器다. 명기란 무엇인가? 죽은이를 위한 물건이란 뜻이다. 더 간단히 귀신이 쓸 물.. 2025. 3. 3.
단 한 명도 초대받지 못한 한국 마왕퇴학 马王堆汉墓考古发掘50周年国际学术研讨会 “汉代医学研究”学术分会纪要湖南宾馆会议中心2楼大会议厅 2024-08-18 14:00 to 2024-08-19 18:00 8月17-20日 马王堆汉墓考古发掘50周年国际学术研讨会 “汉代医学研究”学术分会纪要 | 湖南博物院马王堆汉墓考古发掘50周年国际学术研讨会 “汉代医学研究”学术分会纪要www.hnmuseum.com 요새 마왕퇴 관련 자료를 수거 배열 선별하느라 사납거니와, 그러면서 하도 정신이 사나워 내가 이러다가 마왕퇴 그 강시가 되지 않는가 하는 우려도 일거니와 그러는 와중에 검색에 저 소식이 걸린다.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는 엄밀히 발견 기점으로 하면 우리 무령왕릉의 그것과 같은 1971년이요, 그것이 본격 발굴되시 시작한 시점은 1972년이라, 그 발굴 50주년이라 하.. 2025.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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