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0097 한국은 전면적 도작 농경 사회가 아니다 한국은 기후나 위도로 볼 때 도작농경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이 아니다. 정확히는 도작과 잡곡이 혼재되어 존재한 혼합농경지역으로 중국에서는 황하유역과 양자강 사이 지역 정도에 해당한다. 물론 이것도 한반도나 그렇다는 것이고 더 북상하여 한반도 북부의 북쪽을 상회하면 그나마 있던 도작도 사라지고 완전한 잡곡문명지대가 펼쳐진다. 이것이 고구려, 부여 문명이다. 순수한 도작 문명에 더 근접한 사회는 한반도에서 도작을 받아간 일본이다. 여기는 잡곡보다 도작이 중심이 되어 논의 비율도 우리보다 높았다고 생각된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한반도 남부지역 논 비율이 대략 30-40퍼센트 정도로서 밭의 비율이 한반도 전역에서 매우 높았다. 이 정도라면 순수도작사회라고 보기 어렵고 중국의 예를 보자면 혼합농경사회다. 한.. 2024. 5. 21. 곡창지대는 수리조합의 유산이다 지금 우리가 평야라 일컫는 데는 그 역사를 불과 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조리 갈대밭이라 봐도 대과가 없다. 왜? 그 평야는 강안 충적대지라 상습 침수 지역인 까닭이다. 이는 실제 발굴로도 명백히 드러나는데 평야지대라 해서 파제껴서 나루터나 보 같은 시설이면 몰라도 일반 집터 관공서 같은 건 흔적도 없다. 이걸 모르고 과거 평야지대, 그러니깐 충적대지를 잘 걸렸다 해서 시굴트렌치 넣고 하지만 넣어봐라 뭐가 나오는지. 눈꼽만큼도 안나오고 논이니 밭이니 하는 것들은 모조리 일제시대 이래 농경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일제시대 이후 농경지를 무슨 조선시대 이전 농경지라 우기는 연구자도 내가 봤다. 이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논농사 벼농사 그 자체가 실은 환상이다. 강안 충적대지가 범람원이란 말은 벼농사.. 2024. 5. 21. 야요이 정착촌의 논과 밭 대륙계 야요이인의 정착촌과 주변의 논. 야요이 마을 주변에는 항상 논이 있다. 복원된 야요이 마을 주변에도 논이 천지다. 일본의 논농사는 대륙, 정확히는 한반도를 경유해서 전달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청동기시대 마을도 저렇게 논에 둘러싸여 있었을까? 중요한 것은 중국의 잡곡농경-혼합농경-도작농경의 지도를 보면, 한반도의 경우 남해안 일대를 제외하면 그 이북은 혼합농경지대로서 청동기시대 마을이라고 해서 논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았을 것 같다는 말이다. 아마 논보다 밭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 논이 밭과 거의 비슷한 비율을 점한 것은 아마도 한반도 남해안이 되면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도작이 전달되었다고 해서 그 마을의 구조, 마을 주변의 논과 밭의 비율.. 2024. 5. 21. 악어의 변신은 무죄? 로마 갑옷으로 둔갑한 가죽 갑옷 악어 가죽 수트라 간단히 갑옷이다. 서기 3세기 로마시대 유물이랜다. 이집트 만팔루트 라는 고을이 있는 모양이고 그 근처 출토품이라고 하나 궁금한 점은 방어력이다. 방탄성이 있을까? 화살은 그냥 뚫어버릴 때고 칼부림은 견딜 듯한 느낌이다. 것도 그대로 찔러버린다면야 대책이 없을 테고 베임은 견딜 듯하다. 관련 자료 더 추적하니 브리티시 뮤지엄 소장품이라고. 저런 악어가죽 옷을 로마군은 이집트를 접수하면서 접하기 시작했고 군사 퍼레이드에 썼다 한다. 악어는 이집트 문화에선 신성시했다. 그 유습이란다. Crocodile skin suit of armour - Roman, 3rd century AD. From near Manfalut, Egypt 2024. 5. 21. 내가 잘할 수 있고 도움이 되는 일 그게 무엇인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이것도 전직 직장을 그만두면서 뚜렷이 이런 일을 하겠다고 정한 것도 없으니, 그렇다고 나는 내가 다시는 출근하고 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거니와(물론 이 역시 훗날 유동적일 수는 있다. 살아보니 네버 에버라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더라.) 그러면서 이런저런 일을 손대 보니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요, 누에는 뽕을 먹어야 함을 새삼 각인하거니와 그래도 명색이 글쓰기로, 혹은 기자로 30년 이상 굴러먹었고, 더구나 그 대부분하는 생활이 특정한 분야에 집중했으니 그런 일로 내가 잘할 만한 일, 혹은 그래서 혹 어떤 사람 혹은 부류 계층한테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지금도 실은 찾고 있다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 일환이랍시며 지금은 세계 문화사 탐구니 .. 2024. 5. 21. 야요이 벼농사 환호취락의 신호탄 판부유적[板付遺跡, 이타즈케이세키, いたづけいせき] 먼저 위치를 본다. 2024. 5. 21. 미라의 보고 타림 분지 이집트 미라는 야릇한 상상력이 가미하는 바람에 과대포장됐으니 실상 그 미라는 내장 골수 다 끄집어낸 건어물에 지나지 않아 빈깡통이나 마찬가지라 그에 얻는 고인류 고병리 정보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미라가 생성하는 조건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후풍토를 뺄 수가 없다. 그것이 생산하는 통로는 크게 건조사막지대와 습지, 그리고 동토지대로 대별하거니와 조선시대 미라는 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주자가례가 강요한 문화사의 압박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독특함이 있다. 같거나 비슷한 기후풍토라 해도 저 타림분지 미라는 이집트 미라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으니 죽은 시신은 그대로 온전히 묻었다는 점이 그것이라 그래서 저에서 빼내는 정보가 이집트 그것이 따를 수는 없다. 다만 작금 정치상황과 결부해 저쪽 신장위구르 지역이 워낙.. 2024. 5. 21. 이스탄불 도심이 쏟아낸 비잔틴 선박 37척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 지금의 이스탄불에서 출현한 잃어버린 항구 테오도시우스 1세 port of Theodosius I 에서 발견된 비잔틴시대 선박 Byzantine ship 중 한 척이다.이 항구 유적은 현재 페리 항구이자 지하철역인 예니카피 Yenikapi 라는 데서 발견 발굴됐다.이 역은 새로운 중앙 교통 허브로 탈바꿈할 예정이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지하철 노선은 마르마라이 터널 Marmaray tunnel 까지 확장하고 아울러 경전철을 포함토록 함으로써 예니카피를 교통 허브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즈음한 공사 과정에서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2004년 사라진 비잔틴 항구 테오도시우스 1세가 우연히 드러난 것이다.본격 발굴 결과 4세기에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한 이 항구 유적은 .. 2024. 5. 21. [독설고고학] 한국고고학? 있기나 한가? 한국고고학은 일본고고학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규슈고고학이며 더더 구체로는 북큐슈고고학이다. 이 말은 내가 30년 전에 쓰기 시작했는데, 그 30년 간 변화는 전연 없어 그 방식도, 그 문제의식도 그대로라 이러고서 무슨 한국고고학을 한단 말이며 이러고서 무슨 고고학을 한단 말인가? 썩어빠진 양식론, 더 썩어빠진 축조기술론으로 날 샜다. 2024. 5. 21. 자바섬 중부 거대한 냄비? 대체 뭐야? 이는 2021년 8월 31일 인도네시아 반툴 Bantul 에서 도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거대한 프라이팬처럼 생긴 유물이랜다. 그 아래 첨부한 중부 자바 Central Java 보로부두르 사원 Borobudur Temple 에 있는 Karma-Vibhanga 벽의 얕은 돋을새김이다. 전체 패널은 3개 구역으로 구성된다. 중앙 패널에는 사람들이 큰 가마솥 혹은 욕조 cauldron/tub 에 모여 있고 그 옆에는 막대기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다.유물이 발견된 보로부두르 사이 거리는 약 50km. 출처 : https://wondersofthepast.quora.com/The-photo-shows-an-artifact-that-looks-like-a-giant-frying-pan-found-on-August.. 2024. 5. 21. 히타이트 수도 하투샤 대성전의 수수께끼 푸른 돌 Hattusa: The sacred Green stone found in the Great Temple.히타이트 Hittite 제국 수도였던 터키 하투사 Hattusa 에 있는 수수께끼 같은 대성전 Great Temple 에메랄드 녹색 돌 Green Stone. 그 역사와 기원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종교적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신염 돌 nephritis stone 이다. 이 돌은 많은 특징이 있다. 중국에서는 보석 디자인에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이런 돌이 이 지역에서 나기는 한다는데 덩치가 너무 크다.이 돌이 한 조각으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았고 이 지역 다른 돌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지역 주민들은 오랫동안 그것을 "소원의 돌 wishing stone"이라 불렀다.이 대성전은 .. 2024. 5. 21. 필자는 왜 농경과 동물사육, 사람 이동에 주목하는가 필자는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를 흉내낼 생각은 전혀 없다. 예를 들어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검토는 필자 입장에서는 그 성과를 받아 인용하면 그뿐이지 이에 대해 필자가 왈가왈부하는 일은 시간 낭비라 생각한다. 필자는 그러면 왜 농경과 동물사육, 사람이동에 대한 글을 올리는가. 바로 필자의 60세 이후 연구가 이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지금 작업은 시간이 남아 여흥 삼아 하는 작업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오던 미라, 기생충, 발굴조사 작업만큼이나 serious한 일이라 하겠다. 그 전체 모습은 빠르면 2-3년 안에 그 구조물을 드러낼 것이라 본다. 그때까지는 의학을 전공한 필자가 고고학이나 역사학을 넘나들더라도 주제 넘은 짓이라 생각지 말고 조금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 통섭의 길은 어차피 이런 과정을 밟을 .. 2024. 5. 21. "충주 장미산성 처음 쌓은 데는 백제"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소장 조상순)가 충주에 소재하는 삼국시대 산성인 장미산성을 발굴한 결과 이 성을 처음 쌓고 활용한 정치체가 백제임을 뒷받침하는 백제 토기를 다량으로 확인했다고 21일 말했다.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산 73-2번지 일원을 조사한 이번 조사에서 성벽 안쪽을 발굴한 결과 흙으로 쌓은 성벽과 같은 시기에 사용한 부뚜막과 같은 취사 관련 시설을 확인하는 한편 그 주변에서 항아리, 시루, 삼족기三足器, 굽다리접시[고배 高杯] 같은 5세기 전반기 삼국시대 백제 토기로 분류하는 유물을 집중 수습했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출토된 토기는 장미산성 운영 시점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백제 도성이었던 서울 풍납토성의 토기와 특징이 비슷하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면서 "이와 함께 산성 운영에.. 2024. 5. 21. 먹거리 가져 오라는데 예술을 던진 무책임 가장 백결 선생과 그의 마누라 절구공이 백결선생百結先生 그의 행적은 앞에서 모조리 뽑아다 놨거니와, 이 행적을 보면 참말로 저 양반 무책임 가장 전형이라 할 만해서 놈팽이 딱 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땐 정미소가 없었을 테니, 옆집 혹은 옆동네서는 집집마다 절구에다가 곡식을 넣어 절구공이 소리가 들리는데, 이 집구석은 빻을 곡식이 없어 마누라가 하소연한다. 그런 하소연에 남편이라는 작자, 가장이라는 작자는 곡식을 마련하거나 꿔올 생각도 아니하고는 태연히 하는 말이 절구공이를 소재로 하는 노래 작곡 하나 하고는 이거 먹고 떨어져라 했다 하니 본명을 알 수 없는 그의 호 백결百結도 말이 좋아 백결이지 누더기 넝마라는 말이다. 거지 행색이었으니, 그렇게 하고 싶어 한 것도 아니요, 실제 집구석에 쌀 한 톨 없는 찢어진 가난뱅이 비름뱅이에 지나.. 2024. 5. 21. 도작농경에서 한반도 남해안의 의미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남해안은 한국문명의 끝이자 일본문명의 시작점이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지역에서 도작에 올인한 수준은 한반도 중부 이북과 비교하여 현격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해서다. 한반도 북-중부 지역에서 도작은혼합농경 일부로서 전체 농작물 중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본다. 반면 한반도 남부에 이르면 쌀의 높은 생산성과 온난한 기후 덕에 도작에의 의존성이 더욱 올라가고,이러한 경향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열도로 도작이 전개되면서 더욱 강화했다고 본다. 따라서 한반도 남부지역의 도작은 중-북부 지역의 도작과 그 의미를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북부 규슈로 이식된 야요이 초창기 도작촌은 한반도 남부에서 상당히 치밀하게 계획된 이주였을지도 모르겠다. 도작의 생산성에 착안하여 이에.. 2024. 5. 21. 세계문화사 대계를 꿈꾸며 언제까지 이 흐름이 계속할지 나 자신부터가 자신이 없다.메뚜기 습성 때문이라 내 성정이 어느 하나에 쉬 몰입했다간 쉬 식어버리고 다른 데로 옮아가는 까닭이다.지금은 참말로 거창하지만 세계문화사 대계 구축에 올인 중이다.김태식판 세계문화사 위키피디아라 나름으로는 이름 붙였는데 지금 추세 보니 대략 1년 투자하면 얼개는 갖출 듯 하다. 그때가 되면 저절로 어느 정도는 굴러가리라 본다.왜?돌고도니깐.제아무리 방대한 듯해도 결국 돌고 돌더라.이 도는 흐름이 가장 빠른 데가 실은 20세기 이래 현대 미술이다. 이 미술은 살필수록 복고주의 성향이 강해서 돌이켜 보면 제아무리 그네들 창안이라 하는 미술 흐름도 살피면 결국 구석기시대 고고미술이라, 꼭 선사가 아니라 해도 그것이 착안한 데는 지구상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 2024. 5. 21. 4천년 전 아르메니아 참나무 수레 아르메니아 세반 호수 Lake Sevan 인근 차셴 Lchashen 마을이란 데서 발굴된 4000년 된 잘 보존된 마차 여러 대 wagons 중 하나라 한다.참나무 oak 로 만든 왜건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같은 종류 유물이다. 현재 아르메니아 역사 박물관 History Museum of Armenia 에 전시 중이다. 뭘까? 아래와 같은 설명이 있다.The Lchashen Wagon, discovered in the Lchashen area of Armenia near Lake Sevan, is an extraordinary archaeological find. This 4,000-year-old wagon, crafted entirely from oak wood, dates back.. 2024. 5. 21. 고개 돌려! 메두사 머리를 딸 때는 페르세우스 Perseus 가 고개를 돌리고는 메두사 Medusa 한 쪽 팔을 잡고는 단검으로 머리를 따는 장면을 피토스 pithos 에 포착했으니 어느 시기 피카소 그림을 보는 듯하다. 기원전 660년 제작, 테베 Thebes 출토이며 현재 루브르박물관 소장이다. 메두사를 이런 "여성 켄타우로스 Female Centaur"로 묘사한 전례가 없다. 몸은 뱀이고 뒷다리는 말이다. 페르세우스가 그 과정에서 인물을 보지 않고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는 다른 신화는 없다. 그래서 그것은 매우 다른 예이다. 2024. 5. 21. 창세기보다 천년 빠른 노아의 홍수 아카드어 버전 한 현자가 세상을 파괴할 신성한 홍수에 대해 경고를 받고 가족과 모든 동물을 위해 배를 만든다. 그들은 살아남고 인류는 다시 시작한다.노아의 방주 Noah's Ark 이야기가 아니다.창세기 1,000년 전에 등장한 아카드 이야기 아트라하시스 Atrahasis 이야기다.기원전 최소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홍수 신화가 몇 개 있다. 수메르인, 아카디아인, 바빌로니아인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의 약간 다른 버전을 이야기했는데, 그 주인공은 지우스드라 Ziusudra, 아트라하시스 Atrahasis 또는 웃나피쉬팀 Utnapishtim (길가메시 서사시 the Epic of Gilgamesh에도 보인다. ) 이라고 불렸다. (저 지우스드라다는 훗날 짜라투스트라랑 연결되지 않나?)기본 골격.. 2024. 5. 21. 처자식이 뭐라고, 얻어터지고선 왜 사나 묻는 The Boxer 이 분이야 나 또한 현장서 두어 번 실견 알현하고 여러 번 소개했지마는 요약식으로 새삼 정리한다. The Boxer at Rest, 곧 쉼하는 복서 정도로 타이틀 달겠거니와 • 1885년 로마에서 발굴되었으며 현재 로마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동상은 권투선수가 무릎에 팔을 얹고 앉은 모습을 묘사하며, 머리는 오른쪽으로 돌리고 입을 벌린 채 약간 치켜들었다. • 권투 장갑이요 가죽 장갑 일종인 "카이스투스 caestus"를 제외하고는 벌거벗은 상태다. • 고대 세계에서 살아남은 청동 조각 중 가장 훌륭한 예 중 하나다. • 제작시기는 기원전 약 330~50년 사이로 좁혀지나 확정된 연대는 없다. • 얼굴은 멍과 상처가 보이며 입술은 얻터져서 생긴 듯 움푹 패여 있다. • 부러진 코와 콜리플라.. 2024. 5. 20. [독설고고학] 구리 품귀 사태에 꿀먹은 벙어리 한국고고학 한국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지금 구리 품귀로 난리통이다. 이런 사태에 즈음해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가장 적극으로 구리가 무엇이며 그것이 왜 인류문화사에서 중요한지를 다양한 채널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언해야 하는 직업적 학문종사자가 바로 구리라면 환장하는 고고학이다. 하지만 내 조사 혹은 관찰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이번 구리 품귀사태와 관련해 한국고고학은 입도 뻥끗하지 못한다. 왜 이런가? 고고考古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옛것을 탐구하는 일을 고고학 본령으로 삼는 까닭이라, 현실 사태는 우리 고고학이 간여할 수도 없고 간여해서도 안 된다는 의식이 뇌수까지 박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고고학은 현재학이요 미래학이라는 말 주구장창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고고학이 발딛고 서야 할 지점은 지금 여기 here .. 2024. 5. 20. 이전 1 ··· 218 219 220 221 222 223 224 ··· 95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