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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학예연구회 학술총서] 학예연구사가 바라본 경기도의 문화 경기학예연구회(회장 구본만)에서 첫 번째 학술총서를 간행했습니다. 그동안 경기학광장에 기고한 글들과 중부일보에 연재한 전통사찰 연재기사를 모아 “학예연구사가 바라 본 경기도의 문화”라는 제목의 학술총서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 발행일 : 2024년 4월 * 판 형 : A4(21X29cm) * 쪽 수 : 392쪽 * 발행처 : 경기학예연구회(비매품) 본 총서 간행을 위해 애써주신 구본만 회장님 이하 임원진분들, 작성한 원고를 기꺼이 내주신 각 지역 학예연구사 선생님들, 그리고 편집과 인쇄까지 전 과정을 위해 애써 준 김대순 선생님께 제일 감사드립니다. 2024. 5. 23.
탈레반이 녹여버린 불교 금화 이 주화는 아마도 초기 인도-이란 정착지가 있었을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조우잔 Jowzjan 주에서 발견되었다.붓다 시대 이래 한동안 불교는 aniconic 애니코닉 이었다. (Aniconism은 간단히 말해 그런 신념을 조각 같은 구상으로 표현하지 않는 전통을 말한다. 불교는 애초 태동기에는 불상이 없었다. 나중에 마케도니아 그리스 영향 아래 불상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는 이 주화가 가장 이른 것은 아닐지라도 그 시절 유물 중 하나일 가능성을 높인다.금화는 한 남자 전사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 동전과 같은 시대 그 무덤은 기원전 1세기 말에서 서기 1세기 초로 거슬러 시대가 올라간다.이 금화는 아프간 카불박물관 Kabul Museum이 소장했으나 2001년 3월 탈레반 Taliban 이 파괴하거나.. 2024. 5. 23.
야요이인은 단순히 인구압에 의해 이주한것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에 인구압에 의해 일본열도로 이주가 시행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닌데,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은, 현해탄을 경계로 과연 한국의 청동기시대와 일본 야요이시대 초창의 촌락이 비슷한 방식으로 도작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게 문제겠다. 필자가 생각하기엔, 일본이 논의 비중도 훨씬 높고, 잡곡에의 의존도도 낮았던 것 아닌가 싶다. 이것은 물론 향후 학계의 연구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만... 그러고 보면, 야요이인은 우발적으로 열도에 건너간 사람들도 아니고, 인구압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짐 싸들고 현해탄을 건넌 사람들도 아니다. 일본열도의 기후가 벼농사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어떤 이유에서든 터득하고, 자신들이 한반도에서 시행하던 도작과 잡곡 중 도작에 훨씬 집중하.. 2024. 5. 23.
글씨로 만난 천하의 친일파 김대우 "하나, 우리는 황국신민이니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한다(一、我等ハ皇國臣民ナリ忠誠以テ君國ニ報ゼン。)." 그 유명한 1조다. 1937년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미나미 지로(1874-1955)가 이른바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조선인들로 하여금 '황국신민'의 의무를 다하게 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만들게 한 맹세문이다. 그런데 이 를 만든 건 일본인이 아니었다. 당시 학무국 촉탁으로 있던 이각종(1888-1968?)이 초를 잡고, 사회교육과장 김대우(1900-1976)가 수정 완성한 뒤 총독에게 보고하고 배포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봐도 '김대우'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대략 감이 잡힐 것이다. 과연 그는 일제 말 출세에 출세를 거듭해 전북도지사, 경북도지사까지 역임했고 해방 후에는 반민특위에 체포되기까지 한다.. 2024. 5. 23.
도작과 잡곡의 결합 최근 나오는 이야기의 하나가, 도작과 잡곡 농경의 기원을 분리하여 보는 것이다. 잡곡 농경은 도작이 본격화하기 전 족보도 없는 원시 농경이 아니라 두 가지 농경이 완전히 별개의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두 농경의 흐름이 한반도 어딘가 (아마도 서북부-중부)에서 결합되어 도작과 잡곡이 혼작되는 혼합농경의 형태로 남하하다가 한반도 남부 어딘가에서 다시 도작의 밀도가 더욱 높아지고 이 흐름이 그대로 일본으로 이어져 야요이시대로 발전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잡곡 농경의 기원을 소급하여 따라 올라가면 부여-고구려에 요하 지역의 신석기시대 농경까지 올라간다는 것이고, 도작은 이와는 달리 산동반도-요동반도를 거쳐 유입되었으므로 양자는 한반도 서북부 언간에서 만나 한반도 혼합 농경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2024. 5. 23.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특별전 <유기鍮器 생활> 이화창립 138주년 기념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특별전 2024년 5월 29일(수)부터 공개됩니다. *** Editor's Note ***  구리 품귀 시대에 유기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시각으로 접근할 것인가?  추후 좀 자세한 소식으로 정리해보겠다. 2024. 5. 23.
돌고 돌아 돌아온 야요이인 이야기 필자가 팔자에도 없는 농경 이야기까지 하면 돌고 돌아온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이트에도 언급했었지만 최근에 Nature, Science 등 굵직한 학술지에 동북아시아 상고시대 인구이동과 농경에 대한 논문이 연쇄적으로 실렸다. 특히 이 논문들은 중국과 한국, 일본인의 형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이트에서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다. 한반도 남단의 도작을 필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유전학자들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1.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되는 사람들은 조몽인 등 토착계와는 많이 다르다. 분명히 대륙에서 넘어왔다. 2. 문제는 이 대륙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지금 한국인과 완전히 동일한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3. 이들은 .. 2024. 5. 22.
길가메시 서사시가 말하는 홍수신화 길가메시 서사시 Epic of Gilgamesh에  묘사된 아눈나키 Anunnaki 족과 관련된 홍수 신화 Flood Myth 는 엔릴 Enlil 신의 짜증에 이끌려 시끄럽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인류를 말살하기로 한 신들의 결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혜의 신 에아 Ea (엔키 Enki)는 웃나피쉬팀 Utnapishtim 한테 자신과 가족, 다양한 동물을 구하려면 큰 배를 만들라고 지시하며 은밀하게 경고한다. 웃나피쉬팀은 이러한 지시를 따른다.홍수가 나면서 며칠 동안 지구를 황폐화시킨다. 물이 물러간 후 우트나피쉬팀의 배가 산 위에 올라온다. 그는 마른 땅을 찾기 위해 새들을 풀어주고, 성공하면서 신들에게 제물을 바친다. 제물에 감동한 신들은 그들의 결정을 후회하고 궁극적으로 우트나피쉬팀과 그의 아내에게 .. 2024. 5. 22.
일본으로 건너간 도작이 더 전면적이 된 이유 필자는 앞에서 쓴 것처럼 한반도 도작이 일본을 건너간 후에는 잡곡을 누르고 한반도보다 더 전면적 도작 사회로 성장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래 근거 때문이다.   아열대 식물인 벼는 당연히 위도와 평균기온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처음 야요이문화가 배태된 서일본 일대는 한반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평균기온이 높다. 한반도 중부 일대와 비슷한 평균기온은 놀랍게도 혼슈 북부 일대의 고산지역을 빼놓고는 거의 없다. 한반도가 중국 대륙의 황하-양자강 사이의 공간 어디쯤 해당된다면, 서일본은 중국 대륙의 양자강 이남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 previous article ***  한반도 남부와 큐슈 북부의 촌락 2024. 5. 22.
한반도 남부와 큐슈 북부의 촌락 도작이 시행되었다는 측면에서 한반도 남부, 특히 남해안 일대의 촌락유적과 일본 큐수 북부의 소위 대륙계 야요이인 초기 정착촌, 이 두 촌락유적 주변에는 농지가 둘러싸고 있었을 것이다. 그 경작지에는 양측 모두 비슷한 비율의 논이 포진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한반도 남부의 촌락에 비해 후쿠오카 평원 일대의 정착촌은 논이 더 많은 모습이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경우 야요이 촌락 복원 모형이나 그림에서는 거의가 풍요로운 논으로 둘러싸인 촌락을 그리고 있더라는 말이다. 만약 이러한 묘사가 그 쪽 발굴 정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한반도 남부는 어떠했을까? 한반도 남부의 촌락 역시 논으로 둘러싸여 있었을까? 양자간에는 재배하는 작물의 종류 별 비율 차이가 있었을까? *** previous article .. 2024. 5. 22.
여자는 반지를 낀 대동 북위 포옹 무덤 북위 커플의 매장 자세를 보며 껴안고 묻힌 북위 커플 앞서 거푸 이와 관련한 소식을 전했거니와, 저 발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저 보도가 이뤄진 시점은 3년 전인 2021년이라, 이 발견이 좀 이채롭다 생각해서인지 중국에서는 국영통신사인 신화사가 관련 소식을 영문으로 타전하기도 했으니 아래가 그것이다.  Over 1,600-yr-old tomb of embracing lovers unearthed in north China Source: Xinhua| 2021-08-16 16:27:35|Editor: huaxia 다만 중국고고학에 통용하는 특유한 개념이나 용어들이 있으므로, 그 내막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당시 중국어 독자용 서비스를 살필 필요가 있다. 당시 중국 보도를 보면.. 2024. 5. 22.
전근대 농업 주력으로서의 화전 한반도 농업 흐름을 짚는 글을 신동훈 교수께서 집요하게 이곳에서 쓰거니와, 그 흐름을 대별하면 전근대 한반도는 잡곡 중심이었으며, 벼농사라 해 봐야 주력이 아니었고, 그나마 한반도 남부 일대나 도작문화라 할 만한 지점이라는 골자로 나는 이해하거니와 물론 그 전공답게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비롯하는 통로라는 관점에서 그것이 어디를 통해 들어왔고, 그것이 언제쯤 일본 열도로 건너가 야요이 문화로 연결되었는지도 주시한다고 보거니와 요컨대 저 잡곡농경이라는 말 말이다, 그 점과 관련해, 또 꼭 저 문제가 아니라 해도 우리가 너무 쉽게 간과하는 문제가 바로 화전이다. 산이나 수풀에다 불을 질러 농경을 하는 그 농업 형태가 너무 쉽게 간과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반도처럼 산이 많은 데서 잡곡농경, 그 주력을 나는 우리.. 2024. 5. 22.
호북성 양양襄阳에서 출현한 남북조시대 화상전画像砖 가족묘 호북성 양양襄阳에서 남북조시대 화상전画像砖 가족묘 발굴2023년 6월~9월 호북성문물고고연구원湖北省文物考古研究院과 양양시문물고고연구소襄阳市文物考古研究所 합동 조사팀은 왕채묘지王寨墓地 3차 발굴 작업을 진행한 결과 남북조시대 가족묘를 확인하고 그에서 다양한 주제와 풍부한 콘텐츠를 구비한 화상전画像砖을 확인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왕채 묘지, 곧 왕자이 묘지 Wangzhai Cemetery 는 양양시襄阳市 번성구樊城区 왕채사구王寨社区에 위치하며, 동쪽은 한강로汉江路, 남쪽은 대리구大李沟, 서쪽은 와룡대도卧龙大道, 북쪽은 중원로中原路로 둘러싸고 있다.2018년부터 2019년까지 양양시문물연구소는 이곳에서 두 차례 구제 발굴 작업을 진행해 서한 시대 이래 당송 시대에 이르는 무덤 290여 기를 발굴하고 다양한 문.. 2024. 5. 22.
북위 커플의 매장 자세를 보며 껴안고 묻힌 북위 커플 김단장께서 올리신 북위 커플의 매장 자세를 보면 이 인골은 정말 필자로서도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 커플이 한 무덤 안에서 서로 마주보며 발견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꽤 있다. 필자도 이전 인도 발굴에서 부부합장묘로 보이는 케이스를 하나 보고하여 BBC에 보도된 바가 있었다. https://www.bbc.com/news/world-asia-india-46806084?fbclid=IwAR0UyI9W4nwPPH8FJbe5MKRPINwxzNXa5YQlVTFmsf0VzSsmkivmRbW562Y 이외에도 서로 마주보고 있는 정도의 인골은 보았지만, 이 경우처럼 서로 안고 있는 자세의 인골은 필자는 정말 처음 보는것 같다. 저런 자세가 나오려면, 1. 일단 추가장은 아니다. 두 사람이 거의 비슷.. 2024. 5. 22.
삼국지 동이전의 "稻"와 도작중심의 사회 삼국지 동이전에는 벼를 뜻하는 稻가 딱 두 군데 나온다. 어디인가 하면 바로 변진과 왜이다. 변진: 土地肥美, 宜種五穀及稻, 曉蠶桑, 作 布, 乘駕牛馬.왜: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 흔히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오곡"에 벼가 포함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설왕설래하는 모습을 보는데, 삼국지 동이전에서는 오곡과 벼를 구분해 썼다. 위에 변진조 문구를 보면 알 것이다. 宜種五穀及稻한반도 북부의 여러 나라에는 오곡은 있지만 벼=도는 기록에 없다. 부여: 土地宜五穀옥저:  其土地肥美, 背山向海, 宜五穀, 善田種. 읍루: 有五穀·牛·馬·麻布.여기서 말하는 "오곡"이란 곧 우리의 잡곡을 말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물론 벼 재배가 변진과 왜에서만 있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한반도 서북부 평양일.. 2024. 5. 22.
공구리의 등장과 함께 물은 통제되기 시작했다 이 공구리가 초래한 혁명을 여러 번 간헐로 지적했지만, 내 경험에 따라 다시금 이 공구리가 얼마나 대단한 혁명인가를 각인하고자 한다. 내가 자꾸 이 얘기를 하는 까닭은 내가 고고학 개설 집필을 생각 중이며 그 시작은 모름지지 바로 저 공구리 혁명과 그것을 기반을 삼은 아파트 혁명으로 시작하려 하기 때문이다. 공구리와 아파트, 그리고 그것을 지탱한 또 다른 힘, 곧 철근이 결합한 철근콘크리트는 인류문화사에서 물을 피해 강믈 범람을 피해 줄행랑을 거듭한 인류가 비로소 물을 정복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이런 자신감은 마침내 인류 출현 이래 인류가 동굴로, 언덕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던 인류를 비로소 평야지대로 내려온 발판이었다. 평야 혹은 평지로 내려오면서 그 터전인 농경지도 같이 내려왔다. 물 없이는.. 2024. 5. 22.
껴안고 묻힌 북위 커플 1천600여 년 전 북위(386-534)로 거슬러 올라가 연인 한 쌍이 서로 껴안은 모습으로 묻힌 무덤에 대한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고. (최근이라 하지만 2021년의 일이다.) 이 무덤은 2020년 중국 산시성 Shaanxi province 다퉁시 Datong city 에서 발굴됐다.연구자들은 이 커플이 서로의 허리에 팔을 감고 있는 상태로 위치해 있고 그 여성 얼굴이 그 남자 어깨에 눌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어찌된 일일까?분명 남자 골격은 그의 오른팔에 치유되지 않은 부상 징후를 보여준다. 이 여성은 다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연구원들은 여자가 그와 함께 묻히기 위해 그 남자가 죽은 후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이른바 순사殉死다.순사라 해도 강요된 윤리일 수도 있다.순장殉葬이라 해서 부인을 .. 2024. 5. 22.
황소를 잡아먹으려는 사자를 도안한 리디아 황금 주화 세계 최초의 진정한 금화라 해서 소개하는데 사연인즉슨 이렇다. 일렉트럼 electrum 을 순은과 금으로 분리하는 정제 과정을 개척한 크로이소스 Croesus 왕 치하 리디아인들 Lydians 은 기원전 550년 무렵 혁명적인 바이메탈 주화 시스템 bimetallic coinage system 을 도입한다. 저 사진 금색 크로이소스 스테이터 stater 는 그에 해당하는 은색 스테이터 10개와 같은 가치를 지녔다. 교환 비율이 그랬다는 뜻이다. 저 금화 하나랑 다른 은화 10개를 같은 값으로 쳤단 말이다. 금과 은으로 만든 주화니 액면가와 실제 가격이 대략 일치했으리라 보면 되겠다. 한데 황소를 마주보며 포효하는 사자를 묘사한 저 도안이 흥미롭다. 도대체 뭘까? 아마도 그리스 최고신 제우스를 상징하는 황.. 2024. 5. 22.
비파형동검은 이란에서? 청동단검이란 서부, 초기 왕조 시대기원전 2600년경.보스턴 미술관 소장Bronze daggerWestern Iran, Early Dynastic Periodabout 2600 BCE.Now at Museum of Fine Arts, Boston루리스탄 Luristan 언덕에서 발견된 이 단검은 우르 Ur 왕실 묘지에서 발굴한 단검과 거의 동일하다.음..비파형동검이 지금 보니 이란에서 왔군. 루리스탄 청동단검과 그 문화에 대해서는 아래 참조  이란고원 루리스탄 청동기물 Luristan bronzes 속 청동 단검 2024. 5. 22.
'근대 일제'를 몰아낸 참상에서 자란 독버섯들 김제 벽골제가 농경지 농수 공급을 위한 저수지 제방인가, 아니면 바닷물 침수를 제어하기 위한 수갑水閘, 곧 dock인가 하는 논쟁이 대대적으로 붙은 적이 있었다. 내 기억에 후자를 제기한 이는 일본인 고고학도 아니면 농업고고학도였을 것이며 그에다가 제대로 불을 붙인 이는 한국에서 농업경제학도 이영훈이었다. 이 논쟁은 선후관계는 내가 지금 기억에 의존하는 까닭에 자신이 없는데 느닷없는 만경평야 논쟁으로 발전해 다시 이영훈은 느닷없이 소설가 조정래를 끌어들여 두 사람이 대판 맞붙은 일대 논쟁으로 비화했다. 이 벽골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만경평야 문제도 결단 나니 그 논쟁이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었으니, 나는 이 논쟁이야말로 21세기에 벌어진 제대로 된 논쟁 중 하나로 본다. 물론 양측은 감정싸움으로 발.. 2024. 5. 21.
강안 충적대지가 평야라는 환상, 풍납토성의 경우 물이 제어되지 않는 강안 충적대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무용지물이라 철새도래지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 상거하거나 상시 농경지로는 이용할 수 없는 황무지에 지나지 않는다.식민지시대 아차산성에 촬영한 한강과 그 너머 풍납토성 일대 지금의 풍납동이다.저 넓은 강안 충적대지는 사람 살 데가 아니었다.걸핏하면 물이 들이치는 상습침수 구역이기 때문이었다.을축년 대홍수 직후 풍납토성이다.저 넓은 충적대지가 온통 황무지였으며 무허가 부랑인 움막 몇 채가 있을 뿐이었다.같은 시절 풍납토성 내부다.저 넓은 20만평이 다 버려졌다.왜?물이 통제되지 않은 강안 충적대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함에도 왜 강안 충적대지 평야라는 등식이 오도되고 있는가?첫째 물이 통제되기 시작한 20세기가 심은 환상이라 이를 아득한 선사시..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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